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5대 교리 비교
기독교 안에서 신학 이론 논쟁 중에 가장 심각한 논쟁이 있다. 알미니안의 예지예정론과 칼빈주의의 절대예정론이다. 성경에 의하면 어떤 이론을 맞다고 할까?
두 이론을 연구하여 성서적 인 견해를 얻고자 한다. 오대 교리는 어떻게 서로 다르고 성경의 견해는 무엇일까?
목 차
1.알미니안주의의 인간의 자유의지 및 인간의 능력의 인정과 칼빈주의의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전적인 부패
2.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선택과 칼빈주의의 무저건적 선택1
3.알미니안 주의의 보편적 구속(일반적 속죄)과 칼빈주의의 특별한 구속(제한적 속죄)
4.알미니안주의의 성령사역의 항거 가능성과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성
5.알미니안주의의 은총으로부터 타락가능성과 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
제1.알미니안주의의 인간의 자유의지 및 인간의 능력의 인정과 칼빈주의의 인간의 전적타락과 전적부패
절대예정의 문제에 대한 이론이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 맞는가 아니면 자유의지도 인간에게 있는가?
1. 알미니안주의의 견해
①인간의 본성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여도 인간의 영은 전적으로 무력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회개하게도 하며 믿게도 하시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간섭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하신다고 주장한다.
③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운명은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선한 선택을 할 수도 있도 악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도 한다.
④인간의 의지는 죄의 본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합동하여 중생이 되든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멸망을 받든가하는 판단과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⑤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인간은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가 믿을 수 있기도 전에 성령의 도움에 의하여 중생이 되어야 영생의 길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그들은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며 중생에 선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⑥믿음은 하나님의 죄인인 인간에 대한 선물(은혜)임과 동시에 구원을 위한 인간의 공헌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2. 칼빈주의의 견해
①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절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②죄인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죽은 상태이며 스스로 복음을 믿어 구웡을 받을 수 없다.
③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전적으로 장님이며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완전한 귀머거리이다.
④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거짓으로 가득차 있고 악으로 가득차 있고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⑤타락한 인간은 자유하지 아니하며 사단과 악과 죄의 본성의 노예에 불과하다.
⑥타락한 인간의 선택은 반드시 악을 선택하며 선을 선택할 수 없다.
⑦죄인을 그리스도에 인도하는 것은 인간자신의 영의 활동으로도 타인의 영으로도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⑧믿음은 인간이 구원을 위하여 기여한 것의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인 것이다.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신 선물인 것이다.
3. 양자의 비판
이론은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양설을 비판하여 장단점을 서로 나누어 가진 것을 밝혀야 한다.
문제점과 좋은 점을 살펴본다.
1)알미니안 주의의 문제점과 장점
①인간의 본성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여도 인간의 영은 전적으로 무력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영이 죽었어도 인간의 영이 없어진 것은 아니며 인간의 영에는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에서 인간의 타락 후에도 어떤 인간의 영이 전적으로 무력에 빠진 것이 아니라로 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의 능력으로 우상을 섬기든지 마술을 행하던지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미신을 섬기는 일을 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의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상실된 것이며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않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윤리에 도달 할 수 없이 전전으로 타탁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회개하게도 하며 믿게도 하시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간섭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하신다고 주장한다.
알미니안주의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점도 좋은 면도 있다.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누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충성된 일꾼을 상주실 때 자유의지가 무시된 행동을 상주신다는 것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믿게도 하고 회개하게도 할 때 인간의 의지를 건드리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권한에서 벗어난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성경적으로 존중이 될 때는 존종이 되어야 하나 때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권한 안에서 완전히 구속된다고 보며 하나님은 영이요 하나님은 전능한 분으로 인간의 차원을 초월하신 분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배하고 구속하여도 인간은 하나님의 자유구속을 더욱 자유로 생각하고 구속됨을 느끼지 못하는 인격적인 구속을 하며 선한 마음과 의지과 감정을 완전히 사로잡고 행하시는 분이기에 회개나 믿음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지배하고 계신 것이며 단지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을 더욱 기쁜 마음을 받아 행함으로 구속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회개하고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간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과 판단이 없다고 보아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으로 회개와 믿음을 주도하시지만 인간의 의지의 자유를 사용하시면서 회개와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기계처럼 회개하게 하고 로버트처럼 믿게 할 수도 있는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를 침해 하지 않는 한에서 회개와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앞에는 회개와 믿음이 누구나 다 가능하다고 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능력안에서는 대단한 것이 못되며 한계안에서 자유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안에서 자유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인간의 영적인 범위는 하나님의 광대함 속에 일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아무 제한을 느끼지 않는 온전한 자유로 생각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자유함을 느낄 것이기에 자유의지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받는데 자유의지는 완전이 무시하는 칼빈주의에 빠져서는 아니될 것이다. 단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에 믿음이 오고 회개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가능하다는 말은 진리인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회개하게 하고 믿게 할 때도 반드시 자유의지를 사용하게 하시는 점이 사단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무엇을 하고져 하는 비인격자의 협박과 공갈과 다른 것이다.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며 전능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신사적인 하나님이시다.
