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와 복음성가
역사적으로 복음주의는 약간씩 수정되어 왔으며 그 의미가 다양하게 쓰여졌다. 복음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로 다음을 들 수 있다.
렌덤 영어사전(Random House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에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복음서와 복음서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주의
(2)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특히 신약)을 강조하고, 교회의 제도적 권위에 반대하며, 그리스도께서 대속물로 죽으셨다는 개인적인 확신을 가질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를 강조하는 주의
(3)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18, 19세기 개신교 안에서의 운동을 고수하는 주의
(4) 이러한 주장을 위하여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주의
또한 불로쉬(Donald G. Bloesch)는 현대 복음주의는 유럽의 경건주의 운동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현저한 특징을 지적한다.
(1) 열성적인 종교를 강조
(2) 중생의 교리강조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4) 구원의 확신
(5) 개인의 윤리와 종교와의 밀접한 관계
(6)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
(7) 전도활동의 강조
(8) 만인 사제설의 개혁교리의 구체적 구현
(9) 비전례적인 자유전통에 의한 예배
복음주의에 근거하여 바라보는 복음성가의 원천은 영국찬송가의 아버지 또는 복음성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왓츠(Isaac Watts, 1674-1748)와 주관적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91)와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 1707-88)의 찬송으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왓츠와 찰스 웨슬레의 가사에 대한 찬송관은 모두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한 것으로 복음을 강조한 찬송이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서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먼저 왓츠의 경우를 보면 그는 칼빈의 신학을 따랐지만 음악사용은 칼빈과 다른 입장이었다.
왓츠의 음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교회음악은 복음적이어야 한다.
(2) 그것은 성경의 정확한 번역보다는 오히려 자유롭게 지어져야 한다.
(3) 그것은 노래하는 자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왓츠의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회중교회 목사
(2) 칼빈신학을 신봉
(3) 시편을 그리스도교화 시킴
시편 19편 “저 높고 넓은 하늘이”
시편 90편 “예부터 도움 되시고”
시편 98편 “기쁘다 구주 오셨네”
시편 118편 “이 날은 주의 정하신”
(4) 성경을 의역함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웬말인가 날 위하여”
“십자가 군병 되어서”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5)객관성을 강조
“햇빛을 받는 곳마다”
(6) 회중 찬송시를 씀
찰스 웨슬레는 칼빈 신학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는 일정한 사람들에게만 예정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믿었기에 개인적인 구원의 기쁨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주로 하고 있다.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찰스 웨슬레의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영국 국교회 목사
(2)알미니안(Arminian)신봉
(3)성경적 암시로 가득함
“만 입이 내게 있으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오랫동안 기다리던”
(4) 주관적 경험을 강조: 회개, 신앙강화, 영적부흥, 복음전파
“웬일인가 내 형제여”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맡은 본분은”
“생전에 우리가”
(5) 회중 찬송시를 씀
왓츠와 웨슬레는 비슷한 시대의 인물들로서 환경과 신학적 사상은 달랐지만 개혁을 통하여 나타난 회중찬양에 대한 관심은 복음주의 사상과 같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왓츠는 성경을 의역하여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의 시로 표현하였으며, 또 단순한 운율의 사용, 반복법과 병행법을 사용한 것 등은 복음성가의 대중성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웨슬레의 찬송관은 복음성가의 주관적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와 복음성가는 다음과 내용적인 면에서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1) 상통하는 요인은 복음주의가 교회의 전통보다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는 것 같이 복음성가도 그와 같다.
(2) 복음주의가 구원은 종교의식이 아닌 믿음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주장한 것 같이 복음성가의 중요한 메시지는 종교의식이 아닌 믿음과 신앙강화이다.
(3) 복음주의가 개인적 회심과 개인적 삶을 강조하는 것 같이 복음성가에서도 개인적 회심과 교회 안에서의 교제, 내세에 소망을 둔 삶이 강조된다.
