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 별세… ‘시대의 지성’으로 살다 ‘죽음의 스승’으로 떠나
입력2022.02.26.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장관 등 지낸 전방위적 지성… 말년엔 죽음 탐구
26일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2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암으로 투병해온 이 전 교수는 몇 년 전부터는 항암 치료를 중단한 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죽음을 준비해 왔다. 복막에서 시작된 암이 맹장, 대장을 거쳐 간으로 전이됐다. 그는 2019년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으며 투병 중에도 글쓰기와 인터뷰, 강연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까지도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주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했다.
1934년 충남 아산 출생인 이 전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던 1956년 22세의 나이에 김동리, 황순원, 서정주 등 당시 문단의 대가들을 비판하는 평론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968년에는 참여시인 김수영과 문학의 현실 참여를 둘러싸고 지면 논쟁을 벌였다.
그는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와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1963년 출간해 스타 작가가 됐다. 이 책은 미국, 일본, 대만 등으로도 번역 출간됐고 이어령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필가로 부상했다.
이후에도 쉼없이 저술 활동을 이어가며 굵직한 주제들을 제시해왔다. 일본문화 연구서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털 문명 비평인 ‘디지로그’, 종교와 영성을 다룬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이 특히 유명하다.
이 전 교수는 문학평론가로 시작했으나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동 범위와 주제가 넓었다. 20대에 신문사 논설위원에 발탁된 이후 여러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이었고, 월간 문학잡지 ‘문학사상’ 주간을 지낸 출판인이었다. 33세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부임해 정년을 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고,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았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는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문화부 장관 시절에는 국무위원들의 반대를 꺾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통과시켰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당시 국무회의에서 했던 5분 연설을 소개했다. “석유와 가스 나오는 곳을 천재적으로 아는 아이가 있으면 동자부에서, 모내기 신동이 있으면 농림부에서 학교를 만들겠지만 그런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이 전 교수의 탐구 주제는 문학에서 시작해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 일본 연구, 디지털문명론, 영성, 죽음 등으로 확대됐다. 그야말로 전방위적 지성이었다. 무신론자였던 이 전 교수가 2007년 일흔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변신한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딸 이민아 목사의 영향이었다.
거의 70년간 한국 지성계의 중심에 있었고 다방면에서 활동해 왔지만 본인은 스스로를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며 “나는 항상 다수보다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그가 마지막에 매달렸던 주제는 죽음이었다. 70년을 한국 지식계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불렸던 그는 말년에 ‘죽음의 스승’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세 사람 중 한 명은 걸려서 죽는다는 그 위력적인 암 앞에서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그 모습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 하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말과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했다. 그는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했고,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고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그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가장 자주 언급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이 전 교수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이 전 교수의 추모 사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교수와 부인이 2001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영인문학관에는 ‘이어령 기념관’이 설치될 예정이다. 영인문학관은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강 관장은 이 전 교수와 서울대 국문과 동기로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건국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출판사 열림원은 총 20권에 이르는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 시리즈의 1권인 ‘메멘토 모리’가 나왔다. 이 전 교수가 죽음을 주제로 나눈 네 차례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이 전 교수는 지난 연말 인터뷰에서 “내가 계약해두고 아직 출간 못 한 책이 40권에 달한다. 대화집이 20권, 강연집이 20권이다”라고 밝혔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2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암으로 투병해온 이 전 교수는 몇 년 전부터는 항암 치료를 중단한 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죽음을 준비해 왔다. 복막에서 시작된 암이 맹장, 대장을 거쳐 간으로 전이됐다. 그는 2019년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으며 투병 중에도 글쓰기와 인터뷰, 강연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까지도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주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했다.
1934년 충남 아산 출생인 이 전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던 1956년 22세의 나이에 김동리, 황순원, 서정주 등 당시 문단의 대가들을 비판하는 평론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968년에는 참여시인 김수영과 문학의 현실 참여를 둘러싸고 지면 논쟁을 벌였다.
그는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와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1963년 출간해 스타 작가가 됐다. 이 책은 미국, 일본, 대만 등으로도 번역 출간됐고 이어령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필가로 부상했다.
이후에도 쉼없이 저술 활동을 이어가며 굵직한 주제들을 제시해왔다. 일본문화 연구서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털 문명 비평인 ‘디지로그’, 종교와 영성을 다룬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이 특히 유명하다.
이 전 교수는 문학평론가로 시작했으나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동 범위와 주제가 넓었다. 20대에 신문사 논설위원에 발탁된 이후 여러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이었고, 월간 문학잡지 ‘문학사상’ 주간을 지낸 출판인이었다. 33세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부임해 정년을 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고,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았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는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문화부 장관 시절에는 국무위원들의 반대를 꺾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통과시켰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당시 국무회의에서 했던 5분 연설을 소개했다. “석유와 가스 나오는 곳을 천재적으로 아는 아이가 있으면 동자부에서, 모내기 신동이 있으면 농림부에서 학교를 만들겠지만 그런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이 전 교수의 탐구 주제는 문학에서 시작해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 일본 연구, 디지털문명론, 영성, 죽음 등으로 확대됐다. 그야말로 전방위적 지성이었다. 무신론자였던 이 전 교수가 2007년 일흔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변신한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딸 이민아 목사의 영향이었다.
거의 70년간 한국 지성계의 중심에 있었고 다방면에서 활동해 왔지만 본인은 스스로를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며 “나는 항상 다수보다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마지막에 매달렸던 주제는 죽음이었다. 70년을 한국 지식계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불렸던 그는 말년에 ‘죽음의 스승’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세 사람 중 한 명은 걸려서 죽는다는 그 위력적인 암 앞에서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그 모습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 하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말과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했다. 그는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했고,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고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그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가장 자주 언급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이 전 교수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이 전 교수의 추모 사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교수와 부인이 2001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영인문학관에는 ‘이어령 기념관’이 설치될 예정이다. 영인문학관은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강 관장은 이 전 교수와 서울대 국문과 동기로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건국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출판사 열림원은 총 20권에 이르는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 시리즈의 1권인 ‘메멘토 모리’가 나왔다. 이 전 교수가 죽음을 주제로 나눈 네 차례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이 전 교수는 지난 연말 인터뷰에서 “내가 계약해두고 아직 출간 못 한 책이 40권에 달한다. 대화집이 20권, 강연집이 20권이다”라고 밝혔다.
김남중 선임기자(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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