③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운명은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선한 선택을 할 수도 있도 악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도 한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예정에 달렸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렸는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말할 때는 인간의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며 하나님의 예정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이 되며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 방관만하시고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며 하나님은 전능하지 못할 것이며 전능하지 못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거부하고 버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하며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 앞에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 불과한 것이며 구원받게 된 공로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죄악 속에 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예정으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된다는 칼빈주의의 말은 무서운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구원받지 못하도록 예정된 자에게는 복음도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말할 경우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할 때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여 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전할 때는 칼빈주의의 사상을 이별하여야 할 것이며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의하여 선택에 의하여 구원도 받고 멸망도 받는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내 운명은 하나님의 전능을 생각하고 과거적으로 은혜를 기억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을 회개하고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여 서한일을 하고 믿음과 회개의 결정을 할 때는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내 자유의지를 바로 하면 죽기로 멸하기로 예정이 되었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히스기야왕처럼 생명을 연장하여 주실 것이 분명하며 그런 경우에 예정론자들이 예정을 바꾸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다시 회개하는 것도 예정이라면 할 말이 없으며 이론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세계인 것이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예정과 자유의지의 개념이 정반대의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는 개념이며 서로 포함하고 동행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나 이론과 학설으로은 이를 하나되게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점인 것이다.
④인간의 의지는 죄의 본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합동하여 중생이 되든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멸망을 받든가하는 판단과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져 할 때 인간의 의지를 강하게 부각하여야 할 때가 있고 인간의 의지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가 있다
알미니안 주의가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비교할 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보아야 할 때에고 인간의 의지는 죄의 본성에 종속되지 않고 성령과 연합하며 판단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과중한 판단을 햐는 것은 잘 못이다.
베드로가 그의 의지로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없었고 그의 의지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다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바울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다. 새 사람의 의지는 강할 수록 좋다. 주를 위하여 죽고져 하며 목숨을 바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겨 하는 의지는 성령의 사역에 하나님과 함께 역사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힘과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인간의 영의 의지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인간의 의지는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다.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인간의 새 사람을 사용하시며 인간의 의지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가 강조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인간의 의지가 다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므로 인간의 의지의 한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인간의 의지로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가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행하시면서도 인간의 의지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⑤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인간은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가 믿을 수 있기도 전에 성령의 도움에 의하여 중생이 되어야 영생의 길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그들은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며 중생에 선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⑥믿음은 하나님의 죄인인 인간에 대한 선물(은혜)임과 동시에 구원을 위한 인간의 공헌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2)칼빈주의의 문제점과 장점
①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절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인간의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를 전적으로 무시하여서는 아니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로만 구원을 받으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인간의 자연스런 자유의지가 개입되어 회개도 되고 믿음도 되는 것이다.
②죄인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죽은 상태이며 스스로 복음을 믿어 구웡을 받을 수 없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영이 죽어 생령은 죽은 영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죽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며 예수님께 나올 자가 아무도 없고 복음을 스스로 믿어 구원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때는 이런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여야 말씀이 된다.
자유의지를 인정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선택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영접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하나님은 주신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③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전적으로 장님이며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완전한 귀머거리이다.
타락한 인간의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장님이기에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옳다.거듭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는 것고 진리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하나니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본인이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는 것에는 자유로운 판단이 개입한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안믿고는 자유인 것인데 믿음에 자유로운 판단을 하였기에 불신자들과 구별되어 천국에 들어가며 영생을 얻는 것이다.
