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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추수감사] 영적으로 풍성한 삶 (요 6:8-13)

하나님아들 2018. 10. 18. 13:40

[추수감사] 영적으로 풍성한 삶 (요 6:8-13)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20016년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자기에게 특별한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하늘 보화창고에 다다랐더니 다른 창고는 인기가 좋아 출고를 많이 해서 텅텅 비었지만 어느 창고에는 보화가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 그러자 "감사 창고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도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보물이 쌓여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깜짝 놀라 깬 그는 교회에 나와 엎드려 감사하기 시작했고 이어 신령한 은혜로 넘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함으로 넘친다고 했기 때문에 천국창고에 우리에게 주실 감사의 창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의 감사의 기적을 말씀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축사했더니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수만 명이 배불리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육신의 기적 뿐 아니라 영적으로 풍성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 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요10:10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는데 어떻게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9절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여기 보리떡은 유대에서 가난한 서민이 먹는 거친 보릿가루로 만든 떡입니다. 한 아이의 도시락이니 많지도 않았습니다. 거기다 물고기가 두 마리인데 원문에 물고기라는 단어에 '작음'을 나타내는 접미사가 붙어 있는 점을 보아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보잘 것 없는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땅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우주의 왕,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당신에게 기쁨이 되소서," 이렇게 감사하며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여기 축사란 감사라는 말 외에도 ‘칭찬하다, 축복하다, 은총을 베풀다’는 말로 주님께서 기쁨으로 축복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로 그렇게 하신 것은 그 음식의 의미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어린 것이 먹고 싶은 것 참고 낮에도 굶고 예수님께 드리고자 한 그 정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 정성 생각하면 마음이 찡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작은 것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그 아이의 믿음을 칭찬하고 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여기에 풍성한 은혜생활의 원리가 나나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롬5:7-8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합3:17-18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했던 하박국의 감사 역시 그 구원의 하나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은혜생활이 안 됩니다. 나쁜 일은 밤새 잠들지 못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시험은 잘도 들면서 좋은 일은 왜 그렇게 묵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의 은혜도 그렇게 그만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묵상은 가부좌 틀고 무념무상하며 자기를 비우는 그런 귀신 초청하는 묵상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보다 백 배 천 배 고난 받으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최고의 안정제와 진통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입니다. 그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만 생각해도 삶의 질이 순식간에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함이 강물과 같이 흐릅니다.

 

2.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왜 주님께서 먼저 사람들을 질서 있게 앉히셨을까요? 그냥 주셔도 되는데요.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 기적부터 행하셨다면 대 혼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님이 가시는 곳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곳도 없었잖습니까?

 

주님은 인간의 악한 심성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배고플 때가 한 끼를 지나 두 끼째일 때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음식 앞에서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 가장 악할 때가 그 때입니다. 잘못하면 음식을 나눠주다가 큰 사고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모였는데 서로 먼저 받으려다가 어리고 약한 사람들이 밟히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아 제자들의 바구니를 탈취하여 수라장을 만들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아 지역에 가서 구호물자를 나눌 때 함부로 접근하다가는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속성을 아신 주님께서는 관리가 가능하도록 먼저 오십 명씩 혹은 백 명씩 질서있게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허튼 짓을 할 수 없게 마음과 몸의 질서를 잡아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이젠 주님과 그 말씀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생각의 질서를 바로 잡아 불신과 죄악의 잡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한국인 플롯 연주자 송솔 집사님의 간증을 읽고 눈물을 흘려봤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에 부도가 나는 바람에 미국으로 도피해 키가 작고 외국어를 모르고 공부도 못하니 아이들이 지나가면 바보라고 꼭 한 번씩 때리고 얼마나 짓굳게 구는지 귀가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고 가두는 등 심한 장난을 쳤습니다.


이 때 그 아이가 가장 편한 곳이 화장실이었습니다. 냄새나는 화장실에 피해 있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화장실 변기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누나는 똑똑하게 만들어 주셔서, 엄마의 사랑을 받게 하시면서, 왜 저는 키도 작고, 운동도, 공부도 못해서, 맨날 야단만 맞게 하시고 친구들에게 놀림이나 당하게 하는 거냐고요.”


