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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음부강화?

하나님아들 2023. 8. 27. 20:57

그리스도의 음부강화?

 

▶ 사도신경

사도신경(使徒信經, Symbolum Apostolicum)은 로마 카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기독교"라고 불려지는 교회의 다 함께 고백하는 성경적이며 사도적인 신앙고백이다. 처음에는 입문하는 기독교인에게 하는 세례문답과 같은 형식이었으나, 점차 기독교회의 신조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 신조는 세계교회 신조(Ecumenical Creed)라고도 부르는데, 이 사도신경의 거부는 정통적인 기독교회로부터의 분리로 간주되어진다.
실제로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몇몇 이단 교회는 사도신경이 그들의 사상과 교리(예를 들면 삼위일체나 기독론등)와 다르므로 거부하고 있다.

이 사도신경에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이상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오직 한글 사도신경만이 이러한 기록을 삭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의 구절은 "음부에 내려가시고(영어: He descended into hell 라틴어: Descendit ad inferna)"라는 구절로서, 사도신경 한글 본문에는 그 구절을 생략하고 있다.
교회 역사상 예외없이 고백되어 왔으며, 지금도 세계의 모든 세계교회들이 고백하는 이 구절을 왜 한국교회는 한 구절을 삭제하고 있는가?

일찌기 1938년에 박형룡교수도 이 문제를 지적하였으며, 최근에 김영재교수는 이 구절을 삭제한 이유가 아마도 "설명이 곤란해서 슬쩍 빼 버렸든지 아니면 문자적 번역을 피하여 의역한 것"이리라고 말하였다.
감리교단에서도 1894년 언더우드선교사의 사도신경 번역판이나 1905년 장로교선교사협의회에서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는 반면, 1897년과 1902년, 그리고 1905년에 번역된 감리교회의 사도신경에는 한결같이 이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1908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합동찬송가"를 발간하면서 사도신경의 통일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사도신경의 그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즉 1900년도를 전후하여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사도행전의 지옥강하에 대한 구절이 생략되어진 것이다.

영어 사도신경과 카톨릭의 그 구절을 보자.

영어 사도신경 -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orm the dead;
카톨릭 사도신경 - <저승에 가시어> 사흘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개신교 사도신경 -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영어사도신경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표현이 있고, 카톨릭 사도신경은 "저승에 가시어"라고 표현을 했는데, 개역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구절이 그 이유를 밝히지도 않은 채 언제부터인가 삭제되어 버렸던 것이다.

사도신경은 니케야신조나 칼케톤신조와 같이 어느 시간에 이르러 발표된 것이 아니라, 주후 200년경에서 750년경 사이에 서서히 발달되므로서 그 모습을 갖춘 것이다.
"그가 지옥에 내려가시며"(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구절은 주후 390년경에 발견된 루피누스의 사본 중 하나에 나타나며, 그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후 650년경에 이르러서 어느 사본에서 다시 발견되어진다.
즉 솔직히 사도신경의 그 구절은 사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44번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문 :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첨가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 : 내가 가장 큰 시험을 받을 때에 십자가 상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신 나의 주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은 지옥의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나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50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죽음 이후의 그리스도의 비하는 장사되고 사흘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서 죽은 자로 계신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지옥에 내려가시며"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1440년 Reginald Pecock이 이 구절의 삭제를 제안한 적이 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도 Walter Deloenus가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그의 기독교강요 2권 16장 8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이 구절은 우리 구원의 총체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만일 이 구절을 삭제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주는 은택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 칼빈의 해석

칼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로 쉬운 말을 다시 설명하기 위해서 어려운 말을 쓰는 법이 없다. 음부강하의 의미가 단순히 바로 앞에 분명하게 언급된 "죽으시고 장사되며"를 반복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 보다 더 난해한 "음부에 내려가시고"란 말을 사용할 리 만무하다는 문학적인 반론이다.
둘째로 사도신경과 같이 압축되고 간결한 신경에 쓸데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중복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칼빈은 음부강하를 단순한 사망상태의 서술로 보지 않고 음부적인 고통의 영적 체험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십자가를 육적 고통으로 음부강하의 체험을 영적 고통으로 이해하고, 이 둘이 합하여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대속적 형벌의 완성적 개념으로 보았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음부강하가 단지 십자가상에서의 음부적인 고통의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왜 예수님의 비하와 승귀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열거하고 있는 사도신경에서 음부강하를 죽음과 장사 이후에, 그리고 부활 직전에 배열하고 있는가? 정말 그런 의미라면 오히려 음부강하를 죽음 이전에 위치시켰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이 무덤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적인 교리라면, 예수님의 영혼은 그 3일동안 어디에 가 계셨는가? 그곳이 낙원이라면, 사도신경은 왜 "낙원에 올라가셨다"라고 하는 대신에 "음부에 내려가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 음부강하의 성경적인 근거

예수의 음부강하에 대한 성경구절은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없는데, 음부강하적인 증거라고 지적하는 몇몇 구절들은 발견되어 진다.
그 구절들은 롬10:6-7. 엡4:8-9. 벧전3:18-20 인데 한번 살펴 보자.

