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주요 사역
본문 : 눅4:16-21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나라 빚이 금년이면 300조원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현재 약 250조원 가량 되는 나라 빚이 개인으로 환산하면 전 국민이 약 520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데, 가난한 자들이 자신들의 개인 빚까지 환산한다면 참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 정부의 슬로건은 당연히 잘사는 나라 일자리 창출 등
대통령이 될 자가 자신의 임기동안의 목표를 정하고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분명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사61:1-2절에서 에언 하신 내용을 펴셔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공생에 기간에 그 말씀을 다 실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고독하게 살면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 시대는 온 세상이 어느 곳이나 가난하고 병들고 지쳐있는 시대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아담의 범죄의 결과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가난과 저주가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창3:17-19절)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담이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범한 이후 인류는 땅이 저주를 받아 종신토록 수고해야 그 수고의 열매를 겨우 거두리라고 하셨으며, 땅이 아담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신대로 이담이후 인류가 사는 곳에는 전쟁, 지진, 기근, 무서운 자연의 재앙들이 가득하고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년 중 수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땅은 저주를 받아서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땀과 수고를 다하지만 잡초는 물론 병충해로 인하여 흡족할 만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농사 짖는 자들이 계속하여 빚에 쪼들리고 있습니다.
이같이 아담이후의 모든 인류는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하므로 인하여 가난과저주가 온 땅을 덮어 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도 처절하게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정치 하에서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많은 사람들은 병들어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대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마치 사회주의 사상과 같이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부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세상정치를 개혁하여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려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 찌들려 가난하고 병들었던 당시의 사회는 로마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조직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주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면서 너무나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같은 정치적인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로마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유대나라의 간절한 기대감을 그대로 나타내어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유가 이나라를 독립시키시기 위함이 아니냐고 질문했었는데 예수님의 방법은 정치적인 방법이 아니라 너희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니 가서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행하신 속에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심부터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사회운동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면서 공생애를 활동하시던 당시의 상황을 볼 때 당시의 유대나라는 한 번도 부강을 누린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겠다는 말씀은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예수님께서 정치적인 활동이나 사회 개혁을 앞장서서 하지 않으셨으니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실패하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3>. 예수님은 인류에게 부요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반 동안 증거 하신 복된 소식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하나님나라 천국에 대한 축복을 증거 하셨습니다.
성경 마5:3절"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을 받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아 가난과 저주와 절망에 빠져 눈물과 근심과 탄식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데 이 같은 사람들에게 가난이나 이별이나 절망이나 죽음이 없는 영생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사는 부요한자들은 천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부자들은 이 땅이 좋으니 여기에서 영원토록 살겠다고 착각하면서 현실의 만족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과 가난한 자들에게는 어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던 차였는데 그들이 주님의 복음을 듣고 천국에 대한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4>. 그럼 그같이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실 만큼 가난하게 사시면서 가난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마8:20절)
마8: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궁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출세를 목적으로 따라오려고 하는 서기관이"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제가 좇아 가겠습니다"(마8:19절) 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그 서기관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출세를 목적으로 따라오려는 서기관이 아무데서나 주무시고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고 병든 자들이나 찾아다니시고 죄인들을 찾아다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편안한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면서 못 따라 오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서기관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마4:8-12절의 시몬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는 "나를 따르라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을 때에 두말없이 순종하여 따랐으므로 그들은 주님을 따르는 동기가 순수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말씀은 세상적인 출세를 목적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한 서기관에게는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세상 출세와 부귀영화가 아니라 배고픔과 고난과 시련이 있음을 알려서 따라오지 못하게 하신 것을 볼 때에 실제로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을 만큼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처럼 공생애 동안 문전걸식 하시다시피 하시며 이 동네 저 동네 이 도시 저 도시로 유랑하며 방랑자의 가난한 모습으로 사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신이유는 우리를 부요케 하려하심이라 하셨습니다.