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예수를 만나자! (요 12:17-23)

하나님아들 2018. 10. 4. 16:33

예수를 만나자!

 

본 문 / 요한복음 12:17-23

주 제 / 말씀, 기도, 예배를 통해 예수를 만남으로서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예수께 영광을 돌리자

작성일 / 2008년 4월 20일 (№ 08-16)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17-23)

 

 

Ⅰ 만남의 중요성 -반드시 만나야할 예수- (요 12:13, 21)

 

나의 신학교 후배 중, ‘김 형수 목사’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참 경건한 사람이었고, 또 성실한 사람이었다. 컴벌랜드 평촌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던 김목사는 나이 30을 갓 넘겼는데, 아내와 아들 하나만 남기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이는 아버지가 죽은 후, 마음이 공허해져서 큰 병을 앓았다. 매일 새벽 3시가 되면, 혼자 일어나 아빠를 부르며 우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래서 모자는 매일 새벽 시가 되면 함께 우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지난해 평촌교회 ‘길리스 목사’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면서 몇몇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함께 데리고 들어갔다. 어학연수를 원하는 아이들을 데려가서 미국의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미국인 가정에서 하숙을 하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 김형수 목사의 아들을 합류시켰다. 김형수 목사의 부인은 “이 아이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빠를 부르며 우는 습관 때문에 하숙하는 가정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목사님이 직접 데리고 계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길리스 목사’는 좋은 신앙을 가진 가정이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며 이미 정해진 가정으로 보냈다.

아이는 한국에서처럼 매일 새벽 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 아빠를 부르며 울었다. 그러자, 그 아이를 보호하는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함께 일어나 아이를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아빠, 엄마, 자녀들까지 모두 새벽 3시에 일어나 슬픔을 함께 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하자, 약 4개월쯤 지나면서부터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빠가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히 계시며, 오히려 자기가 매일 새벽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을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고쳐졌다고 한다.

이 아이는 아빠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마음이 공허하였으나. 한 좋은 믿음의 가정을 만남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 좋은 만남이 마음의 질병을 치료한 것이다.

이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가운데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한 아이가 미국인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미국인 가정도 그 아이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 아이는 3개월 만에 귀국을 했는데, 미국인 가정에서 이 아이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온 가족이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역으로 한국의 가정에서 몇 일 동안 함께 보내고 돌아갔다고 하는데, 미국인 가족들이 그냥 돌아간 것이 아니다. 아주 소중한 선물을 주고 돌아갔다. 미국인 가족들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고, 한국인 가족들은 그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좋은 만남이 좋은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아이가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진실 된 사랑을 받으니 하나님이 주신 밤의 잠을 회복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불신의 세계에서 영생의 복을 모르던 가정이 한 낯선 가정을 만남으로 인해 참 사랑과 참 생명을 알고, 누리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모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 분은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이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은 예수님, 바로 그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을 믿는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삶의 변화를 맛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질병으로부터 아직 치료 받지 못해 참다운 생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는 믿되, 아직 그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남이 없으니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Ⅱ 예수를 만난 사람의 변화 (요 12:19, 21; 15:11)

 

예수를 만나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를 만남으로서 우리의 삶도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만남으로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의 변화 (사 35:1-2)

 

첫째, 예수를 만남으로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다. 즉 기쁨을 모르던 삶이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지금의 모든 조건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예수를 만나고 나니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닌데,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날에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에 백합화가 피어날 것”(사 35:1-2)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종살이를 하고 있는 현실은 마치 메마른 사막과 같은 현실이지만,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바로 그날에는 그 메마른 사막이 기쁘게 웃을 것이며, 그 메마른 사막에서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사막과 같은 삭막하고 메마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야만 그 사막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래서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구원의 소망이 더 이상 소망이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소망이 현실이 되는 때는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의 소망이 현실화되는 곳은 바로 그 영원한 나라에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예수님을 만난다면, 지금의 이 삶에서도 우리의 소망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날마다 성전 문에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를 생각해 보라. 그는 동전 몇 개를 구걸하고 있었지만, 그의 진짜 소망은 육신의 자유를 얻어 자기 발로 걸어보는 것이며, 자기 발로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망이 너무나 크고 거대한 것이었기에 감히 사람들에게 내 다리를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 먹고 살 수 있는 동전만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앉은뱅이가 주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를 만났을 때, 그는 동전이 아닌 그 마음 깊은 곳의 소망이 삶 속에서 실현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주님을 만난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행 3:8).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삶이 즐거움으로 변화를 받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를 만남으로서 삶의 즐거움을 충만히 누리길 바란다.

 

2. 사단을 좌절시키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요 12:19, 21)

 

둘째, 우리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바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시간보다.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예수의 길을 따르는 시간보다. 세상의 길, 사단의 유혹에 방황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분명하나,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믿음은 불안전한 믿음이기 때문에 예수를 위한 삶이 이루어질 수 없고, 오히려 사단의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을 살았던 것이다. 예수를 만나야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반석 위에 세워지고, 반석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던 그 다메섹 사건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던 백성들이 주님을 만나자 당장 꿈이 좌절되는 사람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요 12:19)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주님께로 달려가자, 즉시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백성과 예수를 갈라놓으려고 지금까지 애를 썼으나, 그것이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들의 꿈이 좌절된 것이다. 얼마나 큰 승리인가?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사단의 꿈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이다.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눅 19:47-48)

당시 예수님의 반대 세력들은 예수님을 아예 죽여 없애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예수님을 없애버리지 못하고 당황한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단은 주저하게 되고, 위축된다.

사단이 위축되고, 그들의 계획이 좌절되었다면, 그 영광은 누가 받겠는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사단의 패배는 예수님의 승리인 것이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20-23)

헬라인들까지 예수를 만나고자 하니, 예수님은 즉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신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

겟세마네의 주님은 이런 기도를 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10). 예수님은 자신이 택한 성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다. 언제 그런 영광을 받으시는가? 바로 그 택한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이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렇다. 성도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은 하면 안되고 …”라고 행위에 주목한다. 그러나 주님이 정말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이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 주님은 승리하시고, 큰 영광을 받으신다.

 

 

Ⅲ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또한 예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첫째, 주님은 성경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유대 언덕에서 산상보훈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고, 겟세마네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다. 무덤을 박차고 나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으며, 하늘로 올라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는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자리, 그 곳은 바로 성경이다.

둘째, 주님은 기도하는 자리에서 성도를 기다리신다. 그래서 성경에서 만난 예수님을 기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윗’은 “너희 경건한 사람들아 주를 만나고자 한다면 기도할지라”고 한다(시 32:6). ‘예레미야’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하나님을)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한다(렘 29:13).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셋째, 주님은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주님은 ‘모세’를 통한 말씀에서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고 하셨다(출 29:42).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곧 예배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Ⅳ 예수를 만나 변화를 받자

 

예수를 믿는 것과, 만나는 것은 다르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 것은 매우 복된 일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불안하다. 확실한 믿음의 자리로 나가지 못한다. 예수를 만난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참다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일까?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아직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왜일까?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즐거움이 흔들리고, 예수를 위한 삶도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신다. 성경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며, 오늘의 이 예배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애타게 기다린다. 진지하게 성경을 묵상하고, 진지하게 주님께 기도하며,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나,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서 기쁨이 충만하게 살면서, 그 기쁜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출처 : 임금택 창고
글쓴이 : 임금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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