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이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2. 십계명 발령의 동기
3. 십계명 내용의 해설
4. 십계명 발령의 목적
5. 십계명의 복음적 의미
6. 맺는 말
3. 십계명이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그 나름의 특성 있는 인륜적인 도덕적 계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종교가 인륜적인 도덕의 옷을 입고 대중 속에 파고들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 역시 십계명이라는 계시적인 종교적 계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 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약의 십계명을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법의 요약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십계명 가운데 일부는 유교의 도덕률과 하등 다름이 없는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십계명에 대한 오해는 기독교를 일반적인 이방종교와 같은 하나의 인륜적인 도덕종교로 그 위상을 전락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간의 공로주의 사상을 고취시켜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성경적인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파괴시키고 있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십계명을 인륜적인 도덕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 스콜라 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로주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중세기의 이러한 잘못된 신학 작업에 의하여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 공덕을 쌓아 가도록 교화하는 도덕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세 신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빈이 크게 비판하지 아니하고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서 개혁교회에 전수하여 준 것이다. 따라서, 후대 개혁파 신학자들 역시 맹목적으로 그것을 전수받아 오늘에까지 가르치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계명과 도덕은 근본적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 계명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명하신 것이라면, 도덕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질서를 위하여 정한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과 공자의 도덕은 그 원리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계명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종교적인 계율이라고 한다면, 도덕이 그 의미나 원리에 있어서 근본적인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을 도덕법으로 취급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구약의 십계명이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적 계율이 아니고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십계명 발령의 동기와 그 내용의 해설, 발령의 목적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그 복음적 의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2. 십계명 발령의 동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명하신 동기를 살피는 것은 십계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절대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부분이다.
라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언급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란에서 부르셔서 그에게 자손이 번창할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실 것 또 큰 민족을 이루어 다스리게 하여 주실 것을 삼대언약으로 세워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을 예고하여 주셨다.
그 후, 야곱시대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이 흉년에 의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사백여 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여호와의 언약대로 그 자손의 생육이 중다하여 장정만 육십만여 명으로 번창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그로 하여금 그 자손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도록 하신 것이다. 그것은 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예고하여 주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려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 자손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능력으로 건너게 하여 시내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시기 전에 그들에게 시내산 언약을 세우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시내산 언약을 세우시는 목적은, 그들로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게 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명하시기 전에 먼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내용이 이를 잘 말하여 준다.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역사 섭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발령하여 주시게 된 동기인 것이다.
3. 십계명 내용의 해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십계명의 내용은 출애굽기 20장 1-17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스스로를 먼저 소개하시고 이어서 열 가지 계명을 명하여 주신다. 이러한 십계명의 내용을 성경 본문에 따라 차례로 해설함으로써 십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여 보기로 한다.
첫째,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고 명하심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신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2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른 신”이라는 말은, 하나님 외에 모든 ‘이방신’을 말한다. 즉, 하나님 외에는 그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 없으므로 다른 이방신을 그들에게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 당시의 백성에게는 이 첫째 계명을 지키며 행하기가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백성은 여호와께서 직접 애굽에서 자기들을 인도하여 내시는 것을 보고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설령, 누가 그들에게 다른 이방신을 그들 앞에 있게 하라고 강요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첫째 계명을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다.
둘째, 새긴 우상이나 아무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심
4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절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첫째와 둘째 계명은 내용의 의미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참으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신, 곧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질투하신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삼 사대까지‘ 라는 말은 ’잠시 동안‘을 뜻하는 말이고, ’천대까지‘라는 말은 ’영원토록‘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8)라는 말씀과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30:5)라는 말씀이 이를 잘 말하여 준다.
