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신앙관!

[스크랩] 기독교세계관 7장요약

하나님아들 2015. 7. 18. 15:08

제 7장 기독교세계관

: 기독교세계관의 가치론 근거


기독교세계관은 과연 어떤 가치관을 함의하고 있는 것일까?

1. 윤리적 가치문제에 대한 기본적 논의

1) 윤리적 가치문제에 대한 고전적 이해

목적론적 윤리설- 인간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윤리적으로 선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아리스토텔레스)

규범론적 윤리설- 도덕에 있어서 목적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의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와 같은 고전적 윤리설은 그래도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이나 행위의 의무가 있고 인간이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수행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


2)현대적 정황

 1960년대 이후 우리는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주어진 집단 안에서 그 집단 안에서만 통용되는 윤리적 가치가 논의될 수 있는 여지는 있으나 그것이 포괄적인 의미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든지, 보편화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3) 이런 정황의 기독교적 의미와 기독교 관점의 출발점

 이런 정황은 한편으로는 의미가 있는 정황이고, 한편으로는 대단히 심각한정황이기도 하다. 윤리적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의미가 있는 정황- 인간 스스로 가진 능력으로 윤리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것이란 결국 서로 대립하며, 결국 보편적인 윤리적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윤리적 타당성의 한 측면을 드러내 준다. 인간 스스로가 가진 능력으로 어떤 것을 윤리적 가치라고 할 수 없음을 인간 스스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정황- 기독교 가치 주장까지도 그런 상대적인 것의 하나로 취급하든지, 아니면 기독교가 절대성과 보편성을 강조하게 되면 그런 기독교 자체를 아예 거부하거나 무시하게 한다.


2. 기독교 윤리의 기초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과연 무엇을 말해야 한 것인가?

1) 기독교 윤리의 기초: 절대원리로서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기독교 가치관은 이런 상대주의적인 시대 가운데서도 절대적인 가치의 원천과 원리가 존재한다는 주장하는 데서 출발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선한 것이며 바른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 악이고 옳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선악과 정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기독교 윤리적 가치관의 근본이다.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이므로 교훈적인 하나님의 뜻이 명령이요 의무가 된다(신명령설 divine command theory).

 그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의 원리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직접 교훈하는 것과 그 각각의 교훈을 종합하여 그로부터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로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여길 수 있다(오직성경). 사실 이는 각각의 교훈을 중심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그 각각의 교훈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as a whole)의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전체 성경). 이 둘 사이의 일종의 순환적 작용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더 온전히 파악하게 한다.

 이 과정 가운데서 결국 하나님이 이 땅에 이루어 가려고 하는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모든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유익한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유익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것은 악한 것이 된다. 이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의도에 근거한 판단이다(영적인 선 spiritual goodness).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객관적인 원리인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고, 동시에 주관적으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수행되는 것이어야만 한다.

상대적인 선(relative goodness) 또는 시민적 선(civil goodness) - 이 세상에는 상대적으로 선한 일도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한다는 주관적인 동기는 문제 삼지 않고, 성경 가운데서 객관적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와 비교적 근접하게 행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선에 관한 한 어떤 사람이 어떤 동기에서 그리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좀 더 가까이 있는 이를 상대적으로 선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영적인 선과 상대적인 선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진 것이 된다.


2) 기독교 윤리의 기초: 인간의 실패와 절망

 이 세상에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이가 있는가? 성경은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한다(롬 3:10-12).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해 절망한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의 한 기초이다.


3) 기독교 윤리의 기초: 성령님께 의존하여 수행되는 윤리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가 없다. 자신의 힘으로나 자연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따라 행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온전한 기독교 윤리는 결국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성령님께 의존하여 수행하는 윤리가 된다.


4) 기독교 윤리의 기초: 신국적 윤리

 결국 기독교적 윤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을 중심으로 한 것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이다. 모든 윤리는 하나님 나라적인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 나라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살피면서 그 나라의 역사적 진행 과정 가운데서 어떤 일을 수행해 가야 하는지에 모든 신경을 다 기울여 나가야만 한다.

 상대적인 선과 영적인 선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인간들이 보기에 아무리 선한 것이고, 이 땅의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노력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순종과 그 나라를 드러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정 기독교적인 선이 될 수 없다.


