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

[스크랩] 제4강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여주봉목사)

하나님아들 2014. 10. 29. 23:02

4강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우리가 주일낮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첫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필수성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의 필수성 마지막 시간으로 기타 우리 신앙의 모든 부분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적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주부터 3-4주 동안은 성경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오늘날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옳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들 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으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인가? 등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신앙의 나머지 부분들과 하나님의 음성을 드는 것과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영적 전쟁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필수입니다.

 

우리는 영적전쟁하면 지역을 다니면서 땅을 밟고 지역의 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묶고 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전쟁은 어떠한 방법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영적전쟁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치른 모든 전쟁이 한편으로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그저 기도로 싸웠다는 말이 아니고 실제로 그 당시 창칼을 가지고 싸웠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과 그들의 적과의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의 우위에 달려있지 않았어요. 승패는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가지고 있었던 관계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적들과 싸우되 이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원수를 멸하였지만, 아이성처럼 보잘 것 없는 성인데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가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전쟁은 한편으로 영적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특이한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 한번도 똑같은 방법으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강을 건널 때에도 홍해를 건널 때와 요단강을 건널 때의 방법이 달랐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실 때에도 그때 그때에 다르게 지시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을 칠 때와 아이성을 칠 때의 방법이 달랐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때그때 방법을 달리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도록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전쟁에 있어서 그러기 때문에 필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요일 오전에 같이 나누고 있는 책인데, 더취 쉿츠 목사님이 쓴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귀한 책입니다.

그 책에서 영적전쟁에 관한 장이 있습니다.

그 장에서 보면 이 목사님도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영적전쟁의 핵심을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여러분 기억하실 것은 우리 신앙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이 말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분을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친밀한 교제이고

또 하나는 이런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런데 영적전쟁이란 책에서도 이런 삶이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를 핵심적으로 말하는데, 하나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영적전쟁에서 가장 큰 핵심이라고 합니다.

194쪽에서 인용합니다. “전쟁은 종종 예배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높이며 경배하며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역설적인 말인 것 같지만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때로는 기다림으로부터 영적전쟁이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헌신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도약판이 되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저자가 영적전쟁에 핵심으로 제시한 것이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조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게 되면 우리는 마귀에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하나님은 조건까지도 결정해주셨다.......내 방식대로 행한다면 항상 승리할 것이다.....하나님께서 시간과 조건과 방법을 결정하셨다......순종에서 나오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대적이 아닌 우리의 대장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고 했잖아요.

영적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조건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셔서 승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어떤 때는 찬양과 경배로 어떤 때는 기도 어떤 때는 친절한 행동들 어떤 때는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어떤 때는 외치게 하는 것 등등.

한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여러 해 전에 ....... 임재가 그 지역 전체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이 한 것이 뭐여요? 그냥 주님의 명령에 따라 행진한 것 뿐이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온 지역에 하나님의 임재로 압도하셨어오.

주님은 당신의 놀라운 임재를 나타내셔서 원수를 잠잠케 하셨다. 말 그대로 침묵이 그 거리에 찾아들었다.”

또 어떤 때는 어느 지역을 가면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게 하셨어요.

역시 하나님의 조건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방법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다림 때로는 경배와 찬양 때로는 침묵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분은 밥 맥기가 작곡한 강력한 경배의 노래인 임마누엘을 부르며...... 회개의 영이 그 거리를 뒤덮었다. ...... 한 남자가 외치면서 달려들어왔다.”

 

제가 기독교 언론지가 아닌 일반신문에서 본 기사입니다.

미국에 카트리나 때문에 재앙이 많았잖아요.

아마 중앙일보에서 본 것 같아요.

물자가 부족하니까 한때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어오. 한때는 경찰과 이재민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일촉즉발의 상황이 있었어요.

그때 그 옆에서 한 사람이 갑자기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너무나 놀랍게 대치하던 사람들이 스르르 다 흩어지게 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단순한 친절한 행위를 베풀게 하셔서 그것이 영적인 승리를 거두게 하시기도 했어요.

어떤 때는 베풂, 용서와 같은 사랑일 수도 있다. 나는 199212월 콜로라도 덴버 시내의 ....... 영의 영역에서 무엇인가 깨뜨려졌다.“

어떤 때는 기도를 통해서 역사합니다.