(고후8:9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하심이라"(고후8:9절)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신 이유를 성령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가르쳐주시기를 주님께서 가난하게 사신이유는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3).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부요케 되는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마6: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축복의 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내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이제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이제야 알았노라고 하시며 이삭을 제물로 하는 대신 숫양을 제물로 삼도록 숫양을 주시고, 이삭을 돌려주시면서 너로 인하여 자손만대로 무한한 복을 받으리라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셨습니다.(창22:9-18절)
잠3:9-10절에도 재물로 여호와를 공경하면 재물의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으며, 말3:7-12절에서도 너희가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로 인하여 네 가정에 가난과 질병과 저주를 제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의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갈3: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니라"(갈3:13-14절) 하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전해주신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복된 소식을 듣고 절망과 좌절과 저주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담당하신 주님의 그 뜻을 깨닫고 주님중심으로 살아가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을 부어주시며 모든 것이 형통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2). 주의 복음이 닿는 곳마다 저주가 물러나고 부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장소마다 저주가 떠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심령의 저주가 떠나갔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증거의 사역이 닿는 곳마다 가난이 물러가고 부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은 자들은 평등과 민주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미신으로 귀신을 섬기던 자들이 악령에 짓눌려 살지 않고 "자연의 주인"이라는 담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므로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서 인간의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드린 민족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앞서가고, 성장하고,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3). 가장 뚜렷한 부요의 역사는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린 나라마다 가난에 찌들고 헐벗고 굶주려 패망한 나라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가 하나님을 버리고 인본주의 우상화가 시작되었을 때에 나라가 망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소련이 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북한이 평양 신의주에서 복음이 왕성할 때에는 행복하고 잘살던 곳이 김일성 김정일 정권이 들어와 북한 전체가 거지 나라가 되는 비참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므로 진실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복음은 가난과 저주를 속량해주시고 위대한 믿음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위대한 출발 메시지인 것입니다.
둘째 : 예수님께서는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정치적인 포로가 아니라 영적인 포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담이후 영이 죽은 인생들은 사탄의 지배아래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엡2:2절)
성경 엡2:1절에 아담이후 인류는 하나님을 깨닫는 기능인 영이 죽었습니다.
영이 죽인 인생들에게 엡2:2절에 보니 " 공중권세 잡은 악령의 지배아래 세상 풍속을 쫓고 살면서 귀신을 섬기며 귀신의 종노릇을 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고전10:20절)
예수님 당시에 유대나라의 상황은 로마의 식민지아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 나라를 걱정한 사람들 중에 로마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폭동을 일으키다가 체포당하여 고난을 당하는 정치적인 포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유대 정치 운동가들은 예수님이 당시에 유대나라를 로마에서 해방시켜주실 정치적인 메시야로 착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사와 이적을 베풀며 정치적인 운동이나 정치적인 발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모임이나 결사대를 동원하여 정치적인 포로나 노예를 해방시켜주신 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시 위하여 먼저 사역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는데도 해방시켜 주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속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세례요한은 시험이 들어 말하기를"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합니까?(마11:2-3절) 하고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의심하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로된 자에게 자유"라는 말씀이 정치적이고 노예해방이 아니라 어떤 뜻이란 말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자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볼 때에 정치적으로 포로상태에 빠져있는 자를 해방시켜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시는 곳마다 사탄에게 포로도니 자를 자유케 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2>.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이 비참함을 증명합니다.
마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가다라 지방이라는 말씀의 가다라는[헬, 게르게세노스 Gergeshnov"] 즉 갈릴리 호수 즉 게네사렛 호수의 남동쪽 연변에 있는 가다라 성에 속한 지역으로서 갈릴리 호수 북서쪽 가버나움 밑에 게네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 가다라 해변은 갈릴리 호수 쪽으로 가파른 언덕을 형성하고, 그 주변에는 고대의 무덤들이 많이 흩어져 있는 오늘날 공동묘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무덤들 중에는 벼랑 끝에 동굴을 파서 동굴 무덤을 만들었는데 귀신들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의 거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지역인 가다라 지방 해변에 도착했을 때에 사나운
귀신들린 두 사람이 주님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1). 귀신들은 두 사람을 무덤사이에서 살게 했습니다.
