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스크랩] 제 4 부 바울의 1차 전도 여행(2)

하나님아들 2018. 7. 25. 23:3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박해를 받고 떠난 바울과 바나바는 동쪽을 향해 갔다. 비시디아 안디옥 동쪽 1백60km 지점에는 소금기가 많은 대초원과 습지 너머에 이고니온(현재의 콘야)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 앞에는 화산에 에워싸인 고원 지대가 나타났다. 여름이면 이곳은 사막이 되어 무더위 가운데 먼지 바람이 불고, 겨울이면 여러 달 동안 깊은 눈이 쌓이며 봄이 되면 습지가 되어 사람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 길을 바울과 바나바는 열흘이 넘도록 걸었다.

이고니온 바울 기념교회

 

 

 

 

 

 

 

 

 

 

 

 

 

 

 

이고니온은 '양의 가슴'이라는 뜻을 가진 소아시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로 바울이 전도를 위해 방문할 당시는 루가오니아의 수도였으며 로마로부터 자유로운 도시였으나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다.

현재의 터키의 중요한 상업도시로 '코냐'라 불리어진다.

평야에서 많은 곡식과 과일 등이 나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시리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내 쫓긴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내 쫓김을 당하긴 하였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이 기쁨과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것에 대한 기쁜 마음을 안고 이고니온으로 들어 온 것이다.

 

이곳에는 갈라디아인과 로마의 관리들 및 퇴역 군인들과 비시디아 안디옥처럼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의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회당에 들어갔다.

예배에 참여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처럼 율법서와 예언서를 낭독한 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과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였다,

이고니온에는 훗날 바울의 여제자가 된 테크라 라는 처녀가 있었다. 이 테크라에 관해서는 주후 2세기에 기록된 신약 외경 '바울과 테크라 행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난 테크라는 이층 창문 너머로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 테크라는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귀족 청년과의 약혼을 파하였고, 테크라의 부모는 분노하여 바울을 고소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바울을 구출하려고 하던 테크라는 행정관에 의해 독사의 굴에 던져졌다. 그러나 테크라는 무사히 독사의 굴에서 빠져 나왔다.
그 후 테크라에게 찾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려 하는 사람과 그 덕을 본받아 회개하고 신도가 되는 사람이 날로 더해졌다. 테크라는 길리기아의 실루기아로 가서 동굴 속에서 기도 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여든 살 때 임종하였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믿지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의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악한 마음을 품게하여 집단적인 공격을 할 움직임까지 나타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그러한 위협을 무릅쓰고 오랫동안 머물며  힘있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저들에게 능력을 주시여 표적괴 기사를 행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다. 그 결과 성내에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 유대인을 쫓는 자들과 바울과 바나바를 쫓는 자들로 두패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갈라디아인과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갈수록 사도를 핍박하는 유대인 무리들이 거세지고 관원들과 합세하여 우월적인 지위로 바울과 바나바를 능욕하고 돌로 치려하자 피하여 이고니온을 떠나게 되였다.

 

이고니온을 떠난 바울과 바나바는 남쪽으로 약 38km 지점에 위치한 루스드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

루아오니아는 소아시아의 중남부 지방으로 북쪽으로는 갈라디아가 있고, 동쪽에는 가바도기아, 서쪽에는 브루기아 비시디아가 인접하여 있다. 이 지역은 마게도냐에 정복된 적이 있으므로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루스드라는 해상을 통한 무역을 할 수없는 내륙이므로 그곳 주민은 주로 농사와 목축에 의존했다. 약간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회당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드라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은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바울을 주목하여 보며 그 말씀을 듣는데 바울이 그 앉은뱅이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그 것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며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를 드리려 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제지하며 "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믿으라고 하는것입니다" 라고 간곡히 만류하였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헬라 최고신인 제우스(Zeus)를 섬기고 있었다. 이 제우스를 쓰스라고 칭하고 그의 전령 헤르메스(Hermes)를 헤메라고 칭했다. 헬라 신화 속에 나오는 그리스의 신들은 신인동형론으로 신을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1909년 람제라는 사람이 이 성읍 부근에서 루가오니아인이 쓰스(Zeus)와 허메(Hermes) 신상에 바친 비문을 발견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쓰스와 허메가 여행자의 모습으로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남루한 행색의 그들에게 아주 냉담하게 대하여 박대하였다. 빌레몬과 바우기스라는 부부만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재워주었다. 쓰스와 허메 신은 사람들의 냉대에 진노하여 홍수로 성읍을 멸망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죽고 빌레몬과 바우기스 부부만 구원 받았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제우스 신이 언젠가 사람의 모습으로 루스드라를 방문할 것이라는 생각하였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를 그 신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루스드라 동굴교회

 

루스드라에는 디모데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가 살았고(16:2,3;딤후1:5) 바울 일행은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 같다.

특히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의 현장에 디모데라는 청년인 있었는데 그 청년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유대인 어머니와 외할머니 로이스를 통하여 믿었던 하나님의 희미한 실체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였고 예수를 구주로 믿기에 이르렀다. 그외 수많은  루스드라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 오게 되였다.

바시리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유대인들이 무리들을 데리고 와서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이사람들이 마술과 같은 속임수로 루스드라 사람들의 종교를 파괴하고 있다고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쳤는데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 내였다.