3. 마치면서: 오해 극복을 위하여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기독교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하다거나 항상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판단해서 제대로 살아간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에는 죄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미워하며 버리고, 자신과 모든 사람 앞에서 그런 방향과는 다른 영을 따라 가는 방향으로의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제 8장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

: 기독교 세계관적 직업관


1. 문화명령의 빛에서 본 직업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 창세기 1:28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규정해 주시는 명령이다(창조명령). 문화적 사역을 포함한 이 세상에 대한 통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주 고귀하게 창조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땅을 다스리는 이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계에 인간의 힘을 가해서(자기의 은사와 능력을 따라서)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결국 노동과 그것의 구체화된 형태의 직업은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이루기 위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이후 노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을 발전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드러내는 일일뿐만 아니라, 저주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타락의 영향력이 우리의 노동에도 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노동의 구속된 의미가 있다.


2. 대위임령의 빛에서 본 직업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 - 마태복음 28:19-20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이 말씀은 그저 좁은 의미의 전도와 선교, 양육 등으로 다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라는 뜻이고, 제자가 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뜻을 다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

 문화명령의 수행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제자됨을 온전히 다 실현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제자는 그저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에 힘쓰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에 힘쓰면서 또한 주어진 직업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 힘쓰는 데서 이루어진다. 대위임령의 빛에서 보았을 때도 직업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귀한 작업의 한 부분이다.


3.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 직업

 이 세상에서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삶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종교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직업 활동도 진정하고 실재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다. 직업과 관련된 활동은 그저 돈을 벌거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잘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그리스도인은 직업 활동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랑의 태도로 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근거해서 그 일을 하려고 해야만 한다.


4. 마치는 말(제안)

1)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태도로 직업을 선택하고 수행해야 한다. 직업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2)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이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다른 이들을 돕는 태도로 직업 활동을 수행해야만 한다.

3) 될 수 있는 대로 피조계 전체를 돌아 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피조계를 돌아보는 태도로 직업 활동을 수행해야만 한다.

4)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피조계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아의 진정한 의미와 자아의 실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직업 활동은 이렇게 제대로 이해된 자아실현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 9장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요구와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

:오늘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을 치워버릴 것인가,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더욱 발전시키고 실천할 것인가?


“기독교 세계관” -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생각하고, 그런 기독교적 생각에 따라 활동하고, 기독교적으로 살아가는 일.”


1.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주어지는 다양한 요구들

1) 기독교 세계관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라면: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진술과 제시가 문제가 있고, 일정한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의 진술 방식을 고치자는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은 주의를 요구한다. (빌헬름 딜타이- 암묵리에 계몽주의적 사고방식이 같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내용을 잘 정리하여 그에 근거한 일을 하는 것(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이다!)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2) 기독교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라면:

 성경에 비추어 판단했을 때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제시되던 바가 비성경적인 부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경우라면, 물론 그런 것은 반드시 성경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야만 한다(예, 영육 이원론, 성속 이원론).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계 내에도 있는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모든 요소들을 변화시키는 추구를 계속해 왔고, 계속 그런 노력을 해 갈 것이다. 개혁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에 배추어서 항상 개혁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수정주의”(revisionism)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에 기독교 세계관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삼위일체개념, 부활 개념, 재림 개념 등 이런 것들이라면 그것은 결국 기독교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기독교 세계관의 표현 방식, 제시 방식을 바꾸자는 논의라면:

 이는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시도되는 기독교 세계관 제시가 과연 어떤 형태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온 세상을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실천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이 담아지기만 한다면 그 어떤 형태의 기독교 세계관 제시라도 있을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처음부터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이 세상에 제시된 것이다(예, 기사적(narrative)적 방식)


Ⅱ.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

: 기독교 세계관이 진전되어야 할 방향


1. 기독교 세계관 자체의 발전과 성숙의 문제

1) 기독교 세계관의 철저화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기독교 세계관이 아주 철저하게, 모든 면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이다(외적인 철저화). 기독교 세계관에서 철저하지 않은 모습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가장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철저한 일관성을 지닌 세계관으로 제시되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그렇게 제시되는 세계관을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그에 근거한 여러 측면에서의 외현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내적 철저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히 내면화할 때에라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성화와 맥을 같이 한다.

