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생기는 일들은 반드시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생애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고안된 일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조명해 보았습니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 편집실 -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가 금방 알아보고 따라갈 수 있도록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니면 애매모호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섭리의 역사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믿음, 즉 우리가 소유해야 할 예수의 믿음과 하나님의 섭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필자가 얼마 전에 겪었던 경험을 나누면서 이 중요한 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브라질 집회로 가는 길에서의 경험

지난해 말에 필자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시에 위치한 한 선교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브라질 사람들을 위해 집회를 인도해 주고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런데 브라질로 여행하는 도중에 아주 흥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경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 믿음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좀더 확실한 이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의 일 년 전부터 미리 초청을 받고 있었던 나는 내 일정표에 이 집회를 적어 두고 석 달 전에 비행기표까지 미리 사 두었다. 떠나야 할 날짜가 되어 내가 살고 있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했다. 밤 비행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비행기를 타려고 데스크에 여권을 내밀었더니 직원이 브라질 가는 비자가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아니, 비자라니? 미국 여권을 가지고 지금까지 20번이나 넘게 남미 여행을 해 보았지만, 비자가 필요한 나라가 없었는데 브라질에 입국하는 비자가 필요하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은 내게 지난 2,3년 전부터 브라질에 가려면 미국 시민도 비자가 필요해졌다고 설명해 주었다. 미국이 외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며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손도장까지 찍게 하는 것을 야속하게 여긴 브라질이, 미국인들에게서 비자를 받아 입국시키라는 조처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나를 초청한 측에서는 내가 그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약 200여 명의 브라질 신자들이 눈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비자를 받으려면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 디씨로 가야 하고, 또 하루 만에 비자를 받는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가 브라질에 가는 일이 주님께 꼭 필요하시다면 길을 열어 주십시오! 사실 저는 다른 곳에 갈 데가 많습니다. 꼭 브라질에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의 섭리대로 인도해 주십시오!”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한 대 대여해서 브라질 영사관으로 향하였다. 같은 날 저녁에, 브라질행 밤 비행기를 타려고 애틀랜타로 가는 오후 5시 비행기를 예약해 두고 말이다. 아침 9시쯤 영사관에 도착하여 직원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비자 사무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비자에 대하여 상의할 직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비자를 받는 기간이 정상적으로는 나흘이나 걸린다는 사실도 아울러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주님! 이번에 브라질 집회에 제가 꼭 필요하시다면 섭리의 역사로 인도해 주십시오!”

 

오후 2시에 다시 영사관을 찾았다. 이미 약 30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다가 제일 마음 좋게 생긴 여직원에게 가서 내 사정을 설명하고 호소하였다. 당신 나라 사람들이 나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그 직원은 내게 언제까지 비자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 시간 안에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며, 오늘 밤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한 시간 내에 비자를 내어 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어 말없이 서 있자, 그 직원이 “그러면 부 영사에게 가서 한번 사정이나 이야기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약 15분 정도 기다렸다. 그 직원이 돌아오더니 생전 처음 특별한 케이스로 한 시간 안에 비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브라질에 내가 필요하신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영사관에서부터 워싱턴 레건 공항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사람들에게 물어 적어 놓았다. 비자를 받자마자 나는 정말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는 뛰어나와 차를 달렸다.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을 피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려나갔다. 20분은 달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중요한 시점에서 그만 나가는 길을 놓쳐 버린 것이다. 잠시 길을 혼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5분 정도를 더 돌면서 허비하고 나서 공항에 도착하여 뛰어갔는데, 약 5분 차이로 비행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이미 수속을 마감했기 때문에 5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갑자기 의심과 혼돈이 생겼다. “과연 내가 브라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란 말인가? 한 시간 안에 비자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으니 어떻게 오늘 밤에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면 브라질로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된 것인가? 비자를 한 시간 만에 받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내가 고속도로에서 나가는 길을 놓치지 않도록 역사 해 주실 수는 없으셨단 말인가? 내가 그만 감정적으로 그렇게 느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서 내가 브라질에 가도록 섭리하시는 것일까?’

 

나는 잠시 기도하고 나서 항공사 다른 직원에게 다가갔다. 그 직원에게 비행기를 놓쳤다는 설명을 하자, 그는 “마침 웬일인지 6시에 떠나는 비행기 한 편이 더 추가되었네요. 짐을 가지고 뛰어가면 아마 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리가 없지만 한 좌석을 만들어 볼 테니 일단 뛰어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준 것입니다.”라고 외치며 무조건 뛰었다.

겨우 비행기 좌석에 몸을 던진 나는 땀을 닦으며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비행기가 애틀랜타에 8시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는 8시 40분에 떠나게 되어 있는데, 과연 그 연결편을 탈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이 열렸으니 또다시 하나님께서 섭리해 주시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그런데 비행기가 10분이나 연착하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 승무원에게 말했으나 연결 편 비행기표를 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리자마자 나는 뛰었다.

