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오직 감사
눅 19:1-10
눅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추수감사주일은 한 해,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결실로 인하여 감사하는 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한 해 풍성한 결실을 주셔서 감사하는 것이라면 매해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교인 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해는 풍년일 수 있지만 어떤 해는 흉년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감사주일도 지킬 사람은 지키고 못 지킬 사람은 안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으로 위기상황입니다. 매해 감사주일을 지켜 왔지만 올 해처럼 나라가 힘들 때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게 된 해도 드물 것입니다. 풍성한 결실이 있었기에 감사하는 절기라면 올해는 교회적으로 추수감사주일을 건너뛰어야 할지 모릅니다.
내년 교회 달력에 이미 추수감사주일이 정해져 있는 것 아십니까? 추수 감사주일이 풍성한 결실을 주셔서 감사하는 주일이라면 어떻게 내년 추수감사주일을 지금 결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추수감사주일이 풍성한 결실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드리는 감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풍성한 결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올해 추수감사주일 표어를 ‘오직 예수, 오직 감사’라고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주일에 삭개오에 대하여 설교하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본래 감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모에 대한 깊은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이 세리라 당시 여리고에서 가장 나쁜 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삶의 존재이유는 오직 돈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져도 또 가져도 부족했고, 먹어도 또 먹어도 배고픕니다.
그런 삭개오가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뉴스 중의 빅 뉴스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변화된 사람이 너무나 많지만 유독 삭개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삭개오가 예수 믿고 변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고 당시 교회에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나 한번 보았으면 하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자기를 먼저 알아보시고 자신의 집에 머무시겠다는 말에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며,남에게 토색한 것을 4배로 갚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돈만이 유일한 기쁨이요 존재이유였던 삭개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오셨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이상할 정도입니다.
삭개오가 이날 예수님을 집에 영접하고는 세 가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고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죄인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확신이 삭개오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삭개오의 감사는 그의 삶에 계속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신 것으로 감사했을 때, 삭개오가 받은 은혜는 더 풍성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반응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에 모시는 영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셨으니 얼마나 확실합니까?
삭개오의 이후의 삶의 변화는 더 놀랍습니다, [클레멘트 교훈집]에 의하면 삭개오는 나중에 베드로의 선교여행에 동반했었고 가이사랴 지방의 감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중에 삭개오가 받은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셨지만 주님은 우리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삭개오처럼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분명히 만나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란 너무나 기뻐서 모든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고 모든 형편이 만족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이런 감사는 무엇을 많이 받았기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감사의 눈이 뜨이는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잃은 줄 알았던 자녀를 찾았을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게 됩니다.
죽을 줄 알았는데, 치유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 것입니다.
떠난 줄 알았던 사랑하던 사람이 돌아 왔을 때,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용서받았을 때, “감사합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어찌 온 국민의 형편이 다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국민이 “만세” 했습니다.서로 부여잡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을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은 우리 형편과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감사의 눈이 뜨였는가가 문제입니다.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
손기정 옹이 90세에 돌아갔는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세무사 사무실에 찾아왔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상금을 받았는데 세금을 내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연세도 많고 직업도 없으니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했더니, “그럴 수 없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고 살았는데, 세금을 먼저 내야지, 내가 이제 나라를 위하여 도움을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세금을 계산해 드리니, “고것 밖에 안 되나”서운해 하더랍니다. “더 낼 수는 없나” 하시기에 다시 계산해 드리니 흡족해 하시며 가셨다면서 그 세무사가 말했습니다. “나라가 없을 때를 살아본 분들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한 번도 대한민국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국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라도 있음을 감사하는 이들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들 합니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입니다.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절망, 분노가 드러난 단어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이해해도 이런 말이 두려운 것은 실제 지옥 같은 나라가 되어 보아야 자신이 얼마나 입으로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제기 나라 잃은 설움을 담아 당시 대학생들이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가 <희망가>이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이 아니 족할까”
그것을 안타까워했던 남궁 억 선생이 일본에게 나라의 영토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영토도 모두 빼앗겼음이 너무나 안타까워 팔도강산 구석구석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 앞마당에 민족의 혼이 담긴 무궁화를 심는 운동을 펼치고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입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 찬송은 곧 일제에 의하여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찬송 이 고백이 우리나라를 살렸습니다.
