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바로알기 조재훈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 58. 유혹되어 변질된 인간

하나님아들 2016. 8. 24. 11:48

타락한 인간은 이렇게 변질되었다.

    

                 3 : 6.

 

1. 타락을 잘못 가르쳐 유혹하는 자들이 있다.

 

(3:9-1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타락한 인간은 눈이 밝아 벗은 줄을 알게 되고 무화과나무의 입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두려워 하나님을 피하려고 나무 아래 숨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여기 타락 논에서 그릇 되이 가르치는 자들(통일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죄악의 깊은 곳에 빠지게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타락한 후 하체를 가렸다는 말을 잘못 해석하여 가르친다. 실과를 먹었으면 입을 가려야 하는데 하체를 가린 것은 실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고 하며. 인간을 타락시킨 것은 뱀인데 그 뱀은 단순한 뱀이 아니라 영물인 타락한 천사라고 한다. 그러기에 하와가 실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 이 타락한 천사와 성적으로 범죄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적으로 범죄 한 여자와 아담이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됨으로 두 사람이 모두 타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인간의 몸속에 있는 타락한 천사로부터 받은 죄의 피를 깨끗이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피는 모두 더러운 피 이기 때문에 의로운 의인의 피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인 구속을 하였지만 육체적 구원 즉 피를 교체하지 못했기에 그 육체의 피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재림 주의 피가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재림 주가 이 땅에 왔는데 바로 통일교의 창설자[문선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구속을 받으려면 재림 주(문선명)의 피를 받아야 하고 재림주의 피를 받으려면 이 사람과 성적인 결합(피가름)을 하여야 하며 그 문선명과 결합한 사람과 연계적으로 결합하면 피가 깨끗해져 완전한 구속을 받는다는 소위 피 가름의 교리를 주장한다.

 

이 논리를 주장한 재림 주라고 하는 통일교단의 창설자 [문선명]에대하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016일 평안북도 정주군 상사리2221번지에 태어나 고등 보통학교 시절에 서울에 올라와 영등포 흑석동에서 생활을 시작으로 하여 복잡한 사생활이 시작 된다 본 처를 두고 김 모 여인과 결혼하고 그 후 1948410일에 간음혐의로 구속되었고 1949222일 또한 간음 혐의로 구속하여 5년형을 받은 바 있으며 이 후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이 거듭 되면서 41세 때에 성정 여고에 재학 중에 있는 당시 18세인 한학자 양과 결혼을 하였다. 이런 사람이 재림 주라고 따라다닌다

 

생각해 보자 타락한 천사와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데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천사는 영물인데 어떻게 육체적 결합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영적 결합으로 피를 받을 수 있다면 왜 문선명의 피가 필요한가 하는 모순에 빠진다.

또한 뱀을 이용한 육체적 결합이라면 유전 공학 적으로 볼 때 태어나는 아들들이 뱀과 닮은 후예들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어느 생태계나 모두 부모를 닮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으로 피로 정화되어야 한다면 그 피 갈음을 한 교도들은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하며 타락 이전의 아담의 육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인간 타락이 성적인 타락이라면 성경이 사실 그대로 언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기사가 사실대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아브라함이 옷을 벗고 잠을 잠으로 함이 저주를 받은 사건이라든지 롯의 딸들이 아버지를 술을 먹여 아들을 낳았다든지 또 유다는 며느리와 불륜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든지 하는 기사가 사실 그대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계약을 어겼다고 말씀하신다.

 

성적 문란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죄로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 이름을 모독하는 이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성경 전체를 살펴도 그런 사상이 없고 또 주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없고 사도들도 십자가의 구속의 복음을 전했었지 이런 무서운 교훈을 가르치지 아니했다. 만약 그 당시 이런 가르침이 있었다면 저주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단으로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의 정욕이 불타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타락한 인간은 어리석어져서 하나님을 피하려 했다.

 

[3:8-10]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타락한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무화과나무 아래 숨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피할 수 없는 분이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139:7-10]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기에 피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으려고 했다.

 

아담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면전에 나아가 죄를 회개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피하려 한 것이다. 그 죄를 유전 받은 인간들은 하나님 면전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피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3. 타락한 인간은 눈이 거꾸로 보였다

 

(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기 전에는 중앙에 있는 금과는 먹으면 죽는 나무로 보였다. 그런데 사단과 대화한 후에는 마음이 유혹되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이제는 한번 먹어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보면 볼수록 보고 싶고 바라보기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보암직하게 보였고 먹기만 하면 지혜로워지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결국 행동으로 옮겨 따서 먹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계약을 어긴 인간은 이렇게 해서 결국 죽게 되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어제까지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악평을 들으면 그 말로 인하여 그 사람이 미웁게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변한 것이다. 나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나의 눈만 변한 것이다. 그래서 미움을 품게 되고 그에게 죄를 범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말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또 들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러기에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에 이렇게 말했다. 적은 말 한마디가 큰 인생을 좌우한다고 말씀하셨다.

