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성경은, 또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하나님이심을 밝히 증거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6문: "하나님의 본체 안에 몇 인격들(persons)이 계신가?" 답: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데, 이 셋은, 본질(substance)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포함한다.
3-1. 본체의 단일성
첫째로,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다.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세상에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문: "하나 이상의 하나님들이 계신가?" 답: "살아계시고 참되신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다."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주요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단수; '우리'가 아니고]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명기 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의 유일하심은 그의 본체의 단일성이라고 이해된다. 하나님의 본체(혹은 본질)란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과 활동들의 공통적 주체(主體)가 되는 객관적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 말에 본체와 본질은 약간 다른 뉘앙스를 가지는 것 같다. 본질(本質)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모든 것(what God is, or whatever it is to be God)을 가리키는 비교적 추상적 개념이지만, 본체(本體)는 그러한 본질을 가지신 구체적 존재를 가리키는 맛이 있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본체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촬스 핫지는, 니케야 신조의 호모우시오스('같은 본체[혹은 본질]의')라는 말이 단순히 종류적 동일성(specific samenes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수적인 동일성(numerical identity)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일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이 종류적 동일성의 의미로 해석된다면, 니케야 신조는 삼신론(三神論, Tritheism)을 가르칠 것이다"고 했다(I, p. 460).
초대교회에 작성된 아다나시우스 신조(Symbolum Quicunque)는 다음과 같이 보다 분명하게 진술한다: "아버지는 영원하시고, 아들은 영원하시고, 성령은 영원하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영원자들이 아니고 한 영원자이시다. . . . 이와 같이 아버지는 전능하시고, 아들은 전능하시고, 성령은 전능하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전능자들이 아니고 한 전능자이시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하나님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시다"(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II, p. 67).
둘째로, 하나님께는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과 성령의 삼위(三位, 세 인격)가 계시며, 이 삼위는 서로 구별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나님의 본체(the Godhead)의 단일성 안에, 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세 인격들, 즉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 아버지는 아무에게서 나시지도 나오시지도 않고,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역사상, 하나님의 삼위의 구별을 부정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들을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혹은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라고 부른다. 성부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소위 성부(聖父) 수난설도 이런 사상에서 나온 오류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삼위 곧 세 인격의 구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마태복음 3:16, 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린도전서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위(位) 혹은 인격(person)이란, 자의식(自意識)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identity)를 인식하는 이성적 개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본체 안의 삼위는 서로 구별되는 세 개체적 존재 혹은 실존(subsistence)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내가 의미하는 위(位)는 신적 본체 안의 한 실존, 즉 다른 둘과 관계되었으되 공유(共有)될 수 없는 특성들에 의해 구별되는 실존이다"고 하였다(기독교 강요, 1. 3. 6).
영원한 신적 본체는 동일하게 모든 위들에 공통되며, 이런 의미에서 그 셋은 하나이다. 그러나 이 신적 본체는 위적 특성들에 의해 구별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며, 이런 의미에서 그 셋은 셋이다. 뿐만 아니라, 삼위는 신적 본체와 나란히 있는 어떤 존재들이 아니고 그 본체 안에 있으며 신적 본체의 한 존재 양식이다. 아버지는 참 하나님이시요, 아들도 참 하나님이시요, 성령도 참 하나님이시다. 각 위는 신적 본체와 동일하고, 다른 둘을 합한다 할지라도 더 크지 않다. 그것은 각 위에 신적 본체 전체가 있기 때문이다.
☞ 아버지는 삼위를 대표하며, 그래서 그는 단순히 하나님으로 표현되고,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된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그는 또한 삼위일체적 관계에서 아버지로서 언급된다. 요한복음 1:14, "아버지의 독생자." 요한복음 5:17, 18,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 . . .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8:54,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요한복음 17:2, 3,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에베소서 1:3, 4,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 .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삼위의 두번째 위[인격]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그의 신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비록 메시아적 의미로 그 명칭이 사용되는 문맥이라 할지라도, 약속된 메시아는 신적 메시아이심이 증거된다. 다시 말해, 이 명칭은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존재론적 관계에서 아들이시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요한일서 4:9,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독생자'(모노게네스)라는 명칭(요 1:14, 18; 3:16, 18, 요일 4:9)은, 비록 사람의 외아들(눅 7:12; 9:38)이나 외동딸(눅 8:42)에게도 사용되지만, 성부와 성자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증거하는 다른 여러 구절들(마 11:27; 요 5:18-25 등)도 이런 의미를 암시한다. 신성은 인격성을 내포하고,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인격적 관계에서 가장 잘 이해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의 말씀(로고스)은 인격적 신성의 존재로 인정되어야 하므로 그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한 성자[아들]의 영원 출생의 신비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은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라고 표현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영원하다. 그 관계를 시간 세계 속의 무엇으로 생각한다면, 아들의 신성에 결함을 주고 그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출생을 영원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영원적이라는 말은 비시간적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는 친히 요한복음 17:5에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성자의 영원 출생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심, 그의 불변하심 그리고 성자의 참된 신성 등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자의 영원 출생의 교리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자의 참된 신성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진술과 같이, 다음의 4가지 요점으로 정리된다.