귀신들린 두 사람은 귀신에게 사로잡혀 인간성을 상실해버리고 더러운 귀신의 종노릇을 함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수가 없고 무덤사이에서 살게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악한 영인 귀신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인간의 인간성 도덕성을 파괴시켜버리고 개나 돼지보다 못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귀신이 하는 짓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악한 영인 귀신은 인간의 존엄성을 밟아버리고 마치 짐승처럼 아니 죽어서 버려진 쓸모없는 시체와 같이 두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유린하여 무덤에서 그 일생을 살게 한 것입니다.
2). 귀신들은 두 사람을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살게 했습니다.(눅8:27절)
눅8: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이같이 군대마귀에 들려서 처자를 버리고 공동묘지에서 돌로 자기의 몸을 북북 긁으며 주야로 고함을 지르는 사람을 마귀로부터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3>.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역사하는 곳마다 사탄의 지배아래에서
해방됩니다.(요일3:8절)
성경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군대마귀 들린 거라사 광인을 예수님께서는 깨끗이 치료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원수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고난당하는 자들을 자유케 해주시는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오늘날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와 자신의 양심에 죄를 짓고 죄악의 사슬에 묶여 괴로워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그 정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해방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엡1:7절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벧전1:18-19절에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원죄도 사함을 받지만 자범 죄도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면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남녀노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면 그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이같이 예수님께서는 마귀로부터 정신적이고 영적인 포로가 된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켜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이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눈 먼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에서 눈 먼 자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마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의 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후 그 회당장의 집에서 떠나가실 때에 두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성경 사복음서에서 소경이 치료받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후반부(막10:46-52절)에 등장하는 소경 치유 기적은 바디메오라는 소경에게 발생한 것이며, 눅18:35-43절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구걸하던 소경이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며, 오늘 본문의 소경 치유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요9장의 사건은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셔서 예수님께서 이같이 소경들을 치료하신 각기 별개의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마20:29-34절)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건기에 동쪽의 광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지면에 수분이 부족한 탓으로 땅에서 일어나는 석회석의 가루가 날라 옴으로 인하여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안질이 많이 발생하며 그로인하여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소경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두 소경은 예수님에게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다.
불쌍히 여기소서[헬, 엘레에손 !Elevhson]이란 =“자비”라는[헬, 엘레오스 ejvleo"]에서 유래한[헬, 엘레에오 ejvleevw]의 2인, 단, 1과, 능, 명령형으로 “우리를 가엾이 여겨 자비를 베풀어 치료해달라는 뜻인데 첫 글자가 대문자로서 강조형 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소경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을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는 불쌍한 처지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사오니 우리를 가엾이 여겨 주님께서 치료해달라는 거절할 수 없는 강청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의술이 발달하여 눈 수술 같은 것은 참으로 잘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의술로도 치료하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님께서 친히 치료하심으로 소경의 눈을 고치시는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저는 한 분의 간증을 들었는데 이 사람은 본래 시각장애를 앓는 자였는데 자신이 이스라엘의 여행을 가서 실로암의 못에 가서 씻으면 눈이 보일 것 같은 믿음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이스라엘을 가기로 결심을 하고 이스라엘을 간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사모하던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는 순간 진짜로 눈을 뜨게 되었다는 감격적인 내용의 간증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비되었던 영이 살아나고(엡2:1절) 하나님을 깨닫는 기능이 회복되어 예수님 안에서 영안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임시생명의 육신의 눈은 70-80 이면 사라지지만 그러나 영의 눈은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눈인 것입니다. 이같이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위대한 부귀영화 공명을 다 누렸다고 할지라도 그 인생 최후는 영원토록 불타는 지옥행인 것입니다.