 

(3:5-6)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 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4. 타락한 인간은 죄악을 보는 눈이 밝아졌다.

 

사단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타락한 인간은 눈이 밝아졌다눈이 밝아진 것은 선과 악을 보는 눈이 밝아 진 것이 아니다. 악을 보는 눈이 밝아졌다. 죄에 대하 눈이 밝아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추한 모습을 알게 되었고 이 추한 자신들의 모습을 나뭇잎으로 가리우고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눈이 밝아져 그들을 유혹하기 위한 아름답게 열려진 덧을 보게 되었고 앞에 있는 불행을 보게 되었고 공포와 낙심을 보게 되었고 순수하고 거룩하고 무죄한 성스런 모습이 변하여 더럽고 불결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단은 처음에는 귀를 통하여 마음을 물들게 하여 눈을 거꾸로 보이게 하고 다음은 죄를 보는 눈으로 완전히 버려 놓았다. 먹으면 죽는 나무로 보였던 그 눈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더니 이제 완전히 죄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변했다. 사람은 눈으로 모든 죄가 들어온다. 그 밝아진 눈으로 이제 마음이 점점 죄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졌기에 어리석게 하나님을 피하려 숨었다. 죄의 눈이 밝아진 인간은 그 아름다운 에덴에서 살면서도 감사는 없어지고 불만족으로 가득하고 허락된 모든 것보다. 한 가지 금한 과일까지 먹으러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되었고 또 자신을 위하여 주신 아내를 죄의 책임 전가의 구실로 삼았다.

 

죄로 오염된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으로 가득했으며 자신들을 위하여 주신 계명 나무를 짓밟아 버렸고 의지가 약해져 죄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하여 나약해져 버렸으며 창조주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려고 주신 계명 나무를 없애고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했다. 하나님과 단절하고 스스로 살려 했다.

 

눈이 밝아진 인간의 모습을 보라.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앞에서 수치를 가리우려고 나무 아래 숨었다. 그리고 하나님 부르시자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또 솔직하게 죄를 시인하지 못하고 고백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주어서 먹었나이다하고 핑계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행위는 결코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 모습이 아니다.

 

오늘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역사 안에서 실감 있게 죄의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진실과 의를 가르치는 스승도 많고 학교도 많고 박사가 많다. 그러나 죄를 가르치는 선생도 박사도 없고 죄를 가르치는 학교도 없다. 그런데 죄는 기발하게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죄를 보는 눈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숨기려하다 못해 이 시대는 죄를 노골화하고 죄를 지적하면 무엇이 죄냐고 항변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경찰을 통하여 수많은 죄인들을 잡아내고 교화한다. 그러나 죄는 더 극성을 부린다. 죄로 눈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죄 짖는 것은 배우지 아니해도 유능하게 행한다는 사실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앙 하고 불순종 하게 되었다.

 

사단의 유혹으로 오염된 인간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不信仰) 그 말씀을 믿지 못하기에 순종하지(不順從)않았다. 죄를 크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不信仰) 하나님을 외면하고 관계를 단절하는 것과 순종하지 않고(不順從) 역행하는 것이다.

 

[16:15-16]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3: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5: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믿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뱀의 말을 더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낯을 피하여 숨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사탄은 인간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유혹한다. 그러기에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엄하게 경계하셨다.

 

[20:4-6]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죄는 타락이다 타락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외면하여 관계를 피하여 숨었다. 피하여 숨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이고 숨었다는 말은 다. 하나님과 대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칸의 종이 된 것이다.

 

6. 회개를 거부하고 책임을 전가했다.