④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거짓으로 가득차 있고 악으로 가득차 있고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은 전적으로 마음이 타락하여 마음에서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옳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선한 것은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거듭난 마음이 아니면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후에도 예수님의 마음이 없는 자는 선한 것을 찾을 수 없다 거듭난 후에도 예수님의 영은 반드시 성도의 영에 있어야 선한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의 나무에 접을 붙여 있어야 가지인 성도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선한 모습을 내기 위하여 인간의 의지가 무시될 수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시며 자유롭게 하신다.
거듭난 영이 새 마음이 항상 자유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여야 하며 매일 죽어야 하고 매일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히 하는 결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⑤타락한 인간은 자유하지 아니하며 사단과 악과 죄의 본성의 노예에 불과하다.
타락한 인간의 자유하지 않다.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실 때만 인간의 자유한 것이다.죄와 악과 사단을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아무리 자유를 찾아야 죄와 세상와 사단의 노예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하여 자유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결정을 매일 한다. 은혜로 되는 것이다.
세상을 멀리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의지가매일 필요한 것이며 죄를 멀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을 가까이 하는 의지의 결단이 매일 필요한 것이다.
⑥타락한 인간의 선택은 반드시 악을 선택하며 선을 선택할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의 결정은 주님의 개입이 없고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언제나 악하다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선하게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자유의지도 필요한 것이지 전혀 자유의지가 없는 은혜로만 선한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결정을 도우시는 은혜는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을 통하여 늘 이루어지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새 인격으로 변하게 하시면서 선한 결정을 하게 하며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 새로운 의지가 살아난 경우도 자유의지는 작용하게 하시면서 은혜를 주심으로 선한 결정과 행동에 대하여 상급을 주실 수 있는 것이며 축복을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선한 결정과 판단으로 되는 선행은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되는 것이나 이는 인간의 행위이지 하나님의 행위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 선한 판단을 하시고 상급과 축복을보상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 사람이 되면 선할 가능성이 있게 되고 선한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이때 행위 주체는 인간이며 새 사람의 의지가 작용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선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⑦죄인을 그리스도에 인도하는 것은 인간자신의 영의 활동으로도 타인의 영으로도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타락한 영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타인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도 없다. 영의 활동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없어진 것고 아니고 영의 활동이 없는 것도 아니라 영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뿐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도 영이 있고 영의 활동도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없다 거듭나 영이 살아나야만 성령의 능력으로 죄인은 하나님께 닥아갈 수 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만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다.
⑧믿음은 인간이 구원을 위하여 기여한 것의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인 것이다.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신 선물인 것이다.
믿음은 성도가 구원을 위하여 기여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란 말은 진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로만 되었다는 말을 언제나 주장한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을 칭찬하거나 상주실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만 생각하여야 할 것이나 하나님 펀에서 볼 때는 믿음은 행위를 인정하되 자유로의 의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행위도 하나님은 포함하여 믿음으로 보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간이 믿음으로 행하였다고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서 충선된 일꾼을 상 주실 때도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자신의 공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여 오직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 된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는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크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동기도 생각고 말도 행동도 나의 자유의지가 개입은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선물도 된 것이니 면류관을 예수님께 던지어야 할 것이다.
제2.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선택과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의 성도에 대한 선택은 예지 예정이신가.절대적인 능력의 하나님이 선택하시니 무조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일까?
1.알미니안 주의의 조건적선택
①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을 미리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지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이라는 조건하에 선택하신 것이라고 한다.
②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유를 가지고 복음을 믿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자들만 선택하신 것이라고 한다(예지예정).
③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제한을 받게 되는 제한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④그러므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선택하는 근거가 되는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의 선택의 결과가 된다고 한다.
누가 믿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간에 달려 있고 누가 선택될 것인가는 인간의 상태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⑤하나님은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하여 예수님을 믿게 될 자들만을 미리 아시고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고 한다.
⑥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 그리스도를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된다고 한다.
2.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
①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구원 받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때 그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만으로 선택하신 것이라고 한다.
②특정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고 선택하신 것은 믿음 회개 등과 같은 하나님께 대한 반응을 예지하여 조건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미리 순종할 것을 아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③하나님은 각개인을 무조건으로 선택하시고 믿음과 회개를 주시는 것이다.
④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의 서택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닌 것이다.