극적인 예가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죤 쥐 레이크라고 하면..... 이 분이 아프리카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유행성 열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놀라운 일이었다 ...... 그 유행성 열병은 없어져 있었다.”

 

영적전쟁에서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2.예배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필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빌3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참다운 성도의 특징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지난 번 비전트립에서도 예배회복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전체 중 한 시간이라도 빠진 분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테이프를 들으십시오.

어제 우리 오이코스 인턴 리더모임에서 테이프 한 세트들을 리더들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지체들 중에서도 한 시간이라도 빠진 분들은 빠른 시일내에 꼭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세 가지를 말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할례당이라고 합니다. 할례당이라는 말은 참된 성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랬는데 봉사한다는 말은 예배한다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영어 NIV는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 주관자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서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가 타락하면 어떻게 되느냐?

정해진 순서를 잘 마치면 예배를 잘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타락한 예배입니다.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려면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사를 드리고 하나님 그분 자신을 인하여 기뻐하며 그분께 우리 사랑을 고백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발견하고 그 뜻과 의중에 우리의 삶을 조정해서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배의 요소 중에는 즉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해 가시는 즉흥성의 요소 말입니다.

 

우리가 이번 비전트립에서 살펴보았습니다만 로이드죤스 목사님의 책인 부흥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두 가지에 대해서 말하는데

먼저 타락한 예배에 대해서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여러분은 교회생활에 있어서 매우 두려운 성향을 띄고 있는 것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주목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 지점을 향해서 모든 것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는 위험에 처해입니다. 모든 항목이 다 미리 정해져 있고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서 어느 시점에서 마쳐야 하는 것이 다 되어 있습니다. 목회를 하는 제 친구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일날 이면 다른 교회에 가서 순회설교를 하면 할수록 이런 일들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교회에서마저 강사에게 순서가 적힌 종이를 준다는 말을 저는 반복적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그 앞에 순서지를 놓고 그대로 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11에 시작합니다. 성경을 봉독하고 그 순서지에 적힌 모든 것을 다 진행하여 12시가 됩니다. 그런 다음에 축도로 마쳐집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님께 기회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프로그램에 너무 매어있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렇게 형식적이 되었습니까?”

 

반면에 그는 신약성경의 예배에 대해서 말합니다.

신약교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즉흥성이다. 성령께서 주도하시며 우리는 인도해 나가시는 것이다. 생명. 살아있는 내밀성 살아있는 성령과 교제 활력 이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예배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때 거기에 즉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 예배마다 즉각적인 추구한다. 그것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진실로 하나님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그분이 의도하신 바를 주도하시면서 이루어가시는 즉흥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어제 오이코스 리더들 모임을 가졌는데 보고서를 읽다 보니까 한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의 예배가 또 하나의 패턴처럼 습관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썼다라고요.

대부분의 오이코스들이 잘 되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자분들 오이코스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절대로 혼자 설 수 없습니다. 만민 제사장설 다 믿지요. 우리 각자는 모두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그러나 우리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 살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교회의 지체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소그룹 모임인 오이코스가 필수적입니다. 여러분 거기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직장 때문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간을 들여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거기에 모여도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예배가 참다운 예배가 아닙니다. 또 하나의 형식이지요. 진실로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그분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배고파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 예배 가운데 오셔서 운행하시고 하나님의 의중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예배를 통해서 그 본질인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3.치유나 전도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여러분 전도 많이 해 본 분일수록 자기 능력과 지혜로 안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 전도 안해본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좀더 노력하고 좀더 기도하면 될텐데. 내가 좀더 담대하게 하면 될텐데.

그런데 전도를 많이 해본 분일수록 우리의 지혜로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자원으로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일수록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는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미국에 세미나 갔다가 전도를 많이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빠에도 가서 전도를 합니다. 미국 빠는 우리나라 빠와 다릅니다.

술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러 갑니다.

그분은 가서 이렇게 한답니다.

무조건 아무에게나 가서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시는가를 주시하여 본답니다.

보여지면 그에게 다가가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누고 주님을 전하고 하면 너무나 많은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온답니다.

 

제키플린저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제가 하지요.

마약 중독자들,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들, 깽단들, 사회에서 완전히 버려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역합니다.

이들은 포악하고 어떤 때는 목숨의 위험도 있고 그러지요.

