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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용맹과 우정을 겸비한 자 - 요나단

하나님아들 2015. 6. 24. 14:50

 

용맹과 우정을 겸비한 자 - 요나단

 

 

*- 본문 : 삼상18:1-5 -*

 

 

Ⅰ. 요나단의 인적사항

1) 요나단의 뜻은 : '여호와께서 주신다'

2) 사울과 아히노암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3) 므비보셋이라는 아들이 있음

4) 다윗과 깊은 우정을 쌓음

5) 길보아전투에서 전사함

 

Ⅱ.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이 왕국시대가 되어 국가의 기틀을 놓고 국가적으로 정치적인 제반 분야를 정비해 가는 시기이다. 이스라엘의 주변국들 중에는 블레셋이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이었고, 요나단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블레셋과의 여러분의 전투가 있었던 시기이다. 국내외적으로 강성한 국가의 기틀을 잡아야 하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Ⅲ. 요나단의 생애

아버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므로 그의 아들들을 동시에 신분이 상승되어 왕자가 되었다. 사울의 아들 중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자는 다름 아닌 사울의 장남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자로서 아주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간 인물이다. 그렇다면 요나단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생애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1. (믿음)과 (용맹)이 뛰어난 자였습니다.

요나단은 무예와 용맹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요나단의 용맹은 알아줄만 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 쯤 되었을 때에 사울은 특별 군대를 편성해서 3천명의 군대를 모집합니다. 그리고 2천명은 자신이 데리고 있었고 1천명은 요나단에게 맡겨서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왕자의 신분인 요나단은 이미 출중한 무예를 갖추었고 또한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치게 됩니다. 그래서 블레셋과 이스라엘에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울은 큰 두려움으로 인해 사무엘이 속히 오기를 전전긍긍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블레셋 진영의 군대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자신의 무기든 자와 더불어 블레셋진영의 부대로 치러가자고 말합니다. 당시에 블레셋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는 험한 바위가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느니라(삼상14:6),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요나단에게 있었습니다. 담대한 믿음입니다. 블레셋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반드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요나단은 믿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용맹과 더불어 무예가 출중했습니다. 요나단이 험한 바위산을 기어 올라가서 블레셋 진영을 쳤는데 그날 죽인 사람이 20명 가량이라고 했습니다. 20명이라고 하면 별로 안되는 사람인 것 같지요. 그런데 이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자와 함께 올라와서 이러한 용맹을 떨쳤으니 이는 블레셋 진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언합니다.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삼상14:14-15)

그렇습니다. 지금 요나단의 용맹으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이 떨었으며 땅이 진동하는 큰 떨림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20명을 죽인 사건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진영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이스라엘 진영의 사람들은 큰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진영에 속해 있던 히브리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 편이 되어 함께 싸웠으며 이스라엘 산지에 숨어있던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어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아주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요나단의 용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큰 용맹이었습니다. 대단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용맹 뒤에는 요나단의 신실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전쟁이 한창일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프랑스 군대는 나폴레옹이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영국군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영국군 두 병사는 이래저래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탈옥을 결심하고 탈옥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탈옥을 결행하는 날이었습니다. 무사히 감옥을 빠져 나왔습니다. 해안까지 왔으나 배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국까지 돌아가려고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뗏목을 타고 영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차서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군대에 도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두 명은 나폴레옹 앞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나폴레옹이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뗏목을 만들었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들은 그 뗏목을 타고 영국까지 갈 줄 믿었으냐?>

<그렇습니다.>

두 병사는 진지하고도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두 병사를 보던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두 명을 풀어 주어라. 영국으로 보내 주어라. 아무리 적군일 지라도 저렇게 용기있는 사람은 존경하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두 병사는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아주 큰 사람이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는지 모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용기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습니다. 유혹과의 전쟁, 경쟁과의 전쟁, 미움, 다툼, 시기, 질투와의 전쟁들이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앞서면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내 속에서 싸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인정받으면 시샘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을 살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진정한 용맹입니다. 진정한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과 용맹을 겸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정의)와 (신의)를 겸비한 자였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멋있는 왕자였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바른 것을 바르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본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기꺼이 배우려고 했고, 자신이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면 기꺼이 칭찬하고 존중하고 그를 높였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보기드문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해에 블레셋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이번에 블레셋이 들고 나온 전략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블레셋을 대표할 만한 장수를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예전에 요나단의 용맹으로 큰 패배를 맛본 블레셋이 이번에는 새로운 전략으로 이스라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이 먹혔습니다.