 

그런데 예약된 비행기 데스크에 도착하니 약 7분밖에 남지 않아서 문은 이미 닫혀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직원은 내가 안 오는 줄 알고 내 좌석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에게 워싱턴에서부터 여기까지 오게 된 하나님의 섭리를 말해 주면서, 저 비행기도 타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직원은 “정말 비자를 한 시간 만에 받았단 말이에요?” 매우 신기해하며 어디엔가 연락을 하고 나서는 더 좋은 자리에 좌석을 마련하여 주면서 “Have a good trip!” “잘 다녀오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하면서 좌석에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그날 온종일 마음속에서 믿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섭리를 믿는 믿음

우리는 실상 하나님의 섭리를 미리 볼 수가 없다. 더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을지라도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섭리의 역사는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다. 믿음은 섭리나 기적을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안목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되든지,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신뢰하는 믿음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최선을 아시며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불안과 초조함 가운데 살아간다. 그것은 우리의 원대로 이루고 싶은 소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 도착해 보니, 하나님께서 그곳에 나를 정말 필요로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 선교원의 지도자들이,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또한 전도인들이 나의 부족한 가르침과 조언들과 하나님의 복음을 너무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집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감화 속에서 성공리에 마쳐졌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섭리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거나 눈으로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의심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문이 열리며 잘 나가다가도 갑자기 문이 닫혀 버리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주님의 섭리와 뜻을 의심하여 낙심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생긴다.

우선 나의 문제는 내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자 문제를 알아보지 않고서 소홀히 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시면서 역사 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의 역사에도 우리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기다리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원하게 일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터전이며 또한 완악해진 사람들의 마음이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강요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래서 계시록 14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는 예수의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를 믿는 믿음뿐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믿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에 가지고 계셨던 그 믿음, 그래서 죄와 사단을 이기고 승리하셨던 그 믿음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만 사셨던 믿음이다. 그분의 모든 계획과 소원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며 이루는 것이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그 목적을 위하여 사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예수의 믿음

예수 믿음의 진수는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예수님은 인류가 지은 죄 짐의 무게를 느끼심으로 비틀거리기 시작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는 아버지의 임재를 더 이상 느끼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외침이 예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러한 캄캄한 상황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아무런 기적이나 아버지의 섭리를 볼 수가 없으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신뢰하신 것은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예수께서 신뢰하시고 붙들었던 것은 과거에 아버지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잘 알고 계셨고, 그분이 하신 약속의 말씀은 영원히 불변한다는 사실을 믿으셨다. 그리하여 어두운 영혼의 밤중에도 주님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것이었다. 주님은 믿음으로 승리자가 되셨다.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언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의 믿음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 마음과 신뢰가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섭리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핍박당할 때나 시련을 당할 때에, 특히 장래에 큰 환난의 풀무 불에 빠질 때에 하늘 천사들의 합창 소리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광채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시간들은 시험을 받아 고뇌하는 시간이지 영광을 누리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광채나 천사들의 도움이나 응원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을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인내이다. 그것이 예수의 믿음이다. 우리는 그 믿음을 지금부터 실천하면서 배워야 한다. 환난 때에 불러야 할 우리의 노래는 예수 믿음의 노래이다.

 

그 위대한 엘리야도, 침례 요한도 인간적으로 잠시 흔들렸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결국에 가서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였다. 요셉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가 없었다. 노예로 팔려가는 길에도, 선한 일을 하다가 모함으로 감옥에 가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참 믿음을 가지고 믿고 기다렸다. 죽음에 처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면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그는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모진 세월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자가 된 것이다. 빌립보 감옥 속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였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방향을 바꾸어 빌립보로 전도하러 갔던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발이 족쇄에 묶여 꼼짝 못하는 처절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찬송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찬송은 감옥을 뒤흔들어 문들이 열리게 하는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하늘을 움직이는 강력한 믿음의 찬송이었다.

 

현시대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찾는 시대이다. 기적과 눈에 보이는 축복을 갈구하는 시대이다. 복과 번영이 오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듣는 시대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핍박과 고난을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예수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무엇을 믿는 믿음이란 말인가? 우리의 감정이나 자신의 논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 또 눈에 보이는 기적을 믿는 것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믿는 것, 그 말씀의 약속을 믿고 따라나가는 것, 곧 하나님의 명령을 신뢰하고 믿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따라가는 법을 지금 배워야 한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생기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전혀 하나님의 기적이나 주님의 섭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고야 마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는 사람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이글은 www.sostv.net/index.html 의 살아남는 이들 제120 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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