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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 다윗

하나님아들 2015. 6. 24. 14:51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 다윗

 

 

*- 본문 : 삼상17:41-49 -*

 

Ⅰ. 다윗의 인적사항

1) 다윗의 뜻은 : '사랑받는 자'

2) 유다지파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3) 미갈, 아히노암, 아비가일, 밧세바 등 많은 아내와 첩이 있었음

4) 다윗의 직업은 목동이었음

5) 사울왕궁의 궁중악사와 군대장관으로 있었음6) 이스라엘 2대 왕이 됨

 

 

Ⅱ. 시대적 배경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어 강력한 왕권체재를 구축해 나가는 대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잦은 전쟁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정권의 중요 요직에 오르면서 추앙을 받는 듯 했으나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곧 시련의 역풍을 겪게 된다. 이스라엘의 큰 내분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윗은 도피와 망명 생활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경험과 훈련과 환난의 고비를 넘기면서 혹독한 수업을 받고 훗날 다시없는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성장하게 된다.

 

 

Ⅲ. 다윗의 생애

다윗의 생애는 역대 그 어느 사람 못지않게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다. 다윗의 삶은 한마디로 역사의 대서사시를 보는 것 같다. 다윗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면 왕이 되기 전의 다윗과 왕이 된 이후의 다윗의 모습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오늘은 왕이 되기 전의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다윗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이었던 사울이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자기 멋대로 제사장 권한을 침해하고, 전쟁시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려서 백성들이 고기를 피 채 먹는 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했는데도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짐승을 산채로 끌고 오고,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등 교만이 하늘을 찌르자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베들레헴 시골에서 목동으로 있는 한 소년이 하나님 마음에 꼭 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보고 흐믓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시켜 뿔에 기름을 채워 이새의 집으로 가라고합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왕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삼상16:1)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당시에 다윗은 몇 마리의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 했습니다. 다윗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만들었을까요?

 

① 다윗은 참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윗의 내면 그 밑바닥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함을 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속에 지구보다 더 묵직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사자나 곰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골리앗도 다윗의 믿음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온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그 어떤 세력도 막아설 수 없습니다. 거대한 태풍도, 죽음의 위협도, 사자나 곰도, 골리앗도 다윗에게는 하나님 없는 허수아비로 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② 다윗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단순히 호기 좋은 외침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믿음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무용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삼상16:18)

- 수금연주에 뛰어남

푸른 초장이 넘실거리는 환경에서 양을 치면서 낮잠이나 자고 대충 대충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 수금타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수금 타기는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 넘는 실력이었습니다. 영감이 실린 연주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다윗은 그야말로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수금연주는 다윗이 영혼이 담긴 연주였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연주였습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연주였습니다. 다윗의 수금 연주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사울왕궁의 신하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사울이 악령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할 때 다윗은 궁중악사로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 왕을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16:23)

- 매우 용기 있는 사람

다윗의 용기는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 그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골리앗 앞에 칼도 없고 갑옷도 없는 목동이 막대기와 물맷돌만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이는 이러한 용기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참된 용기를 낳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무용이 뛰어남...

다윗이 용기와 믿음으로만 살았나요?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했습니다. 양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탁월한 무예와 용맹을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 가면 쫓아가서 새끼를 구해오고 수염을 잡고 입을 찢어 죽이는 것입니다. 다윗의 무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 했습니다. 날쌘 몸매와 힘과 기술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물맷돌을 던지는 솜씨는 금메달감이었습니다. 한국 낭자의 양궁수준이었습니다. 한국 핸드볼의 스트라이커 수준이었습니다. 사격의 진종오선수와 같았습니다. 골리앗을 넘어트릴 때는 다섯 개의 물맷돌 중 단 한 개의 물맷돌로 달려가면서 날린 것이 10점 만점 급소를 맞추고 끝낸 것입니다.

- 구변이 뛰어났습니다.