⑤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에 있는 어떤 덕성이나 예지된 행위에 의하여 결정이 되거나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선택된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는 것이다.
⑥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선택은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3. 양자의 비교 비판
1)알미니안 주의의 조건적선택의 장단점 비판
①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을 미리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지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이라는 조건하에 선택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장은 일면 맞는 점도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위하여 선택하실 때 전지한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믿고 회개할 것을 미리 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성에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죄인의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며 그분의 계획 하에 일어나는 일을 미리 아신다는 예지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때 어떤 조건의 제한을 받아 선택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돌들도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처험 전능한 분이며 주권적 행사에 있어서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시고 선택하시는 것이다.
회개와 믿음을 인간이 가질 것을 예지하시고 회개와 믿음은 인간이 행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행하는 회개와 믿음에 구애를 받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심으로 회개도 믿음도 다 허락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유를 가지고 복음을 믿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자들만 선택하신 것이라고 하여 예지예정론을 주장하는 바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복음을 믿을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 것은 자유의지만으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되는 것이며 스스로 하나님의 개입도 없이 홀로 복음을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복음을 스스로 믿는 자들만을 선택하신다면 하나님의 인간의 의지나 행동에 제한을 받아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되는 바 이는 잘 못된 이론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미리 구원을 받을 자들이 믿고 회개할 것을 아는 것 예지하시는 것은 옳다.그러나 그런 예지를 조건으로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며 예지의 내용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행위를 할 것을 예지하는 것을 말한다고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결정에 따라가는 것이 됨으로 하나님의 전능함을 무시하는 것이 됨으로 옳지 않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복음을 믿을 자들만 선택한다는 것은 일부 옳다 하나님은 전지한 분이기에 미리 아시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가능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 선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제한을 받게 되는 제한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제한 적인 선택이다. 하나님의 행위가 인간의 행위에 제한을 받을 수도 조건부일 수도 없다.단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나올 것을 미리 아실 것이며 그 인간의 선택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다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다는 것은 인정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과 달라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에 얽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를 잘 못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옳은 것이다(실제는 하나님의 전능한 은혜로 되는 것이나).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거역한 자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였기에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제멋대로 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행위를 강조할 때는 강조하여야 탈선이 방지될 것이다.
④그러므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선택하는 근거가 되는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의 선택의 결과가 된다고 한다.
누가 믿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간에 달려 있고 누가 선택될 것인가는 인간의 상태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예지하고 선택하는 근거가 되는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지에 끌려서 선택하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선택은 전능한 선택이며 전지한 선택이며 하나님의 선택으로서 인간에게 믿음도 부여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감사하고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인간편에서 인간의 책임을 논할 때 인간의 의지의 선택의 결단을 중요시할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때는 예수님을 믿으려고 행위결단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될 때 행위의 책임을 론할 때는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 인간의 의지의 결정이 중요한 책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⑤하나님은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하여 예수님을 믿게 될 자들만을 미리 아시고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시어 구원의 백성으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것이다. 전지 전능한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고 영원하신 것이다.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될 자들을 미리 아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예수님을 믿게 될 자들만을 미리 아시고 조건부로 선택하셨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이론이다.
⑥알미니안주의의 견해는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바 이는 잘 못이다.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시는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을 말할 때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 주의의 주장도 참조할 점이 있으니 누구든지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요 스스로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버리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의 결정은 중요한 것이다.
2)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의 비판
①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구원 받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때 그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만으로 선택하신 것이라고하는 칼빈주의의 주장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 예정론은 말씀에 맞지 않는다. 절대예정은 진리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하나님은 누구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도 주셔야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과 정신에 맞는 것이다.
②특정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고 선택하신 것은 믿음 회개 등과 같은 하나님께 대한 반응을 예지하여 조건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는 칼빈주의의 주장도 하나님의 전능을 인전하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의 예지도 인정하여야 한다.단 예지를 전제로 하여 선택하신 것은 아니라 전지한 분이기에 예지까지 가능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미리 순종할 것을 아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고 옳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순종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예지론자의 순종에 대한 예지도 올하다고 인정하여야 할 것이며 다만 예지론자의 조건부 선택은 믿을 수 없는 말이 된다.