다시 말하면 삼 사대까지 죄를 갚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들로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고 잠시 민족적인 사랑의 징계를 하신다는 것이고,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계명을 지켜 여호와를 잊지 않고 경외하는 자는 영원토록 사랑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나아가서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이름과 그 신실성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셋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하심
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계명 내용은 첫째나 둘째 계명 내용과 그 의미상으로 맥이 잘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설령 계명을 어긴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고 잠시 후에 회복하여 주시는 것은, 언약을 이루시는 자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라는 이름 때문이므로 그러한 ‘여호와’라는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妄靈)되이 일컫지 아니하려고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입으로는 읽지 아니하고 눈으로만 목독 (目讀)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망령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뢋솨웨 ( ) 라는 말로서, 그 뜻은 ’헛되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라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대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내신 여호와이심을 잊어버리고 입술로만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열조에게 삼대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말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백성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망령되이” 곧 ‘헛되이’만 부르지 아니한다면, 그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그들 앞에 있게 하지도 않고 그 신들의 우상을 만들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섬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섭리는 잊어버리고 “여호와”라는 이름만 입술로 부른다면, 그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넷째, 제 칠일은 안식일이니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심
8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절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절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절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넷째 계명 역시 첫째 계명에서 셋째 계명까지의 내용과 그 의미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넷째 계명은 첫째 계명에서 셋째 계명까지의 내용과는 전연 의미상으로 맥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상의 맥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고 하셨는가? 그 근거는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제 칠일에 쉬셨음이라“라고 하신 말씀에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그 자손이 제 칠일에 안식하므로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 여호와를 그들로 기억하게 하여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노역에 시달려 안식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어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제 칠일은 편히 쉬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언약대로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의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여 경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섯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다고 하심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다섯째 계명부터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 아니고 인간과 관계된 내용이다.
그래서 이 계명이 앞의 계명들과 조금은 의미를 달리하는 듯이 보여 진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십계명을 인륜에 속한 도덕률로 착각을 일으켜 ‘도덕법’이라는 새로운 교리적 신종어( 新種語 )를 만들어 내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십계명은 인륜에 속한 단순한 도덕법 차원의 것이 아니다. 사실 다섯째 계명에서 열째 계명까지는, 얼핏 보면 인륜에 속하는 도덕률로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들 계명 내용들 역시 앞에서 언급된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의 내용과 그 근본정신에 있어서 일치를 이룬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신 계명은 그 백성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경외 하게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부모를 공경하여 그 가르침을 잘 받아야 자기 조상들을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통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배워서 알고 경외 하게하시려는 것이 이 계명의 근본 목적이며,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후손이 부모를 공경하며 잘 배워서 하나님 여호와를 잘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신 11:19-21)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섯째, 이스라엘 자손에게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심
13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 역시 인륜적인 도덕률로 이해되기가 쉽다.
그러나 이 계명은 절대로 인륜적인 도덕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계명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이 계명의 목적 역시, 앞에서 이미 언급한 다른 계명들의 목적과 일치를 이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그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을 언약하셨기 때문에 그 언약을 그 후손에게 이루어 주시려면 그들이 서로 살인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셔서 홍해에서 애굽 사람을 다 죽이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다 살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셔서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명하신 것이다.
일곱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심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 역시 절대로 인륜적 도덕률 차원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간음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짝을 이루어 주신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간음을 하게 되면, 질투로 인하여 둘 다 죽을 염려가 있어서 그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을 행하므로 그들이 생육하고 번창하지 못하게 되면 그들이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경외 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으로 “간음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여덟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도독질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심
15절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 역시 절대로 인륜적인 도덕률 차원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삶의 종이 되어 아무 것도 가진 바 없던 이스라엘 자손에게 애굽에서 나올 때에 많은 보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 땅의 온갖 재물, 곧 성과 집들과 과목과 금은 보화들을거저 주시기 때문에 “도둑질하지 말지니라”하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그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대로 이방 백성들로부터 빼앗아 거저 주시는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경외하지 아니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께서 분배하여 주신 유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도둑질하지 말지니라”라고 명하신 것이다.