 

(3:11)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3: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위의 말씀을 살피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인간은 어리석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지만 하나님은 찾아 주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에 있는 줄 모르기에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하셨다. 다시 말하면 누가 너에게 벗은 것을 말하느냐 하셨는데 이 말씀도 책망하시기 위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며 정죄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만약 정죄하려고 하신 말씀이라면 왜 실과를 먹었느냐 왜 나의 언약을 어겼느냐 왜 벗었느냐 너는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엄히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음미해 보면 죄를 정죄하려는 재판장의 말씀이 아니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기에 그를 찾아 불러 주셨다 자신의 창조물이기에 죄를 범하기는 했지만 사랑은 끊을 수 없기에 살길을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먹지 말라고 한 실과를 먹었느냐하신 말씀은 책망하거나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라 스스로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죄를 지적하면 정죄가 되기 때문에 그를 스스로 자백하여 회개시키려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기에 그 자유를 빼앗지 아니하시려고 스스로 고백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탕자의 비유에서 잘 날 수 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릇된 가면 망할 줄을 알았다. 그러나 스스로 집을 나갈 때에 붙들지 않으시고 허용하셨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억지로 끌어오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돌아와 회개하기를 원한다. 인간 스스로 해결하고 오란 말이 아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 중죄를 범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내가 벗었으므로 부끄럽고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워 숨을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가를 알아야 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여야 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보니 이렇게 추하고 두려워 살 수 없었습니다. 하고 살려 주시라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수치스런 자신만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것보다. 결과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수치스런 자신을 알았어도 숨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모두 알고 계셨고 모두 아시고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인에게는 두려우신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실과를 먹었느냐하신 것을 그들의 행위를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아담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 그가 내게 주므로 먹었나이다했다.

 

이 말은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가 주지 아니하였으면 먹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그 여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므로 내가 죄를 범하고 싶어서 범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범하였으므로 나와 여자와 하나님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는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핑계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신 여자 그가 주어서 먹었다고 했다. 내 아내가 주어서 먹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게하신 여자라고 했다. 하나님께 일부 책임을 전가하고 그리고 여자가 주어서이 말은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는 별 되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여자도역시 뱀이 꾀므로 먹었다고 뱀에게 핑계했다. 여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뺌의 꾐에 빠졌습니다. 해야 한다. 그런데 뉘우침은 전혀 없고 당연하게 핑계했다.

 

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자. 배은망덕한 죄인, 건방진 죄인을 보라! 자기의 죄를 시인하면서도 회개를 회피하려는 인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죄를 전가시키려는 인간, 서슴치 않고 사랑하는 아내에게까지도 죄를 뒤집어씌우는 인간 ! 자기를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여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자신을 위하여 동반자인 여자를 주신 하나님께 하는 말이 고작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하게 한 여자 그가 내게 주므로 먹었나이다하고 대답하는 사랑의 배신자인 인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여자를 자기에게 이끌어 왔을 때에 고백하기를 내 살 중의 살이며 내 뼈 중의 뼈요하고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고백한 아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하여 여자에게 죄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사단으로 하여금 오염된 마음이 얼마나 방자한 것인가를 말해 준다. 동산 전체를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은 없고 인생의 동반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주어 먹었나이다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담, 여자가 없었으면 타락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며 그 여자는 창조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배은망덕한 아담을 보라, 여자 때문이고 하나님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이담, 바로 죄로 오염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용서해 주시려 해도 해줄 수 없는 사악한 인간으로 철저하게 변한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 자 아담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자가 여자가 아니다. 여자를 창조하기 전에 맺은 언약인데, 자신에게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맺은 언약인데,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가장인데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죄의 책임을 전가했다. 그리하여 이중 죄를 범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또 회개하도록 유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게 무슨 말버릇인가? 삶의 마지막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를 질근질근 짓밟아 버리는 이 어리석은 행동, 어찌 용서의 여지가 있으며 영생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어찌 에덴에서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이제 하나님은 벌을 내리셔야 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지나 않는지 살피자. 내 마음에 감사가 없이 불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이 사단의 마음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담이 형벌을 받은 것이 언약을 어긴 죄만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하는 이 중죄를 범하였기 때문임을 명심하자. 핑계와 책임전가, 죄에 대한 합리화, 그리고 변명, 이 모든 것은 범하기 쉬운 이중 죄이다. 내가 참된 인간으로 이르는데 장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항상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지혜로워 변명하는 자보다 차라리 어리석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신다.

 

7. 성품과 인격이 부패되어 변질되었다.

 

(4:18-20)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그러기에 그 성품이 하나님 닮았다. 하나님 닮은 인간은 인격이 선하고 의로웠고 또 선을 좇아 행했고 의를 좇아 행했다. 그런데 죄로 오염된 인간은 사단의 성품으로 악하게 변질되어 악을 좇아 행하고 불의를 자행하게 되었다. 한 방울의 먹물이 한 병의 많은 물을 흐려지게 하듯이 한 방울의 사단의 죄악의 물방울이 한번의 인간의 인격을 흐려 검게 변질시켜 버렸다.

