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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책들의 오솔길
[꿈이지만 현실, 진실이지만 거짓인 세계] - 존 코넬리 <잃어버린 것들의 책>
~ 데이빗의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된 이야기의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분리 되어
그 나름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세계를 구분하는 벽은 너무나 얇고 약했고 언젠가
부터 그 두 세계가 섞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꼬부라진 남자가 데이빗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 이 책을 덮은 후에도 살아나는 온갖 동화들이 메아리를 통해 이 난국을 극복할 해답은
아닐지라도 이 세상이 이다지도 답답한 까닭을 알아낸 것처럼 느꼈으니, 그건 이야기의
부재, 즉 상상력 결핍으로 인한 비전의 실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덜 쓸쓸한 법이지] -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 새는 날아오네 / 산수유 열매 붉은 둘레에 // 새는 오늘도 날아와 앉네 / 덩그러니 /
붉은 밥 한 그릇만 있는 추운 식탁에 // 고두밥을 먹느냐 // 목을 자주 뒤쪽으로 젖히는 새는
(수록작 <새>)
[증손자 볼 나이..... 난 지금도 엄마가 필요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 (중략)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에 이르러 마침내 우리 엄마가 아닌
나하고 하나가 된다. 나야말로 엄마의 도움 없이는 죽지도 못할 것 같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인간이니까.
[사람을 부르고 동행을 부추기는 제주도의 흙길]
- 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 제주도 걷기 여행>
~ 서명숙과 그의 친구들이 제주에 낸 길은 폭력적인 길이 아니라 사람을 부르고 동행을
부추기는 평화적이고 자유롭고 다정한 길이다. 김영갑의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오라고,
그럴 수 있다고 손짓하는 길이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과 오름 사이를 잇는 길이요,
제주에만 남아 있는 원시와 문명이 남긴 명소를 잇는 길이요,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는
육지와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사이로 만드는 길이요, 마을도 농토도 다치지 않고 비켜
가고 돌아가는 느려터진 길이다.
[지도 밖의 땅 . . . 그들은 왜 봉천으로 갔는가] -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1) 김연수의 장편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지성사) 는 1932년 동만주에서 벌어진 소위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실록처럼 읽힌다.
(2) 애국이 뭐기에 인간애 없이 조국을 사랑한다고 날칠 수 있단 말인가. 어둠을 걷어내는 건
빛이고 빛은 앎일 터, 역사소설을 경험자가 쓰는 게 아니라 훗날 누군가에 의해 상상됨으로써
쓰일 것이다. 상상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작가가 기울인 노고 속엔 사랑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도처에서 느껴진다.
[돈만 아는 세상, 괴짜 기인들을 만나다] - 정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1) 정민 지음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불광불급)> (푸른역사)를 처음 읽고 우리가 흔히
실학자로 부르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내밀한 사생활과 신분을 초월한 우정, 광기와 열정,
요샛말로 마니아의 세계에 대해 깊이 매료된 적이 있다.
(2)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휴머니스트) 을 읽으면서 이 저자야말로 그 시대를 제멋대로
살다간 기인 괴짜들에게 미쳐서 국내외, 멀고 가까운 데를 가리지 않고 발로 쫓아다니면서
시간의 먼지 속에 묻힌 그들의 자취를 찾아내서 온전히 복원해 마침내 이 한 권의 책에 이르
렀구나, 하며 그의 광기 어린 열정에 공감하게 되었다.
(3) 남이 하는 것을 흉내 내거나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당시 지식인과 기인,
전문가들의 독창적인 생각, 그들의 수집벽과 정리벽, 기록벽, 꽃처럼 사소한 것에까지 미친
애호벽, 그리고 당시 체제의 검열에 걸린 발랄하고 사실적인 문장 등에서 그는 근대의
에너지를 읽어낸다. -- 불행하게도 정조(正祖)의 승하와 동시에 18세기는 막을 내리고 기인들
뿐 아니라, 독학으로 수학, 기하학, 천체물리학에 통달하여 천민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등용되었던 천재까지 영락하여 거의 굶어 죽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4) 만약 정조시대의 문예부흥기가 순조롭게 좋은 정치를 만나 근대화를 이룩하면서 주권을
유지해 왔더라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도 안 겪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면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일 따위가 일어날 수 없었다. 아아, 분단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얼마나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겸손한 서향(書香)이 가슴에 번지네] - 최순우 <무량수전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는 그가 발견하고 느낀 한국의 미를 내면 깊숙이 스며들게 한 뒤 비로소 글로
표현해서 읽는 사람에게 그의 것을 번지게 하는 힘이 있다.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애송시 100편>
(1)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애송시 100편> (민음사, 전 2권)은 신문에 연재될 당시
아침에 그것을 받아 읽을 때의 행복감이 생각나서 얼른 샀다. ---> 아무데나 읽어도 내 정신
도 조금은 깊고 높아지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본다. 다시 읽어도 거듭해 읽을수록 더 좋아지는
건 좋은 시만이 줄 수 있는 큰 복인 것 같다. 멋모르고 그냥 느낌으로 좋아하던 난해한 시에
뛰어난 시인들의 웅숭(생각이 깊고 넓음)깊고 친절한 해설이 붙은 것도 금상첨화였다.
