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회개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 세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18

III. 회개

회개와 자복

그리스도인치고 회개를 언급 않는 사람이 없으나, 그 회개가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회개를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 회개와 자복을 혼동하기 때문.

自服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엑소몰로게오의 세 가지 의미:

고백하다. 즉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

동의하다. 즉 다른 이가 지적한 자신의 잘못을 동의하는 것.

약속하다. 즉 앞으로는 바르게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

이들 세가지 의미의 공통점: 입으로, 말로 이루어진다는 것.

悔改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메타노에오의 의미:

180도 돌아서거나 길을 바꾸는 것.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는 것.

말이 아니라, 철저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

자복 자체가 회개일 수는 없음. 자복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회개. 자복은 시작점 점인 자복으로 시작하여 그어지는 선, 즉 지속적인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회개.

 

회개의 중요성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 3:1~2)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 4:17)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이 외친 메시지의 핵심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 메시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아무리 천국이 임해도 죄와 사망의 길로 치닫던 인간이 천국을 향해 돌아서는 회개없이는 천국을 얻을 수 없음. 회개는 하나님나라의 전제조건.

믿음은 주님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돌아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함.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 ( 11:20~24)

망할 것, ( 13:1~5)

주님께서 촛대를 옮기실 것. ( 2:4~5)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과 신뢰를 받는 것은 다른 말. 부모가 모든 자식을 사랑하나 모든 자식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사랑하시나, 신뢰하시는 사람은 따로 있음. 신뢰받는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확실히 돌아서서 더 이상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회개의 사람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3:19)

성령과 동행하는 삶 즉 성령 충만한 삶, 영육 간에 새로워진 삶을 위해 회개가 필요.

새로워짐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나프쉬크시스시원함을 뜻하는 단어. 회개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던 죄의 중압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시원해짐.

회개하지 않으면 주의 신뢰받는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없고, 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영육간에 시원한 삶을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얻거나 누릴 수도 없으며, 마침내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영원히 멸망할 따름.

그래서 예수님 공생애의 첫 명령이 회개하라 즉 돌아서라는 것. 믿음은 돌아서는 것이요, 돌아서는 것으로부터 믿음이 시작되기 때문.

 

세례 요한의 회개 촉구

입과 말의 자복이 아니라, 삶과 행동을 통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한 세례 요한. 회개는 반드시 행동으로, 삶으로 드러나야 함을 강조. ( 3:7~9)

경제력 있는 사람의 회개는 자신의 여유분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는 것. ( 3:10~11)

자신의 자리를 이용하여 치부하던 공직자의 회개는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 ( 3:12~13)

권력자의 회개는 더 이상 권력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의 선한 청지기로 사는 것. ( 3:14)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복하였을 뿐 회개로 이어지지 않음. 질책과 명령만으로는 회개를 이끌어낼 수 없음을 증명. 우리의 예배에서 찔림을 받고 자복하여도 예배당 밖에서 회개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

 

예수님이 이끄신 회개

1. 아리마대 요셉과 산헤드린 당회원 니고데모의 회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시신을 인계 받아 수습하여 자신을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모신 사람은 아리마대 출신의 거부 요셉. 유대의 장례법에 따라 값비싼 향품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한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원 니고데모.

이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일신 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삶에서 돌아서는 회개에서 비롯된 일.

이들의 행동이 회개 없이 될 수 없는 일인 이유

① 제자도 믿지 않던 부활을 당연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했던 새 무덤과 값비싼 향품을 기꺼이 내놓음.

② 생전에 장만한 자기의 무덤에 대한 애착을 떨치고 기꺼이 예수님께 내놓음.

③ 국사범으로 사형 당한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할 경우 기득권층으로부터 돌아올 후폭풍을 감수.

자신들의 중심을 받아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예수님을 실제로는 따르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회개의 실천.

2. 세리 삭개오의 회개

 그의 집에 유하시겠다며 들어가신 예수님께 자발적으로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부당하게 탈취한 재산은 네 배로 갚겠다 약속한 삭개오. ( 19:5~9)

 신체적으로 피해의식을 가지며, 식민국의 앞잡이라고 경멸 받아 오직 재물만을 우상으로 삼았던 삭개오를 위해 사람들의 비방을 감수하시며 그의 집에 유하시며 함께 식사하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그의 우상이던 전 재산을 다 내놓을 각오를 하게 만든 회개.

3. 사형장의 백부장의 회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공개적으로 선포. ( 15:37~39)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의 판결이 의롭지 못하다는 공개적인 비판. 이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동반한 회개. 십자가에 못박는 그와 군인들을 책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허물과 무지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까닭.

