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속죄론의 발전과 현대적 의미 연구

하나님아들 2017. 4. 8. 15:42

속죄론의 발전과 현대적 의미 연구

이재용


신대원 신학과 2학년

 

I. 연구 목적과 구성


제임스 패커는 그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복음의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라고 단언하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선언할 만큼, 속죄론은 기독교 신앙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속죄론(atonement)에서 속죄란 죄를 덮어 가리는 것, 치워 버리거나 제거해 버리는 것, 그래서 죄가 더 이상 인간과 하나님의 우호적인 교제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속죄론의 의미는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 즉 대리형벌(penal substitution)을 받은 것을 말한다.


속죄론은 구원론과 더불어 기독론의 핵심적인 이해 사항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속죄론은 기독론의 구원사역을 설명하는 방법론으로, 기독론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기독론을 속죄론적 지평에서 이해하는 방식은 성서적 전통으로부터 유래한다. 리츨에 의하면, 신약성서에서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문서들이 예수의 죽음을 희생제물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또한 교회사 속에서도 이레니우스로부터 발전한 속죄론 논의는 안셀무스에 이르러 주요한 신학적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속죄론은 고대로부터 심각한 질문과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원시 기독교공동체에게는 “어떻게 십자가에 달린 죄인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중세의 교회에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방법으로만 구원이 이루어졌는가? 또한 도대체 어떤 정의가 의인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가?”라는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오늘날에도 역시 속죄론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제기된다. 현대사회의 속죄론은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속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신화적인 세계관의 산물이 아닌가? 과연 속죄론이 21세기 세계화에 직면하고 있는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만일 속죄론이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면, 정부의 외교정책이나 중동의 미래, 그리고 테러리즘과 기후변화 등의 현대사회의 문제에, 속죄론은 어떠한 의미와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책임적 신학이 시대의 요청과 필요에 응답하고 계시의 말씀을 재해석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기독론의 속죄론 역시 이러한 시대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본 논문은 기독론 이해의 핵심사항 중에 하나인 속죄론에 대한 전통신학의 입장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현대적 맥락에 적합하도록 해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원시 기독교의 상황에서 속죄론의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교리사적으로 중세에는 속죄론에 대한 어떠한 논의들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소개한다. 본 논문은 속죄론에 대한 각 시대의 적합성을 중요하게 살펴보며, 이후 현대적 맥락에서의 속죄론을 재구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에는 먼저 전통적인 속죄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안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그리고 속죄론의 배경에는 죄론과 악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 후에, 현대적인 의미에서 과연 속죄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한다.

 

II. 예수의 죽음과 속죄론의 발전


기원 30년, 예수라는 한 갈릴리의 목수이자 순회 설교자인 한 사람이 예루살렘 어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을 당한다. 당시의 세계관에 있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한다는 것은 당사자 뿐 만 아니라 그(또는 그녀)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 십자가형은 대체로 반란자에 대한 벌로서 이루어졌으며, 온갖 처벌 중에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에 속하였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키케로는 “십자가라고 단지 불리기만 하여도 그것은 로마 시민의 몸으로부터만 아니라, 그의 생각들과 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의 수단을 넘어 최대의 모욕과 수치를 안겨다 주는 냉혹과 잔혹의 상징이었다.


