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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사람 모세 (히 11:24-29)

하나님아들 2019. 1. 20. 21:15

믿음의 사람 모세 (히 11:24-29)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 시간에 “믿음의 사람 모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세 사람을 들라하면 모세 다윗 아브라함을 들고, 두 사람만 들라하면 모세와 다윗을 들고, 한 사람만 들라고 하면 모세를 들 정도로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존경 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일 뿐 아니라 모세오경을 읽을 때마다 모세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34:10-12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시는 대로 모세는 박해시대에 히브리인으로 태어나 나일강에 버려졌으나 애굽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40년간 애굽의 왕궁에서 특별한 양육을 받았고, 40년은 도피자로 광야에서 양을 치며, 그리고 40년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한 이스라엘의 목자로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보여준 믿음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위대한 믿음은 죄악을 거부하는 믿음입니다.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이 말은 애굽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모세를 키운 바로의 공주가 투트모세 1세의 딸 하셒수트 공주였습니다. 하셒수트 공주의 아버지 투트모세 1세는 정실부인을 통해서 4자녀를 낳았는데 3자녀를 모두 죽고 공주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녀는 왕위를 이을 유일한 법적인 상속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였기 때문에 후처가 낳은 아들과 결혼을 해서 왕위를 잇게 했는데 그가 바로 투트모세 2세입니다. 그런데 투트모세 2세 역시 하셉수트를 통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 하나만을 낳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이 공주의 양자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공주의 딸 즉 누이와 결혼하여 왕위를 잇든지, 아니면 공주의 딸이 다른 후처가 낳은 아들과 결혼을 해서 그가 왕권을 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왕위를 얻기 위해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바로왕 투트모세 3세가 되느냐? 후처의 아들이 투트모세 3세가 되느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만히만 있어도 왕위를 물려받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모세는 장성했고 라이벌이 되는 후처의 아들은 어린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한 말씀처럼 모세는 장성한 왕자였고, 또 공주의 아들이라고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는 말씀에서 엿보이듯이 그 공주가 모세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주의 아들이기를 포기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모세,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애굽의 왕위는 네 거야.”하는 공주의 슬피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처럼 거절을 잘 해야 위대한 믿음입니다. 무엇을 거절해야 합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애굽 생활을 죄악의 낙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죄악을 거절해야 합니다. 아직도 세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에미 카마이클은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살피라 그리하면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리라”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빌3:19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런 상태라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듯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행2:40).


모세가 그랬듯 성도가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깨끗하게 됩니다. 그 심령에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22:14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했습니다.


그리고 딤후2:21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믿음이란 먼저 엎디어서 자기 심령을 씻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본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세상의 영화보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더 사랑했습니다. 모세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능욕 받는 자기 백성 편에 선다는 것은 애굽에 대한 배신이요 역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이것은 모세만 갖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면 그것이 위대한 은혜를 불러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하고 생활 속에서 찬송하며 사는 것, 그것이 특별한 것입니다.


다윗이 양을 치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다가 큰 은사를 받아 위대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들도 그렇게 하면 영권이 임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사40:30-31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이 땅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함에 게으르면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도 대학 4학년 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으로 죽어갈 때 그는 그 절망 속에서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바른 신앙을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2년 후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말끔히 치료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대 그룹의 회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한 해 동안 사회를 위해 봉사한 금액이 상상할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22:4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했습니다. 재물 영광 생명, 생명 속에는 건강도 들어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고라자손들도 시편 84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10-11절) 노래했습니다.


3. 위대한 믿음은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입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출애굽기의 모세 기사에는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이야기에 그리스도를 삽입해 넣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 이야기를 통해 예수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예표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남자들 군대 이야기라고 합니다. 남자만의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군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군가도 썩 잘 부릅니다. 나라 위해 기도도 많이 합니다. 군방문을 위해 가는데 사모님들이 군가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잘 부르는지 놀랐습니다. 그것은 몸은 떨어져 있었어도 마음으로는 군대생활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두 아들 군복무 마치도록 예비군 군종으로 봉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차이고 희생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수고와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고,


벧전4:12-14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 비친 영광의 광채는 바로 주님을 위한 고난과 사명에 동참한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간편하게 믿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나의 희생을 바치고 하나님의 일에도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4.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믿음입니다.


28-29절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하나님과 동역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하나님과 동역했다는 것입니다. 그 강한 애굽의 권세와 싸워 이스라엘을 구한 것도 하나님과 동역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40년 전 자기 힘으로 하려다 실패한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 내가 하겠다고 청사진 다 그려놓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비전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기도하며 준비 열심히 하되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하고 시키지 않으시면 가만 있으면 됩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쓰시기 시작합니다.

 

시123:2에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 본다고 한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동역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이런 기도는 불충입니다. 매일 매시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만 찾아도 상을 주시는데 위대한 믿음을 본 받는다면 더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모세의 믿음을 본 받아 세상 죄악과 결별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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