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2. 교회라는 말의 뜻
3. 교회의 본질
4. 교회의 속성
5. 교회의 조직
6. 교회의 기능
7. 맺는 말
4. 교회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언어의 혼잡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특히 인간의 정신세계를 좌우하는 영혼문제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종교적인 언어들은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에 있어서 언어에 의해 신앙적인 혼란을 심하게 일으키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많이 있으나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라고 하는 단어이다.
‘교회’라는 단어는 기독교의 대명사처럼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인간의 소중한 영혼을 병들게 할 만큼 신앙적인 혼란을 심하게 일으키고 있다. 물론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렇게 혼잡해진 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약 2천여 년 동안 흘러온 교회역사와 함께 이루언진 것이다.
기독교 초기에는 교회에 대한 견해에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건전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4세기경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을 받게 되자 교회는 크게 번창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로마교회는 교회에 대한 새로운 제도와 교리를 자기들에게 유익하도록 변질시키고 조작해서 대중들을 세뇌시키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중세 천년이 지나는 동안에 교회는 교회가 아닌 교회로 탈바꿈이 되어버려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교회로 완전하게 둔갑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 교회에 대한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하여 온갖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운동은 천년 세월이 넘게 뻗어온 중세 로마교회의 오랜 제도적 전통과 형식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개혁자들은 로마교회에 잘못된 제도적 전통과 형식을 배제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상단한 부분에서 그 잔재들을 남겨놓은 채 후대들에게 그대로 물러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수백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개혁교회는 전통과 형식, 그리고 교리적인 면에서 상당한 부분이 다시 로마교회화 되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 한 예를 들면 로마교회가 성당에서의 형식적인 미사 중심의 신앙행위를 하는 것처럼, 개혁교회도 소위 성전에서의 형식적인 예배 중심의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형식에서 내용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개신교가 부분적인 제도나 교리적인 차이 때문에 교파를 달리하고는 있으나 진보주의 교회나 보수주의 교회를 막론하고 거의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제도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일반적으로는 로마교회 곧 구교와 신교의 차이를 크게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보수적인 개혁신학자들만이 근본적인 교리적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은 도리어 구교가 신교보다 더욱 경건하고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에 대한 위기의식을 더욱 심각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 교회가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낡아빠진 제도와 형식만을 중시 여기는 형태는 진정한 교회의 파괴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화에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성경으로 재조명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본 논고에서는 지상에 현존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성경적인 견해를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2. 교회라는 말의 뜻
교회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이 지니고 있는 뜻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순수한 뜻을 알아보려면, 신구약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교회’라는 단어에 대한 원문의 의미를 분석하여 그 말이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근원적으로 알아보아야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히브리 원어로 ‘카할’이라는 단어와 ‘에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두 단어 가운데 ‘카할’이라는 명사는 소집하다 또는 모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카할‘이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집회 또는 회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에다’라는 명사는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모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야아드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모임 또는 회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모두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집단’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총회’를 가리키는 명사들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헬라 원어로 ‘엑클레시아’라는 단어와 ‘쉬나고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두 단어 가운데 ‘엑클레시아’라는 명사는, 장소나 근원을 나타내는 전치사 ‘엑크’라는 단어와 초청하다 또는 부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 ‘칼레오‘라는 단어가 합해져 이루어진 합성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회중 또는 모인 무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쉬나고게’라는 명사는 ~함께 또는 ~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전치사 ‘쉰’이라는 단어와 인도하다 또는 끌어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 ‘아고’라는 단어가 합해져 이루어진 합성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기독교인의 모임이나 집회’ 또는 ‘유대교 회당의 집회’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 두 단어 역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들로서 ‘택자들의 회중’ 또는 ‘택자들의 모인 무리’를 가리키는 명사들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교회’라는 말의 뜻을 종합해서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신 모임’ 이라고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특별히 택하셔서 그 후손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모아 주셔서 ‘이스라엘 회중’을 이루게 하시고,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을 죄악 세상에서 특별히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에 모아 주셔서 ‘성도의 회중’을 이루게 하셨다.
따라서, 구약에서의 ‘교회’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회중’을 의미하고, 신약에서의 ‘교회’라는 말은 ‘택한 자의 회중’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가 된다.
3. 교회의 본질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야기되었던 문제이다.
2세기 말에 이단들의 발흥으로 인하여 교회가 외면적 조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게 된 나머지 그 여파로 중세 로마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 결과 중세 교회는 그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 아닌 교회로 둔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빗나간 교회로부터 벗어나기를 시도했던 개혁파 교회는 상당한부분에서 교회의 순수한 본질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이룬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이 가해지면서 개혁파 교회 역시 성경적인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져 가는 교회로 변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며,
이차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다.
1.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하~16 )
성경적인 교회의 일차적인 본질은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다.
