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와 구원
개혁신학원:서철원교수
I. 오순절운동
20세기 기독교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운동은 오순절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1년 1월 1일 파함(Parham)목사가 세운 토페카의 벧엘성경학교 학생 가운데 하나인 오즈만(Ozman)의 가르침대로 방언을 하여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었다. 파함 목사는 초대교회처럼 성령세례를 받고 그 표로 방언을 해야 하다고 가르쳤다.
1906년 로스엔젤레스의 아구사가 (Agusa Street)에서 파함 목사에게 배운 윌리엄 세임슨(William Seymson)이란 흑인목사에 의해 정식 오순절운동으로 출발하여 짧은 시간 미국 전역에 확대되고, 북구와 남니 등에도 빠르게 퍼져나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널리 퍼지게 되어 전세계적인 운동이 되었다.
오순절 운동은 1930년대 20-30여개의 교파를 형성하여 헨리 반 두센(Henry Van Dusen)의 지적대로 개신교회와 로마교회 다음의 제3세력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다가 60년대부터 기성교회들 속으로 파급되고 1967년, 68년 로마 교회에까지 이 운동이 퍼져 교파를 구성함이 없이 은사운동이란 이름으로 확산되었다. 오순절 운동은 20세기의 운동이지만 19세기 감리교회에서 일어난 성결 운동의 직접적 산물이다. 1867년 결성된 성결운동 연합(Holiness Movement Association)은 웨슬리의 완전 성화를 이루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성결운동은 완전 성화 혹은 은혜의 제2의 축복을 성령세례와 일치시켰다. 완전 성화는 중생한 다음에 제2의 은혜의 역사를 받으면 완전 성화에 이르러 완전 거룩에 이르고 완전한 사랑에 이른다고 하였다. 성결운동은 감리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이지만 19세기 말엽 교회가 완전 성화가 순간에 달성된다는 웨슬리의 가르침을 배척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므로, 이 운동은 하나님의 교회, 나사렛 교회들 많은 교파들을 이루게 되었다. 이 성결운동은 완전 성화를 성령세레와 일치시켰는데 오순절 운동은 이 성령세례가 방언으로 나타나야 된다고 가르쳐 운동을 일으켰다. 이 성결운동은 요한 웨슬리의 순간적 완전 성화의 가르침에서 떠나 그 의 동역자이고 신학자인 존 플레처(John Flecher)의 가르침을 따른 성령 세례 주장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보면 오순절 운동운 중생 후에 제2의 은혜의 역사로 완전 성화 에 이른다고 가르친 요한웨슬리의 부흥운동의 연속이다. 단지 완전 성화는 중생 때 이루어지고 사역을 위한 능력입음을 위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차이 뿐이다.
II. 성령세례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은 성령세례를 크리스챤의 바른 과정으로 주장한다. 성령세례는 예수 믿을 때 받는 것이 아니고 중생 후에 성령으로 충만케되어 방언으로 나타나는 별도의 체험으로 주장하고 이것이 신약의 바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즉 오순절 운동에 따르면 중생 후에 별도의 과정으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진리를 성경 특히 사도행전이 분명히 가르친다고 한다. 성령세례는 중생 후에 받는 별도 과정이다. 그러나 성경과 개혁신학은 성령세례는 성령을 받는 것을 뜻하고, 그 성령세례는 예수는 믿을 때 받는다고 주장한다.: 신약에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믿어 성령받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믿을 때 받는 성령세례가 신약이 가르치는 성령 세례이지, 중생 후 별도의 과정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일으키시고 그러므로 회개하고 중생하며, 그때부터 성령께서 신자 각자에게 내주하신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신자가 예수 믿을 때 오시고 그리고 내주하신다. 이 성령 오심이 성령 세례 이고 중생 후 별도 과정이 아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선물로 받는 것이고 조건들의 충족으로 받는 도덕적 의가 아니다.
III. 성령세례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
오순절파는 신약이 성령세례가 중생후의 별도 과정으로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도행전의 가르침이고 그리스도의 체험이 또 그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오순절파의 주장에 의하면 첫 오순절 사건(행2:1-4) 이 중생 후 성령 세례의 도식을 분명하게 증명한다고 한다.