그 지역을 가면 완전무장을 하고 간답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누구에게 일하시는가를 주시하여 봅니다.

누구에게 전하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이시지요. 하나님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을 보게 한답니다. 이것이 다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인도로 가능하지요.

그러면 그에게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자원으로 안됩니다.

 

여러분 사울을 전도한 아나니아를 보십시오.

사울 한 사람이 예수믿게 된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를 통해서 신약성경이 13권이 쓰여졌습니다. 그를 통해서 초대교회가 거의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전도할 때 사울을 목표를 기도하고 금식하고 열심히 쫓아가 전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전도하기 원하셔서 그를 직면하셨지요.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보이심으로. 그래서 영광의 빛 앞에 눈이 멀어 다메섹에서 금식하고 있는 사울을 위해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서 주소를 알려주시고 가서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아나니아가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세례받고 거듭났습니다.

 

이 말은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와서 지금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 일주일 동안 세상일에 바쁘고 주일되었으니까 교회에 나가는 것이 예수믿는 사람들의 의무이니까 생각하는 분들은 오늘 설교 재미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재미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서 교회 와서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돈벌 비결을 발견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모함도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신앙이 너무나 형식적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 문제 해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너무나 타락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실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알 수 있을까? 치유이든지 전도이든지 다른 일이든지 하나님께 붙들려서 쓰임을 받을까 하는 분들은 사모하겠지요.

 

자 전도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 신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되 하나님 그분 자신을 구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되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기를 원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순종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4.치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시간도 그렇고 조건고 그렇고 방법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행3장에 보면, 베드로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친 사건이 나옵니다.

기억하실 것은 그 길은 예수님도 여러 차례 지나가셨습니다.

베드로도 그날 처음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여러번 갔습니다.

그날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느냐면 그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자에게 가서 나를 주목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일으켰을 때 그가 일어났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5장에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병자를 고칩니다.

이 연못은 전설이 있지요.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하면 제일 먼저 들어간 자가 고침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날 한 사람만 고쳤어요. 그것도 그날이 안식일이라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이해로는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이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수님은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대적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셨어요.

그렇게 하신 이유는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행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보이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이 그날 제자들과 함께 그곳을 지나가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환자들 중에서 한 사람만, 그것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방법으로 치유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면 어떤 때는 눈먼자에게 보라 하니까 치유되었어요. 어떤 때는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니까 치유되었어요.

치유도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결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5.중보기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필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중보기도를 보십시오. 중보기도자들을 보십시오.

모세든지 느헤미야든지 다니엘이든지 그들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시내산 꼭대기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멸하지 마옵소서. 이 백성을 멸하시면 애굽백성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멸하려 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든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코 앞에까지 와서 멸망 직정에 잇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금송아지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앉아서 술취해서 먹고 마시고 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모르니까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울에 대해서 말하기를 내가 그를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밤새도록 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너 언제까지 울고 있을거냐 말하면서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당시 다윗은 알려지지 않았지요. 이새의 집에서 가서 기름부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그 후로도 20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 동안 사울이 버림받앗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사무엘 외에는. 백성도 몰랐고 가족도 몰랐고 사울 자신도 몰랐습니다.

사울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울에게 권세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울을 통해서 놀라운 승리가 일어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울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대단히 화려했습니다.

원래 학개 스가랴 시대에 두 번째 세워진 성전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헤롯왕이 건축광이었습니다.

그는 에서 자손의 후손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대규모로 건축하였습니다. 실제로 파괴될 때까지 증축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을 가지고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암탉이 병아리를 품으려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품으려고 했는데 너희는 거부했다 너희가 너희 자손을 위해 울라고 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천기를 분별하면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보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올바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알아야지요.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지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아야지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지요.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할 수 잇지요.

중보기도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으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으면, 기도의 자리로 나가가야 합니다.

 

엘리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엘리야시대에 엘리야에게 아합왕 앞에 나가서 그의 죄로 인해서 땅에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라고 하지요. 그래서 엘리야가 그대로 말했고 실제로 비도 이슬도 3년이나 오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사막 지역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그 즈음에 3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엘리야에게 아합왕에게 나가라고 합니다. 다시 비를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갈멜산 대결이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는 대결을 합니다.

