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복 (이재철 목사 저 성숙자반 둘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17

II.

祝福

복은 하나님의 After Service.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복을 사모하여야 한다.

그러나 복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기복주의는 문제.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복 안에서만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복을 사모하여야 함.

축복은 복을 구하다혹은 복을 빌다는 의미.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사용 가능.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단어 선택.

 

복의 문자적 의미

1. 창대함, 번영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2)

복 주다의 히브리어는 바라크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됨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나라들이 창대하였음. 기독교 국교화 이후의 로마제국, 종교개혁 이후의 독일, 영국, 청교도 이주 후의 미국 등.

 그러나 창대함은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복의 본질이나 목적은 아님. 세상의 창대함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창대함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됨.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는 기복신앙일 뿐. 창대함과 번영을 얻을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됨.

2. 행복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 10:13)

 행복의 히브리어 원어 토브는 복이란 의미.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행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하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행복을 누리는 것.

 부모가 억만금을 남겼더라도 그로 인해 형제간의 행복이 깨져버린다면, 그것을 절대 복이 아님.

3. 선함, 아름다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33:19)

 선한의 히브리어 원어 투브의 뜻은 복.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니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 10:11)

 히브리어 투브아름다운으로 번역.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은 그 삶이 점점 아름답게 변함.

 자신이 하나님 주신 복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자신의 주위에 아름다운 생각과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살펴보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선하고 아름답게 쓰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주위 사람들 가운데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새로워지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

4. 바른 길, 正道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 23:19)

 바른 길의 히브리어 데레크역시 복과 관련된 단어. 복은 매사에 정도를 걷는 것.

 정도를 걷지 않은 상태로 주어진 창대함과 번영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님. 오히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증거.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불의의 손에 내버려 두시지 않음.

 그리스도인이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욕망을 위해 창대함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탓.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정도를 걷고 얻은 결과에 만족. 정도를 걷고 얻은 열매만이 진정한 자신의 것.

 쌓아두는 것을 목적으로만 삼으면,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것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것.

5.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다

 솔로몬이 일찍이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다섯 규빗이요 너비가 다섯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에 두었더니 그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대하 6:13)

 무릎을 꿇고의 히브리어는 바라크” ‘복주다는 의미. 복은 매 순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

 만일 자신의 일이 너무 창대해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여유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시간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 아님.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께 더욱 무릎 꿇음.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30:7~9)

 아굴의 두 가지 기도제목 진실하게 살게 해주시길. ② 필요한 것만으로 자족하게 해주시길.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는 것이 복이 아님.

 세월을 아끼라” ( 5:16)

 아낀다는 것은 절약한다는 뜻이 아님. ‘아끼라의 헬라어 엑사고라조건져 올리다는 뜻. 자신의 시간을 진리로 건져 올리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은 허망한 것이라는 뜻.

 이 세상을 떠날 때 물질적인 것은 모두 두고 떠나야 함.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진리로 건져 올린 시간,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 삶뿐.

 

그러므로 정도를 걸으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진리를 좇아 선하고 아름답게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복되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복

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 12:1~4)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간 것.

2.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복

 가는 곳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복된 사람이었음.

3.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믿음의 정도를 걷는 복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13:17~18)

 종과 횡으로 다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나 땅을 갖기 위해 뛰어다니는 대신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 헤브론의 뜻은 교제의 자리’. 마므레의 뜻은 뜨거운, 열렬한, 활발한

 세상의 땅을 목적으로 삼으면 잠깐의 화려한 삶과 허무한 끝이 있으며 건져 올릴 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세상의 땅 대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믿음의 正道를 택한 아브라함. 후일 그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이 되었음.

4. 행복을 누리는 복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서 태어날 때에 그의 나이 백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나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 21:5~7)

 사라에게 행복의 웃음을 주신 하나님. 이삭의 의미는 웃음. 세상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믿음의 정도를 선택한 아브라함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었음.

5. 선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복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 22:5)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삭이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종들에게 말한 아브라함의 믿음.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그의 자식에게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임을 믿었으므로, 이삭이 죽게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임을 믿음.

 선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지녔다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뜻을 갖고 계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음을 의미.

 

아브라함은 당대에 큰 민족을 이루지도 못했고 그의 이름이 창대해지지도 않았음. 생전에 누린 복은 모두 영적인 복. 그 결과로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칭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 있는 사람

예수님의 최초의 체계적인 설교 산상수훈, 그 산상수훈의 첫 부분이 팔복.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체계적인 첫 설교의 주제가 복이었음.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복을 그릇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

 

산상수훈의 팔복

1. 심령이 가난한 사람

 가난한 심령은 자기자신, 즉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를 의지하지 않는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에게 절망한 사람.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복된 사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계획이 무산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 그때야말로 자신에 대해 절망하면서 지극히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기 때문.

 부유하여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는 복이 아님.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 인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복.

 있는 것, 누리는 것을 감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믿음이지만, 없는 것을 감사하는 것은 더욱 성숙한 믿음.

 자신에게 없는 바로 그것이, 자신의 심령을 가난하게 해주어 소망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게 하는 하나님의 복.

2. 애통하는 사람

 애통하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비통하게 우는 것. 애통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을 것이므로 복이 있음.

 예수님의 세 번의 애통.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것 때문에 애통해 하셨을까? 예수님의 애통함은 행하신 수많은 표적들을 보고서도 여전히 메시야를 믿지 못하는 인간의 믿음 없음을 비통해 하신 것.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코 앞에 닥친 멸망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명을 허망하게 갉아먹고 있는 예루살렘 성민에 대한 연민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심히 슬퍼하고 고민하시며 우심.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때 예수님의 심령을 하나님의 위로로 채우심.

 하나님의 위로는 구체적인 소망이요 능력. 애통은 하나님의 위로를 담는 은총의 그릇.

