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경우들을 당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보기가 어렵다. 어두운 구름이 앞을 가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낙심 가운데 지나쳐 버리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무신론자처럼 살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고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기는 하지만 나와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섭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생에서 한꺼번에, 한순간에 그것을 다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에도 얼마나 많은 믿음의 노독들이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나아갔던가! 야곱을 인도하시어 라반과 에서의 손에서 살리시고, 결국은 장자의 축복인 메시아의 조상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 요셉을 노예로 팔리게 하시고 감옥에서 구출해 내시어 국무총리 되게 하셔서 기근에서 이스라엘을 보존하신 하나님의 섭리, 애굽의 산파의 마음에 역사 하셔서 아기 모세를 살리게 하시고, 또한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라!

 

사도행전 28장에는 바울이 로마로 가던 배가 파선되어 갖가지 고생을 겪고 멜리데 섬에 표류하다가, 거기서 뱀에 물렸으나 죽지 않고 보불리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게 되어 병자를 고침으로 온 섬이 구원 얻게 된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고, 또한 빌레몬서에는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가 하루는 죄수들을 구경하다가 전도하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어떤 일이나 사건이 그 당시와 순간에는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고 보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가장 위대한 증언이 되는 사람의 생애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섭리의 부르심

인류가 바벨탑의 사건에서 흩어진 후 이 세상에 또다시 우상 숭배가 보편화 되자, 하나님께서 완고한 자들은 한길을 따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고, 셈 계통의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후대를 위한 그분의 율법과 진리의 보존자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남은 무리를 보존하셨다. 아담,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 셈은 계통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보존하였다. 아브라함은 미신과 이교 신앙 가까이에서 자랐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보존해 왔던 그의 아버지의 가족들까지도 주위의 유혹에 굴복하여 여호와보다도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러나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은 우상 숭배가 사방에서 유혹하였지만, 경건하고 신실하며 만연한 우상 숭배와 배교에 부패되지 않은 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손의 번영과 국가적 위대함에 대한 약속이 주어졌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3). 그리고 이에 더하여 다른 모든 것보다 귀중한 보증, 곧 그의 혈통에서 세상의 구세주가 나시리라는 보증이 주어졌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먼저 성취의 조건으로서 믿음의 시험이 있어야 했으며 그것에는 희생이 요구되었다. 첫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섭리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속해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그 당시 사람들은 부족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친족을 떠나 새로운 민족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의 보존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위대한 사명을 성취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에 교제하던 것들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했다. 우상을 섬기는 친족과 친구들의 감화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려고 하는 훈련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부적 증거를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안일하고 윤택했던 생활과 집과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떠났다.

그는 약속의 땅에 관하여 묻지 않았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건강에 적합한지, 그리고 그가 갈 땅이 유쾌한 환경을 제공하며 재물을 쌓을 기회를 줄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하나님께서 그로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시험을 당하였던 것처럼 시험을 받는다. 하늘로부터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교훈과 섭리의 사건들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극기와 고난과 희생의 길처럼 보이는 길로 가도록, 부귀와 명예와 안일을 보장하는 직업을 버리며, 마음에 맞는 유리한 공동생활을 떠나고 친족과 작별하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들을 각각 다른 섭리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감화와 도움에서 벗어나 그분의 도움만이 필요하고 그분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인도하신다.

  섭리의 길에 주어진 시험들

1. 기근의 시험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과 권속들이 처음으로 머무른 곳은 가나안 사람들의 땅 세겜이었다. 그가 들어간 가나안 지역은 아름답고 비옥한 지역이었지만 숲이 우거진 산과 풍요로운 평원은 음울한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그가 다다른 희망의 목적지는 이방 족속에게 점령당하여 우상 숭배가 널리 퍼진 지역이었던 것이다. 숲 속에는 거짓 신들의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부근의 언덕들에서는 인간이 제물로 바쳐진 흔적들이 보였다.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리기는 하였으나 그가 장막을 친 곳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곳이었다. 새로 나타난 아브라함의 권속들에게 어떤 해가 미칠지 모르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그와 함께 하며 그가 악인의 손에 내맡겨지지 않았다는 약속의 보증을 믿으며 그의 믿음은 더욱 굳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았다.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훌륭한 모본을 보여 주었는데, 그의 생애는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생애였다. 장막을 치는 곳마다 그는 제단을 세우고 권속들을 불러 조석으로 희생 제물을 드리며 예배를 드렸고, 그의 장막이 옮겨갔을 때에도 제단은 남아 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점점 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심한 기근이 닥쳐와 가족과 가축 떼들이 기갈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인도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대로 가는 섭리의 길인데 고난이 닥칠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고,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을 버리거나 궁지에 몰린 나머지 그가 떠나온 갈대아 땅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환경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 그의 믿음이 흔들리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기근을 피하여 잠깐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애굽에 체류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약점과 불완전함을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드러냈다. 사라가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그의 생애 속에 나타났던 고상한 신앙과 용기의 결핍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 그는 더 단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2. 약속 지연의 시험과 실패

그 당시 가문에 후계자가 될 아들이 없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축복을 받지 못한 증거로 여겨지고 있었다. 아들이 없이 점점 늙어가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 약속의 성취는 점점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자손도 주시지 않으면서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인가? 때때로 그의 마음은 섭리의 길을 가면서도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열국의 아비”라는 의미를 가진 아브라함의 이름은 무색해 가고 있었다. 아들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으나, 아브라함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과 방법대로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시도록 기다릴 수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약속이 지체되는 일을 허락하셨으나 그는 그 시험을 견디는 데 실패하였다.