③하나님은 각개인을 무조건으로 선택하시고 믿음과 회개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각개인을 선택하시고 믿음과 회개를 은혜로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도 옳다 그러나 예지도 가능한 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며 회개외 믿음에는 성도의 의지의 자유도 개입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회개와 믿음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알미니안주의를 통하여 좋은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자유의지를 항상가지고 있고 믿던 자들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회개와 믿음을 중단하면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④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닌 것이다.
믿음과 회개를 예지하시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시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옳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실 때 회개와 믿음이 하나님의 도움과 성도의 자유의 의지를 가지고 이루어질 것을 아시고 계시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예지를 믿어야 한다.단 예지가 조건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회개와 믿음을 보시고 구원의 조건을 이루어 회개와 믿음을 가진 자에게 중생의 복을 천국의 복을 주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편에서 보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회개하고 믿어야 구워을 받는 것이다. 구원의 조건이 회개와 믿음이 되는 것을 반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이 있으면 무조건 회개와 믿음은 저절로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을 보면 회개와 믿음만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님은 인정하실 때는 인정하신 것이다.
⑤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에 있는 어떤 덕성이나 예지된 행위에 의하여 결정이 되거나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선택된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는 것라고 하는 말도 맞는 말이 된다.
하나님의 주권은 완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여 악과 멀리하시는 분이기에 악하 자보다는 선한 자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기뻐하실 것이다.
구원을 받는 우리가 나는 조금이라고 선한 사람이기에 구원을 받았가고 생각하는 것는 못된 생각이며 교만한 생각도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편에서 볼 때 선한 사람을 미리 예정하시고 예지하시고 구원의 반렬에 세우셨을 것이다.
무엇인가 좋은 점이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선한 그릇으로 만드셨을 것이 분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편에서 무조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선택을 하셨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는 좋은 그릇으로 쓰임 받을 만한 자를 선택하실 것이 분명한 것이다.
⑥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선택은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는 말도 옳다.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았다면 구원은 불가능하였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이 되었어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부인하여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기에 선택한 자를 구원하기에 능력이 많이셔서 타락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가질 수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다 구원은 이루어졌으니 인간인 내가 어떤 행동을 하여도 구원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론이 되는 것이다.
죄인되었을 때 나를 선택하신 것이기도 하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나도 하나님을 선택하고 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환영하고 있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구원은 하나님의 선택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이 함께 물려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지만 그 선택 안에는 자유의지로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들어 있는 자는 언젠가는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믿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조건이 아니라 내용이며 과정이 되는 것이다.
제3.알미니안주의의 보편적 구속(일반적 속죄)와 칼빈주의의 특별한 구속(제한적 속죄)
예수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인간을 위한 속죄 였는가 아니면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을 사람들만을 위한 속죄였는가?
1. 알미니안 주의의 보편적구속과 일반적 속죄
①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받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었으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다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를 믿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주장한다.
③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흘린 피이나 실제로는 일부 믿는 자들에게만 그의 보혈로 죄사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④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나 그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때에만 유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칼빈주의의 특별한 구속과 제한적 속죄
①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택자들만을 위한 위한 것이며 실제로도 선택된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②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인내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만을 위하여 대신 당하신 대속의 인내였다고 한다.
③그리스도의 구속은 자기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연합하는 믿음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한 구속이기에 제한적인 속죄로 본다.
④믿음의 은총은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빠지없이 적용되며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다.
3.양자의 비교 비판
1)알미니안 주의의 보편적구속과 일반적 속죄의 문제점
①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받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모든 사람을 다 구원 받게 하는 십자가의 은총이 일반적 보편적으로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나 법적으로는 의미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예수님의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모든 죄를 위한 속죄로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받게 계획하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성경에 기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양면성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온인류를 다 구원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기에 온 인류를 다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일부만 구원하도록 계획하신 것을 이루고 계심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온인류가 다 구원받기 위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위대성,광대성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온인류가 구원을 받도록 하시었다는 말을 문제가 있고 단 법적으로는 온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시었고 구원의 근거를 다 이루어놓으신 것은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일부의 성도만 구원을 받은 것이다.
②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었으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다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를 믿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편적구속과 일반적 구속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형식이며 법적으로만 그렇다고 보아야 하며 실제로는 인류가 다 구원받기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구속은 법적으로만 온 인류에게 해당이 되며 실제로는 그를 믿는 자의 죄만 용서되는 것이다.
