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

[스크랩] 전도와 가정 - 하나님의 권속 공동체( 막 3장 31-35절)

하나님아들 2012. 10. 8. 23:12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주셨다’는 말은 그 다음 17절에 ‘보내셨다’(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는 말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영원한 멸망’을 받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이 복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을 받은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서 있습니까? “보냄을 받은 존재”로.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 성도들의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보냄 받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삶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죠.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성자 하나님을 보내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셨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 역시 보내심을 받아 존재하고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각자의 삶이 보냄 받은 자로의 삶으로 존재합니다.

 

이와 관계해서 ‘가정’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를 하나님의 가족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교회를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 딸린 식구들을 ‘권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이와 관계해서 집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족의 의미

 

마가복음 3장 31-3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개념을 잘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31절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마리아인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동생들’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입니다. 6장 3절에 남자 동생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누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20절에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수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때 21절에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는데 그 이유는 ‘그가 미쳤다’는 얘기를 들은 것입니다. 22절에 서기관들이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왕이 들려가지고 귀신의 왕을 힘입고 있다고 얘기를 했는데 이 얘기를 듣고 그게 사실인 줄 알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느냐, 하면 31절에 “밖에 서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대조되어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32절에 나오는데 “예수를 둘러앉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34절에도 ‘둘러앉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이 34절에 ‘내 어머니와 동생들’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삼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가족 공동체가 진정한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밖에 서 있는 혈연적인 가족이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가족은 혈연으로 구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이 됨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도 예수님 중심으로 와야 됩니다. 후에는 그렇게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둘러앉아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의 특성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35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혈연, 신분, 성별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느냐? 예수님 밖에 있느냐? 이지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고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 형제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성도들은 서로 형제자매 관계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 공동체를 얘기할 때 ‘형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중심이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에 두고 살아갑니다. 이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리 혈연적으로는 가족이라고 해도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같이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있어도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몇 사람인지 생각해보십시오(엡 2장 12절에 과거에 예수님 믿지 않은 때를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집에 있는 교회

 

초대 교회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소원과 그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자신과 함께 한 모든 가족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집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데, 요즘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집과 관계해서 집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이 서신서에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나옵니다. 바울이 ‘나의 동역자’라고 하고 있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목까지도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방의 모든 교회들에게 유익을 주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합니다(5절). 그 다음 6절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the church that meets at their house) 문안하라”고 합니다. 로마에 이 부부의 집이 있고 그 집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 모임을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한 집에서 모일 수 있는 최대 인원은 30-4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5절에 ‘눔바’라는 여인이 나오고 있습니다(아마도 골로새 지역일 것).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the church in her house)를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의 집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예배 처소로 제공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레몬서에도 이런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2절에 “네 집에 있는 교회”(the church that meets in your home)라고 했습니다. ‘네’는 빌레몬입니다. ‘가정 교회’가 있었음을 가르쳐줍니다.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5절에 “주 예수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교회 처소로 제공하였고, 그곳에 들어오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을 주고 평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4절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빌레몬을 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집이지요.

 

초대 교회 때에는 지금과 같은 대형 건물을 지어 놓고 모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헌상으로 드린 사람이 자신의 집을 교회 처소로 제공하고 거기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간절히 소원을 했고, 어떤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느냐? 하면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 처소로 제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전체가 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즉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1-15절은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이 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주께서 이 여인의 마음을 열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15절에 “그와 그 집이(the members of her household)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복음은 그 여인만 받아들였는데 세례를 받을 때는 그녀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 다 받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구원자)와 주님(삶의 모든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집에 속한 사람은 이 여인이 부양하는 가족도 있었을 것이고, 이 여인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모두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빌립보에서 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사람은 옥을 지키는 간수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9-34절에 나옵니다. 이 사람이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30절) 묻자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고 답합니다. 특이한 것은 ‘너’만이 아니라 “네 집”(your household)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의 말씀”을 듣는데 이 간수는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합니다. 32절에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고 했지요. 그 밤에 33절에 자기와 온 가족이(he and all his family)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34절에 그와 온 집안이(he and his whole family)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합니다. 가장 큰 기쁨이 온 집안 식구가 예수님을 믿는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전 가족이 혈연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 8절에 고린도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나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님을 믿는데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온 가족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도록 기도하고 힘썼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온 가족들이 세례를 받기를 원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열심, 이런 열정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역할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권속이 된 가정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가정은 신앙을 교육하는, 그리하여 신앙을 계승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신앙교육이라는 것은 사도들이 가르치는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치는 가르침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오순절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것이 가정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져간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신앙교육을 시켜서 신앙을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 실력이 탁월했음이 분명합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그”는 하나님의 비밀이시오, 영광의 소망(27절)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님을 전파해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성숙한 자로 세우려 했다고 합니다. 29절에 바울은 “힘을 다하여 수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님을 알았기에 이렇게 한 것인데, 이 일이 가정에 모인 교회에서 이루어졌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5절에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으니까, 교회에서 이루어진 일일 것입니다. 가정은 이와 같은 신앙의 교육 장소였습니다.

 

둘째로, 가정은 이웃 사람들에게 개방이 되어 이웃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가정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후원을 해주고,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물질적인 후원을 해주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롬 16장 2절. 롬 15장 23-24절. 딛 3장 13절. 요삼 6절).

 

동시에 이웃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개방을 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 가정이 복음이 확장되어 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지였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롬 12장 17절)라고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롬 12장 18절)고 합니다. 원수가 있더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롬 12장 20절)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장 13절)고 합니다. 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의미가 있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정이 해야 할 일은 초대 교회 당시에 가정이 했던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오기를 소원하고 애쓰면서, 우리의 가정이 신앙을 계승하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시대에도 소홀히 될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하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가정 안에서 예수님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목자의음성교회
글쓴이 : 이남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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