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6.10.주일낮설교> 능력의 겉옷을 입자

하나님아들 2018. 10. 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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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6.10. 주일낮예배 설교문
                
본  문 : 왕상19:15-21, 왕하2:9-14
제  목 : 능력의 겉옷을 입자
찬  양 : 340, 344, 377, 382.
복음성가 : 눈물의 참회록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큰 환난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합왕은 나라는 돌보지 않고 온갖 폭정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학살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온 나라는 가뭄과 기근으로 산천초목이 마르고 사람들은 물론 육축들이 목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합왕은 깨닫지 못하고 이세벨 왕후와 함께 폭정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보다 못한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어 도전장을 내어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자들과 갈멜산에서 기도의 대결을 할 때 엘리야의 기도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그게 승리를 하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무당들 850명을 모조리 잡아 기손강 가에 가서 목 잘라 죽였습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남쪽 유다 나라로 피신을 하였다가 다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40주 40야를 걸어서 호렙산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능력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고 하산을 하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사명 중에 한 가지가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혼란한 나라를 바로 세우고 또한 많은 기적을 행하여「구약의 예수」라고 불림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열왕기상의 말씀은 엘리사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의 장면이고 열왕기하서의 말씀은 엘리야가 요단강 건너편에서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할 때 엘리야의 겉옷을 받아 갑절의 능력을 받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1.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겉옷을 입어야 합니까?


(1) 엘리사가 입은 선지자의 겉옷을 입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열심히 일을 할 때 선지자로서 택함을 받고 또한 당시 산천초목도 떨게 하는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선지자의 예복을 입었습니다. 호렙산에서 내려온 엘리야는 엘리사를 만나서 그에게 겉옷을 던졌습니다. 던졌다는 것은 입혀 주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의 겉옷을 입었다는 것은 엘리야와 같은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체육복을 입으면 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겉옷을 입은 엘리사는 농사꾼의 신분에서 선지자의 신분으로 바꿔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낚던 어부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12겨리 소를 몰아 밭을 갈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의 밭을 가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2) 우리들은 예수의 옷, 교인의 옷, 교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의 옷은 빛과 소금의 옷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고 또한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마땅히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벗어야 할 구습과 끊어버려야 할 것들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청산해 버려야 할 죄악도 청산해 버리지 못한다면 어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이 중들이 입는 가사장삼(袈裟長衫)을 입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죄를 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데 아직까지도 죄악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악이 보따리를 끌어 앉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저라” 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고집, 내 성격, 내 욕심, 내 맘대로 살아온 인생, 지금까지 즐기던 세상 향락, 지금까지 즐기던 구습들, 이런 것들을 모두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의 집사요 권사라고 하면서 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그러면서 어떻게 천국 간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한심한 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 어느 날 임금님이 세상에 나왔다가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 거지가 불쌍해서 임금님이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서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왕자가 옷은 왕자 옷을 입었는데 거지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왕궁 내 대신들과 상궁들과 모든 만나는 사람들마다 구걸을 하고 다닌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 왕자가 바로 여러분입니다. 세상에서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세상의 습성, 죄악의 습성, 마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거지 생활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교인의 옷, 교회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라고 하였습니다.


