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스크랩]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아들 2018. 6. 3. 23:32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1999년 8월호)

윤용진
kireb@netsgo.com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가. 하나님(데오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 중에 엘(El), 엘로힘, 엘리욘, 엘 샤따이 등에 해당하는 신약의 명칭은 데오스이다. 이 말은 한글개역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구약의 명칭에서 보는 것처럼 엘(El)과 더불어 사용된 복합적 용례들이 신약에서도 나타난다. 엘리욘은 휩시스토스 데오스(Hupsistos Theos)로 번역되었고(막 5:7; 눅 1:32, 35, 75; 행 7:48, 16:17; 히 7:1), 샤따이와 엘 샤따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와 데오스 판토크라토르(Theos Pantokrator)로 번역되었다(고후 6:18; 계 1:8, 4:8, 11:17, 15:3, 16:7, 14). 그러나 데오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자녀들과 각각의 자녀의 하나님으로 간주될 수 있는 보다 더 일반적인 의미로 인하여 나의(mou, 무), 너의(sou, 수), 우리의(hemon, 헤몬), 너희의(humon, 휘몬) 등과 같은 소유격 후접사들이 동반되어 사용되고 있다(행2:39; 벧후1:1; 계4:11, 7:12, 19:5).

그러나 신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데오스의 의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마 23:9; 롬 3:30; 고전 8:4,6; 갈 3:20; 딤전 2:5; 약 2:19). 하나님의 유일성과 더불어 모든 믿는 이들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가장 분명한 신앙은 엡 4:6을 통해 고백되고 있다. 이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밖에 없는 참 신이시다(롬 3:30, 갈3:20, 살전 1:9; 딤전1:17, 2:5; 유25; cf.요 17:3). 이렇듯 참 신에 대한 본질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방의 신들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행 17:16,23).

이 외에도 하나님의 탁월성을 표현할 때에 데오스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유의 주재이시다(행 17:24; 히 3:4; 계 10:6). 하늘은 그의 보좌이고 땅은 그의 발등상이다(마5:34, 23:22; 행7:49). 그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다(막 10:27).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며(막 5:7; 눅 1:32; 행 7:48, 16:17; 히7:1) 만국의 통치자 왕이시다(계 15:3).

나. 주(퀴리오스)

구약의 헬라어 역본인 LXX(70인역)에서는 이 명칭이 약 9,000회 이상 나타난다. 이 용어에 걸맞는 구약의 용례들이 많지만 그 중에 아돈(lord)에 대한 번역으로서 사람에 관련하여 사용된 경우는 약 190회이다. 아돈(lord)은 일정한 그룹이나 사회의 최고 책임자로서 명령권자를 가리키는데(삼상 25장) 호 2:16에서는 '주인'과 '남편'이라는 용법으로써 여호와께 적용되었다(호 2:16). 또한 바알(lord)의 번역으로 사용된 경우는 15회로서 주로 혼인법이나 재산법 관계에서 나타난다(호 2:18; 삿 19:22-23).

그러나 이 용어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히브리어는 역시 야웨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전개 결과로 인하여 LXX에서는 야웨라는 명칭을 피하여 아도나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스라엘의 야웨 신앙이 포로 이전의 민족적 종교차원에서 알렉산더 시대(356-323 B.C.) 이후로 국제화되고 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야웨는 창조주이시고 전 우주의 주재이시며 사람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다. 여기에서 야웨라는 이름이 지니는 특수성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야웨는 그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둘째,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시고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인(Lord)이시다. 셋째, 그는 온 우주의 창조자로서 만물을 마음껏 다스릴 수 있는 법적인 주인이시다.

신약에 나타나는 퀴리오스의 구절은 모두 약 717개이다. 그중 누가의 저작(210회)과 바울의 서신서들(275회)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와 바울이 헬라의 지배하에 살고 있는 청중들을 위하여 쓴 책과 그들에게 보낸 서신들에서 퀴리오스를 많이 사용하였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에 유대적 기독교인들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마가복음에서는 겨우 18회 정도 나타날 뿐이고 그것도 대부분 인용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약에서 퀴리오스가 사용되는 경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lord)과 종이라는 사회적인 신분 관계에서 통속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마 10:24 f.;18:25, 27. 25:19; 눅 12:36f., 46; 엡 6:5,9; 골3:22). 즉, 헬라어 퀴리오스는 소유주(막 12:9; 눅 19:33; 마15:27; 갈4:1)이나 고용주(눅16:3,5)를 의미한다. 아내에게 남편은 퀴리오스이다(벧전 3:6;cf .창18:12 in LXX).

