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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선택, 인간? 로보트? -1부: 하나님의 모험

하나님아들 2012. 9. 18. 14:53


하나님의 선택, 인간? 로보트? - 1부 


    하나님의 모험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또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살기 위하여 의지의 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요즈음 현대 기독교회들에서는 믿음은 강조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안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의지의 힘을 사용하여 어떻게 죄와 유혹을 승리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가르치거나 강조하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다.

이번 몇 번의 글을 통해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지에 대하여 조명해 볼 것이다. 이번 글들을 통해서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을 사는 데에 일조를 하는 글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이 명령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로보트처럼 창조되었다면 어떨까? 

만일 인간이 자유의지나 선택할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이 조절하는 대로만 살도록 창조되었다면 행복했을까? 

만일,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여 죄를 짓거나 불순종할 수 없게 창조되었다면, 죄 때문에 야기되는 고통이나 불행이나 파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그리하여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셨을까? 

하나님께는 인간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창조하실 수는 없었을까? 

이런 질문들은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질문들이다.


1) 하나님은 사랑

하나님사랑이시”(요일 4:16).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창조력의 현현 하나하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는 문구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족 돋아나는 풀잎마다 기록되어 있다. 공중을 즐거운 노래로 가득 채우는 예쁜 새들, 향기를 풍기는 고운 꽃들, 무성한 수풀과 초목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인간을 행복하게 하시려는 그분의 사랑의 갈망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친히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을 반포하셨다.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하고 기도하였을 때에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출 33:19)리라고 하셨다. 

이 선한 형상은 주의 영광, 곧 주의 성품이다. 

주님께서는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는 모세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하는 성품을 나타내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출 34:6, 7)는 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욘 4:2)며, “인애를 기뻐하”신다(미 7:1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과 땅에 있는 창조의 신비를 목격하게 하시며 무수한 사랑의 증거들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그분에게 붙들어 매신다. 

천연계의 사물을 통하여, 또는 사람이 마음으로 체험해 알 수 있는 그윽하고 부드러운 인간적 결연(結緣)을 통하여, 그분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에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2)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이유

원래의 속성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영적, 정신적, 그리고 지적으로 함께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셨다. 

서로의 사귐으로 인해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서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상대를 필요로 하시고, 그리하여 그 깊은 교류와 앎을 통하여 생기는 위대한 사랑의 출현을 보기 원하셨기 때문에, 함께 하나님과 교류하며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분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로보트처럼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사랑의 섬김과 교류를 원하셨는데, 그 사랑의 섬김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인식하고 알기 때문에 저절로 자원하여 생겨나는 사랑의 섬김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분은 강제적인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이 당신께 자원하여 봉사하도록 그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봉사, 곧 주님의 성품을 지적(智的)으로 이해하므로 생기는 경배를 드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인 충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그들이 주님께 자발적인 경배와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전혀 반항할 가능성이 없는 로보트 같은 인간을 만드셨다면,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하도록만 만드셨다면, 인간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생기는 사랑의 경배와 교제를 받으실 수 없었을 것이며, 그 교제와 사귐에서 생겨나 점점 성숙되어가는 사랑의 완숙한 경지를 이해하거나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후에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을 완전히 알게 되므로 하나님께만 충성을 하도록 계획하시고 고안하신 것에는 모험이 뒤따랐다. 

만일, 피조물이 이 주어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다면 하나님의 정부에는 질서가 깨지고 부조화와 불순종(죄)이 들어올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의 안녕을 존중하셨던 창조주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이다.


3) 자유의지의 남용과 죄의 시작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주에 평화와 기쁨이 있었다. 

모든 것은 창조주의 뜻에 완전히 조화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최상의 것이었고 피조물들 사이의 사랑도 공정하였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는 그 본질과 품성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일체였고, 온 우주에서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고 계획하시는 유일의 분이셨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골 1:16)다. 

그러므로 온 하늘은 하늘 아버지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였다.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충성을 인정하는 동안 하나님의 온 우주에는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상호간의 사랑도 믿을 만하였고 무아적이었다. 