여기에서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이 비참하고 잔인한 처형을 비길 데 없이 훌륭한 구원의 사건으로 선포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형이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케리그마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그렇게도 빨리 속죄적인 희생의 죽음으로 해석되었을까? 이는 너무나 진부하고 식상하지만 동시에 필수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속죄론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 형성과정인,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역사적 상황과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의 죽음 이해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하며 또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왜냐하면 기독론이 형성된 최초의 역사적 기억과 맥락인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경험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이후 발전하는 속죄론은 가현(假現)적이며 비역사적인 해석학적 산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1. 원시 기독교공동체 상황 속에서 예수의 죽음 이해와 속죄론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분명히 큰 충격을 받았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했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앞에서 모두 도망쳤으며(막 14:50), 베드로는 저주하며 예수를 부인하고(막 14:71), 다른 제자들 역시 실망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눅 24:21) 이 절망의 경험은 비단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수 자신에게도 그의 죽음은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겟세마네의 마지막 기도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눅 22:42)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바라보면서 처절하게 절규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그러므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죽음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절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그리스도의 부활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사학적인 장치라고 볼 수도 있으나, 예수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반응이 거의 절망에 가까웠으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반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구성되기 전(前) 역사적 예수의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과 혼란이 이토록 크고 엄청난 것이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떠한 계기로 예수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속죄로 이해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알아보기 전에, 우선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예수의 죽음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성서에는 이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해답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부활절 현현 경험이다. 윤철호는 원시 기독교공동체에 있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사건은 그들의 신앙의 뿌리경험이었다고 지적한다. 즉 예수의 죽음을 두고 절망하며 낙담했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목숨을 바쳐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을 때,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먼저 부활사건에 대한 확실한 경험에 있다. 부활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이해와 선포의 핵심으로서, 물론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성령 체험이라는 종교적 황홀경의 집단체험을 했다는 점과 임박한 종말론적 위기의식을 공유했다는 점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사건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의 죽음을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부활에 대한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초기 고백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분명한 부활경험을 반증하는 표현이며, 동시에 예수의 가르침을 확인시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의 무죄를 입증하신 사건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예수의 죽음에 주는 가장 근원적인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 악의 세력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고 하나님이 승리했다!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이라는 절망을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희망으로 극복함으로써, 부활신앙은 고대세계에서 마치 폭발하는 것처럼 작용하였다. 죽음이 생명의 승리에 삼켜졌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예수의 죽음은 이제 보다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는 단지 한 개체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전 인류의 ‘새 아담’이요 ‘모든 피조물의 장자’로서 부활하였다.

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았다.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부활과 생명의 주가 되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을 통하여 예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예수의 죽음의 의미가 바로 다름 아닌 ‘우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예수의 모범적인 것, 즉 예수의 겸손(빌 2:3-8)과 고난의 감내(벧전 2:21-23), 사랑(엡 5:2) 등의 경건한 성품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모범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는(딛 2:14)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예수의 죽음은 보다 발전하고 우주론적으로 확대된다. 이것은 가현적인 사실 왜곡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현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해석학적 산물이다.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가 우리의 ‘모범’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우리가 지어야 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대신 담당했다는 사실을 선포하게 된다.(롬 5:10)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우리의 모범을 위한 것이며, 우리를 대신해서 죽고 다시 산 것이라면, 그 죽음이란 결국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한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답변은 바로 ‘화해’였다.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대리적 성격과 모범적 성격을 직시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높이 드셨다는 사실과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공동체를 해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 앞에서, 이제 죄의 권세와 악의 세력은 인간에게 충성을 명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 어떤 악의 권력도 하나님과 그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롬 8:38-39)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결국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을 실존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 경험은 다양한 해석학적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면 속죄론은 과연 어떠한 배경 하에서 형성되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는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신적 진노와 종말론적 심판이라는 개념을 들 수 있다. 윤철호에 의하면,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속죄론은 크게 5가지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발전했다. 그것은 먼저 ①유대교의 대리징벌 개념과 ②구약성서의 희생제사의 관점, ③고대의 채권관계를 통한 해석과 ④고대 신화적인 세계 속에서의 속전의 개념, 마지막으로 ⑤구약성서의 유월절 어린 양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다.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속죄론은 위와 같은 5가지의 관점에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속죄론이 형성되는 요람인 동시에, 장차 속죄론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는 마당이 되었다. 즉 속죄론은 유대교적 전통에서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 예외적 사항이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을 제외하고는, 속죄론의 기본 도식은 유대교적 전통에 매우 적절하게 부합한다. 마르틴 헹겔 역시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의 죽음이 속죄의 개념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즉 ‘자발적 죽음을 통하여 성취된 영웅적 신격화’의 세계관은 이미 그레코-로마 세계에서 통용되는 관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이 비참하고 절망적인 경험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속죄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느 정도의 사회문화적인 개연성 역시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죽음 이해는 위와 같은 5가지의 차원에서 해석되고 구성된다. 결론적으로 원시 기독교공동체에게 있어 구속론은 부활의 경험에 의한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학적 산물이며, 이것은 당시의 시대와 사회에 이해 가능한 패러다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중세 교회사 속에서의 속죄론


