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번 제 단

하나님아들 2012. 9. 6. 11:24
번 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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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4장 1-6절

주요 요점
번제단에서 희생양이신 예수를 발견한다. 이제 우리의 마음의 번제단에 성령의 불을 지펴서 그 불로 죄를 태우고 변화받아 주님을 위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드리자. 번제단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보물이다.

오늘은 성전의 안뜰에 있는 것 중에 번제단의 의미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그림에 나타나는 번제단은 추측하여 그린 상상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당대의 성령 받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성물들이기에 훨씬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번제단 그러면 성막 번제단과 성전의 번제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막 번제단에 관하여는 출27:1-8과 38:1-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번제단에 관하여는 본문 대하 4장 1절 한절, 그 내용은 번제단의 재료와 크기에 관한 말씀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략기법으로 나머지의 제도도 모두 성막과 같다는 의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번제단과 번제단의 의미는 무엇인가?
번제단은 제물을 잡아 불사르는 곳을 가리킵니다. 번제단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어 하나님께 대신 심판을 받으신 영원한 제물이 되심을 상징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번제단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1절에 “솔로몬이 또 놋으로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십규빗이요 광이 이십규빗이요 고가 십규빗이며” 했습니다. 장광이 각각 20규빗이요 높이가 십규빗이라면 사방 9미터에 높이가 4.5미터입니다. 이 정도면 스라브집보다 더 높은 단입니다. 크기는 성막의 번제단보다 50배입니다.
그런데 20규빗에 10규빗이면 2도 율법의 수요, 10도 율법의 수입니다. 모세의 돌판이 두 개였습니다. 또 계명이 십계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번제단은 율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번제단을 율법의 수로 만든 것은 모든 사람은 율법으로 보면 모두 죄인이며 따라서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정죄받아 죽으셨습니다.
2.번제단은 공의를 상징합니다.
번제단이 20곱하기 20으로 정사각형입니다. 모세의 성막도 5곱하기 5로해서 정사각형이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용납하고 씻는 물두멍이나 놋바다와 같이 둥근 것과는 크게 대조적입니다. 이 정사각형은 칼로 두부모를 잘라놓은 듯하는 공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번제단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장소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죄는 철저히 다스려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여죄가 있다면 이 활활 타오르는 성령의 번제단에 다 태워야 합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물로 씻어 주시든지 불로 살라 주시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했습니다. 이곳은 바로 이렇게 죄를 멸하는 곳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을 만나고 먼저 깨달은 것이 자신이 부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외쳤습니다. 그러자 스랍천사가 화저로 번제단에서 취한 핀 숯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의 입에 대면서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사6:6-7) 이렇게 번제단의 핀 숯으로 깨끗이 제거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왕하16장을 보면 이 번제단을 변형시킨 아하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가 왜 성경에 나올까요? 회개에 관해서 비신앙적인 견해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것은 예수 없이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 혹은 영원한 속죄를 받았으니 자범죄를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 혹은 남은 죄성를 멸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과도 같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다 아하스의 제단입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아울러 남은 죄성을 제단 숯불로 깨끗이 불살라야 할 것입니다.
제물을 연구해 보면 공적인 제사는 제사장이 제물에 안수했지만 사적인 죄는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제물에 안수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위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이 번제단에서 죄를 모두 태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번제단은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대하4:1에 “솔로몬이 또 놋으로 단을 만들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성막이나 성전이나 번제단의 재료는 다 놋입니다. 놋은 심판이요 십자가의 상징입니다. 이 놋이 언제 나타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박한 식물만 준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민21:5) 불뱀을 보내서 물어 죽게 하셨을 때 나타납니다. 그 때 모세의 중재기도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내셨는데 그 길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3:14에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시면서 바로 장대에 달린 놋뱀이 곧 예수를 상징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놋입니까? 놋은 당시에 강한 쇠로 심판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번제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번제단의 과정이란 먼저 예수님이 나의 구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또 번제단에서 십자가의 공로로 나의 죄과가 사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번제단에서 남은 우리의 죄성을 불태워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성을 성령으로 불사르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이 대제사장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짓는 자범죄와 죄성을 처리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4.번제단은 영원한 효력을 상징합니다.
번제단의 용량은 모두 4000입방규빗입니다. 여기 4는 유월절 양이 1월 10일에 선택하여 4일간 두었다가 14일에 잡을 때 둔 양의 수로서 4는 유월절의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런데 1000이라고 했습니다. 벧후3:8에 주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또 천 년은 무한수입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의 효력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는 두되 세되 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효력은 온 인류를 속죄하고도 남으며 또 우리를 영원한 세상에서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입니다.
5.번제단은 최고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또 번제단의 용량 4000입방규빗의 의미입니다. 이 용량은 지성소 위에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용량입니다. 그러므로 이 속죄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영원한 축복이요, 주님께 죄를 없이 함을 받는다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를 소멸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예를 들어 죄 한덩이 하나님께 내 놓으면 더 큰 하늘의 보화덩이 한 개와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번제단이 보물창고와 같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래서 회개하면 건강의 복도 주시고, 형통의 복도 주시고, 하늘의 복 땅의 복 가득 가득 채워 주십니다. 이 신바한 비밀이 바로 번제단에 숨어있는 비밀입니다.
6.번제단은 권세가 있는 곳입니다.
번제단의 네 귀퉁이에 뿔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는 힘과 권능의 상징입니다. 이 네 뿔에 피를 발랐는데 이는 예수의 피의 권세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신자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또 아무도 이 피의 권세를 믿는 사람을 손 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피로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신자를 손대면 마귀는 자기 죽을 일이므로 손댈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의 법궤를 만진 웃사가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의 피의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마귀도 만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일5:18에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가운데 예수의 핏공로를 믿고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삼키려는 원수 사단과 저주의 세력들이 멀리 떠납니다.
또 번제단의 네 뿔은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계 만민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는 모두 예수를 믿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이 뿔은 도피성입니다. 솔로몬에게 반역한 아도니아가 이 제단뿔을 붙들자 살려 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핏공로는 우리의 영혼을 살려 줍니다.
7.번제단의 불은 뜨겁습니다.
신기한 것은 번제단의 불길의 강도는 당시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제 1성전 시대에는 번제물을 올려 놓기만 하면 불은 성난 사자같이 타올라 그 번제물을 살랐습니다. 그러나 제 2성전시대에는 개가 누워 있는 것같이 약했다고 전해옵니다. 우리 심령도 번제단의 불길과 같이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불길은 각자의 신앙상태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반성해 보십시다.
마지막. 번제단은 희생의 불입니다.
계6:9-11을 보면 순교자들이 하늘의 번제단 아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짐승의 피가 뿌려졌던 번제단에 예수의 피가 뿌려졌고 이제는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심령의 번제단에 성령의 불이 타오를 때만이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삶을 살아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 번제단 아래서 부르짖는 자아를 죽이는 믿음이 순교자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했던 것도 그 만큼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 불이 가슴 속에 있을 때 주님을 위해 살 수가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번제단에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양이 되신 예수를 발견합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의 번제단에 성령의 불을 지피십시다. 그래서 죄를 태우고 이제 주님을 위해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 드립시다. 이 번제단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보물입니다. 이 귀한 번제단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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