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상급에 대한 이해

하나님아들 2023. 8. 10. 23:08

상급에 대한 이해              

 

1. 상급 용어

 

신약에서는 상급과 관련하여 대체로 ‘미스도스’와 ‘아포디도미’가 사용된다.

 

 

1) 미스도스(Homer 이래)주로 히브리어 사칼의 어군을 번역했고, '급료, 임금, 보수, 보상, 선물'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1) 미스도스의 용법

 

1. '일의 보수'라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삯 -마20:8;눅10:7;딤전5:18;행1:18;벧후2:15;유1:11)

 

2. '보답, 보상, 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보상에 대해 사용되었다.

 

3. 보상과 형벌, 양자 모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계22:12).

 

4. 하나님의 보상에 대해 사용되었다(상 -마5:12,46,6:1,2,5,16,10:41,42;막9:41;눅6:23,35;고전3:8,14;요이1:8;계11:18).

 

5. 수고와 노력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열매에 대해 사용되었다(요4:36;고전9:18).

 

 

6. '형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 었다(벧후2:13).

 

 

 

(2) 미스도스의 신학적 의미

 

 

미스도스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예수님의 설교에서 자주 등장한다(마6:1,19:21;막10:21;눅18:22).

 

 

예수님은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까지도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강조하셨다(마10:42;막9:41).

 

선교사역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반드시 상급을 주신다고 하셨다(요4:36;고전9:18-27).

 

그러나 아무도 상급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하셨다. 전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20:1-16,25:24,17:10,19:17,19). 바울서신에서도 상급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을 배격하고 올바른 상급관을 제시하고 있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고(롬 2:6; 고후 5:10),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받는 상

 

(고전 9:24; 빌 3:14)을 말씀하시고 공력이 있으면 상을 받는다(고전 3:14)고 말씀하셨으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상줄

 

의무가 없고 단지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롬4:4; 6:23; 고전 9:16,17).

 

히브리서에서는 상급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상급을 향한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있다(히 10:2,35; 11:6).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때 약속된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잠시 후에 주님이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하였다(히 10:35-39).

 

 

2) 아포디도미

 

이 말은 주로 원인에 대한 결과를 설명해주는 단어로서 구약에서는 씨 뿌린 이후 추수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행함에 따라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슈브 동사).

 

 

(1) 아포디도미의 용법

 

구약 슈브에 해당하는 동사로 신약에서는 아포디도미가 43회 사용되었다.

 

그 중 마태복음에서 18회, 누가복음에서 12회, 바울서신에서 8회가 사용되고 있다.

 

그 용법으로 넘겨주다(give away; 마 27:58), 돌려주다(give back; 눅 4:20), 팔다(행 5:8),

 

삯을 주다(마 20:8), 빚을 갚다(마 1823), 맹세한 것을 지키다(마 5:33), 용서하다의 뜻이 있다.

 

 

(2) 최종심판과 관련됨.

 

신약에서 신학적으로 아포디도미는 최종 심판에서 갚아주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모든 사람은 다 최후의 심판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롬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이는 마 25: 31-46 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최종 심판 때에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마 25:40).

 

신학적으로 아포디도미는 신약에서 장차 다가올 심판 및 징벌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눅 14:12; 롬 11:9; 골 3:24).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선포했으며,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설교하셨다.

 

갚음에 관한 신약성경의 개념은 막 8:38과 같은 구절에서 가장 잘 예증될 수 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 9:26)

.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주님(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각 사람의 태도,

 

그를 향한 우리의 충실함이다. 이것이 마 25:31-46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에 대한 비유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궁극적인 기준은 그리스도를 향한 인간들의 행위이다.

 

이 태도는 또한 그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동일하게 요한은 심판 때에 인정을 받게 될 일을 믿음과 동일시하고 있다(요 6:29).

 

반대로 단지 믿지 않는 것 자체를 죄라고 묘사한다(요 16:9 참조: 요 12:48).

 

그러므로 갚음이란 개개인들의 업적을 타인과 비교하여 낱낱이 세어보거나 무게를 달아보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가 예수님과 그의 말에 대하여 진실한가 아닌가, 우리가 그를 고백하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이다.

 

이는 히 10:30에서 확증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시 32:35). 이것은 아포디도미의 용례에 대한 배경을 알려준다.

 

인간은 그가 기독교인이든지 혹은믿지 않는 자이든 간에 하늘의 심판주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롬 2:6 참조: 고전 3:13이하; 고후 5:10).

 

아포디도미는(마 16:27; 롬 2:6; 딤후 4:14; 계 22:12) 인간의 업적 그 자체에 있는 어떤 본래의 도덕적인 가치를 근거로

 

인간의 행한 일들을 평가한다는 뜻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아포디도미가 행한 일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언급된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행한 일이란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반대의 표현, 아니면 동의와 믿음의 표현이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에서 드러난다.

 

계 20:11-15에 보면 모든 인간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이 행위들은 펼쳐져 있는 책 속에 기록이 되어 있다(계 20:12). 믿는 자들은 형벌 심판은 면제받는다.

