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성도 (엡 5:25-27)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간에 “영광스러운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해서 정적들을 죽이고 전쟁하면서까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지만 그것은 곧 썩어지고 사라질 헛된 영광일 뿐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보니까 최고의 영광은 교회의 영광이고 곧 성도의 영광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는 그의 마지막 임종에서 성도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1899년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그의 아들 윌은 복도 건너편 아버지의 방에서 무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지가 물러간다. 내 눈 앞에 하늘이 열려 있다.” 그때 윌이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더니 무디가 말하기를 “이것은 꿈이 아니다. 윌, 정말 아름답다. 정말 황홀하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 나는 가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무디는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게 행복한 모습으로 의식이 끊어졌습니다.
무디의 주치의가 구명 노력을 하자 다시 살아나 자기가 이 세상 바깥에 갔다 왔노라고 말하면서 “나는 천국의 문 앞에 갔는데 그 곳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며 먼저 간 친지들도 만났다.”고 말하면서 “무엇으로도 나를 더 이상 잡아 둘 수 없다. 마차가 방안에 와 있다.”고 말하며 소망 가운데 운명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간증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 살아난 다음 무엇이라 했나요? 고후12:4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거나 육신을 입어서 그 영광을 보지 못하지 육신을 벗는다면 그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럼 성도가 영광스러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엡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는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교회는 주님의 영광만큼 영광스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니 예수님만큼 영광스럽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 이름으로 나가면 같은 권세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과 똑 같이 대접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이렇게 한 몸이기 때문에 주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고, 주님의 거룩이 곧 우리 거룩이고, 아버지께서도 우리들을 똑 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고전1:30-31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엡1:23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충만하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충만하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리상 머리와 몸은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고 누리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듯 성도 역시 영원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듯이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듯이 성도 역시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하신 의미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몸의 신비 속에 놀라운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몸이라. 나는 예수 이름이라." 이렇게만 믿고 살아도 그 믿음에 엄청난 능력이 옵니다. 그러므로 내 입이라 생각하지 말고 축복하고, 내 손이라 생각지 말고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믿음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2. 성도가 영광됨은 천사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28:18-20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늘의 천사도 있지만 성도들도 가브리엘 천사처럼 이 땅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이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천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소식만 맡기셨을까요? 그 일을 감당할 하늘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과 부요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애쓰면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은사와 재물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승천하시기 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나라를 살리는 일처럼 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마음 껏 섬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귀한 일이 복음전도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섬기고 복음전도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했고, 고후4:3-4에서는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천사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능력 있는 천사들을 부리는 사역자로 우리에게 붙여주십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은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 헌신하기만 하면 귀하게 써주십니다. 그 사실이 영광스럽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3.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이기에 영광스럽습니다.
본문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5-27)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히 부어주시려고 애타고 계십니다. 그래서 약4:5-6에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라는 자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신부로 사셔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예수님만 신랑 삼고 사랑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으로 하는 신부단장입니다. 신부단장 잘하셔야 합니다. 신부로서의 행복감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부 같은 신부로 살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복으로 빛나게 하십니다.
아6:10에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했듯이 술람미와 같은 예수님의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흠도 점도 티도 없이 영광스러운 은혜 속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삶에 동참하므로 영광스럽습니다.
롬8:17-18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했습니다.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 영광도 함께 누리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 얼굴에 나타난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에게 주시는 바로 영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천상의 영광을 본 것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영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0-12)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영광은 회개와 기적의 대 부흥 때문만은 아닙니다. 온갖 박해 가운데서도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동참했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고 교회가 영광스러운 것처럼 그 일원인 우리 성도 또한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사명 받은 천사이며, 고난 속에 더 큰 영광을 얻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의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복을 생각하고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처럼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사명으로 살아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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