둘째, 하나님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구약의 야웨에 해당되는 신의 명칭으로 가장 많이 쓰였다. 특히 다양한 복합어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의 손(눅 1:66; 행11:21), 주의 천사(마 1:20; 눅 1:11; 행 5 :19 등), 주의 이름(약 5:10,14), 주의 영(행 5:9, 8:39), 주의 말씀(행 8:25, 12:24, 13:48 f.;15:35 f.) 등이다. 또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문형도 구약에 근거한 용법들이다(롬 12:19=신 32:35; 고후6:17=사 52:11; 계1:8 cf. 출 3:14).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주(야웨) 하나님'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표현으로써 강조되고 있다(계1:4, 8, 17, 2:8, 4:8, 11:15, 17, 16:7;, 19:6, 21:6, 22:6, 13).

셋째, 예수님을 주(퀴리오스)로 호칭한다. 지상 사역 중의 예수님을 주로서 불렀다(마7:21, 17:4, 21:29 ff.;막 2:28; 눅 6:46 등).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주이시다(롬 10:9; 고전 12:3; 빌 2:11). 그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다스리시는 주이시다(롬 14:9). 그는 주의 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다(계1:5, 17:14, 19:15f.). 그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다시 오실 심판의 주이시다(빌3:20;고전1:7-8;5:5;고후1:14;살전5:2;살후1:9;2:1,8;딤전6:14).

다. 아버지(파테르)

파테르는 구약 성경의 압(아버지)에 해당되는 용어로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정을 듬뿍 느끼게 하는 용어이다. 어머니(메테르)와 더불어 인도-유럽어원을 가지고 있다. 파테르의 가장 흔한 용례는 역시 아버지 또는 조상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의 명칭으로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이방인들의 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가릿(Ugarit)의 신 엘(El)은 '인류의 아버지'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달신 신(Sin)은 '신들과 사람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리이스 시대의 제우스(Zeus)도 '사람과 신들의 아버지'로 불려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 불리운 것(신 32:6; 사63:16, 64:8; 렘31:9; 말 1:6, 2:10 등)은 이스라엘의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며(출 4:22; 신 14:1f.; 호 11:1ff.), 그들을 선택하여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렘 31:9, 20; 호11:8)으로서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와 같은 권위와 능력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경과 순종의 대상이시다(신32:5f.; 렘3:4f.,19; 말1:6).

신약에서 언급되는 아버지의 용례 중 약 245회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약 157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여러 번 호칭하셨다. 마가복음에 3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병행구에서 4회, 누가복음의 독특한 구절에서 4회, 마태복음의 나머지 부분에서 31회, 요한복음에서 100여 회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셨는데(마 11:25-27) 예수님이 행하신 대부분의 기도문이 그 증거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마 26:39, 42; 막14:36; 눅 10:21, 22:42, 23:34, 46; 요 11:41, 17:1, 5, 11, 21, 24f). 그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라고도 호칭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임을 강변하셨다(요10:30).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약 40회 언급하고 있다. 그 양태도 다양한데 축복의 메시지(롬 1:7; 고전 1:3; 고후 1:2)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찬미(롬 15:6; 고후 1:3; 엡 1:3)를 통하여도 언급한다. 또한 교리적 신조 구절(고전 8:6; 엡 4:6)과 기도문(엡 5:20; 골 1:12)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어법들은 대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롬 15:6; 고후 1:3, 11:31) 등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 즉 삼위 중 제 1위와 제 2위되시는 부자관계를 표현하는데 자주 사용하였다(요 6:57, 10:30, 14:10f.).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고 계셨고(요3:35, 10:15, 16:15)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그 자체였다(요1:18, 8:26-29, 12:49f., 14:7,9). 그러나 기독론적 연관 없이 하나님의 아버지이심을 표현하는 엡3:14f.; 히12:9; 약1:17 등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과 보편적 개념의 우주적 아버지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흥미 있는 철학적 해석을 지니고 있다. 플라토(Plato)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에 근거하여 '우주의 아버지'이심을, 스토아 학파(the Stoics)에서는 온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즉 그의 자녀들의 '창조주요 아버지며 주재자'이심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사실이었다(마카비II 5:7; 지혜서 2:16ff.; 토빗 13:4). 또한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게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8월호).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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