③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흘린 피이나 실제로는 일부 믿는 자들에게만 그의 보혈로 죄사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 예수님의 피는 온 인류을 위하여 흘리는 피로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기록된 것과 하나님의 예정으로서는 온 인류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 구속과 보편적 구속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며 법적으로 기초에 불과한 것이며 진리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말씀이나 하나님의 계획은 일부만 구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구원을 받는 만민에게 구원을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보편적 구속과 일반적 구속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 구속을 전하는 자도 알아야 할 것은 예정된 자 하나님의 선택한 자가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의 계획에 없는 자는 십자가는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단 누가 예정에 빠져 있는지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다 구원을 받을 것처럼 복음을 전하되 전하여도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④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나 그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때에만 유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말은 실제가 아니라 형식이여 방법이여 법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때 맞는 말이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획을 다 알지 못하기에 실제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을 것처럼 전하는 것 뿐이다.
나중에 다 구원을 받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자는 복음을 듣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가 있어도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2) 칼빈주의의 특별한 구속과 제한적 속죄 이론의 문제점
①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택자들만을 위한 위한 것이며 실제로도 선택된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말을 실제적인 상황과 역사적으로볼 때 합당한 말이 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제한적 구속이론으로 전하면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누구나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자고 하여야 할 것이다.
②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인내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만을 위하여 대신 당하신 대속의 인내였다고 하는 말로 구원을 받는 성도 구원을 받은 믿음의 가족들에게는 더욱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친밀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더욱 충성하게 하는 데는 좋은 이론이 된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내부적으로 만 사용하면 좋으 말이 되나 불신자나 앞으로 예수님을 믿을 지 모르는 자들에게 말하면 편견이되며 자신들만의 특혜를 주장하는 소견 좁은 이론이 될 것이다. 실제로는 주를 믿는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지 않으시고 인내를 하였어도 밖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는 보편적 구속과 일반적 구속이라는 옷(형식)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나 만을 위하여 인내하신 것으로 생각하여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의 전파자들은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신 것으로 전하여야 할 것이다.
③그리스도의 구속은 자기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연합하는 믿음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한 구속이기에 제한적인 속죄로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는 무한한 것이다. 죄를 사하는 것만이 아리라 연합의 의미고 있고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근거도 되고 사랑의 충만함의 의미도 있고 많은 은혜가 그 속에 들어 있으며 그 많은 은혜는 오직 구원을 받은 선택받은 성도에게 해당되기에 제하적 구속을 주장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의 모든 것은 일반적인 구속의 은혜로 전하여야 할때은 일반적인 은혜로 전하여야 할 것이다.
④믿음의 은총은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빠짐없이 적용되며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는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해당된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믿음의 은총은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누구나 믿음으로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여야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제한이지만 말씀을 전할 때는 일반적,보편적 구속을 전하여야 할 때가 많다.
이렇게 일반적 보편적 구속과 특별한 제한적 구속의 이론은 하나를 택하고 하나를 버릴 것이 아니라 둘다 사용하고 그때 그때 은혜가 되고 덕이 되게 사용하여야 할 것이며 항상 같이 동행하나 나타날 때는 둘 중 하나가 나타나야 은헤가 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나타남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제4.알미니안주의의 성령의 사역의 항거 가능성과 칼빈주의의 성령사역의 불가항력성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바 꿀 수 있을 정도로 항거가 가능한가 ?아니면 인간이 아무리 자유의지가 있어도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항거가 불가능한가?
1. 알미니안 주의의 성령사역의 항거 가능성
①성령은 인간이 믿지 않으려고 할 때는 중생을 시킬 수 없다고 하여 성령의 역사를 항거할 수 있다고 본다
②인간은 성령의 역사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거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③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에 제한을 하고 있는 것이다.
④죄인인 인간의 자유의지로 허락하기 전에는 성령은 생명을 줄 수 없다고 한다.
⑤하나님의 은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거슬리고 항거하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⑥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에 의하여 방해를 받을 수 있었고 항상 그렇게 방해를 받아 왔다고 한다.
2. 칼빈주의의 성령사역의 불가항력성
①하나님의 성령은 택자들에게나 비택자들에게도 주는 외적 소명을 주며 필연적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바 외적 소명은 거듭나기 전이기에 항거할 수 있으나 택자들이 받은 내적 소명은 거부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다고 한다.
