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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7. 주일밤예배 설교문
본 문 : 요한복음 9 : 1 - 12
제 목 :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사람
찬 양 : 272, 425, 539, 549.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은혜를 사모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 충만 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요한복음 9장에는「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 눈이 떠진 기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적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앞서서 8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간음 중에 잡혀온 여인을 살려주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나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께서 자신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자 흥분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피하여 길을 가시다가 구걸하는 한 소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 유대인들은 소경을 논쟁의 대상으로 이용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눈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의 정조차도 없이 그를 죄인으로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여기서 제자들이란 사람은 열두 제자가 아닙니다. 열두 제자 외에 또 많은 따르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행한 사람을 만나면 최소한의 연민의 정이라든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소경을 논쟁의 대상을 삼았습니다. 그들은 불구나 장애 또는 질병의 원인을 죗값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천적인 것은 부모의 죗값이고 후천적인 것은 자신의 죗값이라고 생각을 하여 왔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본문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나면서부터 소경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고 죄 없는 부모까지도 고통을 당하게 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사람이 될 줄이야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보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가리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6절 말씀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실로암 연못까지 가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눈을 뜨게 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듬거리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예수님이 발라준 진흙을 씻자 그렇게도 소원이었던 눈이 밝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소경이었던 사람의 믿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눈이 떠져서 보게 되자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 같았으면 너무 너무 기뻐서 자기 집으로 달려가던지 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4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에 열 명의 문둥이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막고 고쳐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던 중 열 명의 문둥이가 모두 깨끗함을 입었는데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를 한 사람은 사마리아 출신의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문둥이들처럼 이 소경 되었던 사람도 기뻐서 자기 갈 길로 갈 수가 있었지만 그는 먼저 자기의 눈을 뜨게 해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왔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와 감사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의 성도들 중에는 최소한의 감사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환난과 시험을 당하고 고난이 닥쳐왔을 때는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그 시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맙니다. 모두가 자기가 잘해서 된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안됩니다. 최소한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3. 소경 되었던 사람은 내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예수’ 라고 확실하게 증거를 하였습니다.
8절 말씀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사람들은 의아해서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고 물었을 때에 분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11절 말씀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고 분명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또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그 과정까지를 소상하게 증거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좀 보세요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나서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꽃 색깔이 어떤 색인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 눈을 떴으면 다 같이 축하를 하고 기뻐해야 할 텐데 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의 눈을 보게 했다는데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게다가 소경이 눈을 뜬 바로 그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또 눈뜬 사람도 실로암 못까지 갔으니 안식일을 범한 사람으로 정죄를 합니다. 바리새인들 간에도 예수가 비록 기적은 행하여 눈을 보게 하였지만 그는 안식일을 범하였으므로 하늘로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무리와 죄인이 어떻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느냐는 사람들로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다시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러서 묻습니다.
17절 말씀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부모를 불러서 묻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 아들이 맞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서 눈이 떠졌습니까?
그의 부모가 대답합니다.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이 부모를 보십시오 그렇게도 자식이 소경으로 있을 때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던 아들이 눈을 떴으면 기뻐하고 우리아들의 눈을 보게 해 준 사람은 예수라고 해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22절 말씀에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이 과정에서 소경의 부모는 출교가 두려워서 자기 아들이 어떻게 눈이 떠졌으며, 누가 뜨게 해 줬는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21-22) 그 부모는 자식이 눈뜬 것보다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 봐 그것을 더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회당으로부터 출교를 당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씻지 못할 불명예인 동시에 생계 자체가 위협을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이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확실하게 증거한 소경 되었던 사람과 같이 예수를 증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처럼 우유부단하게 발뺌이나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눅12:8-9)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의 상황을 보면 참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경 되었던 사람의 확고부동한 믿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이 말씀에서 소경 되었던 사람의 말 중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선지자”(9;17) “나를 눈뜨게 하신 분”(9:30) “창세 이후로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한 유일한 권능자”(9:32-33) 로 고백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로부터 “욕을 당하고”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난 자” 라고 정죄를 받고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4. 예수님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격의 순간입니다. 주님은 당신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지금 이 사람은 자기가 눈을 뜨기 전에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아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유대교 사회에서 매장이 되느냐 마느냐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그의 부모까지도 난 모른다고 발뺌을 하는데 눈을 뜬소경 되었던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소경이었던 그 사람은 보잘것없는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도 권력이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고 증거를 하였습니다. 회당으로부터 출교를 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도 그 두려움 앞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소경 되었던 사람을 쫓아낸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고 하시면서 저들이 지금 본다고 하는 오만함과 교만을 책망하시고 장차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힘없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사람의 자리에 있습니까? 어느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①남의 아픔을 보고도 아무런 연민이나 사랑의 감정도 없이 죄인으로 정죄 하려는 사람들 같은 부류에 속하지는 않았습니까?
②바리새인들처럼 율법만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③소경 되었던 사람의 부모처럼 세상의 권력이나 불신앙의 권세 앞에 두려워서 발뺌이나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베드로처럼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④아니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나를 고쳐준 사람은 오직 예수라고 증거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를 위해서 내 목숨도 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쓴잔을 나도 마실 수 있어야 순도 100%의 예수 사람이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어 구원을 받았고 그분의 부활을 믿으므로 장차 나도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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