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기독교의 신관인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아들 2017. 12. 2. 22:19


기독교의 신관인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신관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이는 교회사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용어가 사용되고 정립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면서 보다 자세한 가르침이 있어오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의미가 보다 풍성히 알려졌습니다. 삼위일체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이 세 인격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면서 일체라고 하는 독특한 신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가 되신다는 신관은 구약과 신약 많은 곳에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 역사 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세상 만물의 생명을 내시는 창조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 후 그들의 구속사와 관련하여서는 성부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이 두드러지는 것과 함께 성령 하나님의 사역도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일을 하셨으며, 예언하게 하시고 또한 성경으로 기록하게 영감하셨습니다. 때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존재시키는 데 있어서 필요할 경우는 한 개인이나 국가를 움직이게도 하셨습니다. 또한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들어오시는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성령 하나님의 준비 속에서 그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존재성은 오순절의 강림하심으로 온 세상에 충만히 나타내셨습니다.

 

 

삼위일체 신관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재차 확인하여 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신관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이 비록 구약과 신약의 증거를 교리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의 역사에서 확증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신앙으로 확립되기까지는 난관을 거치는 과정인 역사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초기 교회 시대가 가진 신관은 하나님의 유일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고, 성령님에게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보는 것에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유일성을 보았지, 하나님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터툴리안이 처음으로 '삼위일체'란 말을 사용하며 교리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개념이 성자가 성부에게 부당하게 종속되어 있는 불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리겐에 의해서는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며, 성령은 성자에게도 종속된다는 개념으로 가르쳐졌습니다. 교회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공식화하기 시작한 때는 제4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성자를 성부와 일체되는 것으로 선언하였고(325.A.D), 콘스탄티노플 회의(381. A.D)에서 추가적으로 성령의 신성을 주장하며 삼위의 상관 관계를 공식적으로 언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람들에게 자칫 '종속론'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자는 성부에게서 출생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셨다"는 표현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대작(大作)'삼위일체에 대하여'에서 이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만, 표현 자체가 그런 뉘앙스를 띠고 있기 때문에 항상 오해를 가질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표현되어지고 있는 '출생'(나셨다)이나 '발출'(나오셨다)은 우리 인간이 아버지가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에게서 나온 자식은 그 조상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과 같은 이해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에 있어서 상관 관계는 어느 분이 먼저 계시고 어느 분이 나중에 나셨고 또한 나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표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성을 설명한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그 실천인 구속사의 질서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3-1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구원의 성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신 작정을 실천하시는 것으로 아들을 육신을 입게 하여 출생시키셨고, 아들이 이루신 구속을 각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완성시켜 나가시기 위해서 그 아들과 함께 성령을 보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은 그 신격이 하나이신 데서 나오신 표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 동일 본체시오 동일 본성이시오 동일 능력이시오 동일 영원성이십니다.

 