②성령의 주시는 회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성령은 인간의 어떤 상태에 있는 자도 택한 자들에게 구원에 도달하게 하며 한번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는 반드시 천국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③성령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며 협동에 의존하지 않고 기이한 방법으로 섭리하신다.
④성령은 택한 자들에게 은혜롭게 자연스럽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믿게 함으로 성령의 하는 일을 성도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⑤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은혜며 은헤를 받는 자들은 반드시 구원에 도달하게 한다.
3.양자의 비교 비판
1)알미니안 주의의 성령사역의 항거 가능성의 비판
①성령은 인간이 믿지 않으려고 할 때는 중생을 시킬 수 없다고 하여 성령의 역사를 항거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하나님의 성령을 무능하게 전능하지 못하게 여기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성령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②인간은 성령의 역사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거역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이론이 된다.
성령의 하나님됨을 주장할때 이말을 하면 곤란하다.단 인간들이 잘하여 성령의 역사와 인도가 있다고 말할 때 인간의 잘 못된 행동을 막는 말을 할 때는 항거 가능한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 진리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이신 성령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다. 말씀의 양면성,이중성이다.
③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에 제한을 하고 있는 것이다.인간의 의지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성령의 역사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이를 잘 조화되게 말하야야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말할 때는 제한 불가능성을 말하여야 할 것이도 사람이 회개하여야 할 때는 제한함으로 성령거역의 죄를 짓지 말게 할 때는 제한 가능성의 무서운 것을 말하여야 할 것이다.
그 순서를 정하고 중요성을 정한다면 성령의 전능함이 먼저요 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④죄인인 인간의 자유의지로 허락하기 전에는 성령은 생명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믿어야 잘 믿어야 성령이 역사할 것을 말할 때는 인간의 의지를 움직이고 마음을 열도록 말할 때는 인간의 의지로 허락하기 전에는 성령은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능력을 힘입기 위하여 성령을 기쁘게 할 때는 인간의 아무리 거역하여도 성령의 불이 떨어지면 바울과 같은 위대하 인물이 된다고 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거역가능성과 불가능성은 이론으로는 정반대이나 말씀에는 돌이 하나로 포함되어 말씀이 되는 것이며 단 때에 따라서 은혜가 되기 위하여 덕을 세우기 위하여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 사용하여야 하며 그러나 언제든지 반대 편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이면에는 반대편의 것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⑤하나님의 은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거슬리고 항거하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하나님의 은충은 영원하고 무한하고 항거 불가하다고 찬양하여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거슬리고 있는 자는 잘 못된 일을 하나님께 전가 하지 않도록 그가 행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거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항거 거부할 수 있는 것을 말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는 항거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항거할 수 있고 거슬릴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자신의 처신을 바로 하고 주의 하고 옛사람의 방종을 막을 수 있고 거슬린 자를 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⑥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에 의하여 방해를 받을 수 있었고 항상 그렇게 방해를 받아 왔다고 한다.
사실상으로 맞는 말이다. 인간에 의하여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많이 그릇되며 하나님의 역사가 손해를 보았던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인저하는 자들도 성령의 사역의 무능과 한계를 정하여 성령의 전능성을 부인하는 근거를 잡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성령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방해한다고 하여 하나님의 일을 못하실 하나님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의 교회는 반대자가 많아도 부흥될 것이며 주님의 나라의 건설은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2)칼빈주의의 성령사역의 불가항력성에 대한 비판
①하나님의 성령은 택자들에게나 비택자들에게도 주는 외적 소명을 주며 필연적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바 외적 소명은 거듭나기 전이기에 항거할 수 있으나 택자들이 받은 내적 소명은 거부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다고 한다.
외적인 소명만을 받는 자는 항거할 수 있고 거듭나 내적인 소명까지 받은 자는 항거 불능이라고 하는 말을 합리적인 말과 같아도 성령의 능력을 일부 제한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②성령의 주시는 회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성령은 인간의 어떤 상태에 있는 자도 택한 자들에게 구원에 도달하게 하며 한번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는 반드시 천국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말로서는 가능하나 인간의 자유의지로 성령의 하는 일을 도와 주기 위하여 설교를 하는 경우에는 인간의 결단을 요구할 때는 자유의지의 역할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한번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도 믿음의 확신을 위하여서는 진리의 말씀이 된다.
