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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신경[Symbolum Athanasianum] 해설 3

하나님아들 2022. 10. 8. 17:30

아타나시우스신경[Symbolum Athanasianum] 해설 3

작성: 구본승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오후 10:19

21. 아버지는 ‘아무에게서도 안’이다 ― 안 생겨났고 안 창조되었고 안 낳아지셨다. 22. 아들은 ‘아버지에게서만’이다 ― 생겨나거나 창조되지 않았지만 나셨다. 23. 성령은 ‘아들과 아버지에게서’다 ― 생겨나거나 창조되거나 나지 않았지만 나오신다. 24. 따라서 ‘한 아버지’지 ‘세 아버지들’이 아니다. ‘한 아들’이지 ‘세 아들들’이 아니다. ‘한 성령’이지 ‘세 성령들’이 아니다. 25. 그리고 이 삼위에는 먼저 되거나 나중 된 자가 없고 더 많거나 더 적은 자가 없다 ― 26. 오히려 각 삼위는 모두 영원하며 모두 동질이다. 

 

제 20항까지가 ‘한 하나님, 한 본질, 세 위’를 중심으로 살폈다면 제 21항부터는 이제 ‘세 격’을 중심으로 살핀다. ‘한 하나님, 한 본질, 세 위’를 중심으로 고찰할 때는 세 위의 격성(格性)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 위들은 다르다(구별된다)고 전제하고 설명을 한다(5항). ‘셋’이라는 수적(數的) 차원이 중요하지 세 위들이 ‘어떻게’ 구분되나(=’격들’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세 위들이 어떻게 구분되나 하는 질문은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제 20항까지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본체가 논리적으로는 숱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쨌든 세 위들이 서로 ‘구분’만 되면 되기에. 그러나 보편신앙은 ‘성경에서 도출된’ 단 하나의 구분 방식만 안다 ― 바로 ‘아버지-아들-성령’이다.

 

여기서 먼저 제 21항의 ‘아무에게서도 안’[a nullo]을 어떻게 새길 것이냐 하는 것을 확정해야 한다. 이것을 광의(廣義)로 볼 수도, 아니면 협의(狹義)로, 즉 본체 내부에 국한시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의로 본다면 21항의 격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속성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면 성부의 격성과 하나님의 본질을 함께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부를 신성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동방의 접근법과 유사한 이해다. 하지만, 신경의 문맥상, 이러한 이해는 뜬금없다. 기왕 ‘한 하나님’과 ‘한 본질’과 ‘세 위’를 구분해서 말한 것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21항은 신성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 내부에서 부위(父位)의 성부됨, 즉 ‘부격(父格)’을 서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부격의 요약인 ‘아무에게서도 안’은 바꾸어 말하면 ‘아들과 성령에게서 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관계절연적인 신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들과 성령의 ‘관계’ 속에서 성부됨을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22항과 23항 역시 다른 위와의 관계 속에서 성자됨과 성령됨을 규정하고 있음은 큰 어려움 없이 간파할 수 있다. 이렇게 본체 내부의 관계로 세 위를 파악하는 것은 ‘한 하나님’을 보장하는 동시에 세 위들의 구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아들-성령은 관계 속에 있기에 서로 구분되고/다르고 서로 구분되기에/다르기에 관계 속에 있다. 관계는 다름을 전제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들)와 관계 맺을 수 없고 아들은 아들(들)과 관계 맺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령(들)과 관계 맺을 수 없다. 세 위 중 어느 두 위 혹은 세 위 모두 서로 격적(格的)으로 같다면, 사실상 각각 하나님인 두 위, 혹은 한 위만 존재하는 것이 되기에 ‘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한 아버지’지 ‘세 아버지들’이 아니다. ‘한 아들’이지 ‘세 아들들’이 아니다. ‘한 성령’이지 ‘세 성령들’이 아니다.”(24항).

 

27.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면에 있어서 삼위 안에 계시는 한 분과 한 분 안에 계시는 삼위가 예배되어야 한다. 28. 따라서 구원받고자 하는 자는 이와 같이 삼위에 관해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신성(神性)을 예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 격을 예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삼위 안에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을, 한 분 안에 계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예배한다. 우상숭배는 항상 신성을 숭배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메커니즘으로, 램프의 지니로, 도깨비 방망이로, 자동판매기로 숭배하는 그곳이 바로 바알의 신전인 것이다. 하나님을 삼위로 알지 아니하는 자, 삼위를 신적 속성으로 환원하는 자, 구원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