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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를 깊이 만나자 (요 4:3-14)

하나님아들 2019. 1. 20. 21:08

예수를 깊이 만나자 (요 4:3-14)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2절까지 읽어야 하는데 시간 관계상 읽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에 “예수를 깊이 만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믿는 택한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거치게 됩니다.


주명식 목사가 펴낸 “무당 엄마 목사 아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학의 꿈을 가진 아들 명식이가 군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를 받아 군복무를 하고 있을 무렵 그의 어머니는 내림굿을 받고 작두 탄 무당이 되었습니다. 작두 탄 무당이 되었다는 것은 신이 들려도 보통 들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당 엄마에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목사의 간절한 기도와 전도와 예수 이름의 기적을 통해서 결국은 어머니는 무당을 버리고 회개하여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간증을 보면 어머니가 작두를 타다가 교회 다니던 종태 아저씨가 들어오니까 신들이 도망 가 작두에 발을 베인 사건이라든지,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아들에 대한 점과 운세를 꾸준히 봐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당들이 아들에 대한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아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부터였다는 간증도 있었습니다. 한 무당이 예수를 만나기까지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를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도저히 예수를 믿을 것 같지 같은 한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온 동네를 복음화시킨 놀라운 사건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자입니다. 결혼을 여섯 번이나 하는 등 인생에 실패한 한 여자가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수가성 우물은 바로 교회의 상징입니다. 지금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지 못했다면 오늘 말씀이 귀한 안내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처럼 예수를 만나는데는 몇 단계의 과정이 나타납니다.


1. 처음에는 피상적인 예수입니다.


9절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이처럼 여인은 먼저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를 만났습니다. 생각해 볼 때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에 유대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이민족의 침략으로 혼혈족이 되어 유대인들에게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도 사마리아인들이 앞장서서 방해했을 뿐 아니라 종교마저 사마리아 종교라는 이단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갈 길이 바빠도 사마리아를 통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께서 물 좀 달라는 요청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그러나 여인에게 있어서 이 만남은 그리 달갑지 않는 만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아도 부끄러워 사람을 피해서 낮잠 자는 대낮에 와서 물을 긷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많은 남자들에게서 배신당한 상처도 있고 유대인들에게 무시 받던 지역감정으로 그의 마음에는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소개 받으면 자꾸 피하려고 합니다. 만나기 싫고 어색하고 나와 상관도 없고 왜 만나야 하는지 왜 예수를 나에게 소개하는지 조금의 의미조차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 이야기를 하면 낯설고 자꾸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고 했듯 아무 말로라도 터치하면 인간은 싫든 궂든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터치전도법이라 해서 불신자에게 무얼 통해서든지 터치하게 되면 성령께서 그것을 통해서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여인에게는 매우 부담스런 만남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라는 분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2. 그 다음 알게 된 것이 도움의 예수입니다.


1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러자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11절) 대답했습니다.


처음에 배타적이었던 여인은 대화 가운데 예수께서 무언가 도움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물을 길을 그릇도 없는 예수님이 무슨 생수를 주신다는 말인가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 “주여”라고 했는데 여기서 주는 신앙고백은 아니고 그 여자에게 있어서 선생님 정도 되는 의미의 말입니다. 즉 존경하는 의미의 랍비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니 조금은 비아냥조의 말입니다. 그녀가 구한 것은 육신의 생수였습니다.

 

이처럼 처음 예수님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기던 사람들이 계속하여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어 손해 될 것은 없지 않는가? 사랑 많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이시라면 내 육신의 문제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기복의 예수, 형통의 예수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조금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이 구한 것은 하늘의 생수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도움이신 예수로 만나는 만남입니다. 물론 부르짖고 기도하면 응답해주십니다. 시121:1-3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했습니다. 그리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오세요. 그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도움의 예수만으로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3. 선지자로서의 예수입니다.


16-19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럴 수밖에요. 자기 인생의 과거를 모두 다 알고 계시니 선지자로 밖에는 더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처음 만난 저를 다 알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나만 아는 비밀까지도 다 나타내시구나.' 이처럼 여인은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점점 마음 문이 열리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질문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19-20절) 상당히 영적인 일을 관심 갖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육신의 문제에서 영적인 문제로 관심이 바꾸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또 기사와 이적 신앙만 가지고는 아직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여인처럼 영적인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신령해진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에 능통하고 권능을 행한다 할지라도 진실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의 반열에 오른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4. 그러다가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만났습니다.


25-30절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기쁨을 견딜 수 없어서 성으로 달려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예수는 유대인도 아니요, 선생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닌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믿으십니까? 대단히 귀한 믿음입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아무나 믿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3-17) 베드로가 구원을 받는 장면입니다.

 

진정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예수로 믿어진다면 그는 구원 받은 것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배반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냥 믿을 정도가 아니라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구주로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예수를 이미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쁨이 있다면 그는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5. 여인은 주님을 만나는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8절에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면서 감격에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온 동네에 다니며 메시아 예수를 전했습니다. 41-42절에 보면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이처럼 우리의 신앙고백은 감격이 넘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기쁨 나의 생명 나의 행복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진정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도하고 싶습니다. 핍박도 멸시도 천대도 두렵지 않습니다. 시험을 이기고 나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를 믿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처럼 더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유대인으로서 도움으로서 선생으로서 선지자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를 구원하신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이시요, 나아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행복 나의 전부이신 그래서 감사와 감격이 아니고는 믿을 수 없는 진정 예수를 깊이 만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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