그러나 태락할 가능성이 있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을 쳤어도 예수님을 부인하거가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가 되어 타락하면 더욱 무서운 지옥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말하여야 말씀이 되는 것이다.
바울보다 더 믿음의 확신이 있는 자가 없고 성령의 능력을 완전히 믿은 자가 없을 것이나 바울은 항상 남을 구원하고 나자신은 지옥에 던지움을 받을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위에 말한 두 가지 이론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 말씀이며 그 안에 예수님은 계신 것이다.
③성령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며 협동에 의존하지 않고 기이한 방법으로 섭리하신다.
성령의 역사를 믿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무리 기이한 방법으로 역사를 하여도 내가 타락하는 날에는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여 옛사람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는 것이 옳다.
성령이 협동과 혐조가 있어도 인간의 자유의지은 언제나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④성령은 택한 자들에게 은혜롭게 자연스럽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믿게 함으로 성령의 하는 일을 성도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에 대하여 옳은 말이 된다. 그러나 성도의 잘못을 경계한느 말로는 부족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⑤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은혜며 은헤를 받는 자들은 반드시 구원에 도달하게 한다.
구원의 확신에는 좋은 말이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은헤를 많이 받을 수록 자칫 잘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도 말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환경과 믿음의 정도에 따라 경고가 달라야 할 것이다.성장한 자는 경고를 듣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경고하면 자포자기 한다.
제5.알미니안 주의의 은총으로 부터의 타락 가능성과 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
하나님의 섭리로 구원을 받게 된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타락하여 지옥에 갈 수가 있는가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면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것은 그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견인하여 구원의 반렬에 세우시는가? 하나님은 구원받은 인간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 하시나 버리실 수도 있는가?
1.알미니안주의의 은충으로부터의 타락의 가능성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자들도 믿음등을 유지 못함으로 구원을 잃을수도 있다고 본다(같은 알미니안주의자들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음).
2.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
①하나님에 의하여 택정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믿음을 얻은 자는 모두 영원토록 구원을 받는다.
②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믿음을 유지하며 끝까지 인내하여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3.양자의 비교 비판
1)알미니안주의의 은충으로부터의 타락의 가능성의 비판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자들도 믿음등을 유지 못함으로 구원을 잃을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영원성을 무시하는 것과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얻는데 지장이 되는 이론이 된다.
그러나 일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고 은총을 입은 자들고 행실을 조심하고 늘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강조하는데는 받드시 필요한 말씀이 되는 것이다.
2)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
①하나님에 의하여 택정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믿음을 얻은 자는 모두 영원토록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한는 말씀이요 믿음의 확실성과 분명성을 가능케 하고 예수님의 은혜는 영원한 은헤인 것을 기쁘게 한다.
그러나 언제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면 망한다고 경고를 하여야 할 것이며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지켜야 할 것이다.
②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믿음을 유지하며 끝까지 인내하여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말도 맞다.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영원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영원하다고 방종한다든지 조심을 하지 않는다든지 게으른 자가 가능하기에 타락가능성에 맞는 말씀도 성경에는 있어야 한다..
결 론
양 이론은 인간편에서냐 하나님편에서냐의 문제요 새 사람편에서냐 옛사람 편에서냐의 문제냐 객관주의냐 주관주의냐의 문제며 전부에 대한 이론이냐 일부에 대한 이론이냐 일시적이냐 영원한 관점이냐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양설을 설명하면 모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 이론을 일면성과 편면성을 면할 수 없는 이론에 불과함으로 이론을 떠나서 성경의 본문의 위치에 따라서 잘 조화있게 적용할 것이며 어떤 이론에도 빠지거나 치우치지 말고 양 이론의 좋은 점을 적용하여 은혜가 되도록 덕이 되도록 예수님의 마음으로 조화롭게 적용하여 말씀에 접근할 때 성령님은 이론과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여 큰 은혜를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http://blog.daum.net/sang1841/26
*관련자료(아래 클릭)
'종교 개혁 !! 여러교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혁주의적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 신학 (0) | 2021.09.13 |
---|---|
기독교의 양대 교리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 (0) | 2021.09.13 |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비교 연구 (0) | 2021.09.13 |
개혁주의와 근본주의의 차이점 (0) | 2021.09.13 |
개혁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복음주의에 머물 것인가? / 송다니엘 목사 (0) | 2021.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