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진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단지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자연히 우리를 “계시”의 교리로 이끌어 준다. 하나님은 동시에 계시의 주체와 객체로서 진리이신 하나님 자신을 하나님 스스로가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하여 세계와 인류가 진리 안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진리가 계시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거짓과 어둠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는 인류와 세계를 비추이는 빛과 같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1. 계시
계시(revelation, 啓示)란 “숨겨져 있는 것을 (커튼을 열어 보여 주듯이) 나타내 보여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계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계시(divine revelation)”에만 한정되어 사용되며, 특히 진리이신 하나님의 “자기계시(self-revelation)”적 성격이 강조된다. 계시라는 말은 이러한 계시행위나 그로 인해 계시된 진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계시는 자동적이 아니며 의도적이다. 비록 하나님 자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의 모든 말씀과 행위와 창조가 자동적으로 진리성을 반영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은 의도 없이 말씀하시거나 행하시거나 만드시지 않고 그의 무궁한 지혜와 경륜에 따라 된 것이다.
따라서 계시는 의도성을 중심으로 계시자와 피계시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모종의 의사전달 매체(communication media)를 필요로 한다. 피계시자는 의사전달이 가능한 모든 생물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이 그 궁극적 대상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능력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제한된 이해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도 그의 무한한 능력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그의 계시를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감성과 오성 구조에 있어서 하나님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서, 비록 오염되고 둔화된 이성으로도 종류와 정도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그리고 이성의 수용능력을 넘는 계시의 종류나 정도는 하나님의 부가적인 은총으로 주어지는 “신앙”의 기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나 안셈은 신앙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의 기관이며 올바른 이성사용의 구비조건임을 논술했으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지식은 물과 같아서 위에서 빗물처럼 내려오기도 하고 아래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기도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계시에 두 종류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즉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와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를 가리킨다.
2. 일반계시
일반계시란 자연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전달되는 계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계시(natural revelation)”라고도 하며, 그 성격상 “비언어적 계시(non-verbal revelation)”라고도 한다. 작품이 작가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듯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세계는 하나님의 존재와 원리를 반영한다. 시편 19편은 자연계시의 존재를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또한 로마서 1장 20절은 그것을 직설적으로 강조하였다: “창세로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기독교문화란 진정한 문화를 건설하는 모든 창조활동이라는 폭넓은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긍정적 문화활동은 하나님의 뜻이며,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거짓과 추함과 악함뿐이라고 보고,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을 반영하는 모든 문화활동을 기독교적이라고 포함시킨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창시한 신칼빈주의는 이러한 긍정적이고 포괄적인 기독교문화운동을 출범시켰다. 그는 이 견해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일반은총(common grace)이론에 근거하였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인 은총의 대상이 된다는 이 일반은총론은 다음 일곱 가지 근거에 기인한다: (1) 만물을 통치하고 보존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섭리, (2) 하나님의 속성적 자비와 사랑, (3) 일반계시를 통한 진리의 빛, (4) 가정을 비롯한 창조질서, (5)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성, (6)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로 인한 세계의 구속, (7)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언약공동체의 존재. 그러므로, 헨리 미터(Henry Meeter)는 심지어 비기독교인에 의해 수행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베푸신 일반은총의 열매들이 어디서 맺히든지 하나님의 명예와 그의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그것을 감사함으로 사용하는 것(thankful use)이 우리의 의무다”고 말하였다. 실로 성경에서 우리는 문화에 대해 지나친 구분을 발견할 수 없다.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모든 기존문화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일반계시는 크게 세 영역에서 나타난다.
첫째로, 자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자연현상의 질서 있는 원리의 존재와 논리적인 구조, 그리고 자연의 조화와 아름다움이다. 또한 자연의 압도적인 크기와 형언할 수 없는 정교성에서 우리는 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된다.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함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리고 그 창조자를 부인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강팍한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변명이 불가능하다(롬 1.20).