성밖으로 버려진 바울의 주변에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제자들이 둘러서서 바울의 죽음을 바라 보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벌떡 일어난 것이다. 아마도 잠시 기절을 했던 것 같다.

이것을 기록한 누가는 그 일의 증인들로서 제자들을 언급했다. 이 제자들이 쓰러진 바울을 중심으로 둘러섰던 것은 바울의 상태를 알아보고 죽었으면 장례 절차를 집행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바울은 루스드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 했던 루스드라 성내로 담대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바울의 담대함에 기절을 할 노릇이였다. 그 것보다도 바울을 돌로 친 유대인들은 어땠을까. 복음전파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바울의 그런 모습에 그들도 아연 질색하였을 것이다.

후에 바울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바실리아 안디옥을 방문하여 다시 전도 한 것을 보면  바울의 담대함을 새삼느끼게 된다. 바울의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에 기독교가 있었음을 누가 부인 하겠는가.

루스드라 성에 들어간 바울은 이튿날 바나바를 데리고 더베로 향하였다.

 

더베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약 3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길리기아와 인접한 곳으로 로마의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이름을 따 글라우디우스 티베라 불리기도 는데 이곳은 아시아까지 바울과 동행한 가이오의 출신지로 알려져 있다(20:4).

루스드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 지점인 더베에 도착하였다.

 

더베의 언덕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 도착하여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게 되였다.

바울이 생명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할 때에 더베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할 때마다 많은 사람을 제자로 세웠다. 
여기서 제자란 바울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의미하는데 사도행전의 특징은 바로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제자가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세운 제자들은 그들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더베에서 많은 제자를 세우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그 곳이 다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핍박의 장소들이였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기절까지 했느데 그럼에도 다시 그곳으로 간 것이다.

바울은 핍박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말 강한 십자가의 군병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더베를 나와 루스드라, 이고니온. 바시리아 안디옥을 들리며 그 곳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강한 십자가의 군병이 될 것을 권면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믿음으로 굳게 하고 다시 올것을 약속한 후 습지가 있어 전도하지 못했던 밤빌리아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떠났다.

바울 일행은 버가(13:13)를 거쳐 앗달리아로 방향을 바꾸어 갔는데 왜 방향을 바꾸어 앗달리아로 갔는지 그 이유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버가에서도 복음을 전한 점으로 보아 귀환 길에도 쉬임없이 전도활동을 계속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전도의 목적을 갖고 앗달리아로 갔을 것이다.

앗달리아는 항구도시로서 버가의 서남쪽 약 26km에 위치해 있는데 이 항구도시는 B.C.159-138에 버가몬의 왕으로 지냈던 아탈루스 왕이 건설한 것이다

지금은 아달라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는데 바울과 바나바가 이 도시를 찾은 것은 소아시아의 남단에서 이 도시가 가장 큰 항구도시로 인구가 많아 전도 전략상 중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앗달리아에서 복음을 전 한것을 끝으로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 하여 안디옥 교회에 선교보고를 함으로 멀고도 긴 1차전도 여행을 마감하고 안디옥에 일년정도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안디옥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하였다.

 

예루살렘 기독교 총회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중 예수를 믿는 유대파와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  헬라파로 갈라져 있었다(행 6:1)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안에서 유대교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뜻에서 이방인들도 할레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을 펼쳐 왔었는데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한 이방인과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레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을 하였다.

유대파 그리스도인 중 몇 명이 안디옥으로 내려 와서 이방인과 헬라파 유대인들도 모세의 법대로 할레를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고 하자 그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파 형제들과 다툼과 변론이 생겼다. 바울과 바나바로서는 구원의 조건에 할레를 받아야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복음을 전한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였기 때문에 매우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디도는 안디옥 교인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배웅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게 되였다.

AD49년 바울일행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자신들이 지나가는 성읍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가는 열정을 보였다.  이 지역들은 팔레스틴에 속했으나 유대인들에게 소외된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역인데 그들에게 소아시아 유대인들과 헬라사람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전해 주자 그들도 함께 기뻐 하였다

 

사마리아 그리심산에 정상에 있는 옛 교회 터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일행은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로 부터 환영을 받고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고 그들이 구원 받게 된 경위를 바울이 전하였다.

그러자 바리새파 중에 믿는 유대파 그리스도인이 일어나 말하기를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는것이 마땅하다 주장하였다.

이 문제로 사도와 장로들이 의논하고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형제들아 너희도 아는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는데 지금 너희가 어찌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는가.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는다" 라며 구원의 조건이 할레가 아님을 말하였다.

베드로의 명쾌한 복음의 논리로 변론은 끝나고 베드로의 의견으로 회의장이 정리가 된 후 이방선교의 주역인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할 수 있었음을 보고하였다.

바울의 선교 보고 후에 예루살렘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야고보가 이방인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포하고 내 의견에는 "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자 모두 좋게 생각하여 그리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그 결론에 의하여 예루살렘교회는 회의 결과를 편지로 써서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보내는데 이미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전한 할레에 관한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바사바라는 유다와 실라를 대표로 선발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시켜 이방인 형제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할레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였다.

다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고 엄중히 가르쳤다.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 교인들에게 편지를 읽어 준 후 편지를 전하고 형제들에게 여러가지 말로 위로와 권면을 하고 얼마간 머물다 안디옥 교인들의 전송을 받으며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머물며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 하였다.

출처 : 속초밥사랑공동체
글쓴이 : 밥사랑최효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