1)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다느냐 하지 말라(이는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이라)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말라"(이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이라)(롬10:6-7)

이 구절은 지옥강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를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신명기30:13을 인용한 것으로서 믿음으로 얻는 의의 말씀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예수를 하늘로부터 내린 것이 아니고, 또 죽음에서 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사실(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하여 의를 얻는 것이므로, 그러한 불신적인 질문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2)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엡4:8-9)

"땅 아랫 곳"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해하지만, NIV 영어성경의 번역으로는 낮은 곳이 이 땅을 말한다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본문해석상 가장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공동번역은 "땅 아랫 곳"을 "땅 아래의 지하세계"로 번역하고 있으며, KJV 영어성경은 into the lower parts of the earth라고 번역하였지만, NIV 영어성경은 to the lower, earthly regions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표준새번역은 "땅의 낮은 곳"이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은 "땅으로"라고 번역하고 있다.
성경본문의 해석으로는 땅 아래 곳은 땅보다 아래의 세계가 아니라 성육신하셨던 지상사역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한다. 헬라어 문법상으로도 땅과 아래는 소유동격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3)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8-20)

예수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러 가셨다면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옥에서 두 번째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카톨릭의 해석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른 성경적인 기록과 모순되어진다.

만일 카톨릭의 주장이 옳다면, 예수님은 왜 옥에 있는 모든 영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를 예비할 동안에 순종치 않았던 극히 일부의 영에게만 전파하셨을까?
또한 이러한 해석은 부자와 나사로에 상반되는 해석이 되어지며, 더욱이 벧전3:20 이후의 문장의 뜻과 일치되어지지 않는 해석이다. 만일 죽은 자에게 두 번의 기회가 있다면 베드로의 정죄의 설교적 내용의 의미를 반감시키게 된다.

벧전 3:18-20은 사실 난해한 구절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갇힌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시고 그들이 정죄를 받았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타당성있는 주장 중에 하나로 간주된다.
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단어는 "유리겔라조"(복음을 전하다)가 아니고, "케루소"(선포하다)이다. 즉 정확한 번역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공동번역도 "선포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해석이 있는데, 옥에 있는 영들은 타락한 천사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타락한 천사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 음부강하에 대한 해석

즉 그리스도의 음부강하(陰府降下)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크게 분류하면, 실제로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그의 영혼이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실제설(實在說)과 음부강하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상징설(象徵說)이 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때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모여있는 Limbus Patrum(림보)에 가셨다고 주장하며 연옥설의 근거로 이용하는가 하면, 루터교회는 사탄의 세력에게 그의 승리를 보이기 위해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이해하고, 이를 승귀의 제1단계로 본다.
그리고 영국교회(성공회)는 낙원과 음부를 같은 장소의 사후적 개념으로 동일시하여, 3일동안 낙원에 가신 것으로 이해한다.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같은 곳에서는 음부를 무덤과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여(지옥이 없다고 주장함), 예수님이 단지 무덤에 묻힌, 일반적인 개념의 죽음이라고 해석한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의 신학적인 입장은 상징적으로 이해한다.
즉 예수님께서 실제로 음부에 내려가셨다기 보다는, 죽음의 상태를 묘사하거나 혹은 음부적인 고통의 처절한 경험으로 상징적인 이해로 해석한다.
이러한 개혁주의의 상징적 이해에는 몇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 견해로는, 다음에 언급되는 "He ascended into heaven"(하늘에 오르사)과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써, 단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승천과 대조하여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하기 위해 "descended into hell"(지옥에 내려가다)라고 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descended 와 ascended 라는 두 단어를 비교하여 대조시켰다는 견해와 into hell 과 into heaven 이라는 두 단어를 비교하여 대조시켰다는 견해로서, 십자가 이후에 변화되며 급전(急轉)하는 개념 - 비천함과 승귀함의 대조, 저주스러운 십자가의 고통과 영광스러운 승천을 상징하는 문학적 표현기법으로 보는 것이다.

또 둘째 견해로는, 예수님이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구절은 벧전4:18-19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4:18-19)

카톨릭은 이 구절로 연옥에 있는 자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며 후에 면죄부의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단어는 "유리겔라조"(복음을 전하다)가 아니고, "케루소"(선포하다)이다.
즉 정확한 번역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누가복음16장에 의하면 음부에 있던 부자는 낙원에 있던 아브라함과 대회가 가능하였다. 다만 그 사이에는 구렁이 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성경은 음부는 내려가는 것으로 낙원은 올라가는 것으로 전혀 별도의 분리된 장소로 표현하지만, 누가복음에서의 음부와 낙원은 구렁이 가로 막혀있을 뿐 서로가 가시권 안에 있으며, 대화가 가능한 곳이 되어진다. 즉 음부와 낙원에 대해서는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가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하지만, 사후영혼이 죽어서 가는 낙원과 음부는 분리된 별개의 물질적 장소개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견해,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은 온 세상에 편재하실 수가 없으셨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영혼은 온 세상에 편재하실 수 있으시다.
다윗은 하나님이 음부에도 계시며 하늘에도 계시다고 하며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8)

심판주이시며,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고 음부와 낙원으로 분류되어진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한 주장이 된다.
예수님은 낙원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신다. 즉 지옥에 내려가신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문제점도 있을 수 없다.
또 사흘 후, 신체를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문을 잠근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시지 않으셨는가?
결론적으로 한글 사도신경은 구체적으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