 

그들에게 보상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업"이다(참조: 골 3:24).

 

보상은 마지막 심판과 함께 오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현재의 세대 안에서 그들 자신이 지닌 원한을 풀려 해서는 안 된다

 

(롬 12:17; 살전 5:15; 벧전 3:9).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져야한다(롬 2:6; 고전 3:13; 고후 5:10).

 

각 사람은 최종심판에서 자기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마 16:27; 롬 2:6; 딤후 4:14; 계 20:11-15; 22:12).

 

대부분 이 말은 미래형으로 사용되어 미래에 있을일의 가능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 상은 자기 행위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상급을

 

주시는 것이다(마20:1-12; 골 3:24).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롬12:17; 살전 5:15; 벧전 3:9).

 

 

(3) 아포디도미의 파생어

 

 

아포디도미의 파생어 안타포디도미( ανταποδιδ?μι )는 성경에서 7번 사용되고 있는데(바울서신에서 4번, 누가복음에서

 

2번 사용되었음) 주로 주어진 것을 되돌려 주는 행위를 강조하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안타포디도미(ανταποδιδ?μι)의 명사형은 안타포도시스(ajntapovdosi")로서 이는 되갚음 (repaying), 보수(reward),

 

보상(recompense)을 의미한다. 접두사 안티는 보상의 개념을 강화한다.

 

이 단어는 70인 역본에서 16여회 나오며, 보답하는 것,삿 9:16 복수나 원수를 갚는 것(삿 16:28 사 34:8)에 대해 사용되었다.

 

안타포도시스는 신약성경에서 골 3:24에 한번 하나님의 최종적인 보상을 의미한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3) 브라베이온(brabei'on, 상 priz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브라베이온’(Homer 이래)은 운동 경기에서 유래한 전문술어로 브라뷰스

 

(brabeuv": 심판자)에서 유래했으며, '경쟁에서의 상'을 의미한다.

 

후에 이 말은 생의 투쟁으로 인한 혼란의 사상과 관계되었으며, 생의 사역의 완성과 절정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70인 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2) 신약성경의 용법 ‘브라베이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곧 바울서신에만 나온다.

 

델리취의 히브리어 신약성경은 이 두 구절에 나오는 ‘브라베이온’을 모두 보상(recompence), 승리의 보상

 

(reward of victory)으로 번역한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2. 신약의 상급사상

 

신약에서 상급을 나타내는 단어에도 구약에서와 같이 일한 자에 대한 품삯의 의미가 들어있다.

 

여기서 일한 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인간 대 인간의 사회질서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1) 복음서에 나타난 상급사상

 

복음서에서는 선을 행한 자에게 상을 주시겠다는 상급사상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마 10:41; 막 9:41; 눅 6:35).

 

이 보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의인에게 심판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사람이 행한 것과 그가 언젠가는 받을 것 사이에 파기 할 수 없는 상호상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마 12: 36-37; 24:45; 25:14-46).

 

예수님께서 친히 의인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복이 있으니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 5:12).

 

예수님께서는 의(구제, 기도, 금식 등)를 행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을 하지 않고 진실된 믿음으로 하는

 

자에게도 천부께서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6: 4, 6, 15).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비판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요 5:44).

 

 

또한 선지자를 영접한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영접한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이라도 주는 자들도 역시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10: 41-42).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수고에 대해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상급은 또한 사람의 기준에 따라 주어지지 않는다.

 

바리새인의 경건과 열심은 사람을 기준하여 사람에 보이려고 한 것이고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마 6:2,5,16).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한 것으로 알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상급으로 갚아주신다(마 25:40,45; 10:42). 이 상급은 종말에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하며(마 10:32),

 

온전한 구원과 영생을 포함한다(막 8:36; 10:30).

 

마 16:27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금세에 있어 백배를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막10:30; 마 19:29; 눅 18:30). 복음서에서 상급개념은 죄 사함과 구원받은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고 죄 사함 받았다고 해서 상급의 차등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파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인 마태복음의 열 처녀 비유(마 25:1-13)와 달란트 비유(마 25: 14-30)와 양과 염소비유(마 25:31-46)

 

는 다 천국의 차등 상급을 계시하기 위한 말씀이다.

 

또 누가복음의 청지기 비유(눅 16:1-13), 므나 비유(눅 19:11-27)도 차등 상급을 계시해준다.

 

그러나 이 상급개념도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인의 주권과 은혜에 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는 한 시간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동일한 품삯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은 품꾼의 일한 결과와 독립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따라 품삯을 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충성한 일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눅 17:10)라고 대답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상급은 하나님의 나라에 부차적인 것으로 말씀하심으로 유대인의 상급개념을 깨뜨리셨던 것이다.

 

복음서에는 상급에 대한 종말론적 성격도 나타내주고 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심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요 4:36-38).(비교 레 26:5; 신 28:33; 삿 6:3; 시 126:5; 암 9:13; 미 6:15; 마 9:37; 눅 10:1).

 

여기서 품삯을 받는 시기는 종말론적 시간을 의미한다.