그렇게 울면서 부르짖을 때 갑자기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지면서 "얘야, 내가 여기 있잖니. 늘 너와 함께 하고 있잖아. 내가 너랑 친구해주면 되잖니!" 그 음성이 들리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울먹이며) “하나님, 사람들은 내 이름도 부르지 않아요. 누나의 동생이라고만 해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실수로 태어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네 머리카락까지 세는 너의 하나님이란다. 내가 널 만들었단다." 그는 하나님을 친구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무작정 믿고,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마음 속 무언가 단단한 반석 같이 든든한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지만 그 후로 하나님께서 플루트 연주하는 은사를 주셔서 학교 밴드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천재나 들어갈 수 있는 줄리어드 프리스쿨 시험에 우수한 성적에 합격하고 장학금까지 받고 결국 세계적인 플롯연주자가 되어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간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고 묵상할 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마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셨, 시62:5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쓸모 짝도 없는 어리석고 잡된 생각 깔끔히 다 정리하고 주님과 그 말씀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외우세요. 기도하세요.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음 같이 우리 마음에 강물과 같은 성령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3. 모두에게 은혜가 넘치도록 경건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의 또 중요한 점은 만족하게 나누려는 그 열심에서 나타났습니다.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주기가 그렇게 쉬울까요? 몇 낟가리 크게 쌓아놓고 나누는 것도 아니고 작은 바구니 안에서 떼어주면 생기고 떼어주면 또 생기는 것인데 언제 그칠 줄도 모르고 수효는 자그마치 아이와 여자 외에 오천이니 만 명도 넘고 그런데 원하는 대로 주기가 싶겠습니까? 민11:22에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한 대로 그들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먼저 허기를 채운 후 나눴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만족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배고팠지만 남 먼저 섬기는 열정에 배고픈 줄 몰랐다고 해야 정답입니다. 그들은 떡을 달라 하면 떡을 주고 고기를 달라하면 고기를 주고, 받았던 사람이 또 달라 하면 또 주고 또 주고 주님의 말씀에 열정을 다 바쳤습니다. 그렇게 섬겨야 내가 삽니다.

 

어느 떡집은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직업이고 시골이지만 얼마나 맛있게 하든지 서울에서도 주문해서 쉬는 날이 없답니다. 고창의 어느 농부는 포도나무 하나가 큼직한 포도송이 2,000송이나 맺었답니다. 이렇게 피나는 노력 앞에는 풍성한 결실이 있게 마련입니다. 눈에 불꽃이 튕길 만큼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경 읽고 찬양생활 기도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생활에 힘쓰세요. 이웃을 그렇게 섬기세요. 주님처럼 밤이 맞도록 기도해 보세요. 초대교회가 우리 신앙의 모델입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도 사도행전의 연속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지만 자기 노력 없는 영적 풍성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4. 주신 말씀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12-13절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음식 남은 조각이라면 들판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인데 왜 주님은 그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하찮은 거라 생각하지 말고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니 귀히 여기라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식은 밀입니다. 보리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그 부스러기라면 정말 하찮은 음식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주신 것이니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저도 식사하면서 작은 부스러기 하나도 귀히 여기는 것은 농부들이 이것을 생산하기 위해서 뙤약볕에서 수고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많든 작든 그 말씀을 귀히 받고 날마다 묵상하고 외우고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면 풍성이 임합니다.

 

초대교인들은 우리처럼 성경 66권 갖추어놓고 보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복음서 한 권만 갖고 있어도 그 사람은 귀족이나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 몇 마디 받아도 서판에 기록해 놓고 날마다 묵상하고 실천하고 실천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겨자씨와 같이 작아도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면 하늘에 닿도록 커나갑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도 아세아 일곱 교회 중에 가장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 경고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빈들이십니까? 아직 영혼의 배가 주리십니까? 영적으로 너무 허기져서 하나님 나라 집에 들어간다는 확신조차 불가능합니까? 우리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고, 오직 주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자신의 영적 환경을 탓하지 말고, 모두에게 은혜가 될 만큼 열심으로 믿음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의 빈들에 오병이어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의 풍요로움으로 가득하게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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