① 신적 명칭들에 의하여. 이사야 9:6, "그 이름은 . .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요한복음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디도서 2:13,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일서 5:20,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② 신적 속성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③ 신적 사역들에 의하여.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④ 신적 존영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한계시록 5:12, 13,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는 고대의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 오늘날의 일위신론(一位神論, Unitarian- ism)이나 자유주의는 명백히 이단이다.
☞ 삼위의 세번째 위[인격]는 성령이시다. 성경에서 성령은 몇 가지 명칭으로 불리웠다. '영'(루아크, 프뉴마)은 바람같이, 생명의 호흡같이 일하시는 그의 외적 사역의 양식을 나타낸다. '성령(聖靈)'은 그의 본질과 사역의 거룩한 속성을 나타낸다. 그는 거룩한 영이시며 거룩을 이루는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신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보인다. '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삼위일체적 관계성을 보인다.
성자의 영원 출생과 같이, 성령의 나오심도 영원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근거는, 성자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불변하심, 그리고 성령의 참된 신성이다.
성령의 참된 신성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진술과 같이, 다음의 4가지 요점으로 정리된다.
① 신적 명칭들에 의하여. 사도행전 5:3, 4, "네가 성령을 속이고 . . .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도행전 28:25,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② 신적 속성들에 의하여. 고린도전서 2:1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히브리서 9:14, "영원하신 성령."
③ 신적 사역들에 의하여. 창세기 1:2, "하나님의 신[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욥기 26:13, "그 신[영]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④ 신적 존영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초대교회로부터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단일신론, 소시너스주의, 일위신론 등이 그러하다. 특히, 그들은 성령께서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부정했다. 그러나 성령의 신성은 그의 인격성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격성은 성경에서 사용된 성령의 인격적 명칭들과 인격적 특성들을 통해 밝히 증거된다.
① 성령의 인격적 명칭들.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성령은 헬라어에서 중성명사이지만, 여기 '그가'(에케이노스)라는 말은 남성 지시대명사로서 그의 인격성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여기의 '이는'(호스)도 남성 관계대명사로서 역시 그의 인격성을 보인다.
② 성령의 인격적 특성들. 요한복음 14: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26,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사도행전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사도행전 10:19,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사도행전 16:7,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아들로부터도'(filioque = and from the son) 나오신다는 사실은 역사상 논쟁되었던 바이었다. 동방의 그리스 정통교회는 이 사실을 부정했고 그것이 11세기 동방의 그리스 정통교회와 서방의 천주교회의 분열의 교리적 주요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는 성경적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영' 혹은 '아들의 영'으로 불리우신다는 사실에 있다.
요한복음 15:26,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1:19,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요한계시록 5:6, 어린양의 일곱 눈은 일곱 영 곧 성령이시다(1:4 참조). 또한 요한계시록 2:1, 7은 예수님과 성령을 동일시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시는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문답이 진술하는 대로, 삼위는 신적 본체에 있어서 동일하고 그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시며, 이 셋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삼위는 그 위적(실존적) 특성과 사역에 있어서 일정한 순서를 가지시며 그런 점에서 그들 가운데 어떤 종속적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 ". . . 아버지는 아무에게서 나지도 나오지도 않으시고,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삼위 간의 논리적 순서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다. 비록 영원적으로이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종속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셨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보내셨다. 요한복음 3:16, 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물론, 삼위의 참된 신성(神性)을 생각할 때, 삼위 간의 영원적 종속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이성의 이해를 초월한 신비이다.
또한, 삼위는 서로 간의 사역에 있어서 구별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신다. 낳으심은 성부만의 사역이다. 아들은 오직 낳으심을 받으신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은 오직 그들로부터 나오심을 받으신다. 이것을 삼위의 내향적 사역(opera ad intra) 혹은 본질적 삼위일체(essential Trinity)라고 부른다.
삼위는 또한 창조와 구속의 사역에 있어서, 비록 근본적으로는 연합하여 일하실지라도, 어느 정도 사역적 구별을 가진다. 창조는 주로 성부에게, 구속은 주로 성자에게, 구속의 적용(중생과 성화 등)은 주로 성령에게 돌려진다. 이것을 삼위의 외향적 사역(opera ad extra) 혹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진리는 매우 신비하다. 이 진리의 교리적 진술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만족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단지 단일신론이나 양태론(樣態論, Modalism) 혹은 삼신론(三神論) 등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삼위일체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믿음은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신 때문이다"고 하였다(교의신학, 2권, 202쪽).
그러나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진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 체계의 중심과 같아서 신학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이 진리가 버림을 당한다면, 속죄와 중생 같은 다른 중요한 교리들도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위신론(一位神論, Unitarianism)은 항상 인간의 전적 부패성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부정하는 자력적(自力的) 구원 사상(펠라기우스주의와 소시너스주의의 인간론과 구원론)과 같이간다. 덧붙여, 삼위일체의 진리는 하나님의 독립성, 그의 자충족성(自充足性, 스스로 충족하심) 그리고 그의 인격성을 후원한다. 삼위일체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아무 부족이 없으시며 인격적 교제와 사랑을 가지시는 하나님으로 더 잘 이해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