첫 제자들 120명은 이미 중생한 자들이었고 그리스도의 승천후 10일 후에 성령세례 받았다고 주장한다. 120명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세례받았다고 주장한다. 120명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의 능력으로 그의 말씀에 의해 깨끗해져 중생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중생 후 성령 세례받는 공식 때문에 오순절에 성령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구속사역과 부활로 세상 구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사 아버지 앞에 나타나사(히9:24) 자기의 속죄 사역을 완결하심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청구하여(행2:33)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지되었던 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의 몸이 깨뜨려져야 보내질 수 있다.
성령이 오순절에 세상에 오심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세상죄과가 제거되고 화해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없이 성령 파송은 불가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이다. 그가 자기의 피로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획득하시게(사시게) 되었고, 또 그 구속에 근거해서만 성령께서 오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성령오심은 죽음의 세계에 새 생명이 도입되어 종말시대가 도입된 것이다. 옛 세대가 다 지나간 것은 아니지만, 종말 세계에서 누릴 새생명 이 도입된 것이다. 또 성령오심은 부패의 덩어리인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오심이다. 그리하여 인류 각자 안에 즉 새 인류를 만드시고 그 안에 내주하신 것이다. 종말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여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실 터인데, 이 일의 준비가 성령오심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세상에 오심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번에 오셨고, 신자들은 그 오신 성령을 받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성되기 전에는 결코 세상에 오실 수 없었다(요7:39). 성령이 세상에 오실 수 있기 위하여 그리스께서 십자가에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했다. 승천하사 아버지의 얼굴 앞에 나타나사 자기의 구속을 아버지께 보고하여 성령을 청구하셔야 했다.
성령오심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만 가능해지고 획득된 일이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성령받음 사이에 시간이 있게 된 것이지 중생 후 성령 세례 공식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 후에는 회개하고 예수 믿는 그 시간 성령 세례를 받았다.(행2:38-47,4:4) 또 오순절에 120명이 방언한 것도 성령 세례를 받으면 방언이 필수적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세계를 도입하시므로 새 세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림이요, 또 이사야의 예언(사28:11)을 성취하사 그들에게 구원의 큰 사역을 알리심이다. 오순절파에 의하면 중생 후 성령 세례의 공식대로 사마리아인들은 빌립의 전도(행8:4-25)로 이미 중생해있었고,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므로 성령 세례 받았고 방언도 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사마리아의 오순절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마리아인들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세례 받았지만, 그들이 예수 믿었다기보다는 시몬의 마술에서 빌립의 기적 행사에로 돌아섰다고 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빌립을 믿었다고 되어 있다.(행 8:12) 그리고 시몬도 믿었다고 되어 있다.(행8:13) 사마리아인들은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 중생하고 성령을 받는다. 이 믿음이 바른 믿음이 아니었음은 시몬도 믿고 빌립에게 붙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그 후 시몬은 베드로에 의해 지옥자식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사마리안들은 사도들이 오기 전에 중생하였다가 사도들의 안수 기도로 성령받은 것으로 볼 수 없고, 성령 받을 때 크리스챤들이 되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둘째, 또 비록 사마리아인들의 중생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중생 후 세례 공식 때문이 아니고 구속사적 과정에서 이해해야 옳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족이어서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하였는데, 그들이 감히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수세기 동안의 길어진 반목과 적개심은 너무 깊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 두 수사도를 보내어 그들로 성령받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인들도 전혀 구별하지 않고 자기 아들 그리스도의 교회에 편입시키심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또 두 사도들의 권위 아니면 사마리안들 의 개종과 교회 편입을 예루살렘교회가 결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사마리아의 개종 사건을 이해해야 옳고, 또 성령받을 때 참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보아야 옳다.
셋째,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자를 만났을때(행9:1-19) 오순절파의 주장에 의하면 변화되어 중생하였고 3일 후에 아나니아에 의해 성령세례 받게 되었으니 중생 후 성령 세례받음이 표준적 도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현현을 보고 그 자리에서 즉각 중생하였다고 보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만나 세례받기까지가 그가 변화되고 중생되는 기간으로 보아야 옳다.
제임스 던(James Dunn)의 지적대로 바울은 깊이 유대교에 침잠했던 사람이어서 그리스도를 만난 충격에서 자기를 재구성하여 회개하여 바른 귀결에 이르기까지 3일은 걸렸을 것이다. 유대교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 들이는데 걸린 기간이지 중생 후 성령 세례 공식의 적용이 아니 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세례받고 성령을 받았으되 방언 같은 현상도 나타내지 않았다. 바울은 세례받아 주를 믿음으로 성령받았다.