사라는 자신이 나이 많아 자녀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지도 모를 인간적인 방법을 제안하게 되었고, 자신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갈을 아브라함이 취하게 하였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부족으로 행해진 하갈과의 결혼은 그의 가정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나쁜 결과를 빚어 내었다. 아직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법을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후에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늙은 사라의 태에 생명을 탄생시키셨고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손 이삭이 태어나게 되었다. 

 3. 마지막 시험

A. 아브라함의 갈등
믿음으로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그의 고국을 버렸으며 친족이 사는 고향을 떠나왔다. 그는 오랜 세월을 유업의 땅에서 나그네처럼 방황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처럼 오랫동안 소망하다가 태어난 아들이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리하여 소망의 결실이 그의 눈앞에 다가온 것같이 보였을 때, 그의 앞에 다른 모든 시험보다도 훨씬 더 큰 시험이 이르러 왔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고통으로 찢어지게 하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번제로 드리라”(창 22:2)는 혹독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삭은 그의 가정의 빛이요, 그의 노령의 위로요, 다른 모든 것보다도 약속된 축복의 후사였다. 그런 아들을 사고나 질병으로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을 것이며, 백발이 된 그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친히 자신의 손으로 그 아들의 피를 흘리라는,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아브라함은 장막 밖으로 나가 맑은 밤하늘을 보며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던 50여 년 전의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였다. 만일 이 약속이 이삭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그가 죽임을 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기만을 당했을 것이라는 유혹이 그에게 밀려왔다. 의심과 고민 중에 그는 땅에 엎드려 이 무서운 의무를 정말 수행해야 할 것인지, 주어진 명령의 확실성을 알고자 이전에 결코 해 본 적이 없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데리고”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귀에 쟁쟁히 울리고 있었다. 장막으로 돌아온 그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의 사랑스런 얼굴을 바라보면서 떨었다. 아브라함은 자고 있는 사라를 깨워서 한 번 더 그의 아들을 안아 보도록 하고 싶은,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를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으나, 그는 사라가 자신의 일을 방해할까 봐 두려워서 자제하였다. 이삭은 그녀의 기쁨과 자랑이었고 그녀의 생명은 그와 결탁되어 있었으므로 모성애가 그 희생을 거절할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을 불러 먼 산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명령에 대하여 그에게 말하고 함께 떠났다. 가는 길에 그는 그의 아들과 하인들이 자는 동안에 기도로 밤을 지새우며, 혹시 하늘의 천사가 찾아와 시험은 이것으로 넉넉하며 이삭이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고통당하는 영혼에게 구원은 이르러 오지 않았다. 그들이 셋째 날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였을 때 북쪽을 바라보던 아브라함은 약속의 표인 영광의 구름이 모리아 산 위에 배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한 음성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지금까지도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고 주의 선하시고 진실하신 증거를 생각함으로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아들은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니 귀중한 선물을 주신 분께서 다시 취하실 권리가 없으시겠는가? 이삭은 기적의 아들이었으니 그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을 다시 회복할 수 없겠는가?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저편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히 11:19)하였다.

B. 승리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는 아버지의 마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밖에 없었다. 지정된 장소에 이르러 그들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았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떨리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아들에게 알렸다. 이삭은 그의 운명을 알고 두려워하고 놀랐으나,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만일 이삭이 불순종하고 반항하였더라면 비탄에 빠진 노인 아버지의 뜻을 꺾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즉시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훈련받은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을 알게 되었을 때 자원해서 순종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마지막 사랑의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포옹을 한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든다. 이때 갑자기 그의 팔이 정지된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부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8). 그는 마지막 시험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복음의 실재를 그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함이었다. 그 무서운 시련의 어두운 날 동안 그가 겪었던 고통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려고 허락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내주셨던 것이다. 어떤 다른 시험도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아브라함은 온 하늘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심을 증명하게 되었고, 완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던 것이다.

 

 섭리를 믿는 자들

하나님께서 섭리로 아브라함에게 시련을 주신 것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후세대에 고난을 참도록 부르심을 받을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과 인내와 믿음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시지만,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잊어버리거나 내버리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욥에게 고통이 이르는 것을 허락하셨으나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사랑하는 요한이 외로운 밧모 섬으로 귀양 가도록 허락하셨으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그곳에서 그를 만나셨다. 그리하여 그의 계시는 불멸의 영광된 장면들로 가득 찼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시련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시련을 통하여 그들이 영적으로 부요하게 되며 그들의 모본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의 근원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믿음을 격렬하게 시험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바로 그 시련들은, 우리가 모든 짐을 그분의 발아래 놓고, 그 대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평안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하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고난의 풀무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셨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순금에서 찌꺼기가 제거되는 것은 풀무의 열을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세밀하고 엄격한 시험으로써 그분의 종들을 훈련하신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어떤 사람들을 보시고 이들을 시련에 처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분의 섭리 가운데서 그들의 품성을 시험하며, 그들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결점과 약점들이 드러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결점들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나라와 봉사에 적합한 자가 되게 기회를 주신다. 그런 기회들을 통해 그들은 교육과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준비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련의 과정들을 지날 때 감사하며 연단을 받아야 한다. 훗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 시련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련의 과정들을 믿음으로 견디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글은 www.sostv.net/index.html 의 살아남는 이들 제120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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