다음으로 중세 교회사 속에서의 속죄론을 살펴보는 이유는, 첫째로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속죄론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중세 교회사 속에서 속죄론이 얼마나 시대적 적합성을 가지고 발전했는지를 고찰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교회사 속에서 특별히 11세기와 12세기는 기독론 논의 속에서 속죄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해가 늘어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많은 신학적 구성들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교회에는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물음이 제기되었다. 당시의 구원론적인 관점은 성육신에 대한 관심에서 십자가의 목적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3가지의 전통적인 속죄론이 나타나게 된다.


중세 교회사의 속죄론 중 가장 유명한 이론은 바로 안셀무스의 속죄론이다. 안셀무스의 그의 책 왜 하나님―인간(Cur Deus Homo)에서 그의 유명한 ‘만족설’을 설명한다. 만족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보속(satisfactio)의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신의 정의와 양립 가능한 유일한 인간 구원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이해하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안셀무스는 죄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을 돌려드리지 않은 것'이라 말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영예를 드리지 않아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된다. 안셀무스는 이 죄를 갚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릴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의 명예 또한 무한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명예를 되갚을 길이 없다.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없다. 그 이유는 죄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딜레마에 놓여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였고 그것을 되갚을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갚을 길이 없고, 하나님만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없는 것이다. 안셀무스에 의하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인 분 뿐이다.


그러므로 안셀무스는 예수의 죽음을 보속의 필연성 속에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안셀무스의 속죄론은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나 칼 바르트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안셀무스의 속죄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반대에 부딪힌다. 안셀무스의 책이 출판된 지 30년 만에 아벨라르드는 안셀무스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아벨라르드는 그의 로마서 주석(1133-1140)에서 안셀무스의 이론에 대항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은 그의 무죄한 아들의 죽음을 기뻐하실 수 있는가?”이다. 이는 무고한 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는 그 자체로 부정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인간의 원죄보다 더 큰 범죄이기 때문에, 신의 진노를 더욱 살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때문에 아벨라르드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간의 구원을 위한 속전(pretium)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결국 아벨라르드는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거부하고 새로운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흔히 알려진 아벨라르드의 ‘도덕적 모범설’이다. 아벨라르드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을 달래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것이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드러낸 위대한 사건으로서, 예수의 죽음은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붙인다. 이러한 욕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신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용서하게 만든다. 아벨라르드의 모범설은 과거 속죄에 대한 개념을 보속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적인 의미로 격상시킨 시도였다.


정리하면,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드의 대립은 그리스도의 보속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관한 갈등의 문제였다. 안셀무스의 만족설은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보속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이었고, 아벨라르드의 모범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 사역의 중심으로 옮겨놓은 입장이었다. 이러한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드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전개한 신학자는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죄인인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보속은 필연적이었다. 이점에서 토마스는 기본적으로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따른다. 그러나 토마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은 인간의 보속에 대한 필연성 속에 갇혀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 3부, 문제 46의 제2절에서, 그리스도의 보속에 대한 성부의 결정은 자발적인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 논하였다. 즉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보속을 필연적으로 보는 동시에 그 죽음은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이라고 말함으로서, 안셀무스의 만족설과 아벨라르드의 모범설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나아가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보속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증함으로서, 중세의 속죄론을 완성하였다.