850년의 바알 선지자들은 아합 궁전의 선지자들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타락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렸고 엘리야가 850명을 이들을 처단합니다.

그때 성경은 큰 비의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들은 것입니다. 다가오고 있는 비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는 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참 기도하고 종에게 가서 보라고 합니다. 아무 일도 없다고 하지요.

이런 일을 일곱 차례를 합니다.

그때 종이 말하기를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빨리 내려가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아까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고 했고 비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부터 엘리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517-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해서 비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우리 임의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집니다.

기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님을 설득시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우리 삶을 그리로 조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일하시되 우리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동참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상이기는 합니다만,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사울에게 나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사울이 치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필수입니다.

 

이번 비전트립에서도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하나님이 이 시대에 무엇을 하고 계신가 어디에서일하고 계신가 무엇을 추구하고 계신가를 간절히 알기를 원하고 주님 계신 곳에 내 온 삶으로 같이 그곳에 있기를 원하는 열망이 없다면 저와 여러분은 신앙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주일날 안 빠지고 교회에 올지 몰라도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안식일을 지켰고 십일조 훨씬 잘했고 구제 율법 잘지켰어요.

그런데 그들은 전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어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같이 있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우리는 크게 병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중에 하나님의 의중과 뜻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온 삶으로 거기에 같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면 기도로서,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포도나무교회에 더 큰 빌딩을 짓고 가득 찼다고 합시다.

그러면 국민일보에 날 수 있어요. 포도나무교회 급성장했다고. 목회자 세미나 하면 몇 천 명이 모일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여기에 모일지라도 주님의 의중과 의도를 알기 원하고 영적인 경각심을 가지고 그분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그분이 의도하신 바를 발견해서 우리 온 힘을 다해 거기 동참하는 것이 없으면 교회는 인간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충성받는 것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비록 적은수일지라도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주님이 계신 곳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무리들이 있을 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120명을 통해서 세계를 바꾸셨습니다.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주님을 사모하는 열정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진짜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것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의중을 발견할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모여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으면 우리가 힘을 다해 거기에 같이 있기를 그런 사람이 모여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저희가 위원회 모이겠다고 했는데 교회 전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그렇게 모이기 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비전 프로젝트만 해도 구체화될 필요가 있어요.

잘 들으세요. 이런 이야기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목사님이 건축헌금하라고 저러는구나 넘겨집지 마세요.

어떤 이유로 어떤 분하고 통화했어요. 그분이 통화하고 난 다음에 대전 셀마치고 도착이 늦어졌는데 늦은 시간이었어요.

통화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오더래요. 저와 이길수 목사님이 계속해서 생각이 나더래요.

그분은 참고로 20대 초반부터 은사가 강하게 임했어요. 예언의 은사가 강력하게 임해서 때로는 놀랍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잠이 안와서 기도하라고 하는가 보다 하고 기도했데요.

그날은 하나님이 코 앞에 와계시는 것 같더래요.

그런 적은 그 전에도 없고 그 후에도 없을 것 같더래요.

그러면서 갑자기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부흥이 예비된 것을 말씀하시더래요. 선명하게요.

참고로 자기는 20분 지간 것 같은데 깨어보니까 2시가 넘었드래요. 최소한 두 시간 이상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부흥을 말씀하시는데 다음 순간에 포도나무교회가 비추어지더래요.

또 선교회에 대해서 말슴을 하나님이 쭉 주시는데 다른 내용이 아니고 저 앞에 써 있는 내용들을 하나님이 그대로 감동하여 말씀하셨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듣고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다른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엘리야처럼 안 나갑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우리의 사역 전반 우리 신앙 전반에 대한 것을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영적전쟁을 위해서 예배를 위해서 치유나 전도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위해서 필수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모든 면에서 필수입니다.

우리 포도나무 교회 모든 지체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몇 가지 신앙의 규례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이해는 가짜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 가운데 행하며 그분을 존재를 다해 사랑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여 있는 곳에서 지역에서 나라에서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시리즈를 살펴보는 이유도 그러한 삶을 사는데 중요한 한 부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맺는 삶 포도나무의 삶을 살 때에 주님이 의도하신 놀라운 목적이 이루어지고 주님의 승리가 넘치고 진정으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기쁨과 감격이 넘칠 것입니다.

그렇게 다 주안에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발의무리
글쓴이 : 발의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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