 

 

 

 

2) 바울서신에서의 상급사상

 

사도바울은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신자가 받는 칭의를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행위에 대한

 

상급도 강조하였다(롬 2:6; 고전 5:10).

 

그는 유대주의의 공로사상을 칭의의 교리로 대체하였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칭찬과(롬 2:29) 영광(롬 2:7)을 받고

 

부름의 상을 받는다는 것을 또한 강조한 것이다(빌 314).

 

예수님이나 바울에게 있어서 상은 로마인들이 부르는 '프레미엄'(상이나 선물)을 말하는 것이지 '프레티엄'(물건의 가격이나

 

가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죄의 삯으로 사망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다(롬 6:23).

 

하나님은 이 상급을 우리에게 빚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신 것이다(롬 4:4).

 

따라서 칭의의 교리는 상급을 이해하는데 뒷받침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이 공로가 되지 않음은 바울이 말한대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그렇다고 상급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지는 않다. 바울은 상급을 경기장에서 승리하는 것과(고전 9:24; 빌 3:14) 지혜로운

 

건축자에게 돌아가는 상(고전 3:14)으로 묘사하였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상급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바울은 고전 9: 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

 

라.”고 하였다(27절).

 

여기서 형용사 아도키모스(ajdovkimo")는 부정 접두사 a 와 도키모스(dovkimo")에서 유래했으며, 도키모스의 반대어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공인되지 않은’ 뜻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되는 것이다.

 

형용사 아도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처음부터 부당하게 보이는 것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

 

즉 가짜라고 판명되어 거부된 것이란 의미에서 '가치 없는, 거절된, 거부된'이란 의미를 지닌다

 

(롬 1:28; 고전 9:27; 고후 13:5; 딤후3:8; 딛 1:16; 히 6:8).

 

따라서 바울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할까 두려워함이 아니라 상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구원의 전도자가 면류관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상급은 또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구원은 받았어도 믿음의 행위가 없을 때에 아무런 상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불 가운데서 얻는 구원이라고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말씀하고있다.

 

 

 

3) 공동서신에 나타난 상급사상

 

 

히브리서는 상급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은 하나님의 상급을 가져다주는 약속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행위가 상급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 상급인 것이다.

 

또 11장 6절에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로 소개하였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할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를 ‘상 주심을 바라보는 자’로 소개하고 있다(히 11:26).

 

야고보서는 상급을 특히 강조한 책이다. 올바른 기도는 응답의 상급을 받고(약 1:5-8), 시험을 참는 자는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며(1:12)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2:26).

 

겸손한 자는 높아지는 상급을 받는다(4:10). 야고보는 행함의 믿음이 있어야 칭의의 믿음에 보완이 되어 진다고 강조하고

 

상급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일서에서도 상급교훈이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 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28).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 느니라(요일 3:3).

 

 

 

4) 계시록에 나타난 상급사상

 

계시록은 전체가 심판을 주제로 하는데 심판 자체가 상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는 행함에 대한 상벌을 강조하고 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죄와 사탄, 세상과 그리고 육에 대한 싸움이다.

 

싸워서 승리한 자에게 영광스러운 상급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게 주님이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10)고 하셨다.

 

우리 주님께서 분명하게 보상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들은 주님이 직접 내리시는 보상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원수는 아무도 그것을 주님의 손에서부터 빼앗을 수 없으며

 

그들의 머리로부터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련과 싸움에서 이기는 자들은 이 지상 낙원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완전하고 확실한 거룩함과 행복된 생명나무와 같이 길이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계 22:1,2).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그의 충성에 대해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생명의 면류관은 내세의 생명 뿐 아니라 영광까지 가리킨다. 순교한 자는 영화로운 생명에 이를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는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흰 돌을 주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계 2:17).

 

두아디라 교회에게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계 2: 26, 28). 예수님은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다(계2:23).

 

사데 교회에 대해서는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약속하셨다(계 3:5)

.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 11 - 12)하고

 

약속하셨다. 참고 이기는 자는 상급을 받을 것이며 불순종하는 자는 상급을 놓치게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셨다(3: 21).

 

그리스도와 함께 시험과 승리에 동참한 사람은 그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보좌에 함께 앉을 것이다. 그 보좌는 세상 끝 날에 세상을 심판하는 심판의 보좌이며 영광의

 

보좌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머리되신 그 분의 신비한 몸으로 빛날 보좌이다.

 

계시록 14장 13절에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하시며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살다가 죽은 자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봉사와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된 상급이 그들에게주어질 것이다.

 

계시록 20장 12절에는 최후의 심판에서 생명책과 함께 책들에 의해서 심판을 하신다고 하였다.

 

또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므로 불 못에 던지우지 않고 천국의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책들에 자기의 행위가 기록된 대로 상급심판은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약속하시고 주님이 주실 상급을 가지시고 각 사람이 그 일한대로 갚으실 것을

 

강조함으로(22:12), 상급 교훈으로 성경을 마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상급에 대한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과

 

②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결코 자기 공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다.

 

③ 상급은 최종적으

 

로 최후의 심판에 관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