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의 전도에 대한 이해
Ⅰ. 현대 교회의 전도에 대한 이해
‘전도하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부담감, 죄책감, 안 된다, 어렵다. 전도왕이나 하는 것이지, 나같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어렵다’ 등 전도를 생활화하지 못한 수많은 이유들을 쏟아낼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은 전도에 대하여 사명과 부담감을 갖고 있지만, 무슨 전도 방법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지 못한 것 있다.
그렇다. 신자들은 성경적인 확신을 품고 부담없이 마음껏 활용하여 전도와 번식을 경험할 수 있는 검증된 전도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은사를 가지고 있는 신자만이 전도를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전도는 교회에서 일년에 한번 정도 시행하는 행사나 프로그램 정도로만 이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전도를 특수한 사역이나 일회적 성격의 연중행사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정도이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여 사명을 가지고 감당해 나가야 하는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전도를 생활이 아닌 일련의 행사 정도로만 시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전도가 시스템을 통해서 생활화되지 못한 채 프로그램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 복음주의 협의회 통계’를 확인해 보자. 총동원을 위해 준비된 대규모 일회성의 전도 집회나, 특별히 은사가 있는 어떤 사람이 몇 천명을 대상으로 한 집회보다 모든 성도가 생활 속에서 관계를 통해 전도했을 때의 전도율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또한 교회성장학자 피터 왜그너가 시행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대형 전도집회 이후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교회에 등록하여 일년 뒤에 교회에 남는 숫자는 전체 회심자의 평균 0.6%뿐이었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전도했을 때는 평균 16%가 계속적으로 교회에 출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것을 보아도 전도는 프로그램보다는 생활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금까지의 전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전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통념에 사로잡혀 효과없는 이전 방법만 거듭하여 반복하고 있다. .
우리는 지금 효과없는 일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영적으로 더욱 생산적인 일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세계는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폭발하여 60억을 넘어서고 있다. 이 중에 20억이 기독교 신자이고, 40억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및 무교를 포함한 불신자들이다. 반면 일년에 5,050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다고 한다. 이 중 1,940만 명은 기독교인이고, 3,110만 명은 불신자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중 1,250만 명은 복음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죽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 엄청난 인구 폭발과 수많은 죽음 앞에 지금 교회는 전도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날마다 죽어 가는 영혼을 찾기 위해 전도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있는가? 교회는 아직도 일회성 전도 집회와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재정과 열정을 여전히 쏟고 있지만 실제로 건강한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실제로 NCD 전도 소그룹에서 1만 교회를 대상으로 진행한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떻게 전도를 해야할 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와 있다. 특별히 교단, 사이즈, 문화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교회에 똑같이 적용하여 동일하게 열매를 맺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전도의 성경적 원리를 교회는 모르고 있다. 또한 이것을 이루는 적절한 시스템과 전략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엄청난 인구 폭발과 수많은 죽음 앞에 교회는 전도와 번식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전도와 번식을 경험케 하는 영적으로 건강한 시스템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뚜렷한 대안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현실이다.
Ⅱ. 전도에 대한 4가지 잘못된 신화
이제 더 이상 이전의 전도 패러다임으로는 건강한 전도와 번식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도!’하면 밝고 건강한 느낌보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복음을 목이 터져라 외쳐야만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전의 전도 패러다임이 다음과 같은 4가지 잘못된 신화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전도에 대한 4가지 잘못된 신화를 펼쳐내 보자. 전도에 대한 첫 번째 신화의 내용은 전도는 ‘혼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도를 ‘혼자서’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서 사람을 찾아가 누군가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며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 마치 전도자가 해야할 전도로 오해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가? 복음은 혼자서 전하는 것인가?