다윗은 항상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말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단순히 달변가가 아니라 그의 말은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상대를 압도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이 얼마나 멋지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상대를 압도하는 말입니까? 강력합니다. 골리앗이 다윗의 용맹과 위엄에 놀래서 멈칫하고 잠시 정신을 잃는 동안 목표물은 고정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어 하는 순간 ‘앗’ 소리 한 번 제대로 질러 보지도 못하고 2.9m의 거대한 거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쿵하고 쓰러졌습니다.

이는 다윗의 믿음과 용맹과 무용과 구변이 어우러진 한 편의 멋진 대서사시였습니다. 이보다 멋진 드라마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개발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환경은 나쁩니까? 열악합니까? 우리는 사실 다윗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다윗보다 훨씬 많은 교육을 받고 있고, 다윗보다 훨씬 많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며, 다양한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믿음은 쇠를 녹이는 믿음입니까? 두려움이 없는 믿음입니까?

나의 위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나요? 예배 속에서 나만의 창조적인 예배를 드리나요? 창조적인 봉사를 하나요? 내가 끊임없이 개발하고 훈련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잔소리와 불평은 아닌가요? 이젠 새로운 개발을 합시다. 칭찬을 창조하고, 감사를 창조하고, 봉사를 개발하고, 전도를 개발합시다. 그래서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합시다.

 

 

2.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지혜롭게 일처리를 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16:13)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삼상18:14)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삼상18:28)

그렇습니다. 다윗은 거의 모든 생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결코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묻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절대 서두르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순종했습니다. 혹여 순종한 이후 상황이 더욱 좋아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윗은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윗을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께 이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에 승리자들이 됩시다.

 

 

3. 다윗은 혹독한 (시련)을 잘 견뎌 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왔을 때 다윗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이후에 다윗을 보내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했고, 승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혹독한 시련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백성들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칭송하는 모습을 본 사울은 다윗을 경계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악령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사울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집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던지는데 다윗이 잘 피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군대장에서 천부장으로 강등시킵니다. 이는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강등시키는 것은 결국 제거하려는 수순입니다. 왕조시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렇게 강등되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천부장의 위치에서도 아주 지혜롭게 일을 잘 처리합니다. 백성들이 모두 다윗을 사랑하고 잘 따릅니다. 더욱 위기를 느낀 사울은 새로운 계락을 꾸밉니다. 다윗을 사위로 삼아 죽이려고 합니다. 사위의 조건으로 블레셋의 포피를 100개를 가져오면 사위로 삼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던 다윗이 사위가 되면 사울이 좀 괜찮을까? 싶어서 블레셋 진영을 쳐서 포피 200개를 가져와 결국 사위가 됩니다. 사위가 된 다윗을 급습하여 죽이려고 할 때 미갈이 다윗을 구해줍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구해줍니다. 이렇게 하면서 다윗은 도피생활이 시작됩니다. 망명길에 오릅니다. 참으로 비참한 시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10여년을 도피와 망명생활로 보냅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통해 사울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본격적인 도피생활을 한다. 그 도피행각과 망명생활을 살펴보면 이렇다.

 

놉땅

다윗이 도망자가 되어 처음으로 간 곳이 놉땅입니다. 이곳으로 도망칠 때에 3일동안 굶어서 놉땅의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가지고 있던 칼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사울이 알고 아히멜렉의 일가 85명을 모두 몰살시킵니다.

 

가드왕 아기스

할 수 없이 다윗은 망명을 결심하고 블레셋 진영 가드왕 아기스에게 갑니다.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보는 눈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자리에게 미친척하고 침을 흘려가며 대문짝을 극적거려서 간신히 위험을 모면합니다.

 

아둘람굴

결국 다윗은 아둘람굴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다윗의 형제와 가족이 찾아왔고, 환난당하는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약 40명 가량

 

모압미스베

다윗은 이번에는 모압이라는 땅으로 망명을 갑니다. 여기서 대체로 숨을 돌릴 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일라를 구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해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일라 주민들을 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일라 주민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십광야

십광야 숨어있을 때 십광야 사람들이 사울과 내통하여 다윗이 꼼짝없이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그때 갑작스럽게 블레셋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돌아갑니다. 아주 극적인 사건이 연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부릅니다.

