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의 조건 (2)
1.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정우성과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는 몇 트럭이 될 수 있어도 정우성이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는 없을 수 있는 것이며 수지와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몇 트럭이 되어도 수지는 다 싫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인이란 둘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보통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휴거된다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이면 다 예수님이 사랑할까요? 기본적으로 사랑은 하시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주님이 교제를 하고 싶어도 딴 길로 새서 딴 짓을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목회자도 사역자도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도 목사들을 비난할 수 있고 목사들도 평신도를 비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도 그런 죄를 짓는데 하물며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알면서도 억지 춘향격으로 그들과 하나되는 혼인을 하셔야 할까요?
예수님이 팔려가는 신부인가? 마음에 기뻐하지 않으시는 자와 혼인을 하실까요? 하나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죄가 있으면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든지 하나님이 거부하실 것입니다.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고통을 새롭게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내가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너를 위하여 죽었는데 너는 어찌 죄만 짓느냐?
라고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일은 다 잘 한 일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한 시간도 기도하지 못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리도 고통속에서 기도하는데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한다는 것이냐? 물론 성령을 받지 않은 그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는 하실 것이지만 마음은 상처받으시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이실 리가 없습니다. 모닥불 근처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할 때에 주님은 기뻐하셨을 리 없습니다.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을 긍휼히 여기실 수는 있지만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은 죄악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시편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 여기서 유한다 라는 말은 거한다 라는 말이다. 즉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 죄악을 회개하고 이겨야 하는데 믿음이 있다 하고 죄와 함께 거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예수님과 혼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는 빛나고 깨끗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니 혼인잔치에서 쫓겨날 것이며 (마태 22장) 그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사 입게 하시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지 못한 것입니다.
왜 못 입는 것인가요? 없어서 못 입는 것입니다.
주셔야 입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지 않으시므로 입을 옷이 없습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입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들을 일일이 결정하시고 그들의 옷을 준비하신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비유에서는 쫓겨나지만 실제 휴거되었다가 다시 땅에 내쳐지는 일은 없고 아예 휴거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하고 온전히 순종하시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죽으셨고 하나님이 그 결과 죄없는 자들, 정결한 자들을 신부로 맞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당신이 당한 고통을 하나님 아버지도 아시기 때문에 그 고통을 기쁨이 충만한 혼인에 생각나게 하는 자들을 혼인잔치에 오라고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일화에 의하면 베드로는 도망가는 길에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셨다고 합니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너를 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간다는 말은 실제 이야기인 것같지는 않지만 이 경우도 예수님은 다시 베드로의 죄를 담당하려 하시며 그 죄를 감당하는 고통까지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들은 누구든지 예수님께 고통을 안겨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감히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예수님께 하나됩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을 우리는 정신나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더 사랑하시던 자들이 있었다.
예수님도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사랑하시나 특별히 더 사랑하시는 자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사랑하신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가 있었습니다. 간구하러 온 자들 중에 "자녀를 위하여 제가 비록 개로 보일지라도 저에게 주님의 적은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주시기를 구하나이다." 라고 부르짖은 수로보니게여인을 아마도 더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 믿음에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정이 있으신 분이시고 더 사랑하는 자가 있으실 것입니다. 혼인잔치까지 사명감으로 하셔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다 휴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마치 하나님 앞에서 휴거직전 시위라도 하는 것같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그런 말이 감히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옛날에 폭군은 자기가 원하는 여자를 마음대로 취했지만 오늘날 결혼식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슬람은 여자를 재산 목록으로 취급하겠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렇게 보시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그리스도인도 함부로 마음대로 예수님은 내 마음대로 해주실 것이다 라는 철부지같은 말을 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시고 왕이신데 그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마음대로 선택하실 수 없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희생의 제물이 되신 때를 늘 기억나게 하는 자와 혼인하실 수는 없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자는 다 휴거되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마음에 합한 자만 고르실수 있고 그것이 휴거의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말과 행실과 생각과 마음과 행함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합당할 뿐 아니라 같이 있고 싶어 하실만한 그런 자가 휴거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런 자는 이미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에 불쌍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말잔치만 벌이고 지식을 쌓는 것이 신앙의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셨는데 그들 중에 더 사랑하시고 아끼신 세 명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요한은 깊은 심성을 가지고 몇 십년 후에 또 다른 새로운 계시를 예수님께 받아서 교회에 전달했고 그것이 마지막 계시이고 우리 시대에 그것을 읽고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내 말씀을 맡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알고 주님을 팔아 장사나 하는 자들, 자기 배나 채우는 자들이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절대 없습니다.