(3) 능력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에서 엘리사가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선지자의 겉옷을 받아 입는 것과 또한 마지막 엘리야가 승천할 때 능력의 겉옷을 받아 입으므로 능력의 선지자가 되는 모습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의 전신 갑주를 입고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마귀의 화전을 소멸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엡6:10-13)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4)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이 주시는 세마포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2:11이하에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세마포 예복을 입혀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계19:8-9)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19:14) 고도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마포 예복을 입지 못하면 쫓겨납니다. “어두움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 선지자의 예복을 입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로 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질문이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지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바꿔집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은 강도를 만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씨 후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므로 그는 살아났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강도 같은 사람도 만나고 사기꾼도 만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나 요한과 야고보 형제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에는 오순절날 성령을 충만히 받고 이 땅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만남으로 모세를 따르다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나라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만남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종종 뉴스를 통해서 사이비 종교 집단에게 속아서 재산도 모두 빼앗기고 몸도 망치는 일들을 보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참으로 감리교 교인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성도가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엘리야도 크게 쓰셨지만 엘리사를 더 크게 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크게 쓰시는가? 또 어떤 사람이 엘리야와 같이 선지자의 예복을 입을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부르실 때에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부르셨습니다. 고기 잡는 현장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 야고보를 부르시고, 세금을 받는 현장에서 마태를 부르시고,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던 나다나엘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놀고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낮잠이나 자고 있는 그런 사람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도 열두 겨리 소로 밭 갈고 일하는 엘리사를 불렀습니다. 엘리사는 부자였습니다. 땅도 많고 소도 많았습니다. 소 열두 겨리로 밭을 갈 정도로 부자입니다. 종들도 많았습니다. 요즘에야 논밭을 갈 때 기계로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소 24마리로 밭가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소 한 겨리에 한사람이 필요하다면 열두 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엘리사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들에게 맡기고 감독만 해도 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같이 일하고 있을 때 엘리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가정 일이나 농사일은 항상 제가 말하듯이 올림픽 금메달감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농사일이나 집안일은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팔다리에 관절염이 걸리도록, 온 몸에 병이 나도록, 밤을 지새우면서 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왜 그렇게 못하십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주일성수 하나 제대로 못하고, 또 이런 저런 핑계로 새벽기도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하였는지 이 시간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눈물의 참회록(찬미예수2000. No,1507)
1.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 한 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 영광 뒤로하고 나의자랑 앞세웠으니
  내가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2. 한평생 주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겠다던
  베드로 같은 믿음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맘 속엔 허영과 교만만 있고
  주님지신 십자가는 짐이 된다 벗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율법을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2) 하나님은 결단 있는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엘리사는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버렸습니다. 밭도 버렸습니다. 소도 버렸습니다. 종들도 버렸습니다. 부모까지 이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엘리사가 부모와 입을 맞추고 이별을 합니다. 소 두 마리를 잡아 동네 사람들과 송별 파티를 합니다. 이것은 ‘나는 이제부터 엘리야를 따라가겠습니다’라는 선포입니다.
        모세는 궁중을 떠날 때에 자기를 길러준 생명의 은인이며 양어머니인 바로왕의 공주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부인 사라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나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 부모님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결단력 있는 사람을 들어서 크게 쓰십니다. 아 멘!!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얼마나 결단력 있게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요즘 세상에 누가 교회 간다고 잡아가는 사람 있습니까? 누가 핍박을 합니까? 누가 새벽기도 못 가게 붙잡는 사람 있습니까? 모두가 자기 자신이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서 못하는 것 아닙니까? 각성해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은 징계의 매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모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이때는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생명을 내 놓아야 하는 때입니다. 당시 아합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무당들을 850명이나 죽이고 나자 이세벨 왕후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럴 때에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겉옷을 입혀주며 나를 따라오라고 할 때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엘리야를 따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5장과 9장에서 상반된 두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요5장에서 38년 동안 병을 앓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안식일 날에 병을 고쳤다고 누가 네 병을 고치고 또 안식일에 걸어가라고 그랬느냐 고 다그칠 때에 ‘나를 고친 그 사람이 가라고 해서 간다’ 고 모든 핑계를 주님께 돌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처음에는 잘 모른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예수라고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9장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이다 아니다 할 때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또 어떻게 눈이 떠졌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내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고 분명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선지자다’라고 분명하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바로 안식일날 일을 한 것이 탄로 나면 출교를 당하게 될까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체면 때문에 때로는 예수를 부인도 하고 감추려고도 하고 베드로처럼 아닌 척 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시고 크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항상 모험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엘리사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엘리야를 따라나섰습니다. 엘리야를 따라나선다는 것은 엘리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21절 말씀에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더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종들었다는 것은 종노릇했다는 것입니다.
왕하 3:11절 말씀에는 엘리사를 소개하는데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사는 엘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극진히 섬기고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을 크게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예>어느 마을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세상을 떠나려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목사님을 살려야 한다” 고 결의한 성도들은 합심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목사님의 생명을 히스기야처럼 연장시켜 주십시오” 라고 열심히 통성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였던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들의 기도가 하도 간절하여 들어주기로 하였다 다만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생명의 시간을 조금씩 차출해서 모인 것만큼 목사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겠다. 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 졌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제일 나이 많은 장로님이 일어 나드니 ‘나는 목사님께 내 생명의 15일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제일 젊은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5일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10일이요’ ‘나는 한 달이요’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나는30년이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서 소리 나는 곳을 보자 그 말은 가장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30년!’ 하고 말하고 ‘그 30년은 내 마누라의 생명에서 드리겠소’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을 크게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5) 하나님은 영적 욕심이 많은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성경에서는 십계명에도 “탐내지 말라” 고 하였고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막 4:19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오면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것은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욕심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인 은혜와 은사와 축복은 사모해야 받습니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마지막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소원을 말하라고 할 때 “당신이 받은 영감을 갑절로 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구한 대로 갑절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엘리사 같은 영적 욕심, 영적으로 사모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교회에서 가장 믿음 좋은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교회에서 십일조 제일 많이 하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욕심은 인간의 욕심도 어느 정도 개입되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 보다 훨씬 낳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무슨 옷일 입느냐에 따라서 그 신분이 달라집니다. 또한 신분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비군은 예비군 복을 입습니다.
         중들은 袈裟 長衫을 입습니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습니다.
         법관들은 법복을 입습니다.
         목사들은 성의를 입습니다.
         또 사람들은 외출을 할 때든지 또는 귀한 자리에 갈 때 정장을 합니다. 여자들은 결혼식에 갈 때든지 또는 무슨 귀한 자리나 모임에 갈 때 한복을 입든지 가장 좋은 옷을 입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또한 행동도 달라집니다.
        정장을 하면 매사에 조심스럽습니다. 깨끗한 양복을 입으면 어디 가서 앉을 때에도 조심스럽게 앉게 됩니다. 그리고 어디 가서도 무엇이 묻을까 항상 조심을 합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옷을 입으면 행동에 조심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나오면서도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는 항상 정성을 다해서 내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나오기 전 공무원으로 일을 할 때 예비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에는 그렇게 점잖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슨 옷을 입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 주님이 주시는 속죄의 세마포 겉옷, 사명의 겉옷, 능력의 겉옷을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아모스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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