 

엔게디 요새와 하길라 산

다윗이 대 역전극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두 번 옵니다. 엔게디 요새의 한 굴에 숨어있을 때 사울이 다윗을 수색하러 왔다가 굴에서 뒤를 보러 들어왔을 때 사울을 죽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벱니다. 그리고 멀리서 사울에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삼상24:14-15)

여기서 다윗의 멋진 구변과 기도를 들을 수 있다. 그러자 사울이 뉘우치게 된다.

하길라 산에서는 사울의 진영이 다 잠들어 있는 틈을 타 2번째로 복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번에는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멀리서 또 외칩니다.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삼상26:20)

그리고는 간절히 사울이 듣는 앞에서 기도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주군은 왕과 나라에 충성했는데 역적으로 몰렸습니다. 사울의 사위가 되었는데 장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도와준 아히멜렉 제사장 일가가 몰살을 당했습니다. 블레셋으로 망명했다가 더 큰 생명의 위협으로 미친척하고 침을 흘리며 연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주변에는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군대장관에서 무리배의 똘만이 대장이 된 것입니다. 그일라 사람들을 구해주고 배신을 당했습니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망명을 3번이나 했고, 수없이 많은 세월을 도망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절호의 찬스에서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를 소망했습니다.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다윗의 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 그의 견고한 믿음,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찌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견뎠습니다. 시련이 밤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그 시련의 밤을 견뎠습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아주 커다란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전쟁터에서 사울과 그의 일가족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이제 다윗의 정적은 사라졌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을 손쉽게 제거했다면 다윗은 역적이 됩니다. 반역이 됩니다. 장인을 죽인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미갈을 어찌보며, 의형제를 맺은 요나단을 어찌 볼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지금까지 다윗이 쌓아올린 모든 덕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정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반역을 경험했을 것이고, 불순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시련의 겨울을 잘 견디어 내고 하나님 안에서 인내하며 견뎌냈을 때 하나님이 다윗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그 시련을 잘 견디어 내도록 돕는 자를 붙여주셨습니다. 미갈이 도왔고, 요나단이 도왔습니다. 아비가일이 도왔고, 수많은 비주류들이 도왔으며 나중에는 온 이스라엘일 다윗을 추앙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시련의 겨울을 이겨낸 위대함입니다.

 

블레셋 가드왕에게로 망명

결국 블레셋으로 다윗이 망명하면서 사울과 다윗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끝나게 됩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이 안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 했는데 일이 꼬여만 갈 수 있습니다. 납득하기 힘듭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일일 더 안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외면하고 계시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성군으로 빚어 시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시련의 훈련코스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각자의 시련의 코스가 있습니다. 자식이 되는 일이 없습니까? 하는 일이 꼬여만 갑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습니까? 십자가 보다 더 큰 짐이 우리 구역에 있습니까? 감사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의 긴 여정을 통과하면 하나님이 높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고뇌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 내십시다. 그리고 기어코 승리해 냅시다. 그리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고 감사의 찬양을 부릅시다.

 

 

Ⅳ. 결론

오늘 우리는 다윗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다윗의 참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자기를 개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수금과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남달랐고, 시인이요, 철학자요, 전사요, 챔피온이요, 추방자요, 건축가요, 행정가요, 목자요, 왕으로서의 자질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내일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자신을 개발하기를 쉬지 않는 사람이 됩시다.

2. 다윗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게씁니다.

3. 다윗은 기나긴 혹독한 시련을 잘 견뎌냈습니다.

이 시련은 다윗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 코스였습니다. 우리도 다양한 시련이 올 때 그 시련을 끝까지 견뎌내어 승리하는 승리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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