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

[스크랩] 하나님의 계획 - 모든 족속에게 // 눅 24장 44-49절

하나님아들 2012. 10. 8. 23:10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중요하게 명령하신 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전도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가 얘기한 대로 하나님의 선교가 성경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고자 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지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복을 주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참 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도는 그 뜻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전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누구냐? 성경은 예수님이라고 분명히 답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잘 모르거나 희미하게 알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44절을 봅시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보이고 제자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지상에 남은 시간을 여기에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이 성경을 성취한 사건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말씀하신 것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을 말씀하셨는데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성경이 누구를 가리켜 기록이 되었느냐 하면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기록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는 성경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십니다.

 

구약의 중심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서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서신서의 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전도라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을 말하는 것, 전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곧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45절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마음’은 특별히 지각하고 이해하는 기능인 이성과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치를 알고 합당하게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보배로움을 알고 찬송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빌 1장 20절)이 가장 의미 있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알았기에 자신의 삶과 죽음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믿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이 누군가를 참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을 초청해서 함께 가서 보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아픕니다. 자신도 과거에 그렇게 아플 때가 있었는데 그것을 어떤 의사가 고쳐주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의사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가게 해서 치료 받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죽는다고 했는데 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의사 참 잘 고치는 명의라고 소개하고 다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아야 그렇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

 

그 다음 46절을 보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고, 47절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그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메시지의 내용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 그리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신 것, 이것이 복음의 핵심 내용입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죄 사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로 인해서 오는 비참한 현실과 영원한 결과의 문제입니다. ‘죄 사하셨다’는 말씀은 죄책의 문제를 다 해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 얻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지 않으면 전도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고 아버지께로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깨닫지 못하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다’는 말씀은 ‘좀 더 낫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존재는 아예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유일한 복음일 수가 없습니다. 만일 어떤 해결할 수 없는 병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가 전 세계적으로 한 명밖에 없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의사만을 찾겠지요. 로마서 1장 16절에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이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가치를 아는 것이죠. 어떤 가치입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가난하든 부하든, 남자든 여자든 아무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가치는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천국의 가치를 알아야 구원이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인가를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지요. 그 가치를 아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사지요. 또 45절에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니까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삽니다. 보화와 진주의 가치를 모르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지 않겠지요. 천국의 가치를 모르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족속에게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십니다. 47절에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 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을 받음은 선교적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룬다고 하십니다. ‘기록되었다’는 말씀은 44절의 ‘기록’과 같습니다. 구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래부터 가지고 계셨던 계획이고, 이 계획에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가십니까?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증인들’을 통해서입니다. 48절에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십니다. 증인이니까 증언을 해야겠지요. 이 증언하는 제자들을 통해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어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제자들이 ‘증인’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실 것이지만 증인들을 통해서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증인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스펄전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방법이 “삶을 통한 감동”이라고 했습니다.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 둘째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입으로 증언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고 하셨고 5장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세상과 관계해서 소금이고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16절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삶에 계셔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감동은 삶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삶으로 감동을 끼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얘기하는데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때가 아닌 것 같아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이 없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삶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악취가 나고 감동이 아니라 반감을 주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5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예수님의 주되신 것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가 다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도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섬기는 자로서의 삶, 이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주님으로 고백하는 삶입니다. 이기심이 있는 사람은 섬길 수 없습니다. 섬기는 척 해도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안에서의 섬김에는 이기심이 없는 것입니다. 전도는 이 증인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49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예루살렘) 머물라 하시니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누구십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실 분이 성령님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주권적으로 증인들을 사용하셔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이 아니고 성령님을 힘입고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하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셔야 복음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 즉 성령님의 능력이 있어야 복음 전파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이 사명을 반드시 감당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이 디모데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 말씀은 아주 엄중한 명령입니다. ‘엄히 명한다.’고 합니다. 일차적으로 디모데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교회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때를 얻을 수도 있고 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명령임을 생각하고 항상 힘써야 합니다.

출처 : 목자의음성교회
글쓴이 : 이남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