4. 강도의 회개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하였으나 ( 27:38~44) 한 강도가 회개하고 다른 강도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함. ( 23:39~43)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여섯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구도 원망 않으시며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깨닫고 자진하여 회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책망하시거나 질책하신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이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회개하였음.

자복이 회개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자각이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 줄 것.

 

말씀 속에서 살펴본 회개

1. 탕자의 회개 ( 15)

 자신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여 탕진한 뒤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바른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함이며, 본질적인 회개가 될 수는 없음. 아버지가 그가 말한 대로 종과 같이 대했더라면, 배고픔이 해결되는 대로 다시 가출할 기회만 노렸을 것.

멀리서 오는 그를 먼저 알아보고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준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게 됨.

 이와 같이 어떤 이유로 교회의 문턱을 넘었든,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깨닫기 전까지 누구나 회개의 삶은 불가능함. 단편적인 자복일 뿐.

2. 바울의 회개의 삶

 그 어떤 박해나 기근, 그 무엇이나 그 누구도,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신을 끊어낼 수 없다고 증언하는 바울. ( 8:35~39) 하나님의 사랑에 날마다 깨어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회개의 삶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었음.

 원래 교회를 짓밟던 사람, 그리스도의 대적이요 폭도이던 사울 ( 9:1~2)

 그런 그를 다메섹 도상에서 건지신 주님. ( 9:3~7) 무리 중 오직 그 하나만을 건져주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셔서 창세전에 자신을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예정해 주셨음을 고백. ( 1:3~5) 이 고백은 주님 안에서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여 얻은 해답.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나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을 바르게 이해.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그저 주신 선물 ( 2:8~9)

 예수님께서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주셨기에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얻고 누릴 수 있었음을 깨닫고, 일평생 지중해를 누비며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한 바울. 바울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 5:7)

 누룩 없는 자 = 죄에서 해방된 사람.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 옛 삶을 내버리라. 즉 회개의 삶을 살라. 하나님의 심판을 넘어가게 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와 같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를 넘어가게 해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사람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는 회개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음.

 우리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 속에 거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이 되는 것. ( 2:20) 구속, 대속, 속죄를 뜻하는 영어 atonement = at + one + ment. 주님으로부터 구속 받은 사람은 주님과 한(one) 상태(ment) (at) 즉 같은 상태에 있음을 뜻함. 주님의 죽음과 atonement가 이루어지니 결과적으로 주님의 부활과도 atonement가 이루어짐. 그래서 바울은 자기 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았고 회개의 삶으로 일관.

 죽음, 부활, atonement가 일어나면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음. ( 5:24)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되돌아보면 자신이 주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착각하게 됨. 따라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에 전력한 바울.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회개의 삶을 살 수 있었음.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남긴 서신 디모데 후서에서 겨울 옷이 없어 그것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며 추운 겨울을 보내는 바울이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 (딤후 4:6~13)

 로마서 8:29~30 로마서의 핵심. ‘복음의 황금사슬

 하나님의 先行的 은혜 (칼뱅):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기 위해 그 어떤 시도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擇定해 주신 것.

 불가항력적 은혜 (칼뱅):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 누구도 막을 수 없음. 각자의 형편과 특성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부르심.

 하나님의 필승불패의 은혜 (칼뱅): 우리를 택정하시고 부르신 까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기 위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제물 삼아 우리의 죗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더러운 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 이 세상 그 무엇도 인정 받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음.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영화롭게 해주셨음.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안다면 회개의 삶으로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음.

 회개의 삶이 수반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

3. 찬송가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을 통해 본 회개

 남북전쟁 참전 상이군인 다니엘 웹스트 휘틀의 찬송. 성한 사람, 잘난 사람 다 두고 성치 않은 자신을 구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평강과 깊은 사랑, 믿음이 더 깊어지게 하시는 하나님 주신 감동, 주의 재림 또는 자신의 소천의 때를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실히 안다고 고백하는 휘틀의 삶은 회개의 선으로 계속 이어졌을 것.

 

결론

1. 회개는 인간의 행위 이전에 인간의 중심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

 겉으로 드러난 현상 (잘못된 행위)에 집착하지 말고, 그 현상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2. 회개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어 있음.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회개의 삶. 하나님의 바른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자복이 바로 회개로 이어지게 됨. (요일 1:9)

3. 다른 사람을 회개로 이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자신의 삶.

 회개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철학,

 회개를 명령하는 것은 율법.

 회개의 동인인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복음.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때,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자식의 삶이 새로워짐. 주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만약 내가 지금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시기 때문. 그 사랑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