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바로알기 조재훈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 55. 창조된 처음 인간의 모습.

하나님아들 2016. 8. 24. 11:46

 

 

어떤 인간으로 창조되었나 ?

 

6 : 25

 

1. 성숙한 젊은이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진화론 입장에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논리에 결론을 내지 못한다. 원숭이가 새끼가 먼저냐 어미가 먼저냐 또한 순 원숭이는 언제 진화되고 암 우너숭이는 언제 진화 되었느냐 그리고 어떤 짐승이 원숭이로 진화 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도 답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도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이 이해가 안 되기에 믿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론의 인간기원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가정하고 믿는 것 뿐이다.

 

성경은 성숙한 젊은이로 창조 되었다고 말한다하나님은 인간을 어린아이로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어른으로 창조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언약을 지킬 수 있으리 만큼 성숙한 아담이었다.

(2:16-17)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맺으시는 언약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어린아이와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 아니다. 언약하면 지킬 수 있으리 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창조하셨다. 언약을 지킬 수 없는 무감각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와 언약을 맺으시지 않으셨다.

 

짐승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지능과 감정이 있는 아담이었다.

(2: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그 이름이라.

 

이 말씀은 인간 창조 후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시는 내용이다. 창조된 인간은 짐승의 이름을 지으리만큼 성숙한 인간임을 말해 준다. 아담은 짐승의 생김생김을 보고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서 철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짐승의 이름을 지으라 하지 않으셨다. 짐승의 이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감성적으로 성숙하였음을 증명한다.

 

아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아담이었다.

(2:23-24)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이 말은 아담이 자기 아내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의 뜻은 가장 소중한 아내라는 사랑의 표현이다. 아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지각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셨음을 말해 준다. 철모르는 어린 아기가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아내의 소중함을 고백할 수 없다. 아담은 아내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성인으로 창조되었음을 증명한다.

 

인간이 진화하였다면 세월이 가면 갈수록 몸과 인격과 지각이 발달하여야 한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인간은 점점 악하게만 발전 하여가는 것일까 ? 논리에 모순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인격을 성숙한 인간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타락으로 점점 본래의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이 악해져 가며 부패하여 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급속도로 악해져 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끝맺으시는 날이 다 되었음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진리로 말미암아 성숙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줄 안다. 이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며 택함 받은 자들의 삶이다.

 

2. 인간의 본성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1:31)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위의 말씀은 창조의 결과를 말씀하신다. 좋았더라 란 말이 1장에 5번 나타난다. 그 중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더라 하셨다. 다른 창조물이 아름다웠지만 인간이 없는 에덴은 무의미하다.

 

인간을 창조해 놓고 보시니 심히 좋았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죄 없는 인간은 매우 아름답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식이 가장 아름답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심히 아름다웠다. 특히 죄 없는 인간 아름다웠다. 어린아이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은 참 아름다웠으리라.

 

심히란 말은 미우드(דּֽאׂמִ)라는 말인데 매우, 지극히, 최고로, 라는 뜻이다. 또한 좋았더라는 말은 토브(בוֹט)라는 말인데 선하더라. 아름답더라, 즐겁더라, 위대하더라, 완벽하더라, 어울리더라,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죄 없는 인간은 모든 창조물 중에 가장 위대하였고 완벽했고 선했다. 그래서 에덴에 살기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이었다.

 

3. 인간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되었다.

  

인간이 천하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생명과 그의 형상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명이 귀하기에 그 생명을 구속하시려고 구주를 약속하시고 피의 제사인 생명의 제사를 설정하셨다.

 

속죄에 피를 흘리게 한 것은 피가 생명자체는 아니지만 생명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생명이 없으면 피는 움직일 수 없으며 피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은 생명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피를 흘림으로 생명의 구속을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게 하셨고 믿는 자들을 위하여 구주이신 주님이 오신 것이며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을 이루어 놓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6: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위의 말씀의 뜻은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생명이란 뜻이다. 우리가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인간의 가치는 아무 것도 또 짐승과 동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무에서 유가 생겼기 때문이며 또 짐승이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의 가치가 짐승과 동일할까?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짐승같이 여겨도 당연하게 생각할까?