넷째, 오순절파에 의하면 고넬료와 고넬료의 가정과 친족과 군인들이 이미 중생하여 있었는데, 베드로의 설교로 성령을 받았으니(행10:1-48), 중 생 후 성령 세례 공식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별로 타당성이 없다.
선한 종교인으로 살았지만 그도 니고데모 중생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경건한 구약교회에 속한 사람이다.
복음의 전파를 받음없이 예수 믿어 중생할 수 없다. 그는 경건한 유대 인과 같은 상태였다. 또, 고넬료의 가족 전원과 그의 친족들이 그런 경건한 유대 개종자들로 살았다고 할 수 없고, 또 거기에 가까운 친구들 이 참석하였고, 또 군인들도 일부 참석하였으니, 그들을 중생한 크리스챤 들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다. 또 사도행전 10장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중생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고넬료와 가족과 친구들이 베드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를 듣고 성령받으므로 방언을 하였는데 이것도 성령 세례 받으면 방언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유대인과 전혀 구분함이 없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편입시키시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방언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여 성령받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고넬료와 그의 로마인들의 개종은 유대땅에서 일어난 최초의 이방인 크리스챤이다.
유대인들의 눈에 자기들의 압제자인 로마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러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성 령받을 때 설교했던 베드로와 같이 간 크리스챤들의 놀램과 베드로가 예루살렘 올라갔을 때 한 힐책에서도 잘 드러난다.(행11;1-3).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도저해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 이방인의 구원을
이렇게 허락하신 것이다.
다섯째, 오순절파의 주장에 의하면 에베소의 12제자들은 아볼로의 전도로 예수 믿고 세례받았으니 중생하였고 그 후에 바울에 의해 성령세례 받았으니(행19:1-7), 중생 후 성령 세례받음의 표준이 잘 성립한다고 한다.
에베소의 12제자들이 아볼로의 가르침으로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아볼로 자신이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행18:25).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앙 고백하는 크리스챤들이 되지 못하였다.
그들이 세례받아 중생했으나 성령 세례받를 받지 못하여 무력하므로 바울이 세례를 다시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크리스챤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받으면 성령을 받는데, 그들은 이 회개와 신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성령받지 못한 것이다. 더욱 확실한 것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바르게 선포받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껏해야 요한에게 세례받은 유대인들의 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전도하여 사람들은 예수 믿게 하여도 세례주는 일에 열심하지 않고 다른 동역자들에게 세례주는 일을 넘겼다(고전1:14-17). 그런 바울이 이미 세례받은 그들은 다시 세례줄리가 없었다. 에베소의 12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을 때 곧 회개하고 예수 믿을 때,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다. 또 이들이 예수 믿어 성령받으므로 방언을 하였는데, 그것도 그들이 이방세계에서 예수믿어 새생명을 동참하고 새시대의 속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오순절파는 그들이 제일 표준으로 삼는 중생후 성령 세례 도식을 그리스도의 출생과 성령 세례(막1:9-11)에서 구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출생하였으니 이미 중생한 경우이고 그 후에 성령 세례를 받았으니 그를 믿는 우리도 다 중생 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애는 칼빈이 밝힌대로 우리의 모본으로서 우리의 생과 다 비길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조성되고 출생하며 의인으로 출생하고, 완전 성화인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중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인으로 출생되었고, 완전 성화인이었다.
그러므로 죄인이 성령의 역사로 중생하는 경우와 전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의 성령받음은 한 개인으로 구원 서정적으로 성령받음이 아니고, 죄를 제거하여 성령께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야 시대를 여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오시고 그들 안에 내주하시게 되는 일이
그의 성령 세례로 시작되었다. 예수의 성령 세례에는 오순절파가 규범으로 제시하는 성령 세례와 그에 따른 방언같은 현상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성령세례는 구원 서정적으로 볼 것이 전혀 아니다.