(4) 복음주의가 선교에 열성적인 것 같이 복음성가도 역시 선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비전통적인 예배 또는 전통적인 예배에서 덜 엄격한 예배형태를 주장하는 것과 같이 복음성가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복음주의 예배와 일치한다.
2. 복음성가의 사용
한국의 교회음악에 관한 문헌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예배에서의 복음성가사용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많은 논쟁과 연구를 거친 뒤 찬송가집에 수록되었고 복음주의 교단에서부터 예배에 조심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복음주의를 자처하면서도 간혹 복음 밖에서 복음주의를 고수할 때가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주어진 환경과 문화에 대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루틀리는 “주어진 시대에 알맞게 살아가려는 자유, 주어진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의미를 창출하려는 자유, 그리고 값어치가 있는 신앙의 유산을 받아들이고 물려주려는 자유”를 주장했는데, 이것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유에 대한 관계성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불러야 하는 찬송가는 시대와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현대 감각적인 음악을 다른 문화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전통적인 찬송가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고유의 장점을 인정함으로써 교회의 목적과 기능에 적합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전체적인 교회음악에 의한 교회기능의 목적달성을 위해 먼저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지킴과 동시에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둘째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속에서도 놓치지 말하야 할 갓이 있다. 그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 하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음악이 자칫 세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음악의 세속화를 막기위해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 현대음악의 특징을 사용한 음악은 특별히 신중하게 선택함으로 기독교 문화의 세속화를 막아야 한다.
세속적인 음악스타일이나 언어를 많이 사용한 음악은 연상작용으로 인하여 자칫 잘못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스타일에 있어서는 가사가 성경적이라고 해도 그렇다. 예를 들어 락 뮤직의 스타일의 곡을 연주할 때 어떤 락뮤직 컨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 오히려 예배를 방해 받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가사에 있어서 세속적인 유행어를 사용하거나 뜻이 모호하게 사용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가령 “한 때는 내가 얼짱이 아니어서 고민 했어요, 그러나 이제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만져주기에 나는 지금 행복해요.” 라고 노래한다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겠는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로 연상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CCM에서 흔히 별견되어진다. 그러므로 음악의 스타일에 있어서나 가사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 세속적이며 애매한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 여과의 과정을 거쳐서 신학화하고 교회음악의 한 장르로 새롭게 연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 가창법이나 연주법 그리고 연주를 하는 자세가 세속적인 것과는 달라야 할 필요가 있다.
세속적 유행음악과 같은 창법이나 연주스타일은 가사의 의미를 찾기도 전에 복음성가를 공감할 수 없는 반 기독교적 음악이라고 단정짓게 만든다. 현대적인 음악은 그 스타일의 특성상 많은 경우 리듬악기를 동반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당연히 손뼉을 치고 춤을 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인식이다. 손뼉을 치고 춤을 추는 것이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찬양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져야 한다. 특히 음악자체의 힘을 이용하여 청중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가려는 인위적인 자세는 진정한 예배의 본질을 떠나서 미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3)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
복음성가나 현대찬양으로 인한 갈등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무지에서 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걱정에서 오는 것이다. 무지로 인한 갈등은 알기만 하면 해결 될 희망이 있고, 걱정으로 인한 갈등은 교회음악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 것임으로 긍정적인 자세로 볼 수 있다. 가사가 성경에 근거하며, 음악이 그 자체로서 찬양하기에 알맞은 구조적 경건성을 가지고 있는 곡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가장 큰 문제는 악기 사용에서 기인한다. 현대 악기는 예전의 생키 시대의 악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악기 자체는 선과 악의 개념을 적용할 수 없지만 악기의 음향적 특성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이 경험한 문화로 인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극단적인 대립을 가져올 경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회중의 많은 사람들이 드럼이나 전기키타 또는 신디사이저의 사용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그러한 악기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한 악기들을 사용할 때 음악적으로 훨씬 좋아지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기도하며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될 것이다(고전 14:26).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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