2) 기독교 세계관의 신국적, 교회적 토대 강화

 기독교 세계관의 하나님 나라적 토대와 신국적 성격이 보다 분명해져야만 한다. 성경에 충실하면 할수록, 철저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면 할수록 기독교 세계관은 가장 신국적 세계관으로 드러나게 된다.

 동시에 기독교 세계관의 교회적 토대를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드러내는 기관이 바로 교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를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답게 하는 일이 된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돕는 기관들은 그런 성격(교회를 돕는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교회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섬겨가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관들이 교회를 돕는 성격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시는 일들을 더욱더 분명히 되며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한 일들을 여러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2.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실천들

1) 기독교 학문적 활동

 각 학문 분과 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철저한 기독교 학문적 활동을 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학문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때(동기와 목적의 문제), 그 생각과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일 때(내용의 문제), 그 내용 제시에 내적인 모순이 없을 때(논리성과 형식의 문제) 우리는 그런 학문을 기독교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부분은 철저히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하고 방법론을 말하는 보다 적극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영역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학문을 하든지 가장 어렵기 때문이며, 이런 일의 시도에 대해 기존 학계의 강한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늘 두 종류의 학문이 있고, 그 둘 사이에는 반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기독교적 활동: 기독교 기업 활동, 경제 활동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명확히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의 활동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업을 운영하는 태도, 자세, 방향, 철학, 그리고 그 구체적인 운영 방법이 기독교적 원리와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실질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간 단계가 자신들의 기업이 섬기는 고객들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데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려고 하며, 그 제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보급하려고 하고, 직원들 간의 관계가 가장 정상적인 인간관계로 이루어질 수 있게끔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 기업으로서의 내외적 이미지가 분명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동기도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이웃을 섬기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피조계를 잘 섬기면서,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소비생활에서도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소비 양태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소비 사회인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와 구제를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산업 발전을 위한 적당한 소비검소한 삶구제의 실천을 다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3) 기독교적 정치 참여와 기독교 시민운동의 전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구실을 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할 때에도 우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세대와 출신 지방, 학력 등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닌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 직접 정치적인 것을 통하지 않은 일반 시민운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열심히 참여하며 활동해야 한다. 우리의 실천을 바라보고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기독교적 세계관의 일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4) 기독교 학교운동과 기독교 교육 운동

 이 모든 일이 성공하려면 다음 세대에 철저한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하여 활동하는 이들을 기독교적으로 교육하는 기독교 교육 운동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운동, 기독교 대안 교육 기관을 세우는 일들, 진정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일반 학교와 그 제도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변화시켜 가는 노력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 어쩌면 그것도 효과적인 방안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현대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논의

 우리 사회 속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공적인 영역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일이 증가해야만 한다. 생명 존중과 관련된 일, 생명 복제, 배아 복제와 관련된 일, 그리고 환경문제와 통일문제 등에서 분명한 기독교적 시각의 제시가 있어야 하고, 그런 관점을 지닌 자들다운 활동이 있어야 한다.


6) 기독교 세계관적 문화 활동

 기독교세계관은 결국 기독교 세계관적 문화 활동의 문제에 기여해야만 한다. 좁은 의미의 문화 사역이라는 말은 기독교 문화운동의 참뜻을 해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폭넓은 문화 활동의 길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마치는 말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당장 힘써야 할 것 몇 가지

1) 우리 자신의 의식이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하나님 나라적인 의식이 되어야만 한다.

2) 개개인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하나님 나라의 개인과 공동체(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그들의 삶과 존재와 활동으로 드러내어야만 한다.

4) 동시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중시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며, 그렇게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온 이들의 온 세상을 보는 관점이 진정한 기독교적 관점이 되고, 그에 근거해서 사는 일을 하게끔 애써야 한다.

5) 그렇게 기독교화된 이들이 학문을 하는 일, 기업을 하는 일, 사는 일의 하나님의 통치하심,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것의 실재를 드러내어야 한다.

6) 하나님 나라적 의식에 근거한 문화적 활동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출처 : 도형분석상담연구소
글쓴이 : doulos12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