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은사
고전12:4-11
성령이 충만하면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난다.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각각 분배해 주는 능력이나 재능과 사역을 말한다.
1. 은사의 의미.
은사란 말은 카리스마톤(χαρισματων)이란 말인데 공로 없이 베푸신 호의, 또는 값없이 주신 선물, 영적인 능력을 말한다.
직임이란 말은 다코이온(δαχονιοων) 이란 말인데 섬기다, 봉사한다, 받들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말은 엔노게마톤(ενρογηματων)이란 말로 활동하게 하다, 일하게 하다, 라는 뜻이다.
은사, 직임 역사,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은사로 맡기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구원을 위한 능력, 재능 사명이다.
영혼 구원이라는 한 드라마의 작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배우들이 필요하다. 각각 개성이 다른 배역들이 조화를 이루어 한 작품을 이루어 간다. 이 배우들은 자신의 주어진 배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배우가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자가의 배역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는 그 배역을 맡을 자격을 이미 상실된 배우이다.
교회의 모든 직임은 계급이 아니고 섬김의 배역이다. 집사라는 직임은 도맡아 일하는 직분이다. 장로는 참여하여 일하는 직임이다. 집사는 한 주인의 가정 살림을 도맡아서 하는 직분이다. 장로는 한 부락의 행정에 참여하여 일하는 직임이다. 장로란 말은 턱 수염이란 말로 경륜이 있는 어른이 자기가 살고 있는 부락의 모든 일에 참여하여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가급적이면 신앙경륜과 삶의 경륜이 있는 신앙과 삶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장로가 되어야 한다.
2. 은사와 구원.
은사와 구원과는 별개이다 사람가운데 더러는 은사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고 은사를 받은 자가 성령도 받은 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은사를 받아야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는 다는 말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은사 받지 않아도 구원은 받는다. 구원 받은 자의 영적 사명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은사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교회가 확장되어 지면서 이 교회를 관리 유지와 또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위해 일꾼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성령님을 통하여 은사를 주어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십자가의 강도는 은사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구원하셨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다. 그리고 직임을 받은 자들 가운데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자이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 이유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기에 은사를 주시기 때문이다. 영적인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은사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선물이다.
3. 교회와 은사.
현대 교회에는 은사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이유는 은사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샤머니즘 무속 신앙처럼 외곡 하여 현실의 삶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또한 사이비 종교와 이단으로 전락하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보다는 어지럽게 하기 때문에 은사의 필요성을 요하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를 주시면 그 은사를 악용해서 오히려 성령을 욕되게 하고 버린다.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행하다가 점점 교만해 지고 정욕에 빠져 교회를 위하고 영혼을 위함보다는 생활 수단으로 사용해 버린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더 역사하지 아니하시고 은사를 거두어 가신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은사를 거두어 가면 자기 이익을 위해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도들을 속인다. 자기의 육신의 내일의 생활을 위하여 축적하고 심지어 자식 대대에 물려주기도 하여 다른 집단(이단)을 만들기도 한다.
초대 교회는 성경말씀도 확보되어 있지 않았고 또한 신학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은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말씀이 주어져 있고 신학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또한 은사가 구원과 별개이기 때문에 사역자들 뿐 아니라 성도들까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현대 시대 교회에서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주의 일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성령께서는 은사를 주셔서 역사 하신다. 그런데 성령에 대한 확신이 없고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능력인 것으로 나타내기에 성령의 은사가 가려져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쉽게 약해진다. 그러나 사명감을 가지고 은사를 구하면 허락하신다. 주신 은사를 받아 일할 때에 큰 역사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일하는 자들은 은사를 사모하라 하였다. 이것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눅 11:9-13]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고전 12:30-31]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 성령이 충만의 증거.
은사는 성령 충만의 증거이다. 성령 충만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구하여 도움을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성령 운동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운동은 진리와 병행해야 한다. 진리(신학)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의 성령 운동은 그릇되기 쉽기 때문이다.
진리 없는 성령의 운동은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고 성령이 없는 진리 운동은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이루기 위하기 때문에 진리인 말씀으로 인도하기 위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성령이 병행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이 병행해야 한다.
(요 16: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5. 거듭난 자와 은사.
믿는 자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영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으로 하여금 영을 받았느냐 받지 못하였느냐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거듭났느냐 거듭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신령한 은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성령의 신령한 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거듭남의 여부를 알지 못하는 자는 신령한 것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가 내려 졌다는 말은 거듭났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고 이미 내 안에 성령이 임재 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진리바로알기 조재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 34. 3-믿음의 은사. 4-병고치는 은사 (0) | 2016.08.24 |
---|---|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 33. 1-지혜의 은사. 2-지식의 은사 (0) | 2016.08.24 |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31. 성령 충만 받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0) | 2016.08.24 |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30.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어떻게 다른가 ? (0) | 2016.08.24 |
[스크랩] 교리설교 진리바로 알기 - 29. 성령 세례 받은 자의 복 (0) | 2016.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