 자기 애통으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하나,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로 채움 받기에, 애통하는 만큼 그 결과는 상황의 극복으로 나타남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음.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할 때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될 것.

 누군가를 위한 나의 애통을 통해 그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하나님의 때에 임한다는 사실을 어떤 형태로든 확인하게 될 것임.

3. 온유한 사람

 온유에 대한 오해. 온유는 우유부단한 성품을 일컫는 말이 아님.

 온유의 헬라어 프라테우스는 야생동물의 품성을 의미. 야생동물의 거친 품성을 지니되 훈련 받아 그 품성을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사용한다는 뜻. 주인이 명하면 화살이 쏟아지는 적진으로도 뛰어들고, 날뛰고 싶어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참는 그 품성이 프라테우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우나 때론 폭풍과 같이 거세기도 함.

 믿는 자를 격정적으로 사냥하다가 주님에 의해 조련되어 주님 안에서 온유해져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은 바울의 온유함.

 약한 자들을 위한 산들바람이셨으나, 성전 장사꾼을 몰아내실 때에는 질풍노도와 같으신 예수님의 온유함.

 온유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불의가 없어지고, 온유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정화됨.

 온유한 사람만 진리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음.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심. 성경에서 예를 든 온유한 사람은 둘뿐. 예수님과 모세. 그러나 예수님도 모세도 땅을 소유한 적이 없음.

 땅의 헬라어 는 땅 외에 나라, 세상을 의미. ‘받을 것임이요의 헬라어 클레로노메오상속받다는 의미. 즉 온유한 사람은 세상을 얻는다, 반드시 세상을 얻게 해주신다는 말씀.

 주님 안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살면, 세상을 떠난 후에 오히려 세상을 얻을 것.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살아있다는 진정한 증거는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데 있음.

 무엇에 굶주리고 무엇에 목말라 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국가의 역사가 달라짐.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 그들에 의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일구어지고 그래서 그들은 복되다.

 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좇는 것. 이들은 배부를 것이므로 복되다. 육체의 배부름이 아닌 영혼의 흡족함. 영혼이 흡족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윤택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 감옥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4:4) 권면한 바울의 상태.

 흡족한 영혼으로 흡족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흡족한 삶의 의미를 누리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흡족한 의미를 누리는 것.

5. 긍휼히 여기는 사람

 긍휼히 여기다의 헬라어 엘레에오는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

 긍휼은 하나님 안에서 절대적인 부요함을 누리는 사람만 베풀 수 있음. 지닌 것이 많아도 상대적 빈곤감 속에 사는 사람은 긍휼을 베풀 수 없음.

 긍휼과 값싼 동정의 구별법은 지속성 여부.

 누군가에게 긍휼은 베푼다면 그 동기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긍휼임을 잊지 말 것.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긍휼: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신 긍휼. 나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과거에 대한 편견으로 나를 판단치 않으시는 긍휼,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어주시는 긍휼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긍휼을 베풀수록 나를 위한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될 것. 이것이 곧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말의 뜻. 그래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복이 있음.

6. 마음이 청결한 사람

 하나님을 볼 것이므로 복이 있다 하심.

 예수님 말씀하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자기 영혼의 카메라를 하나님께 맞추어 하나님의 청결하심이 자신의 마음을 통해 드러나게 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보는 TV를 위해 내 카메라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내 영혼의 초점을 하나님에게 맞추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순결하심이 나의 마음과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청결한 사람이 되는 것.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마음의 청결. 영혼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출 때, 하나님의 청결함이 드러나면서 하나님에 의해 청결해짐.

 하나님께 영혼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기에 복되지 않을 수 없음.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 16:7)

 양심의 히브리어 킬야는 몸 속의 장기를 뜻함. 따라서 심장으로 번역함이 더 좋을 것. 잠자는 동안 어떤 노력이 없음에도 뛰고 있는 심장, 그렇게 뛰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다윗은 심장의 고동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들음. 우리도 그런 삶을 살 때 청결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사람이 될 것.

7. 화평하게 하는 사람

 화평의 헬라어 에이레네는 평화, 평안이라는 뜻도 있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평화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화평하게는 사람 즉 평화를 실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심.

 화평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 가운데 무엇을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함. 평화를 외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평화를 위해 자신의 것을 손해 보려 하지 않기 때문.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화평하시기 위해,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놓으심. 누군가와 화평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화평한 삶을 사는가, 화평을 위해 얼마나 자신의 것을 포기하느냐로 드러남.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전 10:33) 즉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 누군가와 화평하기 위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그의 유익을 구할 때 그가 구원받을 것이고 자신은 복된 사람이 될 것.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

 헬라어 원문은 현재완료형. 즉 지금까지 계속 박해 받고 있는 사람이 복되다는 말씀.

지금도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려 하면 어떤 형태로든 박해와 불이익이 따름. 그것을 감내하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천국을 얻었기에,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 구별할 수 있고, 그렇기에 세상의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음.

 

결론

1. 예수님 설교하신 여덟 가지 복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복

 물질적 풍요나 세상의 출세를 복이라 하신 적이 없으신 예수님. 복에 관한 설교는 천국으로 시작하셔서 천국으로 끝내심.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영원한 삶을 목적으로 삼는 것.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을 얻고 영원을 누리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2. 하나님의 말씀을 좇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

 세상의 억만금의 종착역은 공동묘지일 뿐.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천국을 목적으로 삼아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을 얻고 영원을 누릴 수 있음.

3.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시가 복

 일평생 육체의 연약함 속에서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바울의 가시. 그 가시가 바로 바울을 영원한 사도로 세워 준 하나님의 복.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6~8)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건져 올려진 복된 삶. 그는 오늘도 천국에서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에도 영원히 살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