하늘의 조화들을 파괴할 불협화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상태에 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허락하셨던 자유의지를 악용한 자가 있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다음가는 최고의 영광을 받았으며, 하늘 거민들 가운데 가장 높은 권세와 영광을 가졌던 자에게서 죄는 시작되었다.

천사장 루스벨은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들 가운데 가장 총애를 받는 자였다. 

그는 매우 존귀를 받았었으나 이것이 그의 창조주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우러나오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열망하였다. 

그에게는 실행해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었다. 

그는 위대한 창조주 가까이에 있었고,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모셨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므로 하나님을 가장 잘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기회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루스벨은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차츰차츰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7). 

루스벨은 그리스도를 질투하고 시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창조 사업을 위한 특별한 의논에 참여하셨으나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또 그것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도 않았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주권자로 인정받으셔서 그분의 권능과 권위는 하나님 자신과 동등하였지만 루스벨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루스벨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에 빠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불만과 그리스도에 대한 질투가 가득한 마음으로 하늘 아버지의 면전을 떠나갔다. 

그는 하나님께 불충성하려는 그의 욕망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려는 그의 선택을 철회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의지의 자유를 남용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기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사장 루스벨은 교만과 질투로 인해 하나님의 정부와 법에 불만을 표하며 천사들을 선동하여 하늘에서 반역을 일으켰으며, 주어진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의 세계에 최초로 죄를 들여온 장본인이 되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印)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2~15),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 14). 

이렇게 주어졌던 자유의지를 남용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므로 루스벨은 대적 마귀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이 세상에 죄라는 것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과 인류의 적이 되었고, 하늘에서 이 지구로 쫓겨나 인간에게 의지의 남용과 악용을 부추기며 유혹하는 사단이 되었다.


4)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와 타락

하늘에서 더 이상 마음대로 반역을 선동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증오심은 인류의 파멸을 음모하는 가운데서 한 새로운 분야를 찾아내었다. 

그는 에덴에 사는 아담과 하와의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생활 가운데서 자기가 영원히 잃어버린 행복의 환상을 보았다. 

시기심을 가지고 사단은 인간이 불순종하도록 그들을 선동하고 죄책과 죄의 형벌을 가져다 주려고 하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사랑을 시험하는 시금석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 

여호와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주셨지만 한 가지만을 금지하셨다. 

주어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든지 불순종하고 거역하든지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몫이었다.

사단은 인류의 시조를 유혹하기 위하여 뱀을 매개체로 사용하였고, 그 금단의 과실을 먹도록 하와를 유인하였다. 

사단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접근한 하와에게 말하기를, 이 나무의 과실을 따 먹는다면 그들은 더욱더 높은 존재의 영역을 획득할 것이며 더욱 넓은 지식의 분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사단은 자기 자신도 금단의 과실을 먹어 보았으며, 그 결과 말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분과 동등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그것을 금하신 것이라고 교묘하게 암시하였다. 

그는 이 나무의 실과는 지혜와 능력을 주는 놀라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그것을 먹는것뿐 아니라 만지는 것까지도 금하신 것이라고 말하였다.

유혹자는 하나님의 경고는 사실 그대로 성취되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그들을 위협하려고 의도된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이 죽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지 않았던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한층 더 고상하게 발달하고, 더 큰 행복을 발견하는 것을 막으시려고 노력해 오셨다고 사단은 암시하였다. 

유혹을 받은 하와는 흔들렸다. 

그녀는 주어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올바른 편,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충성의 편을 선택하여야 하였었다. 

사단의 말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조상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여 이 세상에 죄의 저주와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이 세상에 시작된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또 우리가 죄를 승리하는가 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와 결과를 빚어낸다. 

우리는 주어진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선택권을 통하여, 하나님께 충성하며 이 지구를 하나님의 왕국으로 회복시키는 데 일조를 가할 하나님의 증인이 되든지, 

아니면, 악의 편을 택하여 하나님께 끝까지 불순종하는 반역적인 악인이 되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의 힘은 이 지구의 역사와 운명을 크게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고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 몇번 글을 통해서 믿음과 의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겠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11 T.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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