아홉째,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심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 역시 인륜적인 도덕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는 이웃에 대하여 사실을 은폐하는 결과가 된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거짓이 자행(恣行)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신 진정한 사실이 가리워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하고 명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목적이 단순히 거짓 증거가 부도덕한 행실이기 때문에 백성으로 하여금 행동을 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를 바르게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열째, 이웃의 집과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심
17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이 계명 역시 인륜적인 도덕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계명에 있어서, 이웃의 아내를 탐내면 간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고, 그 외에 이웃의 것을 탐내면 도둑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범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라고 명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따라 그들에게 분배하여 주시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이웃의 것을 탐내게 된다면, 그것은 그 모든 소유를 분배하여 주신 “여호와”를 잊어버린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하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목적은 단순히 백성의 부도덕한 행동의 원천을 봉쇄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유를 언약대로 거저 분배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로 바르게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는 데 있다.
4. 십계명 발령의 목적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십계명을 발령하신 목적은 그 자손들로 하여금 그 계명을 지켜 행하라고 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목적은 그 자손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그들로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게 하시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명하시기에 앞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말씀이 이를 잘 말하여 준다.
이 말씀은 십계명을 주시는 전능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대로 그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이심을 밝혀 주시는데, 이는 그러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삼대언약대로 그 자손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고 가나안 언약의 땅을 정복하게 하셔서 나라를 세워 다스리게 하여 주실 여호와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않고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시내산 언약으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은 은혜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의 수단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시내산 언약으로서의 열 가지 계명 모두가 목적에서 일치한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대로 그 자손으로 하여금 바르게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지키는 목적은 인륜적인 도덕적인 도덕사회 건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를 바르게 알고 경외하며 섬기는 데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십계명의 목적이 달성되면 인륜적인 도덕사회는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여 자기 집에 가져다 놓는 대로 어느 힘 있는 자가 와서 다 빼앗아 간다면, 그 사람이 남의 것을 도둑질 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이처럼 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언약대로 분배하여 주신 것이라야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믿어지면, 도둑질은 그만두고 탐심마저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기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여도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정하신 뜻대로 섭리하여 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거짓말은 그만두고 거짓말을 할 생각조차 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잊지 않고 바르게 알아서 경외하게 하시려고 그 방법의 하나로 그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게 하시는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5. 십계명의 복음적 의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십계명이 복음적으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십계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본 주제에 대한 결론적인 해답과 다름이 없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십계명을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법으로 인식하며 중생하여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의 행동규범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경 자체의 논리적 구조에 의한 견해가 아니라 단순한 피상적 추론에 의하여 주장되는 미숙한 견해이다.
성경이 말하는 십계명에 해한 성경적인 복음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십계명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여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롬7:13)
십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세우신 시내산 언약의 기본조약 내용이다.
이러한 십계명은 여호와께서 돌비에 새겨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질 장막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안에 넣어 두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게 하였다(히 8:13 - 9: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십계명 돌 판을 백성은 물론 제사장도 보지 못하도록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속에 두고 속죄소로 덮게 한 것은, 누구나 그 계명 판을 보면 죽게 되므로 이스라엘 자손으로 죽음을 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십계명은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심히 죄 되게 하여 죽게 만들기 때문에 아론이 일 년 일차씩 십계명 돌 판을 덮고 있는 속죄소에 제물의 피를 뿌려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9 - 10) 라고 하였다.
이 말은 바울이 계명을 깨닫지 못하였을 때는 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살았었는데, 그 계명이 바울에게 이르므로 죄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명이 바울에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계명은 인간을 죄인 되게 하여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살게 하는 것이다.
둘째,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셔서 완전케 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7 - 19)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지 아니하시고 이루셔서 완전케 하신다.
따라서 시내산에서 여호와께로부터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셔서 완전케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다 행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7:3-4)라고 하였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하신다는 것은,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다 완전하게 이루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요 19:30).
그러므로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계명의 요구를 다 행하여 이루심으로 완전케 하신 것이다.
6. 맺는 말
시내산언약의 기본조약 내용인 십계명은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률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셔서 온전케 하신 그리스도의 법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일 뿐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그리스도의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말하고 사랑의 계명을 포함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그러므로 신약교회 성도는 모형과 그림자로 완전하지 못한 돌비에 새긴 죽이는 십계명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완전하게 하신 심비에 새긴 살리는 그리스도의 법, 곧 성령의 법 또는 사랑의 계명 아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교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법아래 살면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뜻대로 언약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경외하며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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