이같이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해진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히9:27절)라고 했습니다. 전12:14절에 "하나님은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3: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중생하지 아니하면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가 없느니라. 는 말씀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 그 영이 중생함으로 영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께 나오는 자들은 영의 눈이 열리고 영생을 얻게 되어 사망에서 생명 길로 나아가고(요5:24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땅을 또한 새 예루살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계21:1-2절)
눈먼 자를 보게 하는 주님의 역사는 실제로 소경이 눈을 뜨는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영의 눈이 열려 영원한 세계를 바로보고 소망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 예수님께서는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 절에"눌린 자"란[헬, 테드라우스메노우스 teqrausmevnou"]라는 말은 "깨트리다, 억압하다, 산산히 부수다, 강타하다, 멸망시키다"라는 동사[헬, 드라우오 qrauvw]의 대격, 남성, 복수,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이는 악한 마귀에 의해서 또는 그 어떤 권세나 그 무엇에 의하여 철저히 짓이겨지고 망가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같은 상태에 있는 자를 자유케[헬, 아페시스 a[fesi"]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완전한 회복, 완전한 치료를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영으로부터 또한 어떤 권력이나 압력에 의해서 산산히 부셔지고 망가졌던 인생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치료되어지고 회복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는데" 이 같이 눌린 자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장로들의 유전에 눌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이 예수님께 돌아오면 장로들의 유전에서눌려서 살아가는 자들도 자유 함을 입게 되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도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행10: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의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니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 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압박에 있는 사람을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사람을 동원하거나 군사를 동원하거나 하늘의 군대도 동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오는 군사들을 대항하여 베드로가 칼을 들어 말고의 귀를 내리쳤지만 예수님께서는 말고의 귀를 붙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며 순순히 그들을 따라가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다섯째로 : 예수님께서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의 해는 50년에 한번 오는 희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오십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희년의 속죄 제사이후에는 전국에 자유가 선포되어 종도 놓아주고 땅도 돌려주고 모든 빚도 탕감해주는 대 속죄의 행사가 민족전체에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왔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3년 반 동안에 두루 다니시며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시고 모든 포로된 자들을 해방시키시고, 빚에 잡혔던 전토도 다 돌려주도록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의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는 말씀은 거짓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혜의 해는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으므로 영이 죽고 축복의 관계가 끝이 나며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사형선고를 받음으로 영원한 생명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세전에 예정과 선택하심을 받은 자가 되어(엡1:3-5절)
예수 믿는 믿음을(약2:1절) 선물로 얻어(엡2:8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요1:12절)
2).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로
들어갈 자들이 되게 된 것입니다.(요14:6절)
3).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망할길에서 생명 길로 옮김을 받게되었습니다.(요5:24절)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벌을 당할 자들이 영생에 들어갈 자들로 신분이
바뀌어(요3:16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5:17절)
5).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과 주님의 신부가 될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벧후1:4절)
6). 주님께서 공중강림 하실 때에 부활과 휴거로 올라가 주님의 신부가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살전4:13-17절)
7). 우리는 장차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도 다스릴 자가 될 수 있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계20:4-6절)
8).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속히 오리라고 하시며 행한 대로 상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계22:12절)
이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은혜의 해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먼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다시 찾았으며(엡2:1절)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1:12절) 에덴의 축복이 회복될 천년왕국을 다스릴 자들로 약속되었으며(계20:4-6절, 마19:28-29절) 영원토록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게 된 것입니다.(롬8:15-16절)
성경고전2:9-10절에서"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희년의 해와 같은 안전한 곳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이미 다 예비하신 은총 속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후6:2절에서는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권면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면서 은혜 받을 때와 구원을 얻을 때가 지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이나 고린도 교인들이 참으로 좋은 시기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공중에 강림하시기 까지는(살전5:23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만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지상에 재림하셨을 때에는(계1:7절) 이미 때는 늦은 시기가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금이 바로 그렇게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들이 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는 물론 죽음과 파멸의 문제까지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안에서 가난이 물러가고 축복받는 삶이 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질병과 저주는 물러가고 건강과 생명이 넘치는 삶이 되셨습니다.
슬픔과 절망은 물러가고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삶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회복될 에덴에서 왕 노릇할 자들이 될 것이며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자들이 되셨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이 헛되지 않도록 날마다 감사하며 기뻐하며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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