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아들 2012. 9. 18. 14:00

오직 나만 남았거늘

열왕기상 19:1-15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이 없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외지로 나갔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집은 대 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집이 아니라 혼자 사는 원룸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서울에 사는 30,40대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절반이 넘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고 여럿이 함께 사는 것을 불편하답니다.

 

혼자 있는 게 편하기도 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생각도 깊이 할 수 있고 또 신앙적으로도 성경을 깊이 묵상하기도 하고, 기도도 깊이 하므로 영적으로 매우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라고 해서 외롭다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혼자 있는 것을 즐겼습니다. 당시 아합 왕과 이세벨이 여호와의 제단을 다 헐고 바알의 제단을 쌓고 온 백성들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하므로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아합왕과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숨어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도록 하시고 그릿 시내물을 마시며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주어 먹었습니다(왕상17:1-8). 혼자 숨어 있었지만 외로움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와 솟아나는 생수를 보면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혼자 있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 혼자 대결하여 싸울 때도 ‘나만 혼자 남았으나’(왕상18:22)라고 말했습니다. 혼자뿐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쌓은 제단에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바알의 제사장들과 아세라 목상의 제사장들 850명을 모조리 잡아 기손 시내로 끌고 가 거기서 다 죽였습니다(왕상18:40). 엘리야는 ‘나만 혼자 남았다’고 하였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으로 대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혼자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처럼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면서 즐길 수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면 죽고 싶을 만큼 불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라는 사실이 처량하게 보이며 불행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명절이나 잔치 때, 혼자라는 것을 느끼면 살 의욕마져 떨어집니다.

 

엘리야가 외로움에 빠져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구하였습니다(4).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비가 오지 않게 기도하므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비 오기를 기도하므로 비가 왔습니다. 이렇게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 엘리야가 어쩌다 죽기를 구하였을까? 전과 같이 로뎀나무 아래서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였더라면 더 좋은 은혜를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죽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제 그만 데려 가십시요’라고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혼자라는 것을 느끼면서 살기보다 죽기를 더 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죽기를 구할 정도로 자신의 외로움을 고통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나만 혼자 남았으나”(왕상18:22)라는 말씀과 “오직 나만 남았거늘”(10,14) 이라고 말한 것은 정반대의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나만 혼자 남았으나’라는 말은 ‘내 혼자지만 850명과 얼마든지 싸울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있다’는 말이지만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도 살 의욕이 없다’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똑 같은 혼자 남았지만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은 믿음과 용기를 가진 말과 살 의욕마져도 없다는 극과 극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일 때는 믿음과 용기가 나지만, 부정적일 때는 죽고 싶을 만큼 살 용기도 없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광야 로뎀 나무아래서만 혼자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혼자 숨어 지냈습니다. 그때는 혼자 있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광야 로뎀 나무아래서는 외로움으로 죽기를 바랄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지난 날에 엘리야가 아닌 전혀 다른 엘리야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주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엘리야의 심적 변화에서 온 것입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결전은 여호와 신앙의 빛난 승리였습니다. 아합을 비롯한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아마도 갈멜산에서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벅찬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세벨이 반격하여 자신을 죽이겠다고 맹세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야는 도피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심한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 죽기를 구하기까지 된 것입니다(4). 여기서 우리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가 이처럼 실의에 빠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쩌다 엘리야가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자기 기준으로 일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내 관점에서 판단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지혜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엘리야와 같은 능력의 사람도 자기 관점에서 일을 판단하므로 대 승리를 하고서도 실의에 빠져 죽기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야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을 받고도 실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같은 실의와 낙망을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위로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한 엘리야는 잠이 들었습니다. 죽기를 구하고 잠들었으니 눈을 떠면 하늘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잠든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는 잠든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준비해 둔 것을 ‘일어나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떡과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죽기를 구하기까지 할 정도로 괴로워 할 때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져 주며 떡과 물을 준비하여 먹게 하시고 일으켜 새 힘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외로움으로 실의에 빠져 낙심하고 있을 때 천사를 보내어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살기조차 싫어 죽기만을 바랄 정도의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져 주시며 위로해 주시고 떡과 물을 마시게 해서 새 힘을 주십니다. 아무도 함께 하는 사람도 없이 외로움에 지쳐 울다가 지쳐 잠들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져 주시며 우리를 일으켜 새 힘을 주십니다.

 

혼자라는 사실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빠져 들면 회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떡과 물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6). 그러나 천사는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하며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도착하여 한 굴에 숨었습니다.

 

아직도 엘리야는 자신의 외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이제는 천사를 보내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서 혼자 있는 엘리야에게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숨었을 때는 까마귀를 보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잠들었을 때는 천사를 보냈습니다. 이제 호렙산 굴에 숨었을 때는 하나님이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혼자 있도록 버려 두지 않으시고 까마귀를 보내시고, 천사를 보내시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셔서 함께 하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를 보내 봐도 회복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엘리야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나만 혼자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자신의 실의에 빠진 것과 외로움을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찾아오신 하나님께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말을 똑 같이 두 번이나 계속해서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10,14). 이렇게 두 번이나 계속하여 말한 것은 엘리야의 외로운 감정이 얼마나 악화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두 번이나 물었습니다(9,13). 엘리야에게 이렇게 두 번이나 물어 보신 것은 엘리야에게 소명 의식을 일깨우고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주기 위한 물음이였습니다. 그때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탄식 섞인 변명만 하였습니다.

 

먼저 자신의 신앙이 유별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서 힘을 다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이 내 목숨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대 승리를 하고 스스로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엘리야 혼자만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아합 왕궁 맡은 오바다가 선지자 100명을 50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18: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명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은 자가 남아 있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18).

 

혼자 외롭게 지낸다는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면 이렇게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어도 엘리야는 아직도 ‘나만 혼자 남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승리한 후에 일어난 마음의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을 한 것입니다. “나만 혼자 남았거늘”이라고 말한 것은 엘리야의 교만함을 나타내는 실수를 범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수를 우리도 쉽게 범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해 냈을 때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외로움에 빠지면 자기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혼자라는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병이 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살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직도 네가 할 일이 있다는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너는 네 길로 돌이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을 때 엘리야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후계자로 삼았습니다(19).

 

이것은 엘리야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혼자 있으니까 기도하기도 좋고 성경 말씀을 잃는 것이나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외로움에 고통을 느끼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로움에 빠져 괴로워 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다고 하시며 일으켜 주십니다. 외로움을 이기고 남아있는 사명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로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허창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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