블레셋에 가드사람 골리앗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약2.9M)입니다. 그리고 놋 투구와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5000세겔(약57KG)이고,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매었는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600세겔 정도 되는 무지막지한 인물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나와서 호령을 합니다. 나와 겨루어 싸울 자가 있으면 나와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금이 저려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왕실에도 큰 근심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골리앗을 상대로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대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다윗이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가면서 그 유명한 말을 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그리고 다윗은 물매 돌로 골리앗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골리앗의 목을 베어가지고 돌아옵니다. 이날의 전투는 대승이었습니다. 다윗의 용맹과 믿음을 보고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도 믿음과 용맹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 앞에서는 자신도 나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모습을 보고 요나단은 큰 감동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존경했습니다. 용사는 용사를 알아보는 것일까요? 다윗이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요나단과 다윗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이 튀었습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우정을 맺자 약속합니다. 이날 요나단이 다윗에게 준 선물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선물: 자신의 겉옷, 자신의 군복, 칼, 활, 띠

이는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믿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같은 사람이 있음을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높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정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변호합니다. 그로부터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의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➀ 요나단이 사울을 설득하여 사울의 마음을 돌이킨다.

사울은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아버지 사울을 설득한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삼상19:4-6)

그런데 이러고 나서 사울이 악령에 사로 잡혀서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던집니다. 다행히 다윗이 피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요나단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자신은 아버지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돌연 사악함을 드러냈으니 요나단은 너무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➁ 한 번은 다윗이 정말 왕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의 의도를 알려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다시 왕을 설득합니다. 그가 죽을 일을 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까지 죽일려고 했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과 요나단이 만나서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작별을 하게 됩니다. 서로 입맞추고 울면서 맹세를 합니다. 너의 자손과 나의 자손 사이에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삼상20:41-41)

 

➂ 십황무지 수풀에서 다윗을 축복하는 요나단(삼상23:16-17)

한 번은 십황무지 수풀에 있을 때 사울이 요나단을 잡으러 갑니다. 그때 요나단이 몰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을 만나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다.

이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요나단은 이미 마음의 병이 들고 악정을 베푸는 아버지를 보면서 권력에 대한 무상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이때부터 요나단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벗어버린 듯 합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의 신의를 굳게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요나단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신앙의 양심상 아버지의 행위를 동조 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요나단은 길보아 전투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아버지와 장렬하게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예)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장에서 전사할 때 역사가들은 이렇게 추측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하고 돌아 왔어도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전장에서 죽기를 각오했다고, 그래서 죽음의 전장터로 뛰어 든 것이라고 .......

요나단의 아름다움이 여기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남자를 흠모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나라를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바른 믿음을 소유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의 이런 모습을 다윗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은 요나단을 위해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1:26)

그리고 다윗은 훗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그를 극진히 대우하고 평생 다윗의 상에서 밥을 먹게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다 줍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지킨 언약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처럼 진심으로 축하할 것이 있으면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예) 달리기를 잘하면 잘한다고, 악기를 잘 다루면 잘한다고, 음식을 잘하고, 인사를 잘하고, 만들기를 잘하고, 위로를 잘하고, 못해도 성실하며 성실하다고, 열심을 품으로 열정이 있다고, 진솔하면 진솔하다고 말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좋아합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밀어줍시다. 옳은 것을 지켜 줍시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세워주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하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Ⅳ. 결론

오늘 우리는 요나단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믿음과 용맹이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리고 정의와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떤 가식도, 간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 아름다운 영웅입니다. 마치 백합화같이 순결하고 소나무같이 지조가 있고, 순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름답게 전사를 했습니다.

그는 화려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성전을 짓거나 저서를 남겼거나 기적을 일으키거나 환자를 고치거나 명 연설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살아야 함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존재하게 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모사요. 후원자요. 동역자였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건강하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 한 명 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우리가 이런 사람 되도록 노력하며 삽시다. 하나님이 참으로 복주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이 믿음과 용맹을 겸비하고, 정의와 신의를 지키는 사람... 예수님 처럼 자신의 권한을 다 내력놓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기 까지 사랑한 사랑이 오늘 요나단의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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