즉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인 바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성도가 연락, 곧 교통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교회의 근본적인 내적 본질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라는 말의 구체성이 문제가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셔서 현세에 실존하지 않는데 어떻게 지상에 생존하는 성도가 그와 교통할 수 있으며, 교통이 가능하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은 육체적인 교통이 아니라 영적인 교통을 말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 성도의 심령 속에 내주하시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성도의 심령 속에 내주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것은 성도가 신령한 일을 분별하는 것으로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하나님의 지혜로 성령의 일을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는 말씀이 이를 잘 증거 해 준다.
즉,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하시고 신령한 비밀을 깨닫게 하심으로 영적인 교통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머리와 몸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한다.
몸의 지체가 머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교통이 잘 이루어지게 되면, 몸의 지체는 머리의 의도를 알아서 그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이 잘 이루어지게 되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지체인 성도가 잘 깨달아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교통’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2. 성도와 성도와의 교통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성경적인 교회의 이차적인 본질은 ‘성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와 성도가 서로 연결, 곧 교통하여 교회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것은 교회의 결과적인 외적 본질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어서 성도 상호간의 교통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성도와 성도와의 교통’이라는 말의 구체성이 역시 문제가 된다.
그것은 서로의 주관이 다르고 생각과 뜻이 다른 성도 상호간의 교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다. ‘ 성도와 성도와의 교통’은 교회의 근본적인 내적인 본질과 같이 육체적인 교통이 아니라, 영적인 교통을 말한다.
이에 관하여 사도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3)라고 하였다.
즉 성도 서로간의 사귐, 곧 교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복음진리를 먼저 알고 있는 자가 교통을 하기 원하는 자에게 전해주는 것이며, 교통의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께서 복음진리를 먼저 깨닫게 하신 자로 하여금 타인에게 그 복음진리를 전하게 하셔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간에 깊은 사귐, 곧 교통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와 성도와의 교제’는 복음진리를 통한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한 영적 교제인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결론적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들의 사귐이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기 이전에 일단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없는 인간만의 교통은 인간적인 하나의 사조직에 불과한 것으로 교회의 진정한 본질에서는 멀리 떠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개개인이 내적으로 교통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성도간의 외적인 교통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본질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4.교회의 속성
교회를 이해함에 있어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역대 신학자들은 교회의 속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고, 실제로 교회는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 논고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주권성과 거룩성 그리고 유일성을 논함으로써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기여하려한다.
1.주권성(主權性)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교회의 주권성은 교회가 절대적인 그리스도의 주권적 산물이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주권적 행사로 세우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친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스스로의 의지 표명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관 아래 서로의 친분이나 필요에 의하여 교통을 가지는 인간적인 사교 집단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따라서 순수한 성경적인 교회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주관과 필요에 의해 자기 계획을 따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만세 전에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를 따라 친히 세우시는 것이다.
그런데 구교도들은 예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다 해서 인간 베드로가 예수께로부터 권한을 인계 받아서 세운 인간적 산물이 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의 주권은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역대 교황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다윗의 열쇠, 곧 그리스도의 왕국의 열쇠를 친히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해 주신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천국의 권한을 베드로에게 완전히 인계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그 주권은 여전히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지고 계신 것이다.
2. 거룩성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6~27)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가 아직은 성장해 가는 단계로 비록 죄악 세상에 존재해 있으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상태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죄악 세상에 머물러 있는 교회는 아직은 불완전하여 오류(誤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역사상의 교회가 타락하여 부패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가 교회가 교회로 지어져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육체적인 부분들로부터 나타나는 부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도 교회는 거룩한 교회로 지어져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교회가 완전히 다 지어져 성숙하게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갈 때가지는 여러 가지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 해서 교회의 근본적인 거룩한 속성이 상실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구교에서는 교회의 무오성(無誤性)을 강변하면서, 특히 자칭 교회의 황제로 군림하는 교황은 절대 오류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교회가 거룩성을 지니는 것은 교황이 무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지체인 교회도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3. 유일성(唯一性)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 4:3~4)
교회의 유일성은 유일하게 한 분이신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근본적인 내적 본질에 있어서의 교회 속성을 뜻하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인 외적 본질에 있어서의 교회 속성은 지교회로서의 많은 수의 교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성도가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외적으로는 장소와 시간상의 제약에 의해 성도간의 서로가 실제적인 교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의하여 각각 형편과 처지를 달리하는 별개의 지 교회들 간의 성도와 성도 사이에 직접적인 교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성령을 통한 간접적인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교에서는 교회의 유일성을 정치적인 조직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지 교회들을 정치적인 조직으로 로마교회의 산하에 묶어 둠으로 교회의 유일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배제한 정치적인 조직은 한낱 인간적인 사사로운 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5. 교회의 조직
교회의 조직에 관한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왜냐하면 교회에 있어서 조직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교회가 인위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로마교회와 같은 정치 집단으로 변모해 버릴 우려가 있고,
조직을 너무 무시하다보면, 교회가 무교회주의와 같은 처지가 되어 교회 존립이 어려워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적인 교회 조직의 원리와 방법 및 목적을 차례로 알아보기로 한다.
1. 교회 조직의 원리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6~8)
교회 조직의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도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임무를 분담케 하시는 섭리이다.