종교 개혁이 있은 후인 개혁교회는 그동안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에 대한 투쟁 속에서 정통 기독교회의 중요 교리로 채택한 신조와 함께 여러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에서, 예컨대 벨직 신앙고백서, 돌트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등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관을 뚜렷하게 가져왔습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단일한 신격(신성) 안에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이 동일하신 세 인격이 계시는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말미암지 않고 나시지도 않으셨고 나오시지도 않으신다. 성자는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셨으며, 성령은 영원히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왼다"(2장 하나님과 삼위일체 3)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종교개혁 이후 시대에 다양한 주장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종속론을 비롯해서 영원한 신인이 성자 안에서 육신이 되셨고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셨다는 형체론, 유일하신 하나님이 사역 시기에 따라서 구약 시대에서는 여호와로 신약 시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교회 시대에서는 성령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양태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신데 그 신격의 본질이 같다고 하는 삼신론은 그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합니다. 이런 주장은 교회사에서 이단 시비를 불러 왔습니다. 그렇지만 개혁교회가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주장도 그 이해를 완전히 명확하게 가질 만큼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이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신비로 돌려 우리의 주관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성을 규명하는 것을 주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커다란 코끼리의 신체 일부를 손으로 만져보고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다"고 극히 한 부분만 설명하는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오늘날에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많은 신자들에게 많이 가르쳐지고 또한 가장 많이 확산되어 있는 삼위일체론은 양태론과 함께 삼신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 삼신론이 적지 않은 지지를 얻고 있는 듯 합니다. 차영배는 그의 저서인 '개혁교의학'에서 지금까지의 한국 교회가 가졌던 삼위일체에 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표현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 '본체는 하나님이나 삼위로 계신다'는 말이 아니고 '삼위가 계시는데 그 본질이 하나이다' 본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가 영원히 실존하시니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로서의 하나님, 혹은 성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본체는 하나님인데 성부로서, 혹은 성자로서, 혹은 성령으로서 나타나는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면 이것은 양태론의 이단에 가까운 생각이 되고 만다. 성부로서가 아니라 바로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자로서가 아니라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령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언급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매우 잘 표현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럴 경우 단일한 신격 안에 세 인격이 계시다고 하는 정통 기독교회의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삼위의 구별된 본질에서 시작하여 그 본질이 서로 동일한 것으로서 하나라고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 삼위의 독립된 개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 독립된 삼위의 개체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곧 신격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지닌 독립적인 개체는 그 신격성 또한 개체라고 하는 견해를 갖고서 삼위 하나님의 신격의 본질은 동일하다고 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만일 이러한 의미에서 가진 견해가 아니라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가 저자/차영배의 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저자의 글을 의도적으로 훼손할 뜻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그래서 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을 뵙게 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조심스럽게가 아니라 이제는 아주 설득력 있게 주장되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통적으로 개혁교회가 가진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에서의 '삼위'를 하나님의 인격성을 지닌 구별되고 독립적인 개체(실존)의 구분으로 보고 '일체'를 단일한 신격으로 봄으로써 단일한 신격 안에서 세 분의 인격성이 구별되며 또한 독립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분명한 삼신론입니다. 그것은 동일한 본질의 신격을 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신격은 인격과 마찬가지로 구별되고 독립적인 것으로서의 성질이기 때문에 단일한 신격에 의한 유일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한 신격을 세 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의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셨습니다. 여기서 구분되어지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삼위'는 세 인격성의 구분을 뜻하고 있어서 삼위 하나님이 각기 독립적이고도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인 인격성을 지닌 실존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 실존은 하나님의 신적 본질의 기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즉 성자이신 하나님의 기원은 성부에게서, 성령이신 하나님의 기원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시작된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루이스 벌콥은 말하기를, "신적 본질의 생성(발생)이라기 보다는 인격적(위적) 실체의 생성(발생)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칼빈이 말한 주장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신성에 있어서 한 분이시고, 인격에 있어서 삼위이시고, 관계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이해는 철저히 하나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계시와 구속 사역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단지 삼위 하나님의 인격성이나 존재성만을 갖고 논한다고 하면, "단일한 신격 안에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이 하나인 삼위가 계시니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이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신격은 동일하다"는 논리로 끝없는 충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데 당신의 영원한 작정의 실천으로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고 설명하십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구별된 독립적인 인격성으로 그 존재성을 나타내시고 일하시는데, 그 본질은 하나이니 단일한 신격입니다.

 

이러한 이해에 의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진술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도다"(왕상 8:60).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고전 8:5-6).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신 것은, 그분은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불변하신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자존자이시며 자신 안에서 스스로 모든 생명과 영광과 선하심과 축복 등을 가지시고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충족하게 행하시는 충족자이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만물의 통치자이신 점에서 다른 신(우상)과 구별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세 격위)가 계시는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아버지뿐 아니라 아들과 성령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라고 말하여서 아버지의 아들의 관계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영"(8:9)이라고 말하여 성령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기원할 때 삼위 하나님의 특성을 가지고 하였습니다(고후 13:13). 이는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가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론적인 근거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제자 삼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28:19).

 

하나님의 삼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따른 자기 계시에서 그 상관 관계가 잘 나타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일하신 구속사의 특징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 성자 하나님의 실행, 성령 하나님의 적용이라는 이 세 가지 사실로 설명됩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에서 부각되시며 구원을 작정하시고, 또한 그 구원의 실행을 위하여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실행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는 대속주가 되게 하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내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적용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하여 영단번으로 받은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완성시켜 가십니다.