IV. 예수 믿음으로 성령받음(성경적 증거들)
성령은 예수믿을 때 받고, 믿음으로 받으며, 더구나 어떠한 조건들을 이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는다. 예수믿을 때 받는 성령이 곧 성령세례이다. 이 성령 세례는 단지 예수 믿는 한가지 조건에만 의존한다. 예수믿어 성령받으므로 크리스챤이 된다. 예수믿을 때 중생은 한
생명의 출생이어서 생명이 추후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중생은 성령이 일으키지만 그 믿음과 함께 성령께서 내주하신다. 이렇게 예수믿을 때 성령받아 성령으로 인쳐지고(엡1:13), 또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은 것이며(요일2:20,27), 성령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롬8:9,갈4:6). 또 성령은 예수믿을 때부터 우리에게 오사 우리 구원 곧 부활과 영생의 보장으로 와 계신다(고후5:5).
오순절 후의 성령세례는 오순절의 반복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세상에 오셔서 교회에 거하시는 성령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생 후 성령 세례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 사도행전 2:38절에 의하면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리,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고 하였으니 오순절 이후의 성령세례는 사도행전 2장1-4절로 돌아가 오순절을 반복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음으로 된다.
성령받는 일은 사도행전 2장 8절에서 시작한다. 성령받는법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음으로 된다.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함으로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사도적 선포후 3,000명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세례를 받아 크리스챤이 되었다. 그들은 중생 후 성령 세례의 과정을 겪은 것이 아니고 바로 믿어 성령 세례받아 중생하고 성령을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방언함이 전혀 없었다. 방언은 성령 세례의 필수적 동반 사항이 아니다.
사도행전 3:1절- 4장 4절에서 베드로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선포로 5,000명이 예수믿어 성령을 받았다. 그들은 베드로가 선포한 대로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 그들은 중생 후 성령 세례의 순서를 거침없이 바로 성령 세례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방언했다는 기록이 없다. 방언은 성령세례의 필수적 동반 사항이 아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구수 내시(행8:26-39)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여 세례 받으므로 성령을 받아 크리스챤이 되어 그의 나라 에디오피아로 돌아가 그 나라를 복음화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다. 구스 내시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므로 중생한 것으로 주장할지 모르나, 그도 네고데모처럼 중생해야 할 구약시대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중생 후 성령 세례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요한의 제자들에게 믿을 때 (행19:2) 성령받았느냐고 물음으로 성령을 예수믿을 때 받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흠정영역이 이 부분은 'Since ye Believed'로 번역하여 예수 믿는 후로 이해 되도록 보이지만 희랍어 원문에 두 동사가 다 부정과거로서 동시에 일어난 과거 사건을 지시한다.그러므로 예수 믿고 성령받는 일이 동시적인일이다.
갈라디아인들이 다시 율법 준수로 돌아갔고 가려고 할 때(갈3:2,3:14) 성령받음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믿음의 들음, 곧 듣고 믿음으로 이냐고 물음으로 성령받음은 믿음으로지 중생 후 조건들 이행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갈라디아서의 주제가 율법 곧, 조건들이 이행이 아니고 믿음으로 성령받는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2절의 물음으로 이 진리를 분명히 한다. 바울에 의하면 율법 곧, 몽학선생 아래 있을 때는 노예와 같아서 믿음으로 살 수가 없었다.(갈3:25-4:7).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구속 이 후에는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하사 아들의 명분에 이르게 하시고, 바로 믿음의 도를 들을 때 아들이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로마서 8장 9절에 따르면 우리가 크리스챤이 됨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소유함으로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성령받음으로 시작하고 중간에 다시 성령 세례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아들의 영이어서 우리가 이 영을 받으므로 바로 예수 믿을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여기 듣고 믿고 성령으로 인침이 동시적 사건임을 분명히 한다. 믿음과 인침사 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믿을 때 성령 세례받는다. 여기 우리 모두가 한 몸에 세례받아 한 영을 마시게 되어진 것이다.(고전 12:13). 단순과거 동사를 사용하므로, 두 사건이 과거의 동시적 사건임을 분명히 한다. 한 몸에 세례받음으로 즉, 예수믿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으로 그때부터 성령을 마시게 되어졌다. 성령을 마심은 우리가 마시게 되어졌기 때문이요, 우리 노력으로 예수믿은 후 성령 받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로 성령을 받아 마시도록 만들어졌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 믿음의 도를 성령의 기쁨으로 받았다(살전1: 5-6) 그러므로 믿을 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사 성령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그 외에도 성경적 근거들은 너무 많다.