(2)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
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3)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사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
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맛있고 몸에 좋은 것만 찾는 세상 얄밉다] - 공선옥 <행복한 만찬>
(1) 흙냄새가 물씬 나는 우리 먹을거리의 근본에 관한 이야기이다. ==> ‘우리 흙이 어떤 흙인가.
우리 삶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고 소박했을 땐 흉년도 잦았다.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렸을
때도 우리 산야는 도처에서 먹을거리를 키워내서 백성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
었다. 예로부터 구황(救荒) 음식이라 일컬어 온 이런 것들은 혀에 달지 않다.
오히려 쓰거나 떫지만 속맛은 깊고 달고 살찌는 양분 대신 강단을 키워준다.
(2) 행복한 성장을 한 먹을거리들은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먹을거리들의 성장 조건은 갈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먹고 살아도 우린 정말 괜찮을까?
[그는 담 밖 세상을 눈뜨게 해준 스승] - 이청준 <별을 보여 드립니다>
(1) 이청준은 문단 연령으로는 선배지만 살아낸 햇수로 치면 한참 후배이고, 마음으로는
스승이다. 그가 나에게 스승인 까닭은 한 권의 책 <별을 보여 드립니다> (일지사) 때문이다.
(2) 등단 초기 내 마음 속엔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스승을 찾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암중모색의 시기에 이청준 같은 스승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여름날을 넘기는 법] - 조나 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지만 거듭 읽어도 싫증 안 나는 책이 머리맡에 있고,
책방으로 뛰어가고 싶게 만드는 책도 있으니 지루함을 모르고 날 수 있을 것 같다.
[죽기 전, 완벽하게 정직한 삶 살고 싶다]
- 박경리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1)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쓰셨다고 따님이
회상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가 나왔다.
(2) <일 잘하는 사내>
다시 태어나면 / 무엇이 되고 싶은가 / 젊은 눈망울들 /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 돌아가는 길에 /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 왜 울었을까/ . . . . .
(*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순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울었을 거라고 해석까지 해놓으셨다.)
(3) 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으니까 다음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대신 내가
십년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 꼭 해복 싶은 게 한 가지 있긴 하다. 죽기 전에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그까짓 마당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나 혼자 먹고살 만큼의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 -----> 살다가 어느 날 고요히 땅으로
스미고 싶다.
[반 고흐의 손이기도 했다. 감자를 먹는 저손 . . . 정직한 노동을 한 저 손은]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감자를 먹는 사람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다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에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2) 다른 화가들이 농부나 바느질하는 여인 등, 민중 속에서 모델을 찾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3부, 그리움을 위하여.
[천진한 얼굴 가지신 아담한 노신사-추기경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교회]
- 김수환 추기경 선종.
(1) “누구나 어린이같이 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지 못할 것”이란 성경 구절이 생각나
‘저 어른이야말로 천당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좀 무엄한 생각을 했다.
(2) “바티칸은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가 전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로에 가깝지만,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무한대다.” <== 가톨릭 정신
= 김수환 추기경님의 존재.
[신원(伸寃)의 문학] - 박경리 선생 추모.
(1)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지요. 땅처럼 후한 인심은 없다고, 뿌린 것에다 백배 천배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주는 게 땅의 마음이라고, 본전 까먹지 말고 이자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선생님은 밭에 엎드려 김을 매고 있는 게 아니라 경배를 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2) 선생님은 자연숭배자이셨다. -->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겸손해지셨다.
(3) 선생님은 마침내 자유로워지셨구나.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맺힌 슬픔, 의지가지없이
허전한 마음이 헐렁해지자 우리는 찍찍 허튼수작까지 날리며 희희덕댈 정도로 편안해졌다.
[보석처럼 빛나던 - 나무와 여인] - 박수근 화백 추모
(1) 그는 왜 꽃 피거나 잎 무성한 나무를 그리지 못하고 한결같이 잎 떨군 나목만 그렸을까.
왜 나무 곁을 지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뭔가를 이고 있지 않으면 아이라도 업고
있는 걸까.
(2) 박수근 회고전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도 나에게 소설 <나목>을 쓰게 한 그
‘나무와 여인’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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