안셀무스로부터 시작하여 아벨라르드를 거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속죄론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발전하였다. 여기에서 본 논문의 관심은 단순히 속죄론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속죄론이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적합했느냐는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1세기와 12세기에 일어난 속죄론에 대한 논쟁에서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드의 대립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속죄론이 얼마나 큰 논쟁의 중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살았던 13세기 역시 이슬람의 부흥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발흥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제기되었던 시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제시한 속죄론은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려는 신학적 시도였다. 윤철호는 특별히 안셀무스의 만족설이 고대의 절대군주적 왕권통치 체제와 라틴 문화의 법적 제도의 틀 안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속의 사역으로 해석했다고 평가한다. 즉 안셀무스의 만족설이 11세기 당시의 라틴 사람과 사회에는 이해 가능한 속죄론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중세에 제기되었던 다양한 속죄론들은 저마다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려는 신학적 시도였으며, 이러한 결과로서의 속죄론은 당시의 시대에 매우 유의미한 해석학적 의미를 지녔으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III. 속죄론의 현대적 이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시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 경험을 통하여 속죄론의 원형을 형성하였다. 또한 이후 중세,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의 신학에서는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속죄론 보다는, 속죄론을 교의학적으로 구성하기 위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이해 적합한 형태로 재구성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적인 속죄론은 해당 시대에 유의미하고 이해하기에 적합한 시도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어떠한가? 과연 전통적인 속죄론이 오늘의 시대적 요청에 적합한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본 논문의 서두에서도 제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속죄론에 대한 현대적 재구성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신학적 작업은 과연 무엇일까? 본 논문은 전통적인 속죄론에 대한 해석과 수용의 문제를 살펴보고, 지난 교회사 속에서의 속죄론과 같이, 현대사회 속에서의 속죄론을 재구성하는데 노력해보도록 한다.

 

1. 전통적 속죄론에 대한 해석의 문제


1) 예수에게 속죄라는 의식이 있었을까?


속죄론을 중심으로 신약성서를 해석할 때 발생하는 문제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과연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속죄의 죽음으로 이해했을까 하는 질문이다. 물론 예수가 자신이 불의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예감했으리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는 당시의 유대 통치자들과 심각한 충돌을 겪고 있었고, 오히려 그것을 정면으로 부딪쳐 대결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였고, 결정적으로 성전을 숙정하여 십자가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에게 이렇듯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확실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했느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되지 못한다. 예수에게 속죄의식이 있었는가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의 논의를 추종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통적인 속죄론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에서, 예수의 상(象)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G. 프리드리히는 예수가 자신의 대리적이고 희생적인 죽음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옳다고 하였다. 프리드리히는 복음서 안에 기록된 예수의 ‘대리적 죽음에 대한 암시’는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해석의 산물로 이해한다. 즉 많은 사람을 위해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어주겠다는 언급(막 10:45; 눅 22:24-27)이나 성만찬 제정에 대한 예수의 말씀 중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과 피”(눅 22:19-20) 등의 표현은, 모두 예수의 속죄적인 죽음을 염두한 후대의 부연 해석에 의해 보충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슈바이처 역시 예수는 인류의 구원 등의 속죄보다는 강력한 묵시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죽었으리라고 보았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예수는 세계 역사의 종말을 가져올 ‘하나님의 나라’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자, 예수는 스스로 그 수레바퀴에 몸을 던지게 된다. 결국 슈바이처에게 예수는 그 고매한 인격만 남은 실패한 묵시사상가일 뿐이고, 속죄론과 같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예수에게 있어 속죄의 의식이 있었는가의 문제는 아마도 풀지 못할 숙제일 것이다. N.T.라이트나 스텐리 그렌즈와 같은 학자들은 성서의 진술과 예수의 행적 등을 종합하여, 예수에게 속죄자로서의 자의식이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을 보인다. 그러나 하르낙의 선언, 즉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선포한 그리스도는 다르다!”라는 강연 이후, 분리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의 해석학적 긴장관계는 좀처럼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슈바이처와 불트만 이후 신약성서의 해석학은 전반적으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양분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속죄론이 과연 전통적인 차원의 의미를 보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2) 예수의 죽음에 대한 속죄적인 해석이 옳을까?


