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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신약과의 관계 >

하나님아들 2015. 4. 8. 14:55

< 신약과의 관계 >

1. 마태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꼼브렁크(Combrink, H.J.B), 로오르(Lohr,C.H.), 엘리스(Allis, O.T.), 포스터(Vorster,W.S.) 등의 신약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구조를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구조적으로 13장의 천국 비유, 천국에 대한 설교를 마태복음의 중심 혹은 초점으로 보고 있다. 즉 마태복음은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중심으로 기록한 복음서라는 것이다.

 

1)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모든 사람들이지만, 특별히 유대인을 의식해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대인은 조상들의 여러 가지 죄로 인해 무너진 불완전한 통치자가 아닌, 메시야를 통한 완전한 통치의 나라를 기대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이 기록되었다고 할 때,“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보다도,“하늘나라(=천국)”라는 용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2) 그 이유는 유대인을 의식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표현하기 보다는 하늘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나라(=54), (=22), 천국(=34), 하나님의 나라(=3), 아버지의 나라(=2) >

3) 그리고 천국복음(=3) 이라는 표현도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의 첫 부분에서 특이한 것은 5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인데, 이는 5-7장과 8-9장으로 나눌 수 있다. 5-7장은 천국복음 즉 산상보훈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필요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8-9장까지의 내용은 말씀하신 후에 산에서 내려오셔서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신 것이다. 이런 이적들의 의미는,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언약하시고 이적으로 성취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말씀과 행동하심을 하나로 묶어서 9:35, 4:23의 문맥에 의하면 천국 복음인 것이다.

 

4)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아들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구약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전되고 구체화된 것으로 실현되었음을 마태복음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위에 직접 실현된 것을 힘차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탄의 저항이 이 땅에 잔존하고 있음을 사탄의 나라라는 표현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12:26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5) 마태복음은 아들이 인격적으로 이 땅위에 임한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었음을 증거한다. 동시에 그 나라는 미래에, 장차 완전한 나라로 실현될 것으로, 미래에 속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즉 천국의 현재적 실현과 미래의 완성의 나라를 동시에 말하는데, 이것은 결코 두 관계가 부자연스럽게, 부조화의 마찰이나 충돌이나 모순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현 : 4:1-11

하나님 나라의 미래의 완성 7:21, 13:1-37, 16:18-19, 28, 24:1-51

 

2. 마가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1) 마가복음에서 나라는 19, 하나님의 나라는 14, 왕은 12회 사용된다. 왕의 12회 가운데 예수님에게 적용된 것이 15:2, 9, 12, 6회 사용되고 있다. 마태복음과 비교할 때, 마가복음에는 그 용어가 하나님의 나라로 되어 있다. 천국이라는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2) 마가복음은 주로 이방인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이방인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자,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충성되게 소개하고 전파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가복음의 수신자로 인한 강조로 볼 수 있다.

 

3) 그리고 마태복음에 비해서 마가복음에 강조된 것은 예수님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이방인에게 여호와의 종이라고 할 때, 이방인에게는 가볍게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마가복음 전체를 읽어 나갈 때, 이방인은 놀랄 것이다. 마가복음의 클라이맥스에 가면 보통 일반적인 종이 아니라 굉장한 종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이 처음에는 종이었는데, 마지막에는 유대인의 왕으로 간주된다. 물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인해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도, 이 분은 과연 왕이시다 라는 것이 강조된 것으로 나타난다.

 

4)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특이하게 강조되었고, 그 나라를 세우실 주된 통치자가 예수님께서 왕으로 간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3) 누가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1) 누가복음에는 다른 두 복음서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표현이 아주 풍부하게 나타나 있다. 누가복음에서 특이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말라기 이후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줄 수 없을 어두운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1:32, 11:20, 22:29-30, 12:32)

 

2) 또한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이기도 하다(=1:32-33, 22:29-30). 하나님의 통치는 동시에 예수님의 통치이다.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차별성이 있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4:5-8, 22:24-27).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의 것과는 결코 합류할 수 없는 구별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3)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실제를 말하고 있다(=7:18-23, 11:20, 17:21-22)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을 21:5-38에서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1-24장까지가 독립된 것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누가복음은 완전히 종결 된 것은 아니며 사도행전 1-28장까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한 책의 제 1, 2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분리시킬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누가복음 1장에서 사도행전 끝장을 전체로 볼 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 2부에서는 다른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4) 공관복음에는 유대인을 의식해서 기록했든 이방인을 의식해서 기록했든, 공통으로 하나님의 나라, 통치, 다스리심,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아주 강조되었다. 즉 구조적으로 부분적으로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임재하신 인격적 임재로 하나님의 통치가 그 아들과 동시에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도록 미래적인 것까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의 현재적 측면과 미래적인 측면을 계시하고 있다.

 

4) 요한복음과 생명(=영생)

1) 공관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같이 넣어서 공동으로 취급할 수 없을 만큼 요한복음의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강조점의 차이중의 하나는, 기록 목적에 대한 것이 요한복음에는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성경을 읽는 사람이 유의해서 꼼꼼히 읽어야 목적에 해당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렇지 않다.“이 부분은 요한복음의 목적이다라고 짚을 수 있는 것이다.

 

2) 이 부분이 바로 20:30-31로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믿도록 하여, 생명(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이 세 가지 내용을 강조하고, 지금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땅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만이 할 수 있는 생생한 이적(=표적, signs)들을 증거하고 있다.

 

3) 표적은 공관복음에서의 이적과 예수님의 행하신 행동, 특별히 구속사역과 관련된 행동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표적들을 엄선해서 첫 번째 표적, 두 번째 표적, 세 번째 표적 등으로 계획적으로 구성해 놓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는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서 강조된 부분은,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측면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는 어떤가? 하나님의 나라에는 백성, 주권, 통치를 생각할 수 있는데, 요한복음의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본질적인 문제, 내용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의 영생이다.

 

4) 결국 공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2회 사용되고 있다(=3:3,5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18:36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내 나라(=왕국)”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 자신의 나라와 예수님의 통치를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나라라는 직접적인 용어 대신에 구성원의 본질적이고 내용적이고 자질적인 영생을 요한복음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영생(=생명)에도 현재성과 미래성이 나타난다. 3:36, 5:24-25, 4:35에 보면 메시야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현재적으로 소유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4:14, 7:37-39, 10:10, 20:22 등은 영생이 미래에 대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공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현재성과 미래성의 밀접한 관계에서 볼 수 있다.

 

6) 요한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확실히 지적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 어떤 적대 관계에 있음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세상이라는 용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별히 이 세상이 많이 나온다. 이 세상이라고 할 때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내용 가운데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반대하는 어떤 그룹,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세상이 영접하지 않고 적대하고 멀리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그러나 요한복음 전체의 구조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것을 통해서 이 세상의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을 영생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7)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강조의 차이가 있다. 즉 공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가 외형적이고 가시적이라면,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영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이고 본질적이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강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굵은 선에서의 계시에서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임을 우리가 확인했다. 우리가 그동안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역시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가르치신 중요한 주제임을 확인했다.

 

출처 :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
글쓴이 : 오직 성경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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