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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과 무속종교의 폐해

하나님아들 2020. 3. 5. 18:11

역술과 무속종교의 폐해



- 박승학 목사 (칼럼니스트, 기독교단개혁연(aogk.net) 대표)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장본인이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와네트라면, 청나라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서태후에게 있다. 한낱 궁녀 에 불과했던 그녀가 1856년 3월 함풍황제(咸豊皇帝)의 아들 재순(통치 황제)을 출산한 후, 1861년 황제가 병사하니 5 세 된 아들의 수렴청정을 시작해 26세부터 75세까지 50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청나라가 멸망한 같은 시 기 제정러시아도 레닌의 볼셰비키혁명으로 몰락했다지만, 실상은 니콜라이 2세 황제의 알렉산드라 황태후가 이단 교주 성도착증(性倒錯症) 떠돌이 괴승 라스프틴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결과였다고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위 언 급한 나라들의 왕조를 멸망케 한 중심에 여자들이 있었지만, 500년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국권이 말살되고 식민지 지배를 받 게 된 결정적 원인은 당시 세계 열강들의 정보에 어두웠던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이라 책임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대원 군 이후 1873년부터 1895년까지 23년간 무속종교에 집착하여 무당정치로 조선을 통치했던 민비(명성황후) 때문이라 보는 것 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민비 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미화하여 세계 정세에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절묘한 외교술로 난국을 대처하려 했던 ‘여걸’이라고 극찬하고 ‘명 성황후’로 칭호를 높이는 등 사실을 과장 왜곡하여 뮤지컬이나 드라마를 만들어 세계 무대에서 그녀를 치켜 세우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 스다.

민비는 조실부모한 고아라는 점 때문에 당 시 외척 발호로 나라가 어지러울 것을 우려한 대원군에 의해 왕비로 간택된다. 왕비가 된 후 후사를 낳으려 무당을 가까이하고 금강 산 1만 2천봉과 전국 명산마다 쌀과 비단과 돈을 퍼다 바치며 지성을 드리는 일에 국가 재정이 바닥나자 당시 일본 장사꾼들에게 고 리의 이자를 주고 빚을 낸 돈과 청나라에서 차관을 얻은 돈까지 모두 탕진했다.

그 녀에겐 국가의 안위나 국민의 생존보다 오로지 자기 소생으로 왕위를 계승하려는 일념만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같이 국고를 탕진하 여 내탕고(內帑庫)가 텅텅 비어 대궐을 지키는 병사들까지 급료를 13개월씩이나 밀리게 되자, 그들의 집단행동에 급히 지급한 쌀 이 모래와 겨가 섞여 있었고 그 양도 절반이나 떼먹은 후 지급하면서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됐다. 임오군란의 원인은 자신의 소생을 낳 아 왕권을 이으려는 민비의 무절제한 국고낭비 까닭이었다.

1866 년 병인양요로 혼쭐이 난 대원군이 신식 총과 대포를 구입하여 강화도에 성벽을 강화했던 것들을 민비는 오로지 대원군이 했다는 이유 로 모두 청나라에 기증해 버리는 어리석은 여자였다. 당시 조정은 물론 국민들의 민비에 대한 원성이 높아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천 신만고 끝에 신부로 가장하여 가마를 타고 도망치다가 어느 주막에 숨어있을 때 마을 아낙들이 딱하게 여겨 “새색시가 민비인지 여우인 지 고년 때문에 고생한다”고 위로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이 말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환궁 후 그 여자를 잡아들이라 했으나 찾아 내지 못하자 마을의 여인 전체를 모두 죽이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충주 엄정면에 피신하여 숨어있는 동안 관운장 귀신이 실렸다는 윤씨 무당을 가까이했고, 무당의 예언대로 환궁하여 복권되니 그 무당을 데리고 대궐로 들어와 모든 문제를 무당에게 자문을 받아 결정하는 무당정치가 시작됐다.

뿐만 아니라 그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정2품의 벼슬을 내리고, 관운장의 귀신을 모신 동묘라는 사당을 (현 종로구 숭인동 소재) 지어주는 등 조정이 무식하고 간사한 무당이 득세하는 혼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 같이 23년간 민비의 무당정치로 국고를 낭비했으며, 이를 충당하려 돈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여 재산과 빚을 내어 벼슬을 산 관리들 이 돈을 충당하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수탈하니 국민들 원성이 어떠했겠는가. 민비 치하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저항인 임 오군란, 감신정변, 동학혁명 모두 민비의 무당정치에 의한 학정 까닭이라 평가해야 한다.

한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어느 시대나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득세하거나 만연할 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①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부강했던 송나라의 멸망도 도교로부터 유래된 사주명리학 등 역술의 경전 때문이었다. 서자평의 연해자평 을 기초하여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팔자, 부적 등이 만연했을 때 만주에서 일어난 아골타의 금나라에게 멸망했다. ②고려 멸망 도 신돈이라는 승려가 나타나 공민왕을 비롯한 온 나라를 역술과 미신으로 혼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때 만일 민비가 선교사들을 가까이 하고 복음을 적극 수용했더라면, 사무엘을 낳은 한나처럼 서원기도와 금식기도를 했더라면, 빅토리 아 여왕처럼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여 지혜를 구했더라면 그녀의 통치 23년이 나라의 흥왕기가 되었으리라는 아쉬움 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