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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교회관의 네가지 측면

하나님아들 2023. 10. 9. 23:21

바울의 교회관의 네가지 측면

 

 

 

 

1) 교회의 가정같음에 대한 강조

  바울은 자주 교회를 하나의 가족으로 이야기 했다.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비교한 것은 구성원들의 상호 연결성과, 그들에게 서로를 위해 사역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족으로 유추하는 것은 구성원간의 관계의 질과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교회가 가정을 기반으로 하며 가정에서 만들어지고 가정과 같이 되는데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역기능적인 가정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좋은 가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 가족이 그들이 회심하면서 잃어버린 원래 가족의 역활을 대신 하였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교회에서의 관계가 기존 가족의 유대관계를 회복시키거나 심화시켰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 가족처럼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서로를 사랑하기로 진정으로 헌신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바울에 의하면, 내가 당신과 함께 교회에 참여할 때 나는 당신을 돌아보고 당신은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책임이 있고 당신은 나에 대해 책임이 있다. 마틴 루터가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서로에게 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2) 교회의 총체성에 대한 강조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초첨을 맞추는 경우만 교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은 함께하는 사람들 안에서, 또한 그들을 통해서 임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마치 두개의 분리된 활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회를 둘로 분리할 수없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스며들고 상호의존하는 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공동체적 모임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부분만이 교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 서신들을 보면 우리의 모든 부분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하다.우리는 단순히 다른 영혼과 만나는 영혼으로서, 혹은 다른 마음들과 만나는 마음로서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상상력, 감정, 몸도 참여해야한다. 교회에는 웃음과 눈물과, 자기 성찰과 친밀함, 의심과 확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심지어 기도중에도 재미있는 농담을 즐리고, 웃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다.

  우리는 교회 모임을 일상적인 생활과 관심사로부터 벗어나는 행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관심사나 더 폭넓은 대중적 관심사들을 끌어들이고 이야기하고 기도하며 다루지 않는 한, 교회는 원래 되어야 하는 것 이하의 수준이 된다. 바울 서신은 다음과 같은 신령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1) 남편과 안내는 성관계를 어떤 관점으로 조아야 하는가?

  (2) 결혼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신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3) 약혼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4) 자신의 소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무엇인가?

  (5)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가?

  (6)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 특정 고기는 사면 안되는가?

  (7) 불신자의 집에서 식사를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

  (8) 다른 그리스도인을 법적으로 소송해도 되는가, 안되는가?(고전5-10장)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의 일들을 모임에 합쳐 넣었다. 실로 어떤 측면에서 그들의 모임은 아주 일상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3) 교회의 참여적 형태

  바울의 교회관은 또한 그 참여적 형태를 인정한다. 교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으로부터 한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았으므로, 함께 모일 때 교회에 기여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는 구경꾼은 없다. 모든 사람이 참여자다.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 일어나는 일은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이 미리 조정해 놓은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의, 아니 오히려 모두를 통한 성령님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리더십의 자질이 모든 지체에게 동일하게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하여 더 큰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구성원 각자가 리더십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모두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의 내용, 형식, 질에 책임을 질 때,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질이 높아지며 참여한 사람들이 유익을 얻는다.

  리더십에 대한 이러한 공동체적인 관점은 교회의 삶의 더 넓은 측면과 관련이 있다. 바울은 각 가정교회와 더 큰 교회 공동체가 그 모임 자체의 일들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모든 구성원이 이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였다. 그의 서신들은 하나의 특별한 그룹이나 한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보내는 것이다.

  하진만 바울은 교회에서 특벙한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특별한 역활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탁월한 구성원간에 격렬한 분쟁이 있거나 법적인 분쟁의 위험이 있을 때 공동체 내의 제3자가 이 사안을 해결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어떤 구성원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더 성숙한 신자들은 자신도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온유하게 그들이 다시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큰 목회적인 능력과 성숙한 인품을 주셨다. 비록 이런 사람들이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점유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은 이들을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 이들의 공헌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이들은 다른 이들과 구별시켜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는 이들의 더 큰 헌신이었다. 이들의 역활은 자신들의 사역을 확장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은사를 개발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자신들이 세운 공동체를 섬기고 그 구성원들이 점점 더 스스로 굳건히 서도록 도와서, 마침내 그들이 외부의 사역에 의존하지 않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오늘날 목회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목표를 따라야 한다.

 

  4) 교회의 외부 지향적 성격

  바울의 교회관의 마지막 특징은 교회의 외부 지향적인 성격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적 삶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밖을 향한 관심이 강했다. 이 두가지는 함께 간다. 제대로 기능하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필요를 돌아본다 그들은 서로에게 시간을 내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하며 서로 돕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가족이 아닌 외인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미혼자들, 방문객들, 낯선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접한다.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에 충분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내부적인 관계가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구성원들은 또한 다른 사람의 욕구와 필요를 알아내고 그들을 돌보는 기술을 가족 사이에서 배워 알고 있다.

  바울은 교회가 발전해 나갈 때 복음이 불신자들의 삶에 감명을 준 아주 분명한 예 두가지를 보여 준다. 이는 복음 설교를 함으로써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받을 때 혹은 주님의 이름으로 식사할 때 일어난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외부사역은 내부사역을 할 때 일어났다.외부사역, 즉 전도는 교회 구성원이 흩어졌을 때도 일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교회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혹은 몇몇이 가정, 이웃, 일터에서 행하는 활동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집과 방외에도 일터에서 사회적 접촉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앙을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예배도 드리고 일도 했기 때문에, 교회와 현장의 연관성은 오늘날보다 훨씬 밀접하였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교활동이 오늘날보다 더 많았다. 이것은 밖으로 퍼져 나가는 일이 가정에서만 발생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도행전에는 시장, 거리, 성전 밖, 강가 등 여러가지 다른 상황도 제시되어 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선교를 하기 위해서 외인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가정하에 일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 복음을 들고 갔다. 사람들이 보통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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