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막을 수 없는 신앙의 비밀 (창 11:1-9)

하나님아들 2019. 7. 17. 22:34

막을 수 없는 신앙의 비밀 (창 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이 시간에 “멈출 수 없는 신앙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 가운데 부레 없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상어입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상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는 거대한 고래에게까지도 도전장을 내미는 바다 생물 중 가장 힘이 센 강자가 됩니다. 우리 신앙도 막을 수 없는 신앙일 수는 없을까요? 그렇다면 참으로 위대한 영적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힌트를 주는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에 있습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막지 않고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건축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만약 막지 않으셨다면 이 땅에 적그리스도와 같은 괴물 중의 괴물 같은 나라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을 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을 덕을 세운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원어로 “오이코도메”(oikodome), 즉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oikos)와 ‘세운다’는 뜻의 “데모”(demo)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영화롭게 할 만큼 지어졌습니까?


멈출 수 없는 신앙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말씀의 감화입니다.


말씀의 감화를 받는 동안은 멈출 수 없습니다. 1절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 말씀은 언어에 그 비밀이 담겨 있음을 암사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노아의 자손들로서 말이 하나였기 때문에 소통에 지장 없었습니다. 더구나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이라 했듯 로빈훗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보호와 능력에 매료되어 구세주처럼 따랐습니다. 말이 갖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막4:24) 하셨습니다. 듣는 그것이 인격과 사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의 전진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듣고 간증을 듣고 서적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동기가 부여되고 믿음의 불이 타오릅니다. 도전과 자극을 줍니다.


왕하 12장을 보면 요아스라는 유명한 왕이 있습니다. 유다의 8대 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행하고 40년간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요? 그것에 대하여 대하24:2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어려운 일 당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고민하며 인간의 생각으로 행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마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감화를 끝까지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의 역사입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그들은 민족도 하나였습니다. 물보다 진한 동질성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생명적인 것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감화가 있는 동안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경외하게 됩니다. 또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부르심에 응하게 되며 목숨을 다해 충성하게 됩니다. 성령이 그렇게 귀합니다.


그래서 엡4:3-4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했고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야 함께 한 믿음과 한 비전을 공유하게 되고 한 소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최고의 비극은 성령 받지 않은 사람과 일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이 다르니 하는 일마다 충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성령을 주시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그 소원을 막을 수 없습니다.


3. 복음의 비밀입니다.


2절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시날 땅은 바벨론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넓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홍수 이후 산지라든지 협소한 곳에 살다 넓은 평원을 찾으니 얼마나 꿈이 부풀었겠습니까? 이 평지는 자신들의 뜻을 펼칠 광활한 무대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에게도 무대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를 알고 나면 그 안에서의 복됨에 있어서 가슴이 부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안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히 영화롭게 하셨고,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온갖 복을 주셨으며,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 것이요 주와 함께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하는 놀라운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골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했고, 이어 6절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권면했으며, 학2:7에 "모든 나라의 보배"라고 했고,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고 했습니다.


무엇에 가슴 부풀고 있습니까? 약4:13-14에 “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숨긴 보배에 눈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보배를 알면 우리 믿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귀해서 다른 것은 배설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13:44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했습니다.


4. 긍정적인 언어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보세요. 얼마나 열린 사고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3절에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그들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으려 할 때 재료가 문제였습니다. 탑을 쌓으려면 돌이 있어야 하는데 평지다 보니 돌이 없었습니다. 진흙밖에 없는 시날 땅에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운다는 것 미친 망상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 한 사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서로 긍정적인 말을 하며 어디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린 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졌고 드디어 재료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진흙 대신 아스팔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일반 벽돌이 아닌 당시 상상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강도 벽돌을 개발해 냈고, 노아의 방주를 모방하여 물에도 강한 역청을 사용하였습니다. 피라밋의 기초부에 쌓은 고강도 벽돌을 현대과학도 재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바벨탑은 더 높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긍정적이었고 딴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엄청난 파워입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대동아전쟁과 같이 큰 일통을 저질렀던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늘 믿음의 말을 하십시요. 그러면 계속하여 긍정적인 시각이 열리게 됩니다.


5. 위기의식입니다.


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불신앙의 소치지만 또 다시 대 홍수가 나면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저 살기 위한 주택이나 사치스런 건축물도 아니었습니다.


흩어짐의 불안감도 컸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번지수도 없는 미지의 땅에 흩어지면 찾을 수 없기에 사활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거대한 공사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북한에서 댐 하나 막는데 북한군인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활이 걸린 문제기 때문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목숨 걸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오락도 취미도 아닙니다. 사활이 달린 문제입니다. 나와 가족이 천국 가서 사느냐 아니면 영원히 보지 못하게 갈라져 흩어지느냐 신앙에 달렸습니다. 지옥이 있기에 심판이 있기에 더욱 위기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 위기를 깨달을 때 비로소 멈출 수 없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죄악의 바벨탑이 있다면 다 헐어버리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탑을 한 순간도 멈춤 없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늘 꼭대기에 닿도록 세워나가십시다. 믿는 자에게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기도로 믿음으로 목숨 바쳐서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하여 아무도 금지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불멸의 신앙의 탑을 세워 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