V. 중생후 성령 세례 도식이 가능한 신학
오순절 운동은 알미니안-감리교회 신학 기초에서 발생하고 번창하였다. 또 이 운동이 은사 운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개신교회 주요 교단들에 퍼졌고,로마 교회와 영국 교회에 크게 퍼지게 되었다. 로마 교회와 영국 교회는 처음 세례 때 받은 은혜가 견신때 강화되고 활성화된다는 신 학 때문에 중생 후 성령 세례의 오순절 운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첫째, 알미니안 - 감리교 신학에 따르면 성령의 역사 방식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처음 은혜로 사람을 중생시켜, 그에게 가까이 임재하시나 내주하시지 못하시다가 성령 세례 때 내주하신다. 그러므로 이 알미니안 - 감리교 신학에 따르면 성령세례가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이 도식을 변형 하여 내주 후에 성령 세례 혹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알미니안 - 웨슬리 신학에 의하면 중생도 성령의 독자적 사역이 아니다. 선행 은혜가 와서 감화하면서 죄인이 자기의 결정에 믿음을 선택한다. 선택은 믿음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으로 만인의 죄과를 제거하셨으므로 만인이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은혜도 만인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자기의 구원 여부는 자기가 결정한다.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고, 우리는 일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즉,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는다. 계속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신다.
믿어서 내적인 변화가 있어야 칭의를 받는다. 이 내적 변화가 칭의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칭의 후 죄의 완전 제거가 현생에서 가능하다. 그리하여 완전 성화가 이루어진다. 이 완전 성화는 은혜의 제2의 역사인데, 금식과 기도, 육체를 죽임으로 준비되면 제2의 역사를 입게된다. 우리의 노력이 제2의 은혜의 역사를 결정한다. 이 완전 성화는 순수한 사랑, 완전한 거룩으로 나타난다 죄에 대한 완전한 죽음을 현생에서 경험할 수 있다. 웨슬리는 신앙의 표준을 성경과 경험에 둔다. 이 완전 성화를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이 세례로 일치시켰다. 이 신학은 존 플레처(John Fletcher)의 가르침이다.
셋째, 로마교회와 영국 교회에서는 세례 때 받은 은혜가 현시되는 것이 견신(confirmation)이라고 하여 성령 세례를 잘 받아 들인다. 로마교회는 오순절 운동을 은사 운동의 형태로 받아들이면서 이 운동이 근거한 자기 교회 안의 운동으로 간주한다.
VI. 성령세례의 조건
오순절 운동은 알미니안 - 감리교 신학 기초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알미니안 감리교 신학을 따라 행동하여 성령세례를 구하였다. 즉, 성령 세례는 예수믿을 때 하나님께 받는 선물이 아니고 중생 후 크리스챤으로서 일정한 조건들을 성취하므로 받는다. 그 조건들이 많고 저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조건 이행으로 성령 세례받는 것은 율법주의이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성령받기로 작정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둘째,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모든 생각나는 죄들을 다 고백해야 한다.
셋째,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성령받기 전에도 완전 순종이 가능하다.
넷째, 몸의 모든 부분까지 다 순종하고 내어 맡긴다. 열정적인 성령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수믿을 때처럼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성령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열정적인 성령 신앙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성령 집회에 참석하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성령을 예수믿는 것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노력으로 받는 것은 신약의 가르침과는 전적으로 배치된다.
VII.오순절 신학의 문제점
첫째, 오순절 신학은 체험이 그 기본이다. 성경은 표준은 되어도 긍극적인 결정은 경험이 한다. 오순절파가 하는 성령의 경험은 신약의 저자들이 경험했던 동일한 성령이므로, 현재의 성령 체험도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성경보다 체험이 궁극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따라서 구원 계시의 계속을 말할 수 있다.
둘째, 조건들을 행함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을 인간이 이룰 수 있다는 자력구원에 이른다. 인간은 전적 타락이어서 은혜가 아니면 아니면 구원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 구원의 구원자가 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근본입장은 인간은 전적타 락과 무능으로, 은혜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 - 감리교 신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어서 성령 세례도 조건들을 충족시키므로 인간이 받을 수 있다.
셋째, 오순절 신학은 법정적 칭의가 아니라 도덕적 칭의를 주장한다. 크리스챤들은 자기의 선행으로 곧 바르게 성화되므로 그로 인해서 칭의를 받을 수 있다. 즉, 자기가 자기의 구원을 이룸으로 하나님께 의롭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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