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평안의 복음의 군화(엡 6:15. 사 52:7)

하나님아들 2012. 9. 7. 16:11

 

평안의 복음의 군화(엡 6:15. 사 52:7)

1) 평안 평안이란 히브리어로 샬롬 즉 평강이란 뜻이다. 평강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전쟁과 고통이 없는 평화(peace피스)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화목으로 인한 평화를 가르키는 말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란 전쟁과 다툼과 고통이 없으면 평화가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웃을 향하는 미움과 시기는 계속적으로 남아 있으며, 사람들의 삶이 자기만을 위하는 욕심으로 이어지는 한 세상 속에는 불안이 계속되어 질 것이며 그토록 원하는 참된 평화는 없는 것이다.

 

평화란 샬롬!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목이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들일 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리를 놓아 화목하게 연결을 해주신 것이다. 이게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진정한 평화란 복음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평화가 삶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이란 하나님과 등진 인간들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주님의 능력이다. “평안의 복음은 샬롬의 복음이다”

평안의 복음의 군화란 결국 샬롬의 복음으로 주변에 주의 진리와 의의 삶을 통해 복음이 전해져 나의 주변이 믿는 자가 많아짐으로, 나와 주변의 삶이 위로부터 주시는 평안이 넘치는 주의 능력인 것이다.

 

2) 복음 복음이란 - 복된 소식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인이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을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어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3)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有備無患(유비무환) - 세계의 준봉들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은 등반을 하기 전에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한다. 자기가 등반을 하고자 하는 산을 최근에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로부터 자세한 조언을 구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여러 달 동안에 수집을 하고, 항공기로 산의 변화에 대해서도 사전에 답사와 관측을 하고, 변화의 상태를 보는 것 등으로 준비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등산화의 준비이다. 등산화는 6개월 전에 미리 주문을 한다! 등산화 준비는 최고봉 곧 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한 사전 준비이다.

전쟁에서의 사전 준비 - 적진지 정찰, 아군 상황 분석, 지리 분석과 탐색, 진군시간 결정, 작전 계획, 실전배치, 전투 명령, 사살 생포, 전후 문제, 결과 분석 등이다.

로마 군인의 군화 준비 - 숨겨져 있는 덫, 자갈길, 가시덤불, 험산 준령을 넘어가야 할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다.

 

4) 복음의 군화 영적인 전투에서 복음의 신이란? 복음으로 주변을 변화시켜 승리하지 않으면 평강이 있을 수 없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반역을 토벌하기 위하여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쉬임없이 행진해 나아가야 할 로마 군인들처럼, 우리의 영적인 삶도 복음 전파를 위해 쉬임없이 행진하는 영적 진군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결코 삶을 안락하게 누릴 영토를 지키는 정도에 그치는 소극적인 전쟁일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신앙의 자리를 위협해 오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아프리카의 슈바이쳐 박사처럼 의사가 의술을 가지고 자기의 병원만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고, 죽어져 가는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위해 나아가는 것처럼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자기 신앙만을 지키는 자는 무사 안일의 신앙이요, 진군할 생각이 없는 종교적인 군인이다. 영적 군사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싸워야 하지만, 더 중요한 임무는 불쌍한 영혼들과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을 쳐부수고, 잠시 후 그들도 복음의 신발을 신고 함께 영적인 싸움에 나서는 십자가 군병으로 만들어야 한다.

 

* 해변의 암초가 많은 곳의 좌초된 사건

처음 ⇒ 인명을 구하기 위한 구조 대원이 생겨 구조 된 자들이 너무 감사해 남은 여생을 구조 대원으로 봉사를 각오.

차츰 ⇒ 구조된 사람들이 구조에 자신을 드리기로 하여 대원 증가 ⇒ 텐트에서 집으로 발전 ⇒ 점차 구조받은 대원 증가 ⇒ 친목을 위한 파티 ⇒ 활기를 찾는 듯함 ⇒ 더 많는 세월이 지남 ⇒ 낮에만 구조 활동을 하자고 ⇒ 근로 기준법을 만들어 활동을 함 ⇒ 나중에는 물에 나가 빠진 사람 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싫어함에 따라 밖에는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의 비명과 뒤웅치는 파도 소리를 타고 피어린 통곡의 소리로 메아리쳐 오고 있다.

 

능력있는 공동체란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생명력이 있는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영적인 싸움에서 지고 패배하며 영혼들이 악한 영들의 세력에게 눌릴 때 일어나는 가장 큰 특징이 그 공동체 안에서 구원받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역사 즉 전도가 드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할 때 가장 뚜렷한 특징은 그 공동체의 지체들이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능력있는 공동체는 많은 성도들이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능력의 삶을 살게 된다. 능력있는 삶은 잃어버린 영혼들의 슬픔 때문에,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기꺼이 감당하기를 원한다.

 

이 세상은 복음이 아니고는 영원히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인간의 풍조가 어떻게 갈라지든지 우리는 이것만은 확신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한 거기에는 주님을 향하는 반역이 끊임이 없을 것이고, 하나님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가련한 인생들을 악한 영들과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 못에 던지고 만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신발로 신겨져 있습니까? 복음은⇒ 구원이다! 복음은⇒ 생명이다! 복음은⇒ 영원한 하늘나라이다! 편안히 뛰어 다닐 수 있는 복음의 신발을 신자. 우리는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영적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의 삶은 마땅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 천하에 다니는 증인의 삶이어야 한다. 주님이 부르시기만 하면 그 신을 신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가시밭길도 지나고 벼랑도 오르는 행군도 담대하게 출전해야 한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오는 수많은 장애물들, 복음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마음의 걸림돌들, 이 모든 악한 덫과 장애물을 파괴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덧 우리 발에 복음의 신을 신겨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것이 바로“복음의 신”이 주는 말씀 선포인 것이다(딤후 4:1~2)

출처 : 영성회복훈련원
글쓴이 : 양승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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