주님이 열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에 머무르는 만큼 진리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스스로 물어봅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곧 나의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휴거의 최종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이런 정결함을 유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착각하는 말들을 이제는 그만 둬야 될 것입니다. 거짓된 말, 착각의 말은 남을 미혹하고 휴거를 위하여 올바로 준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입니다. 나를 기뻐하시는가 입니다. 그것에 촛점을 맞춰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사랑하셨고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 라고 외치고 자기가 쓴 서신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사랑하시는 제자 라고 자신을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예수님의 품에 자연스럽게 의지하여 누워있었을까요? 예수님과 사도 요한 사이에는 어떤 거치는 것이 없었던 것같습니다.
사도 요한도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화에는 그의 목을 자르려고 하니 도끼가 튕겨져 나오고 뜨거운 기름에 넣으니 안 죽고 해서 할 수 없이 유배를 보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 능력으로 그 사랑하시는 자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또한 그 사랑하시는 육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귀중한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맡기는 법이겠지요. 예수님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프게 하지 않고 잘 따라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구조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말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이다(요한복음 14:21)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진리를 분별을 못하고 거짓을 참으로 말한다면 그가 정말 예수님과 사랑하는 자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나는 주님을 사랑해 라고 하지만 그 입에서 거짓이 나오는 자는 아직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교제의 단계에 돌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내놓는 말들이 그 사랑하지 않음의 증거입니다. 자기 생각에만 충만한 자를 예수님을 사랑하여 마음을 다 바친 자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임이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니라.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 모습을 보여주시는 그런 자들이 바로 휴거될 자들입니다. 휴거의 그 날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올바로 알고 또한 실천하고 순종하며 예수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성경을 지식으로 보고 철학자는 될 수 있고 달변가도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끝없는 논란에 빠진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그런 칼싸움 장난을 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위하여 죽기도 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환란을 거치지 않게 하고 그들을 하늘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것이 휴거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하나님이 허락하사 그 휴거된 자들, 그 귀하신 아들과 혼인하게 하시는 자들이 이런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것처럼 휴거되는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 정도의 사랑과 충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일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 환란기에 죽는 것은 몸이 죽는 것이니 휴거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순교가 아니니 순교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파 베드로가 있었으나 사도 요한은 자기를 늘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하고 예수님을 갈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가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혹시 누구든지 휴거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벗고 있다가 옷을 입는다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서 억지로 해석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엉터리 해석이죠.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제자는 그 누구보다 먼저 주님을 파악하는 자입니다. 휴거는 세상이 모를 때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휴거될 때에 분명히 그를 부르시는 음성이 있을 것이며 그는 듣게 될 것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네가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고 너는 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있다. 이제 너에게 정결한 흰 옷을 주노니 네가 입을 것이니라. 너는 나와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주는 자로다.
이런 음성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솔로몬이 지은 아가서가 성경에 있는데 그 무엇보다 정결하고 거룩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더럽고 음란한 탐욕을 사랑이라 포장하여 보여주지만 말입니다. 음란한 춤을 추면서 지금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한국의 요즘이 그렇습니다. 한국이 영적으로 타락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인데 이는 결국 환란기를 앞당기는 것입니다. 환란기의 시작, 곧 인을 떼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대로 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실 때에 그 인을 떼시고 환란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주님의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실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은 거룩한 곳이고 정결한 곳이기에 더러운 것이나 누추한 것은 전혀 그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예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내가 지금 이대로 천국에 가면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휴거란 살아있는 몸 그대로 변화되어 (아마도 휴거가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열 가지 회개하지 않은 죄악이 생각나고 회개하는 그런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들어갈 수는 없는 곳입니다.
(3으로 계속) //function showSideViewForScrapInfo(curObj, userid, planetUserid, targetNick) { var sideView = new SideView('nameContextMenu', curObj, userid, planetUserid, '\uB9C8\uC9C0\uB9C9\uBD80\uD765', targetNick, '1J11e', '', '\uBE5B\uACFC \uD751\uC554\uC758 \uC5ED\uC0AC (\uC131\uACBD\uC5F0\uAD6C, \uD504\uB9AC\uBA54\uC774\uC2A8, \uC77C\uB8E8\uBBF8\uB098\uD2F0)', "unknown"); sideView.hideRow("member"); sideView.hideRow("planet"); sideView.showLayer(); } function winPopup() { window.open('http://cafe.daum.net/_service/home?grpid=1Qagd', 'DaumPlanet', 'width=936,height=672,resizable=yes,scrollbars=yes'); return; }출처 :오직 십자가 원문보기▶ 글쓴이 : 이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