 

셋째, "삼위의 각 고유성은 구별되나 그 본질은 같으시고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시다"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각 인격성은 고유한 것이며 독립적인 것입니다. 성부의 고유성은 성자를 낳으심이며, 성자의 고유성은 성자로부터 나심이며, 성령의 고유성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오심에 있으면서 그 각각의 고유성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은 그 본질이 같으시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기 때문입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삼위일체 계시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복수로 표현되어지거나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여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께서 그 자신의 존재성을 아들과 성령과 함께 그 모습을 나타내시어 일하시는 것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인격과 생명과 능력과 영광을 보이셨음을 알 때 이해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원리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실 일을 작정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거룩한 일을 성령에 의하여 완성시켜 나가실 일도 작정하신 것의 실천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을 드러내셨으며, 때가 되시자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것이기에 자신을 보내신 분의 거룩한 뜻에 순종으로 나가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내신 자의 인격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에서 하나님께서 복수로 등장하여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앞두고 중보자의 기도를 하실 때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들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고서 철저히 자신을 순종으로 드려 가는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이분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1:49) 라고 말씀하여서 예수님을 통해서 곧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들과 또한 성령님이 일하신 데서 보이신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본래적 상태를 말하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2:6)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과 그 인격을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가르치시며,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나타내어 주셨습니다(4:23).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은 우리를 향한 거룩한 뜻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 완성하시고 그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에게서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이 당신의 본체론적(존재론적) 관계에서와 구속 사역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때, 구속 사역의 완성 이후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당신의 나라의 주이신 하나님 한 분과 그의 백성이 함께 영생하는 신세계로 영원 무궁할 것이라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뵙는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신의 특성은 유일성이요 그 존재성 또한 유일성입니다. 신세계로서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존재성을 계속해서 삼위일체 교리에 의한 단일한 신격 안에서 갖는 유일성으로 가져야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은 삼위일체 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자기 계시의 용어로서 가장 최적의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성경에서 보게 되는데 특별히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있으며, 이는 창세 전에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신적작정)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당신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해 가실 것인지를 작정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창조와 그들에게 있었던 일, 곧 천사의 창조와 사단의 출현, 그리고 인간 세계의 창조와 타락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실천으로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계시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여서 복수를 쓰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복수로 표현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란 단수를 쓰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는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룰 일을 작정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택하신 진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속이란 방식을 동원해서 우리를 하늘에 있든지 땅에 있든지 사방에서 모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심으로써 실천하시고 성취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맡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순종으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 나간 구속의 완성을 이룰 사역을 위해 성령을 보내는 일을 아버지 안에서 또한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오심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함께 자신이 해 나가야 할 일에 대한 성격을 뚜렷이 인식한데서 되어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가지신 영원한 작정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자기 계시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계시는 단지 삼위일체로서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을 알리는 그런 차원이 아닌 분명하게 삼위일체로 존재하신 하나님께서 그 존재하신 대로 각각 맡은 사역을 수행하실 것이기에 그 구별된 삼위 하나님이, 곧 하나님의 구별된 인격이 뚜렷하게 그의 사역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영원한 작정의 실천으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는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독특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성부가 하나님이시고, 성자가 하나님이시고, 성령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삼신론이 아니고 유일신론입니다. 그렇다고 단일신론도 아닌 유일신론입니다.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한 영원한 작정을 가지셨으며, 그 작정과 그것을 실천해 나가시는 데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보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권세에 있어서 동등하시며, 동일 본질을 가지고 계시어서 한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라는 이해 속에서 그에 대한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6:4),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딤후 6:15-16)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심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영원 전에 하나님을 보는 모습이 그러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보는 모습 또한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영이시다"(4:24)라고 말씀하여 ''()이신 하나님 자신을 ''()으로써 말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은 과연 분리되거나 나누일 수 없으며, 해서 또한 여럿 일 수 없는 분이심을 알 때 하나님을 수의 개념인 세 분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

  

출처...가우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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