전도에 대한 두 번째 신화의 내용은 사람들이 ‘한번에’ 전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신자에게 전도지를 읽어 주거나, 그를 전도집회 등에 참여시키면 뭔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직접 개입됨으로 인해 단번에 회심이 일어 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는 관계를 통해 일어나는 나다나엘의 변화가 더 많건만, 다메섹의 변화와 같이 특별한 일회적 사건에 의한 전도에만 눈을 고정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모두가 전도를 한번에 끝내야 한다는 너무 큰 부담감을 갖고 있다. ‘만약 한번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지 않으면 어쩌지…’
전도에 대한 세 번째 신화의 내용은 전도를 나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아파트에서 모르는 사람 집의 문을 두드린다. 혹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안면 몰수하고 목이 터져라 복음을 외쳐야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선지자적 전도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이와 같은 것으로만 여긴 채 자신과는 먼 생활로 여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마지막으로 전도에 대한 네 번째 신화의 내용은 전도를 설득하는 것으로 여기는 오해이다. 전도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성경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특별한 전도 훈련을 받아야 하며, 불신자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수많은 상황들을 처리할 수 있는 전도 기술을 습득해야만 전도자로서 전도할 자격을 부여받는 것으로 여긴다. 많이 알아야만 전도를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도는 많이 아는 것으로 가르치고 설득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전도를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전도는 늘 불려져 온 주제이지만, 이상의 4가지 신화에 묶여서 생활 속에서 경험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주제가 되어버렸다. 전도에 대한 이전의 패러다임은 ‘전도는 개인이, 한번에, 관계없는 사람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전도를 이렇게만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신약 속에 나타나는 몇 가지의 강렬한 회심의 이미지들 때문일 것이다. 수 천명 앞에서 시행한 베드로의 대중설교를 통한 회심이나, 갑자기 빛을 보고 돌아선 바울의 회심사건 등 우리는 이러한 전도스타일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전도는 관계를 통한 전도임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너무 특별하고 부담스럽게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전도에 대한 4가지 잘못된 신화로 인해 원활한 성경적 전도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Ⅲ. 전도 패러다임의 대전환
NCD 전도소그룹에서는 전도와 번식이 일어나는 건강한 소그룹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건강한 소그룹 1,400개의 교회를 조사 연구하였다. 통계 조사를 통해서 전도는 ‘개인이 아닌 그룹이, 한번이 아닌 여러 번에 걸쳐서, 관계없는 사람이 아닌 관계 있는 사람에게, 설득이 아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되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조사에서 전도된 사람들의 90%가 관계를 통해 전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계라는 다리를 통해서 여럿이 만남을 자주 갖으며 사랑으로 좋은 우정을 쌓아 감을 통해 전도되었다는 점이다. 전도의 90%는 그룹으로, 여러 번, 관계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도 관계 전도가 전도의 보편적인 패턴임을 증거하고 있으며, 본 통계조사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입증된 성경적 원리에 충실한 전도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음으로써 교회는 놀라운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도는 ‘함께, 여러 번, 관계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축복이다. 믿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별한 축복인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전도의 패러다임에 충실한 소그룹에서는 뭔가 특별한 관심사가 있을 것이다.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는 건강한 소그룹은 과연 어디에 관심을 더 많이 둘까? 이들이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는 소그룹의 역동성을 위해 특별히 주위를 기울이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
전도 소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는 건강한 소그룹에는 3가지의 주된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로 전도를 행사보다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도는 일회적으로 치루고 마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이다.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는 소그룹은 전도를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억하라. 전도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프로세스이다. 과정인 것이다.
둘째로는 전도에 있어서 회심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제자훈련에 더 큰 비중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는 대부분 회심에만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지 회심 직후 이들을 사역으로 이끌어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회심 때에 초신자에게 나타나는 순수와 열정은 그대로 식어버린다. 그러나 전도와 번식을 경험하는 소그룹은 회심 즉시 제자훈련을 통한 번식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회심 즉시 그들이 전도에 동참하길 원하신다. 사도행전 2~3장을 보라. 회심을 경험한 이들이 즉시 또 다른 전도를 하고 있지 않는가?
셋째로는 전도를 지식전달에 의존하기보다는 관계를 세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전도는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계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명이 아니다. 설득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능숙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도는 결코 설명이 아니다. 단지 전도는 관계를 세워가는 것이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관계를 세워가는 것이다. 또한 나의 변화를 보고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를 세워서 영향력이 전달되어 가는 과정을 통하여 전도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빛 가운데 있고, 그들은 어둠 가운데 있다. 그들은 빛을 고대하고 있다. 우리와 맺는 관계의 다리를 통하여 그들은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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