 

1) 지성이 부패하여 변질되었다.

 

(1) 영에 대한 지성이 상실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지성이 상실된 인간이기에 참 기억력이 변질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사단처럼 믿으며 또한 사단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또 사단을 신으로 생각하고 생명의 근원으로 잘못 알고 숭배하게 되었다.

 

(2) 영적 지혜가 상실되어 영을 분별하지 못한다.

 

타락한 인간은 영을 분별하는 지혜가 상실되어 하나님의 영()과 사단의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진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고전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3:14-15)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인간은 영적 지혜가 상실되었다. 그러기에 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성도들도 성령을 분별하지 못하여 아무 영이라도 따라 다니며 기뻐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성령의 일을 잊어버리고 영적인 일에 전혀 무관심하며 눈에 보이는 육은 위해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지만 귀중한 영혼을 위한 투자는 아니 하고 전혀 무관심하게 산다.

 

(3) 기억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지성이 죄로 검게 오염되었다. 그리하여 악에는 지혜롭고 선에는 무지하다. 지성이 죄로 변질된 인간이기에 선하고 의로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악하고 죄악 된 것은 오래 기억한다. 은혜를 입은 자는 쉽게 잊어버리고 나에게 해를 끼친 자는 오래 기억한다.

 

(4)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상실되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의와 불의를 분별하지 못하고 선을 악이라 판단하고 악을 선이라 규정하며 장려한다. 그리하여 수 없이 이렇게 저렇게 바꾸었다. 불의를 의로운 것처럼 생각하고 의를 압박하고 의인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2) 은혜를 아는 감성이 상실되었다.

 

죄로 변질된 인간은 감성이 변질된 인간은 선을 좋아하면서도 악을 사랑하고 즐긴다. 죄악된 구경에 더 흥미를 느낀다. 숨어서 죄를 범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선한 교훈은 의무적으로 듣고 죄악 된 이야기는 즐겁게 듣는다. 이 감성이 상실된 인간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죄로 오염된 인간에 대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1:2-3)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 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죄로 오염된 인간은 은혜를 아는 감성이 상실되었기에 은혜를 아는 면에서는 소나 나귀만 못하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

 

(1:21-23)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죄로 오염된 인간이기에 감사가 없고 불평으로 산다. 감성이 변질된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도 알지 못하고 부모님의 은혜도 알지 못하며 스승의 은혜도 알지 못한다. 나에게 은혜를 베푼 자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은 쉽게 없어지고 해를 끼친 자들에 대한 분한 생각은 오래 품고 사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또한 감성이 변질된 인간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죄를 범하고도 뻔뻔스럽고 수치를 모르며 수치를 자랑하고 들어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3) 선을 행하는 의지가 상실되었다.

 

죄로 오염되어 의지가 상실된 인간은 선을 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선한 일에는 의무적이며 죄를 행하는데 자발적이며 앞장서서 행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 선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부득이하게 행한다. 그리고 죄를 범하는 일은 부지런하게 또 열심히 행하며 기쁨으로 행한다. 의지가 상실된 인간에 대하여 바울은 의지가 상실된 인간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이렇게 절규하였다.

 

(7:18-24)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을 행하는 의지가 상실되었기에 선을 행하려고 다짐하고 결심해도 지나고 보면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바울 자신의 변질된 의지를 탄식한 말이다.

 

죄로 오염되어 인간의 본질이 상실된 인간이고 지성이 상실되어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인데 그 인간을 불러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귀신처럼 알고 섬기는 어리석은 인간을 진리를 주셔서 주의 종들로 하여금 바로 믿고 섬기게 하신 하나님! 분별력이 상실되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의와 불의를 분별하지 못하는 인간인데 말씀을 주셔서 분별하게 하시고 진리의 성령을 주셔서 분별하게 하신 감사하신 하나님이시다.

 

죄로 감성이 변질되어 죄를 좋아하는 인간인데 진리의 말씀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하시고 성령으로 부끄럽게 하신 하나님! 감성이 변질되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인간인데 참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죄로 의지가 상실되어 죄를 따르기에 부지런하고 자원하여 행하는 인간인데 하나님을 따르게 하고 선한 도구로 쓰신 하나님!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쳐도 도리어 악만 행하는 인간 도저히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사망으로 가야 할 인간들인데 은혜를 거져 주셔서 찬송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 귀하고 크신 일을 행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자

 

 

 

 

 

 

출처 : 조재훈목회자료
글쓴이 : daum jhoon29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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