다시 말하면, 조직의 원인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시고, 조직의 실행자는 성령이시고, 조직의 성원은 은사를 선물로 받은 지체된 성도들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의 조직은 인위적인 계획이나 방법에 의한 정치적 조작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성도 각자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를 따라 임무를 분담케 하셔서 스스로의 몸을 세워 가시는 신적인 섭리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교사와 목사로 주셨으니...”라는 말로도 표현을 했다.
성도에게 각각 직임을 맡겨 교회를 조직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절대 권한인 것이다. 그런데 구교에서는 교황이 교회 조직의 최고 실권자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교황을 교회의 최고 실권자로 여기고, 섬기며, 받들고 있는 것이다.
2. 교회 조직의 방법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 하니라 (행 6:5~6)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조직 하시는 구체적인 방법은 초대 예루살렘교회 조직의 경우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무리들로 하여금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게 해서 사도들로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집사로 세우게 하셨다.
여기서 집사의 직임을 받을 자들을 무리들이 택했다고 해서 이를 인간의 주관에 의한 선택으로 알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무리들의 마음을 감동해서 선택할 자를 선택하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말하기를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집사의 직임을 받을 자를 선택한 사실을 인간의 주관에 의한 선택으로 보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일꾼을 선택할 때에는 성도들에게서 인간적인 모든 요소가 배제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감동만이 충만케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방법이 첨가되는 만큼 교회 조직은 순수함에서 멀어지고,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는 만큼 교회 조직의 순수함은 유지되는 것이다.
3. 교회 조직의 목적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조직하시는 목적은 연약한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여 다른 지체를 위해 봉사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려는 데 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밝혀 주고 있다.
여기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는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라는 말씀에 나타난다.
즉,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는 말은 성도로 하여금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 자라서 견고히 서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라는 내용에 대한 설명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엡 4:16상)라는 말씀에 나타난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는 내용에 대한 설명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엡4:15)라는 말씀과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6하)라는 말씀에 나타난다.
이들 내용은 모두가 성도들이 서로 도와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게 하여 교회를 자라게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교회 조직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6.교회의 기능
일반적으로 신학계에서 교회의 기능에 관한 내용이 교회의 권세 또는 임무라는 주제 아래서 논의된다.
그런데 교회의 기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도적이다. 그것은 권세와 임무라는 말이 서로 상충되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임무라는 말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책무를 부여하면 낮은 자가 받아 행해야 하는 의무를 말하는 것이므로 최고의 절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교회에는 의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의 권세나 임무라는 주제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그 아래서 논의되는 내용들을 교회의 기능이라는 주제 아래서 논의하려는 것이다. 교회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으나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본질적인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사역적인 기능이다.
1.본질적인 기능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0)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여호와의 언약 성취에 대한 계시 기능이다.
언약 성취에 대한 계시 기능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로 하여금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언약해 주셨다.
그런데 그 언약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을 사도들이 증거하였다. 그와 같은 증거를 통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그리스도가 오신 사실을 분명하게 계시해 주는 본질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 하시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영혼 구원도 교회를 세우는 목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진리에 대하여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엡 3:3)”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3:9)"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 속에 감추인 비밀을 계시하시려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속에 감추인 비밀은 만세 전에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지상에 세우신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언약하신 것을 성취하신 섭리에 대한 계시 기능은 물론, 만세 전에 작정하신 비밀을 드러내시는 본질적인 계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일차적으로 나사렛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언약 하신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는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사역적인 기능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
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이니라 (딤전 3:15)
교회의 사역적인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수호하며 전파하는 기능이다.
교회의 진리 수호와 전파 기능은, 하나님께서 성령 감동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계시로 전해주신 성경 진리를 가감 없이 수호해서 후대에 전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이니라”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라는 말로도 표현했다.
이러한 기능은 지상에 있는 교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역적 기능으로서 교회가 교회되는 유일한 표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의 진리 수호와 전파 기능에 의해 택함을 받은 자들이 복음 진리를 듣고 깨달아 구원을 얻어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지도 못하고 순수하게 전파하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의 건전한 영적 예배의 삶도 불가능하고 효력 있는 성례와 권징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엽적인 제반 모든 기능들마저도 마비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역적 기능이 발휘되면, 성도에게서 영적 예배의 삶이 이루어지고 성례와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게 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제반 모든 기능들이 원활하게 작동되어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질 없이 수호된 성경 진리를 순수하게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적 기능인 것이다.
7. 맺는말
지금까지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교회라는 말의 뜻을 비롯해서 교회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조직과 기능에 관하여 성경적인 견해를 알아보았다.
결국 지상에 현존하는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목적으로 성령을 통하여 택한 백성을 불러 모아 서로 교통하는 지체가 되게 하여 받은 바 은사대로 직임을 수행케 함으로 진리를 수호하며 전파케 하시는 신령한 단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차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확증해 주는 계시의 한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택한 백성은 역사상에 세워져 가는 계시적 기능의 교회를 통하여 그 원형으로서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되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믿으며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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