둘째로, 인간의 정신구조에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데 기인한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을 보고 그 아버지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만들어진 인간의 정신구조는 하나님을 상당히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거룩함과 영원, 그리고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성이 있다(전 3.11, 행 17.22-29).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 종교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인위적인 종교와 대체적인 우상을 만들고 섬겨오고 있다(롬 1.18-25, 빌 3.19, 창 4.16-22).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이성도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해 준다.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기뻐하고 슬퍼할줄 아는 다정다감한 마음,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미적 감각, 논리적이고 질서있게 생각하는 이성적 사고 등 인간의 정상적인 정신구조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반영이다. 따라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이 유대민족처럼 직접 도덕법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고 적용되는 이유는 바로 양심이 그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롬 2.14-15).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명저 [실천이성비판]에서 이점을 훌륭하게 논술하였다.
셋째로, 하나님의 섭리가 반영되는 역사에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며 보존하시며 섭리하심을 가르쳐 주고 있다(시 75.6-7, 렘 18.1-12, 행 17.26-27). 따라서 역사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역사의 교훈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은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단독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악령과 죄인의 파괴적 작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역사주의(historicism)나 운명주의(fatalism)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에야 절대적인 역사적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계시된 역사원리를 기준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계시를 발견해야 한다.
3. 특별계시
특별계시란 초자연적 방식을 통해서 제한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계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초자연적 계시(super-natural revelation)”라고도 한다. 그 대부분은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언어적 계시(verbal revelation)”이지만, 환상이나 기적같은 비언어적 계시도 있다. 특별계시는 자연계시보다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며 자연계시를 보완해 주고 혹은 강조적으로 반복하며 바르게 해석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특별계시에는 상당량의 일반계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비진리의 오염과 자연의 혼란으로 인해 흐려지고 도착된 일반계시는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대로, 특별계시의 안경을 통해서만 분명하고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특별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왜냐하면 일반계시의 원리에 의해서는 죄인에게 오로지 심판과 멸망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골 1.16-17, 엡 1.10, 롬 8.19-22).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창조에 기초하고 근거한 일반계시가 불분명해지고 왜곡됨으로서 불충족해짐에 따라, 구속을 위해 특별계시가 여러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첫째로, 하나님 자신이나 그 사자를 통해 나타나시는 신현(神現)의 방식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지성소 구룹 사이에서 또는 불과 연기, 폭풍우, 미풍 속에서 나타나셨으며, 그의 사자를 보내기도 하셨다(시 80.1, 99.1, 창 15.17, 출 3.2, 19.9, 16-17, 33.9, 시 78.14, 99.7, 욥 38.1, 40.6, 시 18.10-16, 왕상 19.12, 출 23.20-23, 사 64.8-9, 창 16.13, 31.11,13, 32.28).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창 2.16, 3.8-19, 4.6-15. 6.13, 9.1,8,12, 32.26, 출 19.9-10, 신 5.4-5). 그러나 신현은 예수님의 강림에서 그 극치를 보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대화하시고 가르쳐 주셨으며, 그의 삶과 희생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또한 그의 승천 후에는 성령께서 강림하여 교회와 성도에 내재하여 지도하고 계신다.
둘째로, 비언어적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식이다. 제비를 뽑거나(삼상 10.20-21, 행 1.26), 우림과 둠밈의 판결법으로(출 28.30, 민 27.20, 신 33.8)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셨으며,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계시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꿈이나 환상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뜻을 혼란시키게 됨으로서 무서운 형벌로서 경계하였다(신 13.1-5, 렘 23.23-32, 29.8-9). 인류 역사상 꿈이나 환상같은 회화적 방식을 통하여 계시하신 경우는 사실상 매우 드문 일이다. 그리고 이적을 행하심으로서 그를 나타내시기도 하였다(신 4.32-35, 시 106.8, 요 2.11, 5.36, 10.37-38, 행 4.10). 그런데 이적현상도 악령에 의해 오용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전반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뜻을 계시하심에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러한 비언어적 방식도 사용하셨지만 악령의 혼란공작이 가장 극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셋째로, 그의 선지자와 성경기자를 통하여 언어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방식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입”이 되어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전했으며 성경기자들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기록했다. 이러한 계시는 동시대인들에게 주어졌으나,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가감이 허락되지 않는 완전한 형태의 성경으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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