 

인간의 생명이 귀하기에 그 생명을 보호하시려고 피를 흘리지 말라 하셨다. 짐승의 피도 먹지 말라고 하셨다. 가치 없는 것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를 짐승과 동일하게 여길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부여받은 생명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흙으로 된 육신을 위하여 죄를 범하며 살고 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셨다. 사람을 가장 가치 있게 창조하셨다.

 

4.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

  

(고전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심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다. 이간의 제일 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며 그분과 교제하며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하여 영원히 살게 하시려 하심이다. 그리하여 에덴을 창설하셨다.

 

에덴은 낙원이다. 낙원이란 즐거움의 동산이다. 이 에덴을 주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을 언약으로 맺었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쁘게 해 드리는 생활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생활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생활은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간단하게 말한다면 ?

 

1) 하나님을 들어내는 생활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들어내는 생활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모든 인간들 앞에서 피조물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은 경외하는 생활인데 경외하는 생활은 예배의 생활이다. 예배는 경외의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다.

 

인간은 그의 창조물이며 그의 뜻은 선하기 때문이며 의롭기 때문이며 인간에게 복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은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생을 축복하게 하려고 창조하였는데 불행하게 되어 버렸으니 창조의 실패하심이 된다.

 

하나님의 창조가 실패다면 하나님은 불완전하신 분이 된다. 또 하나님의 섭리도 인간의 행복에 미치지 못하니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였다면 인간은 행복하여야 한다. 행복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간과 관계를 가지시며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이시며 창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려 함이다.

 

지상에 어떤 창조의 원리를 보아도 창조물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없다. 창조자를 위하여 만들어진다. 예를 든다면 시계를 위하여 시계를 만들지 않는다. 배를 위하여 배를 만든다든가 그릇을 위하여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 만든 자를 위하여 만든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계속 섭리하고 계신다.

   

5. 이름은 아담[Adam מדַאָ], 하와(Eve)라 지었다.

 

하나님께서 창조된 인간은 아담이라 했다.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어 주셨다.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이름을 사람이라 하셨다. 사람이란 뜻은 영을 가진 흙이, 생명 있는 흙이란 뜻이다.

 

아담[מדַאָ]이란 말은 붉다, 붉으스름하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라는 뜻이다. 즉 흙이란 말이다. 아담이란 말을 우리나라 말로 칭하면 사람이란 말이며 사람은 흙이란 말이다. 영과 결합된 변화된 흙이란 말이다. 생명을 가진 움직이는 흙이라는 말이다.

 

하와 (Eve)라는 말은 생명이라는 말이다이미 흙이었던 아담의 갈비뼈에 생명을 주어 여자가 되게 했다는 말이다. 즉 아담과 동일한 몸을 가진 생명이란 말이다. 이것은 남녀의 동질성을 말하며 동등성을 말한다. 그리고 일체성을 말한다.

 

이 결합한 흙과 영이 분리되면 이를 죽는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말은 나누어지다. 라는 뜻이다. 결합시키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나누이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흙이라 하셨을까? 인간은 생명을 가질 때 귀하며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한줌의 흙에 불과함을 알고 영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은 이 흙으로 된 육체를 벗어야 하기에 흙으로 된 육체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필요하지 않기 때에 새 육체를 입어야 하는데 이 새 육체를 입는 것을 생명의 부활이라 말한다. 새 육체를 입기 위하여 타락한 흙으로 된 육체를 벗기에 기독교의 장례식은 슬픔 속에서도 소망의 노래가 있다

 

 

출처 : 조재훈목회자료
글쓴이 : daum jhoon29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