“사는 것이 지옥 같다!” 지옥에 가 보면 사는 것이 천국 같았음을 알게 됩니다.
깨닫고 보면 가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제목이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제목이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제목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쁜 일 보다 더 기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았고, 부활의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라고 고백되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오직 감사]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놀라운 것은 평생 계속되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렇게 감사하며 살려면 예수님을 단지 십자가 구원의 교리로만 믿으면 안 됩니다. 그 감격은 한 순간에 그치고 맙니다. 성령 체험에만 의존해서도 안 됩니다. 그 기가 막힌 감동도 순간에 그치고 맙니다. 세상 복을 받아 성공한 것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짜증이 나고 무의미하고 불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려면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게는 목사가 되는 것이 무거운 멍에였고, 목회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군 훈련 중 다리가 부러지고, 목발을 짚고 제가 사역할 교회를 찾고 찾아다니다가 저를 오라하는 교회가 어디에도 없음을 알고 낙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면 제가 일할 교회로 인도해 달라고 3개월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가 일할 교회를 허락하셨을 때, 제 마음에는 ‘힘들다, 어렵다, 못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어떤 일을 맡겨 주어도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3개월의 골방에서 주님만 바라보는 중에 제 안에 있던‘목회하기 싫어, 너무 힘들어’ 하는 마음을 다 제하여 주신 것입니다. 목회하는 길에 왜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저는‘힘들다, 어렵다, 못하겠다.’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았습니다. 고생도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학교를 갈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로 살면,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같은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리에 가도 늘 불평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 전도왕, 이병욱 장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란 책에서 “누가 머리를 때려도 “감사합니다!” 하면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삭개오의 감사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삶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감사하게 되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 60: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감사헌금을 재난당하고 살기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하여 전액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교회 교우 한 분에게 [오직 예수 오직 감사]의 고백을 예배 시간에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1부 박수만 권사 / 2부 박찬우 권사 / 3부 김애리 성도를 소개합니다.
박수만 권사 간증
계속되는 실직으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권고사직사유가 술을 먹지 않는 크리스천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라”
그런 가운데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이 스스로 영적으로 교만했음을 깨닫고, 편안한 삶을 목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는 최근, 지방의 작은 도시에 방앗간을 인수받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쉬운 결단이 아니었지만 주님이 가라 하심을 분별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의 기적입니다.
박찬우 권사 간증
20대 초반 군에서 기관총 오발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게 되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기도와 병원 원목님의 전도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더 이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되었고, 그 사고로 주님을 만났기에 변장된 축복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재활치료도 마치고 직장생활도 하게 되었고 늦은 나이에 행복한 가정까지 꾸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의 기적입니다.
김애리 성도 간증
최근 딸이 그네를 타다가 떨어져 뇌를 심하게 다쳐 대수술을 하였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만이 가득했을 때, 기도 체험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도 느꼈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더 깊은 기도와 은혜도 받았고, 네 번째 수술을 할 때는 북한에 있는 고통 속에 굶주린 아이들,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가엾은 아이들, IS에 희생되는 아이들 명절날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 우리아이들, 4천원어치 급식카드로 사먹을 것이 없어 모든 끼니를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아이들.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아이들. 수술 받는 모든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위해 기도할 마음도 얻었습니다.
그 후 주은이는 의사들이 상상 불가능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주은이를 통하여 김애리 성도는 기도의 눈이 뜨였습니다. 살아계신 주님과 대화하며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이제 감사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의 기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한 마음이 그렇게 뜨겁지 않다면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라”가 아닙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독생자도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늘 함께 하심에 감사하며 앞으로 주실 은혜 또한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겪는 어려운 일들에 대하여 조차 감사드립니다.
오늘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드려진 감사헌금이 쓰이는 곳에 은혜의 역사, 사랑의 역사를 일으켜 주소서.
대통령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야 할 것은 드러나야 하고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결단해야 하는 이 때 나라가 속히 정상화되게 하소서.
민족이 평화롭게 통일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에게 독수리 날개 치며 날아 올라가는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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