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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심리학자

하나님아들 2022. 1. 15. 22:17

세계 3대 심리학자 

 

 

우선 첫번째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독일어: Sigmund Freud,1856년 5월 6일 ~ 1939년 9월 23일)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분파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다.

 

내가 프로이트를 처음 알게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중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읽던 중이었다.

우선 오이디푸스 신화를 살펴보면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에, 일찍이 아버지인 라이오스에게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린 오이디푸스의 발목을 묶어 부하를 시켜 인적 없는 산에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을 맡은 부하는 차마 어린 오이디푸스를 버리고 오지 못하고,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넘겨 주게 된다. 어린 오이디푸스를 받은 목동은 그 아이를 코린토스의 왕인 폴리보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에게 바친다. 오이디푸스는 폴뤼보스와 메로페를 친부와 친모로 여기고 자라던 중, 장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는 그 무시무시한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코린토스를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로 여행하던 중에 자신의 친아버지 라이오스와 길거리에서 통행에 분쟁이 붙어 라이오스를 죽여 버리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오랜 골치거리였던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바이로 돌아와 왕이 되었고,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두 딸인 안티고네 이스메네를 얻는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선정으로 잘 통치하였으나, 갑자기 테바이에 역병이 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이 역병의 이유를 알기 위해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인 크레온 델포이 아폴론 신전으로 보내어 역병의 원인을 알아 오게 한다. 신탁은 “선왕인 라이오스왕을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를 하면 역병이 물러간다.”고 하였고, 일전에 자신이 길거리에서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 라이오스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맹세한다.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크레온이 데려온 그리스 최고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찾고 있는 살해자가 바로 그 자신임을 말해 주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이 자신의 왕위를 노리고 테이레시아스를 조종하여 근거 없는 말을 하도록 한 것으로 알고는 분노한다. 그러나 곧 이오카스테에게 라이오스에게 처음에 아들에게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음을 듣게 되고, 또 마침 코린토스의 왕인 폴뤼보스의 죽음을 알리러 온 사자가 곧 어린 자신을 폴뤼보스 왕에게 바친 당사자임을 알게 되고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명령에 따라 오이디푸스를 버리는 일을 맡았던 목자를 불러 대질해본 결과 바로 자신이 친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살해하였고, 지금껏 아내라고 알고 있었던 이오카스테는 사실 자신의 어머니임을 깨닫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이 무서운 진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고, 자신에게 내려졌던 무서운 신탁이 모두 실현되었음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를 빼어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소경이 되고 만다. 절망한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크레온에게 맡기고 딸인 안티고네에 의지하여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외롭게 살다 가게 된다.

-출처 : 위키백과

 

위 내용이 길어서 요약을 하면 오이디푸스는 어린시절 신탁으로 인해 부모에게서 떨어진 뒤 다른 나라에서 살게되는데 훗날 진실을 모른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다가 결국 진실을 알고 절망하여 두 눈을 찌른 뒤 딸에게 의지하여 살게되는 내용이다.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본능의 표현'으로 봤다. 그래서 남자 아이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배타적 사랑의 노이로제를 가리키는 말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회적 구속의 화신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경쟁 심리를 느끼며,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를 독점하려 든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하려고 하는 마음은 동시에 아버지를 사랑의 경쟁 상대로 바라보게 되고, 이 원한의 감정으로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네살에서 다섯살 사이에 끝난다고 한다.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슷한 이론으로는 프로이트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도 했던 또 한명의 세계 3대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ˈkarl ˈgʊstaf ˈjʊŋ], 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

카를 구스타프 융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바젤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의 성욕중심설을 비판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체화' 라는 자신의 신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의 심리학 교수, 바젤 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업적을 지닌 카를 구스타프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하며, 그는 ‘동화’를 가리키는 핵심 원리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발표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여아에게 일어난 경우를 말하며, 여아가 아버지에 대해 강한 소유욕적인 애정을 품고, 어머니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을 가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이론에서 볼 수 있는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융은 그리스 비극의 하나인 '엘렉트라'(엘렉트라 여왕)에 빗대어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엘렉트라'는 부왕을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3대 심리학자는 알프레트 아들러이다.

알프레트 W. 아들러(Alfred W. Adler, 1870년 2월 7일~1937년 5월 28일)

알프레트 W.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란 유대인인데 후에 미국에 이주했다. 빈 대학교 의학부 졸업 후 트로츠키의 친구인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여 친구 중에는 사회주의자가 많았고 그 자신도 사회주의자였다. 프로이트의 강연에 매혹되어 문하로 들어갔으나 프로이트의 범성욕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분파하여 사회 감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아들러에 의하면 어떠한 형태의 사회도피든간에 모두 불건강의 징후이다. 병약한데다 2남이고 형과 사이가 나빴던 데에서 출생 순위와 성격의 관계에 주목하던 중 열등감을 특히 중요시하게 되었다. 곧 인간은 누구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이를 보상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생활양식이 형성되어 가므로, 만일 보상될 수 없는 열등감이나 과도하게 보상된 열등감이 있으면 인격의 왜곡이 생긴다고 생각하여 이를 시정하기 위한 재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성욕주의를 혐오하고 있는 교육자·사회사업가·종교가 등에게 환영받았다. 그의 심리학은 ‘개인심리학’이라고 하며 신프로이트파나 카운셀링 이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연설을 잘 해서 구미(歐美)를 누비며 강연 여행을 계속했는데, 영국에 강연 여행 중 스코틀랜드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주저로는 〈개인심리학의 실제와 이론〉이 있다.

아들러의 기본입장으로는 일관성 있는 실재로서의 개인을 중요시했다. 이전 프로이트의 환원론적 인간관을 반대하며, 인간을 더이상 분류하거나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통합체로 보았다. 아들러의 이론이 보는 인간은 완성을 역동적으로 추구하는 개인이며 이런 개인의 주관성, 즉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초점을 두었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특히 중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