스티브 찰크는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예수의 죽음을 지나치게 ‘대리적 형벌’(penal substitution)로만 이해했다고 비판하면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속죄론이 다각도의 관점에서 발전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대속적인 제사 개념은 신약성서 중 단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앞서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상황을 설명할 때 살펴본 것처럼,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죽음은 대속의 개념(마 20:28), 동일화의 개념(빌 3:10), 모범의 개념(마 16:24), 대표의 개념(롬 5:19) 등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찰크는 예수의 죽음을 대속적 형벌로 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속죄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에 대하여 진노하고 심판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분노에 대하여 엄중한 제한(마 5:22)을 두었고, 보복에 대하여도 금지(마 5:38-42)한 점을 생각해보면, 전통적인 속죄론에서 ‘진노하는 하나님’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으로 마치 무시무시한 전제군주와도 같은 이미지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야기할 수 있는 해석이다. 또한 찰크에 의하면, 예수가 제시한 하나님 상(象)은 오히려 집을 나간 자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자녀를 위해서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의 하나님이다.(눅 15:11-32) 이는 안셀무스의 만족설에 나타난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하여는 특별히 여성신학자들이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안셀무스의 만족설 속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는 ‘희생제물’이라는 고전적 조건에 제한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정의는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압도해버린다. 레베카 파커는 “우리가 정말 이렇게 잔혹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을 꼭 믿어야 되는가?”라며, 안셀무스의 속죄론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거부하였다.


윤철호 역시 속죄론에 나타나는 보속의 교리가 하나님의 이미지의 원형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십자가를 단지 하나님의 공의와 만족과 명예의 회복을 위한 배상을 위해 한 인간이 대신 당해야 하는 대리적 형벌로 이해하는 것은, 고대의 왕정체제의 절대 군주의 표상이 하나님에게 투사된 것으로 본다.

 


3) 현대사회에 속죄론은 적합한가?


게다가 문제는 성서해석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독론에서 속죄론이 형성될 여지를 두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의 원죄론은 인간의 자유와 결정에 방해를 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기독교가 원죄를 상정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며, 하와가 범죄를 야기했음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의 정당화요, 성적인 문제에 대한 왜곡으로 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죄는 범법이라는 차원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속죄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죄를 강조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죄 개념 자체를 폐기함으로서 속죄의 교리가 들어설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즉 더 이상 현대는 속죄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여전히 성서적 세계관을 굳건히 붙들고 있다. 즉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그 결과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죄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은 점차 영혼과 육신의 영원한 징벌 따위의 문제를 더 이상 믿지 않고 있다. 1990년 유럽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65%, 이탈리아의 36%, 영국의 25%, 프랑스의 16%, 네덜란드의 14%, 그리고 스웨덴의 7%의 사람들만이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변하였다. 즉 죄와 처벌이라는 관념들이 현대인들에게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관념과 의식이 약화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한 전통적인 속죄론은 구원에 대하여 단순한 이해를 초래하게 만든다. 즉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단순 논리가 구원론에 적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너무나 단순화되고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인 삶 또는 삶의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며, 단순히 “나는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My eternal destiny is guaranteed!)는 수동적인 방관주의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속죄론과 구원관은 죄와 속죄의 관계성에 대하여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리하게 이해해버리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죄론 이해는 분명 성서적일 수도, 시대적일 수도 없는 착오의 발상이다. 만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전통적인 속죄론에 의해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구원론에 집착하게 된다면, 교회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군중을 야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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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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