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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1}

하나님아들 2012. 11. 23. 20:17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산문집-  2011년 2월 20일 현대문학사 펴냄

 

 

 

1부- 내 생애의 밑줄

~ 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1)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2) 창가에 앉아서 빌려 보는 경치로 눈을 씻고 마음을 씻고 나서 그래도 몸담고 있는 세상

     돌아가는 알도 대강은 알아둬야 할 것 같아 마지못해 신문을 펴든다.

(3) 문학 강연 시 나는 소설이 지닌 미덕과 글을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곤 한다.

(4)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5) 나는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된 고옥에 들어 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내 식의 귀향]

- 때는 일몰 무렵이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유년의 뜰]

(1) 해 뜨기 전에 흙과 풀이 가장 부드럽고 냄새도 좋다.

(2) 흙을 상대로 하는 육체노동에는 원초적인 평화와 행복감 같은 게 있다.

(3) 다양한 식물들이 뿌리내리고 살려니 저희들 끼리 땅위에서는 햇볕을,

    땅 밑에서는 수분과 양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는 싸움이 치열하다.

 

[흐르는 강가에서]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이들의 편이다]

(1) 6.25! 1.4 후퇴 시 일어난 일들을 나는 날짜별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겨울의 추위가 냉동 보관시킨 기억은 마치 장구한 세월을 냉동보관 식품처럼 썩은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건 기억이 아니라 차라리 질병이다.

(2) 6.25의 겨울 :- 어쩜 그렇게 혹독한 추위 그렇게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아아, 남대문]

-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나라>의 첫머리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식사의 기쁨]

(1) 식구 수에 맞춰서 빠듯하게 지은 밥에서 한 숟갈씩 들어내어 감쪽같이 밥 한 그릇을

    만들던 우리 엄마들의 십시일반의 솜씨는 가히 예술이었다. 한두 사람분의 쌀에다

   물을 듬뿍 붓고 우거지와 온갖 푸성귀를 넣어 열 사람도 먹일 수 있도록 늘리는

   솜씨는 요술이 아니었을까.

(2)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친절한 나르시시스트들]

 

[빈집에서 생긴 일]

- 같은 일이라도 소모적인 일과 생산적인 노동(이상하게 이 일은 지치지 않았다) 의

  차이가 있었다.

 

[내 생애의 밑줄]

(1)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 뿐 아니라 읽을 당시 마음의

    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수도 있다.

(2) 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야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 낙타를 매 놓기 전의 다리 이름은 만부교였다고 한다. 낙타가 굶어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낙타교 또는 낙교라고 부르다가 낙타를 흔히 약대라고 부르는 속어를 따르다 보니

  야다리가 된 거였다.

 

[구형(球) 예찬(禮讚)]

(1) 급한 원고가 있을 때도 전혀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하는 건 나의 못 말리는

    고약한 버릇이다. --> 가장 불필요한 일을 하는 한가한 시간을 또 다른 긴박한 시간이

   주름잡고 있는 것처럼 감정의 혼란과 시간관념에 착란이 왔다.

(2) 2002년 월드컵 때는 예측 불허 때문에 온 국민이 축구팬이 됐고, 축구팬이 된 이상 한 달

   내내 가슴을 울렁거리며 살 수 밖에 없었다. 생동하는 가슴의 박동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3) 2002년 축구 월드컵에서 단시일 내에 우리 팀을 세계적인 팀으로 거듭나게 한 감독

   히딩크의 어록도 당연히 만인에 회자됐다. 선수들이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이나 인기,

   인맥, 청탁 등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해 혹독하되 인격을 무시

   하지 않는 강훈련을 시켰다는 건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인사권자의 기본원칙에 불과했다.

(4) 인간의 삶의 궤적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모르지만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말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으로 치면 원(圓)일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 하듯이,

   시간도 되풀이하며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다음 {2}에 계속됩니다. ========>

 

출처 : A B N 꿈나라
글쓴이 : 이승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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